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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받은 자로서의 죽음에 대하여[신34:1-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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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받은 자로서의 죽음에 대하여[신34:1-12]

주하인 2018. 6. 30. 10:30

아무리 높이 올라가고

아무리 깊이 파 보며

모든 정보를 집약하여

결론을 내리려 해도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끝날 것이며

알지 못하는 것도

역시 

그대들에게는

영원히 닫혀 있게 될 것이다


죽음

영혼

영생에 대하여

흥미와 관심조차 없는

이땅에 고정된 눈을 가진

불쌍한 모든 인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


모든 만물과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매사 매시

우리의 영혼에 임하셔

함께 하시고자 하시는

그분의 전적이신 선택과

인도하심이 아니고

절대로

우리는

이 땅 이후를

짐작 조차 할수도 없다


영원 불멸하신 전능자 하나님

절대 사랑의 하나님께서

내게 오셔서

날 인도하시고 보이시고

다정히 어루 만지실

그때에야만

비로소

영생이 보이고

영원이 느껴지며

죽음의 비밀이

또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삶임을

절절히 알게 될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짧은 시간 후에

곧 마주할 그 지점에 대하여

다시한번

감사함으로 묵상한다


진정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리하심이

감격이다



4.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시매

5.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왜

여호와께서는

힘들여 산을 오르게 하시고

이곳 저곳 멀~리 ..

마치 날씨 좋은 날 L 타워 전망대 올라 멀리 보게 하여 주시고

하나하나 설명하는 아버지 처럼 보이시고는 

'그런데~~

 넌 그리로 건너가지 못할 거야' 라고 하셨을까?


왜?

놀리시려고?

분위기가 분명코 다정한 아들에게 세심하신 아버지가 설명하듯

그리 사랑스럽게 보이셨는데..

왜?

그냥 후대에 경고하려고?

단지 그 목적이라면

그 감정적 '괴리'는 어찌 감당해야하는가?


하나님께서 분명코 그렇다면

정말 죄송한 표현이지만 psychopath. 같은 느낌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남의 아픔이나 힘듦, 좋고 싫음에 '반응하지 못하는'

정신이 아픈 사람들.. 싸이코패스.


위와 같은 해석이라면

그 해석을 펼쳐 놓은 분은

속상하시겠지만

하나님을 그리 만드시는 것이란 생각밖에 안든다. ㅠ.ㅠ;;


 그리고..

'죽음' 자체에 대하여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보이시기 위함도 있음이 아닐까?
 당연하지만 죽음이후는 '망각' .. 잊혀짐.. 이 아니고

또다른 차원으로의 '점핑'이며

그것은 이 땅의 것과 확연히 다른 것이며

그 일반적인 감성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만 해당한다.. 당연히도.. ^^*)

마치 '아버지의 인도하심에 따라 여행가서

멀~~리 ..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새로운 광경 , 아마도 우주의 그것 같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나지만 현실인 ..

그러함을 가슴 떨리게 마주하는 듯한

그러한 어떤 새로운 지경이 아닐까..

조심스레이

오늘의 말씀을 근거로 예상해본다.

 

 
9.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그렇다면 왜일까?


왜 넘어가지도 못할 '요단강' 너머를

저리도 다정하고 세심히도 보이시고는

'죽을 것'을 이야기 하셨을까?


어쩌면 '죽음' 자체에 대하여 묵상하도록 하심이 아니실까?

 

죽음 이후의 세계.

죽음 이후 이 땅에서 일어날 일.....과

영원...과의 연계 고리.

죽음의 본질.

삶의 이유.

삶이 마무리 져질 바로 그 시점에

어떠한 시선으로 가야할 것을

보이시고자 하시는...

.....................


난..

여호수아가

마치

아무 감정없는 로보트처럼

'모세'의 일을 가로채.. 척척 하나님의 명령하신 일.. (싸이코패스의 눈으로 보면 '작업'ㅠ.ㅠ;;)을

하등 고민없이 '순종'만으로 해치우는 것을 보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위의

'죽음' ..

이 땅에서의 상급과 죽음 .

죽음 이후의 이땅의 펼쳐지는 연속성.

그리고 그 후의 또 다른

'영생자로서의 정체성' 등을 짐작하게 하기 위하심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살아온 땅.. 에서

내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하여는

후손, 자손으로 이어지니

그리 큰 아쉬움도 필요 없을 것을 넌지시 보이심이시고

그의 그 큰 역할이지만

내려 놓게 되면

또 다시 하나님의 역사가 내 뒤, 우리 뒤를 이어서

자연스레이 이어가실 것..

지혜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이

그리 이어가실 것이기에

나, 우리는

죽음..

그 죽음이후의 어떤 아쉬움이나 붙들고 싶은 욕구들.. 을

이제는 가벼이 내려 놓아야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걱정.

내 두려움.

내 붙들려 하는 그 어떤 붙듦도

이제는 그냥.. 가만히 손풀고 내려 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거다 .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알고

하나하나 '욕심'과 '내 자아의 변질된 목표'로 인한

이 인생의 허덕거림에 대하여

최소한 내 나이 또래의 믿는 자들에게는

손풀어 '적신(赤身, 빈몸)'으로 갈 준비 연습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나..

주하인에게

오늘

주님은

이제는 더 이상 주변의 비교와 그들의 가짐과 내 못가짐에 대하여

비교하고 그들과 비슷히도 더 .. 더 .. 하려는 욕심을 정리해도 될

그러함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


  


나.

죽음의 나이를 기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천국, 다른 차원의 점핑. 영생.. 개념을 알고 기대하고는 있지만

막연한 두려움이 내 안 한구석에 있음을 알고 있다.

 그 두려움 중에는

'자식'들.. 가족들에 대한 보장.. 문제도 있고

내 막연한 천국에 대한 기대와 달리 다르면 어쩌지 하는

불신의 흔들림.. 도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 .. 죽음을 눈 앞에 둔 '모세'에 대하여

하나님이 특별하고 특이한 마주함 후에

(노인네, 힘없고 죽을 것 경고 받은 죄책감 있을 .. 그에게

 왜.. 그 높은 산에 올라가 장엄하고 가슴 뻥 뚫리는 것을 보이셨을까?.. ^^*)

'선택받은 자로서의 죽음'에 대하여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심이 아니실까 싶다.


그렇다.

내 기도하는 그 나이.

죽음의 나이에 대하여 그게 주님의 뜻과 맞을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살아갈 나이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적은 내게

죽음을 다시한번 묵상함은

그래서 가슴이 따뜻해옴은

하나님이 레마로 주심이시다.


그게..

또..

감사하다.


주님

내 모든 것을 아시고

내 이제 준비해야 할 것을 아시는

전능자이시고

사랑의 모든 것이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죽음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선택받은 자의 죽음에 대하여 그리합니다

그보다 모세처럼 많은 충성을 한 자를 그리며 그리합니다.

내 주여.


이 후의 삶과

이 후의 내 후대로 이어지는 그러하심마져

모두 다 주께 맡겨도 될

마음의 안정이 느껴지는

또 하루입니다.


내 주 예수 시여.

감사합니다.

홀로 영광 받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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