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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요 21:20-26 )

주하인 2008. 12. 31. 18:51

제 21 장 ( Chapter 21, John )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무슨 이유로 베드로가 그랬을까?

요한을 보며 '그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물어 보았을까?

당연히도 궁금한 것은 그렇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지 못한 것은 틀림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엉뚱한 베드로는 엉뚱한 반응을 보인다. 

상황에 맞지 않는 반응.

주님은 당연하시게도 '네게 무슨상관이냐?'라 하신다.

 왜인가?

왜 베드로는 그리 물었을까?

비교 의식은 아니었을까?

깊은 죄책감에서 헤어나오면서

주님의 다정한 위로와 지도 가운데서

그의 영혼이 살아나오면서

봄날 아지랑이 피고 동산에 파릇한 새싹 돋듯

영혼에 생기가 돌자

주님이 말씀하신 예언의 말씀에 긴장이 되기도 하며

이제야 오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또다른 제자 ' 요한에 대한

묘한 감정이 일었을 수 도 있다.

물론 단순한 궁금증일 수도...

 

 주님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으시다.

단칼에 자르신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

 

맞다.

무슨 상관인가?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족하지

왜 이리 이유가 많고 생각이 많은가?

 

내일은 2009년의 시작일이다.

 

벌써...

 

돌아보면 작년 요맘 때 맹세하고 기도했던 - 실은 새해의 맹세를 하기 시작한 것은 거의 없었다.

주님 안에서 회복이 되면서 주님 뜻 안에서 생긴 의욕이다. -  맹세들이

조금은 이루어졌지만 많은 부분 흐릿해져 가며

지금 이 시점에서는 당혹감으로 바뀌어 가고 있던 게 사실이다.

마치 베드로가 무거운 짐 얹고 디베랴 내려온 것 만 같은..

 그럼에도 주님이 나타나셨었기에

그는 뒤죽박죽이었던것이다.

 

이제 곧  새해다.

베드로처럼 또 옛날의 엉뚱함으로 되풀이하는 한해가 되질 않아야 한다.

물론, 과거보다는 성장했다.

인정한다.

그러나, 엉뚱하다.

그 엉뚱함은 괜한 비교에 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면서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자아의 가로막음이 그렇게 한다.

흐릿하다.

영혼에 막이 씌워져 있는 듯하다.

그 영혼이 이제 새해에는 걷우워져 야 한다.

 

 난,

주님의 말씀이면 족하다.

주님이 하라시면 하면 된다.'

사람과 비교할 이유가 없다.

참 어렵다.

쉬우면서도 왜이리 어려운 것인지...

비교란..

그 비교가 주님 안에서 비교도 어렵다.

질투가 올라오려면 답답하다.

삶에 힘이 없어지는 것 같다.

주님 앞에 죄송하기도 하다.

 

 이제 새해는 이러련다.

 

난, 나만 본다.

이제 50의 자아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잘나봐야 50세의 잘남인데 그게 무어 자랑일 것인가?

내가 못나봐야 50세의 못남인데 그게 또 무어 못나보일까?

거기서 거기다.

이제

주님만 과의 온전한 관계가 필요하다.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와

내가 원하는 바램과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뜻 사이에서

남들에게 도움이 될 것을

그냥 정하고 따르련다.

남들이 잘나감도 나에겐 의미없다.

내가 잘 나감도 의미없다.

그냥.. 주님의 인정과 칭찬과 주님의 명령 만이 내게는 의미가 있다.

이제

50의 내가 지켜나가야 할 새해 모습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주님을 기억하고 잊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더욱 뚜렷이 주님 만을 보길 원합니다.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내 좋아하는 것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이 명령하시는 것이 내 유일한 기쁨의 목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성공과 취득은 그리 의미가 없길 원합니다.

장래에 대한 막연한 비교는 더더욱 없어지길 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대로 나가는

요한 같은 성공자들을 축복하는 청명한 성화가 필요합니다.

주여

도와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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