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조급함은 더러운 두려움을 배가한다[삼상 24:1-22] 본문
작은 것, 귀여운 아기의 것이라도
냄새는 동일하겠지요? ㅎ
두려움이 더 두려운 것은
자꾸만 피하고 덮어 놓다보니
냄새가 느는 두려움이 배가되는 이유가 있을 겝니다... ㅜ.ㅜ;
3.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성경에서 가끔씩 상당히 재밌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다.
'뒤를 보러'ㅎ.. 영어로 'relieve himself '...
그렇다 .
솔직히 'ㄸ'..ㅎ
엄숙하고 대단한 상징, 긴박한 스릴......등이
교육 내지 은혜의 통로... 목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너무도 원초적이고 생리적인 'ㄸ' ..ㅎ 얘기다.
그리고 그것도
길 가
양의 우리 근처의
남들이 보지 않을 '동굴'이 보여
부하들과 함께 다니다가 부리나케 홀로 떨치고 들어갔을
그 생리현상의 절박함과 사울의 얼굴이 상상되니
웃음이 나온다 .
아... 침튀지는 않았다. ㅎ
더구나
그 굴 깊은 곳에
환기도 되지 않을 텐데
그 안에 갇혀 숨죽이고 숨어 있는 '다윗들'의 입장은 어땠을까?
이런 묘사 하나하나
또 그러한 너무도 인간적이고 생생한 계기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신다는 사실이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시라 생각이 들 수 있을까?
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한편, 그 냄새가 빠져나갈데 없을 공간에 갇혀 있는 다윗 들이
냄새로 고민하기 보다는(잘 닦지 못했던 시대적 현상과 도피 생활로 더러워진 상태라 냄새 못맡았을까?ㅎ )
아랑곳 하지 않고
'사울을 죽일 것'
즉,
더 이상의 두려움을 차단할 기회에 대한 여러 선택을
다윗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 권고한다 .
뉘앙스는 죽이라는 것이지만.. .
5.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벰에서 멈춘다.
아...
이때 숨죽이며 다가가면서
더 적나라이 맡아지고 들여다 보일 수 밖에 없는
바로 눈과 코 앞에 있는 'x' 무데기는 ..ㅎㅎ
8.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하여튼
다윗은 '두려움의 차단' 방법으로
쉽고 간단한 길인 사울을 죽이는 것으로 택하지 않았다 .
대신 차선책이지만
옷자락을 베고
사울이 떠나기전 멀리서 '예'를 갖춘후
12.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왜 그랬을까?
당연한 것이지만 '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그 이유다 .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도 (경외, 그리하도록 선택받고 매사 신경쓰이도록 된 것이 은혜다. 진정 .. 마비된 자는 편하고 쉬울지 몰라도 그 끝은.. 이구...*&^%$#@..)
일순간의 편함을 위하여
자신의 임의대로 그 대상인 '사울을 살해 ' 했더라면
잠시의 그러함은 있을 지 모르더라도
점차로 갈등이 커지고
사울이 안고 가는 악령의 두려움 처럼
그 가슴에 평화와 안녕은 없을 것이다.
그것...........
갑자기 '묵상'의 전면에 더러운 'ㄸ' 이 ^^;; 등장한 것이
그 안정 없는 가슴 속
두려움이 더 두려워지는 것을
냄새가 맡겨지는 듯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늘 묵상에 등장케 하신 것은 아니실까 싶다. ㅎ
무슨 이야기던가?
잠시의 환호와 갈채와 후련함으로
사울을 죽인 것을 기뻐하겠지만
점차로 평상심으로 돌아오면
그 오물들의 냄새와 더불어 죄책감이 스물거리고 올라오며
긴장으로 잊어먹혔던 '냄새'등이 섞이면서
자꾸만 되풀이 되는 두려움이
그의 인생내내 더 커지지 않을까?
그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죄에 대한 징벌의 한부분이 되겠고... '
두려움은
내가 해결하려 하면 안된다.
두려움을 조급히 피하고 묻어 버리다가는
더 큰 두려움이 몰려올것이다.
당연하고 확실하지만
하나님을 의식하고
내 하고자 하는 결심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기도 해야한다.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
오늘 굴속에 펼쳐지는 더러운 .. 환상이 ^^;
'두려움'과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 닥칠 때
그 선택의 주체로서의 나..........와
그 결과에 대하여
두려움을 더 두렵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며
그러함은 '더럽기가 한량없는 ^^;;' 것일 것임을
'ㄸ'의 냄새로 상징해 보이시는 것 같다 .
확실히.. 뚜렷히... ^^;
쉽고 넓은 길
좁지만 깨끗하고 옳은 길.
두려움이란 매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보이시는 연단'의 날이
바로 오늘이라 하시는 것 같다 .
지금 내게 주어진 '두려울 ' 상상들.
그를 통하여
더 매달려야할 이유와 당연함에 대하여
아주 뚜렷이
극명히
쉬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감사하다.
주님.
두려움에 매몰되면
아무 생각이 들지 못하고
거기에 매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 엔게비 동굴에 갇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거기에 나쁜 사울의 냄새에 고통을 겪으며
숨어서 바라보는
그러면서 수없는 갈등을 하고 있는
그들, 다윗들의 모습이
그림 그리듯,
실제 거기에 있는듯 생생히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들의 상황이
더러움은 온통 잊어버리고
두려움으로 부터 쉽고 빨리 탈출할 기회를 얻어
그 쪽으로 매몰되려 하는 모습을 보임이
제게 깨닫게 하는 바가 있습니다 .
두려움을 주님이 아신다.
그 절박함도 아신다 .
그 오래된 묶임을 끊을 절호의 기회이지만
갈등.................
갈등....................
마치 냄새 작렬하는 그곳 상황같이
갈등들이 장난이 아니지만
그러함에도
내가 선택할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더 정결화된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더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제 묵상에서도 말씀하셨지만
믿는 자에게도 되풀이되는 두려움으로 인한 고통은 있다하였습니다.
주님이 해결하실 것 믿고
더 내려 놓는 것 만이
더러움으로 인한 자꾸만 증폭되는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할 수 있음을
오늘 다윗의 선택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내 살아 숨쉬는 이 공간..
지금 매사 매시가 모두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상황임을
이제는 더 믿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려움마져
내 그러함마져
다 허락되었지만
그래서 어렵고 몸부림 치고 싶지만
하나님의 때가 아니시면
무리 하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주님이 해결하실 날을 기대하며 말입니다.
그게 냄새 나지 않는
옳고 밝고 깨끗한 날을 기약하는 길임을
이제 더 확신하나이다.
내 주여.
귀하시고 감사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 안에서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대하여[삼상25:23-44] (0) | 2022.06.17 |
---|---|
다윗의 선택 나발의 선택[삼상 25:1-22] (0) | 2022.06.16 |
두려움을 마주케 하심[삼상23:15-29] (0) | 2022.06.14 |
여쭙고 여쭙는 기도의 삶[삼상23:1-13] (0) | 2022.06.13 |
그래도 더 인내할 수 있는 이유[삼상22:1-23] (0) | 2022.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