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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는 비 바람 흐름 천둥 이불 속 이다.(욥28:22-28 ) 본문

구약 QT

지혜는 비 바람 흐름 천둥 이불 속 이다.(욥28:22-28 )

주하인 2008. 10. 15. 11:30

 

 절벽 아래에 피인

코스모스 위로

가을 햇살이

흐드러지게 내리꽂았습니다.

그 탓인지요...

흐르는 계곡 바람에

그들은 춤추듯이 나부끼고 있었고요.

멀리 보이는

산길을 올라오는

차들의 움직임이

아름답게 조화되어 보이네요.

 

주님의 지혜를

욥은

이런 감각 속에서 표현한 것은 아닐런지요..

그의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이러한 놀라운 감성을 유지함은

주님의 임재와 동행의 결과가 아니면

가능치 않은 일인 듯합니다.

 

샬롬

 

 

 

 


제 28 장 ( Chapter 28, Job )
22.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  
23.  하나님이 그 길을 깨달으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24.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두루 보시며  
25.  바람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며  
26.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뢰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  
27.  그 때에 지혜를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궁구하셨고  
28.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욥께서

'지혜'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신다.

그는 지혜로운 자다.

 친구들은

지혜로운 자로서 행세하며

그에게 온갖 충고를 하였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해 보였다.

 

욥은

하나님께서 나오는 지혜가 참 지혜고

그 지혜는 사망과 멸망도 모른다고 했다.

사망과 멸망은 무엇인가?

반드시 죽음으로 돌아가야 할

이 땅 위의 모든 것을 의미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을 탐내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이 세상의 지식을 의미하는 것은 또 아닌가?

세상의 것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이 '지혜'라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친구들은 '잘못한 거 회개 만 하면 다 풀어진다'라고

만고 불변의 진리인듯

그에게 잘라 말한다.

그게 '지혜로운 자임을 자처'-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 하는 자다.

 

 욥은

지혜에 대하여

1절 부터 계속 묘사 해오지만

묵상 구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바람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며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뢰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  
 무엇인가 정확히 표현하기는

내 지식

이 주모의 경험이 너무도 짧기에 불가하지만

그이의 표현에서 느껴지는

그 지혜라는 존재에 대하여 느끼는 감각이

살랑이는 바람과도 같고

가끔은 풍량이 커지는 시원한 바람 같기도 하고

비오는 날

빗방울이 부딪히며 뿜어 올리는

물기어린 땅내음이 맡겨 지는 듯 하기도

땅 위를 때리는 소낙비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기도

오래 전, 외할머니 이야기를 듣다가

강한 빗소리와 함께 들리는

천둥 우뢰의 소리와 번쩍임에

겁을 먹고 이불속으로 뛰어 들며

형 동생과 깔깔대던 그 기억 같기도 하며

어두운 그 밤에

번쩍이던 번개의 순간적 밝힘에

보이지 않던 길이 훤히 보이던

그런 느낌 같기도한.....

무엇이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의 '지혜'에 대한 의중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뉘앙스다.

그의 표현을 듣자니

무언가 한없이 넓혀지고 자연스러워 지는 듯하고

큰 의미가 없지만

무엇인가 깊이 알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러한 허탈한 충족감의 느낌이 들게 한다.

'성령의 충만함' 때도 이런다.

성령의 운행이

지혜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반면에 친구들의 그것은

'단정적'이고

'생각할 여지가 없고'

' 유치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강팍하다는 생각을 금할 길 없다.

 지혜는 그런 것이 아님을 알겠다.

 

 욥은 혼자다.

친구들은 다수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 한다.

 

 욥은

친구들에게 강변하되

하나님을 쳐다보고 이야기 한다.

 친구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등 뒤에서 맞아 맞아.. 하는 분으로 착각하는 듯 !!) 욥에게 이야기 한다.

 

 욥은 겸손해 보인다.

친구들은 교만해 보인다.

 

 욥은 지혜롭고

친구들은 미련하다.

아니,

욥은 어른같고

친구들은 아이같다.

 

 

 무엇이나 다 아는 듯하고

누군가 나에게 맞장구를 치고

맞아 맞아 할 때

정말 다시 한번 돌아 볼때다.

 지혜롭다 칭찬을 받을 때가

가장 미련해질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최 상류 층인 욥과의 교류를 하는 친구된 자들로서의

사회적 등급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시간이 지난 연세 드신 분들로서

모든 것을 다 꿰뚫은 듯한

그러한 위치에 있음이 분명하다.

 욥을 만나고

그들의 당혹스러움을 컸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정을 넘어서는 어떤 묘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나라면.. '

' 나는 그렇지 않았는데.. '

' 나느... ㄴ..'  하면서

자신의 우월한 부분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 던 중

친구들이 한마디 씩 거드는 것이

자신의 생각과 어쩌면 그리도 들어 맞는 지..

그것은 확실한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있게 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그러한 그들의 심성에는

사단의 움직임이 클 것이고

그 사단의 자극은

그러한 상상력을 움직이도록

교만과 잔인함과 쾌감등을 움직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친구인 욥에게 그리도 잔인하게 몰아 부치지 않는가?

 

 배울 점이 있다.

교만은 패악의 근 본이다.

특별히

사람들이 많음을 빌미로 '그것봐.. '하는 생각은

그럴듯한 사단이다.

 가장 우선하는 것은

'하나님께 여쭈어 봄'이다.

그래도 그래도

내가 옳은 것 같아도

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여쭈어 봄을 가져야 함이 옳다.

그리고

상대의 아픔에 귀기울여야 한다.

'긍휼'이라 표현 되어 나온다.

'사랑'이라고 알고 있다.

 

즉,

하나님을 전제로 하지 않은 지혜는

어디에 도 없다.

지혜는 머리 좋음을 넘어선다.

그것은

세상을 관통하고 꿰뚫는 영적인 원리 수 있다.

그 원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치우치는 것은

지혜와는 아무 상관없는

자기 만족적 교만이다 .

 그냥 대가X 만 좋은 것이다. ^^;;; ㅎㅎ

 주님은 그 지혜를 말하신다.

친구들은 머리는 좋은 지 몰라도

사람을 위하고 사랑함이 부족하다.

그들의 그러한 것은 위에 기록한대로 느껴진다.

하나님 만 믿는 냉철한 자들은 '율법주의' 빠지기 좋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는 자들은 '타락과 방종'한 자들이다.

현대인에게 얼마나 많은가?

주님은

둘 모두가 겸비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쉬운가?

일상의 삶 속에서

얼마나 지혜로웁게 살 수 있는가?

 총론적으로 이리 알아도

각론에 들어가면 얼마나 쩔뚝 거리며 실족하는가?

 

 주님의 지혜 속에 사는 것은

서로에게 선한 느낌과 자연스럼과

무위의 느낌과

충만한 느낌으로 다가 오게 되어 있다.

그것은 서로 서로 위해 주고 사랑하고 살게 한다.

법이 왜 필요한가?

그게 천국이 아닌가?

천국의 이러한 지혜로운 삶은

바로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충만한 삶'

'주님과의 내주 합일의 삶'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이외에

자신에게 대입하여 정리하면

'심령천국'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적용

 

1. 지혜에 대하여 묵상한다.

 지혜는 바람의 완급을 조절하시고... 비.. 천둥.. 이불 .. 속이다. ㅎㅎ

 

2.  사람을 사랑하고

 주님을 의지한다.

 

3. 말씀을 여섯 장 읽겟다.

 말씀은 지혜로운 자의 근본이다.

 매일 말씀 묵상에서 모든 지혜가 시작된다.

 

4. 성령 충만함을 갈구하자.

 오늘 전인치유다.

 특별히 성령이 나에게 뿐아니라. ..

 환우들에게 이글거리도록 기대한다.

 

5. 화나는 일이 있어도 참겠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혜를 위하여

 

 

 

기도

 

주님

어려웠지만

인도하심이 느껴져 감사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자지만

타이프 실력 믿고 블로그에 앉으니

또 여지없이 이리 인도하십니다.

주님

저에게 주신

이 지혜의 말씀을

잘 간직할 수 있길 원합니다.

그 말씀으로 지혜로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남을 위하여

남을 사랑함이

그것은 저를 위하여 저를 사랑함과 다를 바 없음을

지혜로운 말씀 묵상으로 인도하셨음을 아니

감사드립니다.

이게 말씀앞에 선 자...

아니 서려 하는 약간의 노력 탓인줄 아오니 더욱 감사드립니다.

댓가없이 받는 이러한 깨달음이

얼마나 귀한지요.

주님의 사랑은

아주 약간의 말씀에

아주 적은 순종만으로도 이루어짐을 안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지혜로와 질텐데요.

이 놀라운 이치를

저 혼자 만 알지 않도록 하소서.

예수님

감사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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