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랬어야 했다 이래야 한다 [삼하15:13-23] 본문
이랬어야 했다
아무리 캄캄하다해도
아무리 암담하다해도
아무리 마주하기 겁나더라도
이랬어야 했다
더 주님 앞에 나가야 했다
더 주님께 여쭈어야 했으며
더 주님 앞에서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임하시는
여호와의 영광으로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그 영혼의 성전이 가득차는
그런
또한번의 승리를
경험했어야 했다
다윗은
가족 문제에서만
그러지 못하였다 ㅜ.ㅜ;
그게 문제였었다
하지만
그의 그러함을 통하여
다시 들여다 보는
내 주 앞의 올바로 섬
매사의 바로 섬을
또한번 말씀하시고 계시다
내 주께서...
할렐루야
(펌)
다윗과 요나단의 '주님 만이'..
아.. 오직 주님 만이..
이 간절히 불렀어야할 찬양을
다윗과 요나단께서
조금만 더 힘차고 빠르게 부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ㅎ.
13.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살다보면
하루 아침에
정말 예기치 못하던
아니 예기불안의 그 어두운 예측들이
불현듯 다가올 때가 있을 것이다.
다윗.
압살롬 , 자신의 아들인 그에게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14.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앞 뒤 재지도 않고 그냥 도망가자 한다 .
두렵다한다.
이것.
이러할 것을 어쩌면 예측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얘기를 듣자마자 도망가고
두렵다한다.
사자도
골리앗도
사울도
이방민족도....그 어느것도 두려워 않던
그 , 다윗이
비상식적
비논리적 두려움.....ㅜ.ㅜ;;
이 두려울 것.
이 어이없는 것에 두려운 것..
이 미리 예측하고 있던 예기 불안 (불안은 대상이 없으면서 , 공포는 대상이 있으면서 두려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실체 없을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은 진즉 그러지 않아도 될 상황임이다.ㅜ.ㅜ;)이
갑자기 현실로 나타나자
앞뒤 재지 않고 두려움에 질색하며 도망갈 궁리 부터 하고 있음이다.
이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왜..
그는
이런 부모 자식 간에 생길 일,
어쩌면 권력찬탈 일이 생길 두려움에 불안하였으며
그 일이 생기자 마자 이렇듯
튕겨나가듯 도망하는 반응을 부였으면서도
그 불안의 실체를 밝히려 하지 않고
그것을 해결하려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모든 것 하나님께 가져가지 않았을까?
마치.. 그런 일이 발생하기를 기다려
모든 멘트와 행동거지를 준비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지속적으로 들여다 보았지만
그는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를 잘 배우지 못한자이고
감정의 흐름을 옳게 흘려 보낼 훈련을 가정에서 배워보지 못한 자이다.
아버지와 윗 형들의 질시와 방치 속에서
거친 광야에서 오직 '양'을 치면서
허락되어진 뛰어난 음악적 재질과 명석한 두뇌,
그보다 더 뛰어난 하나님의 품안에서 거하는 '영적 감성'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철저히 옳게 훈련 받았지만
'사람 ,특히 가족간의 관계'에 대하여는 그렇지 못하였고
그러함은
자신의 '식구'들에대한 감정의 흐름을
온통 누르고 억제 시켜
갈등을 최소화하여왔던
'도피'의 자기방어 메카니즘을 발달시켜왔던 것이다 .
'자식에 대한 사랑'은 용솟음 치려하나
현실의 그 자식, 압살롬의 죄가 너무 커서 마주하기 힘들었고
자식과 아버지로서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세울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 '애증'의 갈증이 너무도 커
끝없이 그 압살롬을 방치하였고
한편 그러면서도 그 관계의 왜곡의 위험성을
정치적으로
동물적 감각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앞에서의 '죄'..
자식에 대한 역기능적 사랑으로 인하여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오늘의 소문을 듣자마자
동물적으로 도망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자식을 제거하려는 '죄'는 범하지 못하고...ㅠ.ㅠ
솔직히 용사 다윗이 겨우 모사꾼 압살롬에 대하여... 두려워?..... 아니지 않는가?
그 내부 갈등의 결과로
다행이도 자식을 죽이는 죄에는 뜨거운 난로에 데인듯 멀리하는
덜 악한 모습 때문에... 말이다.
이 모습도 저 시대의 당연한 혈육상쟁의 흐름에 비추어
그나마 하나님이 기뻐하실 영혼 아니던가?
각설하고
이것.......
몇가지 아쉬움이 있다.
당연히...
그 모진 타민족과의 전쟁,
사울과의 갈등.... 들에
우선 하나님 앞에 가져갔던 모든 옳은 태도들이
압살롬과 가족 안에서의 갈등에는 (미갈, .. 부인과의 문제, 압살롬,암논,..자식들의 문제... )
전혀 하나님 앞에 아뢰었다는 기록이 없다 .
그렇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
당연히도 '모든 인생'과의 관계에서
하나님 앞에 아룀..
하나하나 다 아룀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통하여서라는
C목사님의 설교가 빛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또, 주변을 '예수님'의 다른 모습으로 대하라는 것이
성경 어디엔가 나와 있다.
매사 ,모든일
모든 마주하기 어려운 갈등을
그게 비록 '어둡고 암담하고 두렵고 무서워도'
그 모든 것 주님 앞에 가져가란 이야기시다.
주님을 근거로
세상 그 어떤 것도 바라보고 마주 해야한다는 것이다 .
오늘 다윗이
그것을 못했다.
영웅 같은 세상의 일은 다 해냈어도
가족 문제 만큼은... 전혀.. 다.
20.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인생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어이가 없는, 정처없이 왔다가 정처없이 가는 과정이며
그마져 ,
오늘 다윗이 자식이 두려워 도망가는 이 어이없는 일까지 모두 다
하나님의 뜻임을 모르면
하나도 이해가 가지않는
그냥왔다 떠돌며 고생하다흔적도 없이 누구나 다 돌아가는
부질없는게 인생이다... 라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오늘.. 다윗이 그렇다.
나.
나도 그랬었다.
다행이 지금은 어떤 것이 인생인지
그 인생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음을 잘 알게 되었다.
사는게 왜 이리 버겁고 힘들었던지
평생 의문이고
평생 무거웠다.
평생 재미가 없었고
평생 두려웠다.
순간 어떤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했고
뭐......그랬다.
지금은 안그렇다.
아니.. 훨씬 덜 그렇다.
다행이
많은 일에 이리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걸러주시고
매일 아침 말씀으로 미리 들여다 보 게 하신다.
저 다윗님의 그 내면......
듣자마자 도망할 수 밖에 없는 저 놀란 가슴 안 깊숙이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나온 상처입은 자의 속내를 볼 수 있으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잘하던 매사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기도 제목마져
'부모 자식 문제'에 걸리자
멍.......하니 하나도 주님 앞에 아뢰지 못하도록
그 인생 내내 그 마음 속을 가로막던
그 강한 인생의 막대기 ..
사람의 채찍..
허락되어진 하나님의 가시..
'연단의 문제.......
인생광야의 회오리바람.....을 보고 있다.
오직 하나님이다.
더 하나님이다.
다윗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주님 안에서 해결되어가는 가정의 징표 ^^*)
주님.
저 다윗의 멍한 가슴,
먹통인 머리 속이 들여다 보이는 듯합니다.
어찌 저리
명석하기가 말도 못하고
오직 하나님 만 바라보는 대 용사 다윗이
자식 문제에 대하여서만은
저리 미련하게도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불에 데인듯 도망하면서도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한 자 처럼 행동하는 지요...
저 인생의 버거움.
매사의 모든 문제들을
다 하나님.
더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함을 보나이다.
감사하나이다.
주여.
들여다 보고 실수를 더 피하게 하여 주심을 요.
주님 앞에 덜 실수하게 하소서.
내 주여...
오늘도 지켜주실
또 말씀으로 이리 지켜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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