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마음이 마음에[출35:20-29] 본문

구약 QT

마음이 마음에[출35:20-29]

주하인 2015. 8. 12. 09:35

 


21.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음이' 는 마음이 '주체'고 '능동적'인 의미다.

그런데 곧 '감동된 자'라는 표현은 '피동적' 표현이다 .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어울린다.

 

 

22.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 마음에'는 마음이라는 장소에 , 즉 '피동적'인 뉘앙스 지만

'원하는 '이란 표현은 다시 능동적인 표현이다.

역시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어울린다.

 

왜 그럴까?

 

25.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능동적'인 마음이

슬기롭다는 능동적 뉘앙스... 어울리는 표현

 

 

26.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  

'피동적'인 마음에

감동을 받으니 '피동적'인 뉘앙스.

역시 어울린다.

 

 

29.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피동적'인 마음'에'

'능동적인' 자원하는...이란 표현의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리는 표현.

 

 하나님이

전적으로  마음에 은혜를 주시기도 하지만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능동적 선택을 기다리신다는 뜻은 아닐까?

 

 

 왜일까?

무엇 때문에

이 표현들,

국어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이 나올까?

히브리어를 아람어로...라틴어로... 영어로..한국어로... 번역 할 때 잘못해서일까?

 

 설령 잘못되었어도

성경은 무오류라는 말씀을 들어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겨우 인간의 오탈자로 인하여

이 세상에 내리고 싶으신 말씀,

하나님의 살아계신 성령의 흐름이 왜곡될 것은

전혀 말도 안된는 논리다.

그렇다고 판단한다면

두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오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같다.

 

하나는 그러한 약간은 이상한 (^^;;) 표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란 부위에 관하여

그 오묘한 원리에 대하여 조금 더 깊이 이해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우선 비밀을 풀기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알수 있도록 하셔

'세밀한' 음성으로 다가오시는 것이시다.

그래서 그런 수수께기 같은 내용들이 성경에는 부지기수이시다.

 

 오늘의 수수께기는

'마음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원리'다.

즉 레마가 그렇다는 말이다.

 

마음...

그 마음은 존재는 무엇인가?

마음이 '나'를 형성하는 의미인가?

감정과 마음의 상관관계는?

감정은 두뇌의 어떤 부위에 있는가?

혹, 심장에 있는가?

영혼과 마음은 어찌 다른가?

 

.. .

참으로 알기 어렵지만

수 많은 기억의 편린들이 저장되고

그것에 의지가 가미되고

세월의 아픔과 기쁨에

선천적, 유전적인 변수에 의한

자신의 의지적 선택들이 가미되어

믹스되고 휘저어지고

정제되고 뽑아져서 말려져서

'나'라는 인격,

자아의 개념이 형성 되고

그 자아를 움직이는 근본이 '마음' 이 동해야 되는 것 같다.

..

솔직히 내 생각이다.

마음을 잘 읽지 못하고

'생각'으로나 '비젼'으로 만 움직이는

깡통 로봇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고

그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뒤집어 쓴 '사단'의 궤계로 인해

마구 공장에서 찍어나오지듯

마음이 빈 깡통로봇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게

작금의 현실이고

그것은 다시 말하면 지옥같은 세상이 예고 된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

'마음' 마음 마음... 하심은

그 마음을 회복시킨

온전한 사람을 하나님이 바라심이 아닐까?

난..

오늘까지 '맑은 마음'을 얼마나 회복하고 있는가?

 

마음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역동이 제대로 제어되어야 하는 데

우리의 '영혼'이 그리 간단한가?

마음은 '전쟁터'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영적 전쟁터가 이 삶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그것은 '영'이 우리의 '혼'인 마음 부위를

어느 정도는 흔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

그것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기에

인정되는 부분들이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지성소'가 거하시는

영을 위한 장소가 있다.

우리의 '선택' 부분에 속하여

그 지성소에 하나님을 만날 '의지적 부분'인 성소가 있다 .

육신은 '뜰'에 속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함은

우리가  완벽한 영육혼의 존재임을 말씀하심이다.

그런데 원죄이후 '영'에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의 흔들 틈을 마련해줌이고

이 인생은

하나님의 허락하심 하에

영적 전쟁에

내 의지와 선택을 온전하게 드림으로

하나님이 완전히 내 영을 사로잡으시어

내 영이 완전한 교회의 상태가 되는

'성화'의 회복 과정이란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에서

'마음이 ' 감동되고

'마음에 ' 즐거웁고... 등의

피동적이고 능동적인 표현이 왔다 갔다 묘사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내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이 세상 삶이 그토록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싶은데

돈의 유혹으로

이성에 끌리는 젊은 육신의 끎으로

그러고싶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상처의 갉아 댐으로

자신도 모르는 분노로

하나님께 더욱 죄송하고....................

가정적으로 흔들리고

사회에 원치 않는...  .

얼마나 많은 원치 않는 마음의 움직임이 우리를

놀래키기도 좌절시키기도

고뇌와 답답함으로

죄된 상황을 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드리기도 하는가?

 

그러나, 그러한 고민과 고통은

십자가를 지기에 합당한 자들에게만 허락되어지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자들은

그러함을 누리지도 못하는 깡통 로봇이라 하지않는가?

그들의 삶은 마음이 마취되기에

별 고통이 없다 .

답답하면 마시고 발산하고 발정하면 된다.

..........

그러다가 결국 이 유한한 삶 속에서

썩어가게 되고

영생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죽을 때 쯤에 되어서 심히 두려워 하게 되지만.. . .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놓아 두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죄'다.

이 시대의 무서운 궤계다.

 

 마음이 진정 즐겁고 감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그리되어야 한다 .

내 마음을 내가 뜻대로 조정하고 움직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움직여지면

그게 즐거운 것이고

그게 감사한 것이다 .

 

마음이 내켜서 하는 일,

주님이 하도록 '피동적'으로 되도록

그것을 내가 선택함으로

내 마음에 감사함과 열정과 기쁨과 평안.. .의 성령의 열매가 넘치게 되면

그제는 인생을 내가 '좌지 우지'할 수 있다.

아..

온전히 성령의 폭주가 내 안에 이루어지면 말이다.

그때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짐을 느끼게 되면

난.. 선택하면 된다.

세상의 자극이나 할 의무나 유혹이 와도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선택하게 되면

'능동적 마음'의 움직임을 느끼게 된다 .

그것.

기쁠때 옳게 기뻐할 줄 알고

슲플일에 슬퍼할 줄 알고

상황과는 상관없이 이웃을 긍휼히 여기게 되며

나를 찌르려 다가오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이유로 자애로움이 솟아나는 마음이 되면

그 얼마나 세상이 자유로울까?

 

그게 오늘 마음이 '마음에' 하시면서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더.. 기도하고

더 내려 놓고

더 기다려야 할 것이 마땅하다 .

어떠한 이유로도 하나님을 앞섬은

그 자신의 모래성 같고 쓰레기 같은 업적을 세상에 또 한번 남기고픈

호랑이의 가죽같은 의미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이 땅에 남겨 보았자

그게 영생에 어떠한 일조를 하고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가 될까?

 내 기르는 강아지가 뼈다귀 하나 주인 앞에 남겨 놓고 장렬히 죽어보았자

그 뼈다귀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개미가 사람 앞에 곤충을 물어다 놓아보았자

어떤 감동을 우리에게 줄까?

 

그렇다.

그냥 주인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순종하고 그 옆에 신실한 충성으로 머물고 기다리다가

주인이 말씀하시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우리 유한한 인간들이 해야할 일 아닐까?

 

인간이 우주의 최고 인듯한가?

그 생각과 표현이 자존심이 상한가?

그래서 다 떨치고 '홀로 옳고 내 감정이 최고다' 소리지르고 싶은가?

그게 현대의 중심 사상 아니던가?

그래보았자 무엇이 달라지는 가?

수없이 잘나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을 누르고

살아 남는 자만 살아남아 배불리다가

그들마져 결국

영원의 시간앞에 스러져 흔적조차 남지 않는게

인간 아닌가?

거기에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내 마음에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안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헤메댜가 죽어갈

불쌍한..... .

 

 

나.

다행이도 주님이 날 세우시고

주님이 날 끌어주셔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바라보며

주님이 허락하신 평강을 사모하다 보니

내 마음이 '순하고 깊이 평안을 누림을 ' 체험하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이제 내 영혼의 중심이

깨끗해져가는 지성소의 저변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으로

중심 잡혀가는 튼튼한 '성소'가 되어가고 있고

이제 외부 뜰인 육신과 마음의 흔적들까지

단단해지고 튼튼해짐을 느껴가고 있다.

 

오늘.. .

마음이 즐거운 자

마음에 감사한자가 되길 소망하며

하루를 보낸다.

 

 

주님.

길게 썼습니다.

제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알겠습니다.

말씀과 마음이 점점 일치 되어가는 것.

하나님의 뜻이 내 원함이어가

세상의 흐름과는 상관없는 자연스러운 평안 가운데 거하는 것 말입니다.

소유의 여부와 상관없이

앞으로는 더 .. 마음이 잔잔했으면합니다.

소유를 더 쉽게

하나님 위해 내려 놓고

기쁘게 더 할 수 있는 자 되길 원합니다.

그 마져 기다립니다.

제 마음을 주장하소서..

그리고 할수 만 있다면

그리할 수 있는 육적 부함도 허락하소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하소서.

제 마음의 연약한 가운데 부함을 위하여 그리하소서.

제 아직은 어린 자식들을 위하여서도

조금은 더 허락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결고리로서[출36:8-19]  (0) 2015.08.14
나도 하게 하소서[출35:30-36:7]  (0) 2015.08.13
저도 그리되게 하소서[출35:1-19]   (0) 2015.08.11
주로 말미암은 光彩[출34:18-35]  (0) 2015.08.10
긴가와 민가[출33:1-11]   (0) 2015.08.0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