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모든 갈등의 시작과 끝[삿 20:8-28] 본문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이스라엘 지파들이
온 힘을 모았다.
세상에 이런일이.. 하면서
모두 정의감에 불타서 한마음 한 뜻으로..
그러면서 베냐민 지파의 '악행'을 몸서리 쳐한다 .
그들.
다수.
'정의감'에 불탄 군중.
거기에 대항하여 이의 제기할 소수는 없다.
옳은 이야기는 해도 씨도 안먹힐 만큼
그들의 마음 속엔 '분노와 정의감'으로 똘똘 뭉쳤다.
옳은 소수의 이야기.
이런 것이다.
' 시체를 토막내서 가져온 것은
어찌 되었든 비정상 적인 것이다.
하나님 앞에 먼저 여쭈어 보고 행동을 해야지 않던가?
너무 과도한 분노는 '악'함은 아니지 않는가?
..........................'
등등이다.
어찌되었든 그런 일련의 모든 '합리'적 생각들은 무너지고
한 생각으로 만 밀고 나간다.
아마... 히틀러 시대의 독일 사람들 때도
지금의 촛불 시위 앞의 군중들... 도 그렇지 않을까?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당하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
이스라엘 연합지파의 행동에 분개했다.
그리고는 싸움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소리는 '듣지 아니하고'라 나와 있다.
민족끼리의 갈등.
거기에는 '지파' 간의 뭉침이 민족보다 더 강렬 했다 .
옳고 그름 보다 다수의 강압에 대한 반발이 더 컸다.
그리고 불행이 시작 되었다 .
역시 '소수의 옳은 의견'은 무시되었다.
' 잘못은 그들이 했다.
아무리 우리 지파지만 시시비비는 따져보고 하자
저들의 강압은 잘못이지만 부딪치면 손해보는 건 양쪽 모두다
민족의 불행이 될 수 있다 .
무엇보다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 않았다. '
그리고는 싸웠다.
알다시피 베냐민의 초기 승리가 대단했다.
무엇이 느껴지는가?
강력한 '군중'의 힘.
다수의 의견 앞에 무시되어지는 모든 합리적 의견.
인간은 결코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을 그리 몰고 가는 그 강력한 존재.
그 존재는 어쩌면 '영적 '인 드라이브 아닐까?
사단의 속삭임.
그 강력함..
그 거부할 수 없는 잔인함.
이스라엘이나 베냐민이나
거부할 수 없는 밀림에 의하여 여기까지 오면서
그들이 그렇게 쉽게 어이없는 죄악을 저지르는 기저에는
어쩌면
" 우리는 ' 하나님의 선민'이기에
우리 다수 들이 이처럼 정의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이다.."라는 막연한 안도감 안에서
군중 속에 자신의 죄악을 나누어 버리니
죄책감은 희석되어지고 사라져버려
두려움이 없어진 것일 것.
많이 보는 원리 아닌가?
나.
성질 급한 자.
성질이 돋구어질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역동들.... !!!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나가다가
베냐민에게 곤혹을 치루고
그제야 '하나님께 여쭙고' 부르짖는다 .
먼저.. 이랬다면
소수의 옳은 생각이 아니고
정말 옳은 생각이 다수를 사로잡게 되었을 것이며
그랬더라면
민족의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일저지르고 후회한다.
일저지르기 전에 미리 깨달을 수만 있다면
이런 갈등들은 없지 않을까?
강력한 내면의 죄악의 드라이브들이
정말 죽을 때 되어도 끊어질 수만 있다면
그것은 '완전 성화'된 상태이 겠지만
최소한 하나님을 먼저 인식하고
하나님께 더 여쭙고 기다리는
옳은 행동을 결심하고
그 행동이 늘 삶속에 남아 있어
내 모든 행동 전의 습관이 되었더라면
이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지 않을까?
더 여쭙는 것
더 먼저 여쭙는 것 만이
모든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유일한 기회가 되리라.
주님.
아시지요?
아실 겁니다.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기도 어려운..
그렇지만 그래도 변개치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확증이 있으시니 믿고 다시 일어서지만
얼마나 이들의 모습에 비추어본 내 모습이
어리석고 미련한지요.
회개합니다.
주여.
용서하시고
더 용서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
부활하신 당신의 그 놀라운 복음을 믿고
이리 일어서려 하오니
힘을 주시고
다시는 다치는 갈등이 없도록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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