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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칼[마26:47-56] 본문

신약 QT

말씀과 칼[마26:47-56]

주하인 2014. 4. 12. 08:11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말씀과 칼이 대비된다.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특별히 정확히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말씀'만 하시면

내 대신 싸우실

천군 천사를 보내실 것을...

 

 그런데

우리는 왜

모든 일에 '내'가 하려고만 할까?

칼은 내가 휘두르는 '힘', 날카로운 예기다.

 말씀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칼은 볼수 있을 뿐 아니라 쉽게 컨트롤 할 수 잇다 .

 말씀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믿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기도해야하는'

인내와 시간의 과정이 필요하다.

 칼은 폼나지만

말씀은 내가 드러나지 않는다.

 칼은 즉시 효과가 나오지만

말씀은 나올지 안나올지도 의구심을 가진다.

실제로 100%모두 내 기도하는 대로 응답하시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ㅜ.ㅜ.;;

 

그러함에도 뽑을 칼을

뽑지 말아야 함은

칼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칼을 가지고 논다면 다칠 것은 뻔하다.

'양날의 검'이란 표현처럼

칼은 누구나에게 '장점'과 '단점'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위험하다.

 

 칼은 자아를 상징한다.

자기의 힘.

즉각적이고 후련하고 통쾌한..

그러나 위험한 '자아'.

 

반면에 '말씀'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림은

모든 즉각적 반응,

내가 앞서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위기의 순간을 인내하고

미련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들의 갈등을 건너야 하고

하나님의 시간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지는 믿음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러기에 그것은

영적으로 어린 자들에게는 허락되는 부분들이 아닐 수 있다.

예수께서 '네 칼을 다시 꽂으라' 시는 말씀이

그런 말씀으로 들리지 않는가?

 

그러시면서 하나님의 천군천사를 부를 힘이 없으셔서

부르지 않는가 하고 말씀을 이어가신다.

그렇다 .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 분을 믿고 기도한다면

말씀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인다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서둘 것인가?

하나님의 그 엄청난 힘이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우리에게 가장 선한 방법으로 임하실 것을...

 

 그렇다면

오늘 내게 있어서 '칼'은 무엇인가?

어이없다고 생각되는 때 내가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그러면서 일시간 나를 시원하게 느끼게 하는 것...

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러면 안되는 것들..

그것이 무엇인가?

 

난.. 잘알고 있다.

특별히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진료실,의사라는 입장은

알게 모르게 아픈, 약자의 입장에서 들어오는 환우들에게

칼자루를 쥔 듯한 태도가 은연 중에

내 부족한 영혼에 스며들어 올 수있다.

또한 , 의료기 업자, 제약회사 원, 병원 원무직원..은 아닐까?

 집에서는 또 어떤가?

아버지로서의 '칼자루'

가장으로서의 칼자루.

 부모님에게 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쥔 칼자루는?

 

아니면, 나와 상관없는 상태로

저항하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조금 무게감있는 자들에 대한

괜한 '분'......은 또 어떤가?

 모두 내 속에 '저항해도 되는 칼이라 생각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난 순간 순간 내 속에서 올라오는

날카로운 예기들이 있다.

아..

말을 그리 멋지게 해서그렇지 실은 '짜증'이다.

괜한 판단이다.

또 , 성품이 직선적이고 일도 양단, 명쾌,.. 라는 것들을 좋아한다.

뒷끝이 없다고 스스로 착각 ^^;; 하고 산다.

이거..

나 스스로에 대한 자부이었고

예수님 믿어가면서

이거...안되는 것이라 알고 있지만

아주 오래된 습관인데다가 유전적 특질이라서인지 잘 안된다.

 

 물론, 그 칼을 쉽게 빼어드는 데는

사단들의 속삭임이 있을 것이다.

' 의로운 분노'.

그러기 위해서는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칼'을 빼어들어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마음으로... 할지도 모르는 생각들이

내 그런 품성을 자극하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이 훈련이 되고

자동적 사고로까지 이어지는.. .

그 악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 .주님은 말씀하신다.

"'말씀'에 침착하라.

 기도하라.

 기대하고 믿어라

 네가 하지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시다.

 기도하고 기다려라.

 특별히 말씀이 있으시니 칼을 뽑지 말고 칼집에 다시 넣어라"

 .

칼을 뽑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다시 넣으면 된다.

하나님이 대신 하시면 훨씬 크게 하신다.

억울한 것도 주님께 맡기고 믿어라.. 하신다.

 

그렇다.

주님은 아직이지만 말씀으로 경고하신다.

오늘 있을 지도 모를

칼뽑을 일에

다시한번 만이라도 주의 말씀을 기억하라

그리고는 승리를  맛보라.

내 의지로 꺽어서 성공하는 것은 일시적 만족감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칼을 만들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칼'을 내려 놓음은

하나님 나라에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말씀이 있으시니 오늘은 무조건 '인내'하리라.

 

 주말 당직이다.

특별히 더 깨어 있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더 주의하자.

 

 

주님.

사랑하시는 내 주님.

하나님의 그 인내와 저를 위한 몸바침 덕으로

제가 살았습니다.

지금껏 살아왔고

천국의 영생을 살게 될 것임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 말씀 가운데서

기도하면 인내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주여.

저 그리하게 하소서.

특별히 '쉽게 ' 칼을 뽑아드는 제 성품을 아시고

지켜주실 하나님.

말씀이 있으시니

말씀으로 지키소서.

성령의 검이신 말씀으로 그리하소서.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 하나님.

하나님이 절 붙드소서.

이전과는 다른 '성숙'한 반응을 하게 하소서.

성령 체험을 하고 성령을 사모하는 자니

그리하소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하소서.

'

내 주 예수 그리스도

그 귀한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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