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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하시는 명령[마22:34-46] 본문

신약 QT

내게 하시는 명령[마22:34-46]

주하인 2023. 3. 21. 06:34

(펌)

이 모진 세월

이 풍진 세상

 

오직 예수 안에서

오직 성령으로

오직 하나님의 품안에서

 

주님

명령하신대로

살수 있길 간절히 원하고

진정으로 기대한다

 

할렐루야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사두개인들의 공격을

'대답할 수 없'도록 물리치셨다(아..통쾌.. 어찌 주님께 동등하게 상대가 될까... 바리새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물리치셨다는 이야기지..ㅎㅎ)는 소문을 듣고는

그들이 '듣고 모였'다. 

듣고 모였다함은 될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꾸몄던 음모에 실패하자 

마치 하이에나들이 몰려들듯

또 다른 음모를 가지고 꾸역꾸역 몰려듦같은 그런 모습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는 느낌이다. 

'사단'은 지치지를 않는다..

아..바리새인이 사단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사단으로 쓰임 받고 있는 순간의 바리새인들이란 이야기지..^^;

 

 무엇인가?

혼란 스러운 내 내면을 붙들고 놓치 않으려는 

잡생각 .....들 , 상념 같은 모습들 아니던가?

 

 하나님 나라에 똑바로 가려는 

나를 방해하려고.. 이구..ㅠ.ㅠ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당연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라 하신다. 

 

 이것이 '강령'.. commandment , 명령이라 하신다. 

그것.. 그들에게 말씀하시지만

내게 하시는 말씀이시기도 하다. 

 

"주하인아.. 

이것은 그냥 권고라기 보다 

네가 명심하고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할 '명령' 이구나..

꼭 지키거라.."

 

그러시면서 단순화 시키신다. 

2가지로.. 

 

 마치 '바리새인'..

그 복작거리는 사단의 공격을 기다리기라도 하셨다는 듯이

2가지로 명령으로 단순화 하셔서

명령하신다. 

 

아..

순간

집중하지 못하도록 

두렵게 하고 불안케하고 힘을 빠지게 하려던 

그 잡소리들이 '잔잔~'해진다. 

 

 그 둘 중 

첫째는 '네 하나님을 목숨 바쳐 사랑하라" 시다. 

가능하다 ^^*

 

둘째는 '네 이웃을 .. 사랑하라" 시다. 

아직 ........부족하다. 

 

그런데.. 명령이시다. 

사뭇... 내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내게 달고 쉬운 것만 하다보면 '영적 비만'이 맞겟지.. 

하지만.. 난.. ㅜ.ㅜ;

 

주께서는 다 아신다. 

 

 그래서 '둘째도 그와 같다'라 하셨다 .

하나님을 목숨바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듯

그렇게 사랑하라.. 셨다.

 

 이 사단들 앞에서...

이 꾸역꾸역 나쁜 의도로 모여들어

분위기 잡고 공격하려는 '바리사단 ^^;'들 앞에서 말이다.

 

 나.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것 맞다. 

하지만 주님 뜻대로 이웃을.. 더... 

조금은 부족하다. ㅠ.ㅠ

 

 하나님께서 그러신다.

"네 복잡한 마음을 단순화 시켜라

그것은 명령이다. 

그렇게 하여야 

네 좁은 길을 걸어 주님 나라 앞까지 무사히 건널 수 있다. 

그게 네게 내려진 '강령'의 함축이다. 

아.. 네게 가장 타당하고 합당한 엑기스(아... 우리 의대다닐때는 저런 '야마'라 불렀다. .. 쪽집게 시험문제 답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ㅎ )다. 

반드시 명심해야할 '강령' 말이다. "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그런데 

나.. 다 안다 .

하지만.. 잘 안된다. 

'저리 함축시키셔서 내게 가장 타당하신 말씀'으로 

날 드디어 

이 마지막 시대에 잘 갈아지고 특화된 '영적 강병(强兵)'으로 인도하실 시기가 

드디어 오기에 말씀으로 하나둘 인도하시는 과정임을 잘 알고 있고

그러한 때가 드디어 왔기에

'강령'을 발하시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힘들다. 

그런데 

주님은 그 마져 잘 아신다. 

당연히도 '나 '혼자는 힘들다. 

보혜사 성령께서 도우시기에 가능하다. 

 

아.. 도우실 것이다가 아니다 .

도우신다다. 

'성령에 감동'되게 하시어

내 그러하도록 변화되게 하실 것이시다. 

 

기도하면 

변한다.

 

그렇게 하도록 됨을

말 장난이 아니고 

내 신념이 아니며

내 결심의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다. 

 

 도저히 되지 않을 것들.. 

기도하며 간구했더니

내 마음이 바뀌는 승리의 경험들...

그래서 이전과는 달라진 내 시선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날 인정하기 시작한다. 

기도의 결과라고 흐뭇해한다. 

얼마나 나의 그러함을 위하여 '중보'하여 왔던가.. 

그 가까운.. 사람이..ㅎ

 

나도 .. 

내 기도의 제목이 

내 마음을 바꾸고 

원수마져 사랑하게 해주시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 기도했더니

내 평생 도저히 가능치 않았던 

그 내면의 부딪침들이 아주 많이 적어졌고

그러려 함이 잊혀져 

오히려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보게 된 (아.. 아무 그러기 위한 사전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 ^^*)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제 성령만 계시면 된다. 

'성령의 감동'만 있으면 난 할 수 있다 .

강령을 따르는 것.. 

목숨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 

원수 같고 부르르 할만한 오염덩어리로 느껴지던 그들 마져도 

하나님이 하라시면 할 수 있다 .

 

나.. 혼자는 절대로 안된다. 

표현 했지만 '부르르' 하게 되기도 한다 .

하지만.. 이게 '잘못'이라시니

그 모든 부르르할 자마져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리라.

오늘 하루 더 연습하고 

오늘 더 기대해보리라. 

'성령'께서 내안에 임하시면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 지.. 

내 시선이 얼마나 너그러워지는 지.. 

내 스스로의 '눈빛'이 얼마나 그윽해질 수 있을 지.. 말이다. 

 

감사하다. 

 

 

주님 

제게 부족한 것

명령이라 말씀하시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능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홀로 안되니 도와 줄것이다

네 마음을 그리 집중해보거라 .

두려워 하거나 버거워하지 말고...............라 하시는 뉘앙스입니다. 

 

 

여전히.. 

내 인생 내내 그랬듯

마치 썩은 고기에 달려드는 하이에나들이

번갈아 가며 집요히 몰려들듯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딛으려 해도

사뭇 그냥 두지 않고 몰려들어

이 말 저말 '바글바글'' 닥치는 대로 내뱉으며 

결국 포기하길 기다리고 있는 

그런 모양새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저 혼자 만의 세상이 아니었으며

제 홀로의 투쟁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도 

그들은 그랬습니다. 

아니.. 훨씬 .. 훨씬 더 심하게 

주님을 물어 뜯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향해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내놓으시고 

'성령 충만'으로 '완전무장'하라.. 

인도하리라.. 

보고 있지 주하인아.. 

듣고 있지 주하인아.. 

이것.. '강령'이니 꼭 지키거라...

지키게 해주마.. 하시는 것 같이

이 아침 들립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홀로라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하나님을 놓치 않을 수 있을 것 같으나

내 이웃 만큼은 꼭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제 내면의 얽힘을 잘 아시는 주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가지고

드디어는 이웃 마져 내 몸처럼 사랑'할 것을 

명령하시니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바

주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성령의 충만이 있으시면 

주님 말씀대로 제 내면이 자연스레이 움직이는

그 놀라운 경이와 기적을 스스로 체험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주여.. 

또 그리 승리하게 하실 줄 믿고 

단순하게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목숨 바치듯 하길 선택합니다 

 

주여.

 

도우실 줄 믿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래에 베이직 교회의 조정민 목사님께서

 '성령'에 대하여 쓰신 책 중 

깨닫게 하시는 부분들을 일부 발췌하여 옮겨 놓았습니다

 

-----------------------------------------------------------( 왜 성령인가? 조정민 목사님 저 ) 일부 펌

* 성령의 사람은 유연하다

인간관계도 아직 연약하면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합니다. 관계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때가 언제입니까?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입니다. 관계가 위기를 맞을 때가 언제입니까? 한쪽은 이러겠다 하고 다른 한쪽은 저러겠다고 할 때입니다. 이때 누가 집니까? 순종하는 사람이 집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제 할례받고 안 받고가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이 전해질 수만 있다면 할례받아도 좋고 할례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내 안에서 갈등이 더 커집니다. 예전에는 그냥 습관대로 하던 일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이때 어떻게 하실 것인가라고 평생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그 전에는 내 뜻대로 해야 속이 시원했는데 지금은 내 마음대로 말하거나 행동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비록 나는 불편하지만 내 뜻을 꺾고 예수님 뜻을 따르면 예전에 맛보지 못한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됩니다.

  이렇듯 성령님이 오시면 가장 큰 변화는 시도 때도 없이 예수님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종일 예수님 생각을 하는 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생각할 것도 많은데 왜 예수님 생각을 합니까? 성령님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곧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  성령의 사람은 율법 아래 있지 않다

그런데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것과 성령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는 것도 나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 역시 매 순간 나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안에 계시지만 내가 성령님의 인도받기를 거절하면 그분은 내 안에서 잠잠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내가 크고 작은 일에 그분을 존중하고 그분의 뜻대로 따르기로 결정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바울이 경험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너 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 5:18

성령은 우리가 천박한 욕망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을 능력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탐욕스러운 욕망에서 풀려나는 것을 가장 위대한 능력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분별하고 그 욕심을 내려놓기만 하면 성령님의 뜻이 깨달아질 것입니다.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주님 뜻이 아니라 내 욕심이라는 것이 깨달아지면 성령님의 생각을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게 무엇입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이 정확하게 일러줍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다.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나 혼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 없습니다. 못 박는 망치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내가 망치를 휘둘러서는 절대로 내가 못 죽습니다. 십자가는 누가 나를 못 박는 곳입니다.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습니까? 정말 죽을 것 같습니까? 더 기다려야 합니다.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때 못 죽으면 다시 못 죽습니다. 단번에 못 죽으면 못 죽습니다.

그래서 죽을 것만 같은 고난,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고난이 축복입니다. 내 자존심이 남김없이 뭉개지는 참담한 사건이 축복입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해볼 수 없는 상황이 축복입니다. 그래야 내가 죽고 내 안의 성령님이 그분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십자가입니까?
내가 죽고 내가 다시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태어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반드시 죽은 뒤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부활 생명을 경험해야 합니다.
‘부활 생명이 곧 성령’입니다. 죽었다가 깨어나는 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그건 잠시 기절했다가 다시 제정신이 든 것일 뿐입니다

성령의 사람 곁에 있으면 사람들이 평안을 느낍니다. 욕심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욕심내지 않는 것은 욕심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다 가져서가 아니라 다 가진 분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왜 화가 납니까? 나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왜 시기심에 사로잡힙니까? 나를 드러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바울이 열거합니다. 사랑, 기쁨(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선함(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그런데 이 아홉 가지는 셋씩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내 안에 맺히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맺히는 것입니다. 충성, 온유, 절제는 열매 맺는 사람들의 삶의 원리, 기본 원칙을 말합니다. 이 아홉 가지는 열매가 아홉 개라는 뜻이 아닙니다. 한 열매입니다. 큰 열매입니다. 다만 이 열매를 비춰 보는 각도에 따라서 아홉 가지 빛깔이 나는 것입니다. 원문에서도 열매라는 단어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아홉 가지 열매는 이렇듯 한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우리 삶에 있느냐, 우리 가정에 있느냐, 우리 일터에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

오직 진정한 크리스천이 답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 답입니다.
왜 성령입니까? 성령의 사람만이 답이기 때문입니다. 왜 성령이어야 합니까? 성령의 사람이 걸어가야만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세상이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까? 우리는 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 묻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을 한 번 분별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매 시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따르기 위해서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일반적인 호칭은 성도요, 별도의 호칭은 제자이지만, 실제 상황에서의 호칭은 군사입니다.
이때 성령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우리를 완전무장시키십니다. 전신갑주를 입히시는 것입니다

왜 성령입니까? 그분이 오셔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무장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오셔야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자각할 수 있고 싸워야 할 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 싸움에서 필요한 첫 번째 준비는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힘으로 강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까? 우리는 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 묻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을 한 번 분별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매 시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따르기 위해서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일반적인 호칭은 성도요, 별도의 호칭은 제자이지만, 실제 상황에서의 호칭은 군사입니다.
이때 성령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우리를 완전무장시키십니다. 전신갑주를 입히시는 것입니다

왜 성령입니까? 그분이 오셔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무장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오셔야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자각할 수 있고 싸워야 할 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 싸움에서 필요한 첫 번째 준비는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힘으로 강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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