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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죄에 더 죽고 의에 더 살자[롬7:1-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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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죄에 더 죽고 의에 더 살자[롬7:1-13]

주하인 2023. 6. 8.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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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남편과 함께 산다는 것 ''나쁜가?'

이 땅 사는 동안은 당연히 당연한 것이겠지만

'죽어서 천국에 가서'까지도 결혼제도에 속박되어 살게된다면

그것이야 '속박'이 아니겠는가?

(원앙 같은 부부 금술은 제도가 아니어도 사랑하는 관계이니 다른의미 아닌가?  법과는?..^^;  그렇다면 천국에서는 더 아름다운 관계로 유지될 것이고... )

 "벗어'난다는 표현을 한다 .

 한번 '승화' 되어서 차원다른 성장을 해야한다는 의미.

 

 이 땅으로 표현되는 

이 물질 세계.. 지금 우리가 발붙히고 사는 이 인생광야.

이 삶을 위하여 '법'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하여 '법'은 당연히 필요하나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이제 '천국'의 삶을 위하여서는 

더 높은 차원의 새로운 원리가 필요하다. 

'자유'다. 

 하나님 사랑의 원리 안에서의 자유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어차피

이 세상의 삶은 '완벽'하지 못하다. 

물질의 유한함과 더불어 원죄의 이유로 허락되어진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연단의 매개체' 일 뿐이기에 

그 세상을 살동안 허락하신 '율법'은

결국은 '죄된 세상에서 죄에 덜 영향을 받도록 허락되어진

'결혼제도' 같은 보호 장치일 뿐.. .

결국 그 마져 불완전한 제도라는 이야기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하여서라도'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

그래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결국 '죽음'... 

이 땅의 삶에서와 별리 된 삶.. 

율법으로부터의 '죽음'

'육신'적 성향으로 익숙해짐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 

당연히도..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은 몽학선생'이라고 하셨다. 

율법은 이 모진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기초 보호틀'이다. 

울 손녀가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하여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법 테두리와 교육안에서 자라지 못하고는

어찌 제대로 살아내고 '죄와 안전'에 대하여 알겠는가?

'율법은 그렇다' 

죄를 알게 하고 '탐심'을 알게 한다 .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하지만 '앎에 머묾'은 '사망'에 이르게 함이다. 

계명 , 율법으로 표현되는 테두리 , 제한은 

보호의 개념이고 안전장치일 뿐이지 

그 것의 결국은 '사망'이다. 

 자꾸 커가는 몸통을 어릴적 올가미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점차로 파고 들어와 목을 조이는 결과가 있지 않겠는가?

'천국의 삶'

'이 땅에서도 심령 천국'의 삶...

 

 그 '자유'로 표현되는 진정한 삶을 위하여서는 

'율법'에서 부터 풀어져 나와야 함은 당연하다. 

육신은 자라고 생각은 많아지는데 

'제한'이 있어서야 어찌 되겠는가?
 이제 '어느 정도의 성장'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했던 '율법'은

과감히 벗어 버려야 한다 .

그것만이 생명을 이룰 수 있는 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원리는 양가적 개념이다. 

가역적이되 비가역적이기도 하다. 

빛이 '입자'이기도 '파동'이기도 한 것 처럼.. 

약함이 강함이고

고난이 유익인 것처럼...

 

그 모든 원리의 기본 전제는 '성장'이다. 

성장하고 발전하고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필요했던 '율법'은 깨쳐지고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그치만.. '자유'의 전제는

더 이상의 '죄'에서 영향을 받지 않는 '성장'을 근거로 한다 .

그때가 되면 '생명보호장치'를 풀고 

자유로운 성장의 시간이 된다. 

그때가 되어서도 풀지 않는 계명은 

자신을 죽이는 '목걸이'가 된다. 

생명보호장치인 '율법'이 '사망'의 근거가 된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다. 

'생명'을 생각하고 인지해야한다 

매사 말씀으로 놓치지 않아야 한다 .

우리의 몸과 생각은 매일 커지고 있다. 

이땅에서 곧 벗어 놓고 떠나야할 '육신' 안에서 살고 있기에

언젠가 곧 우리 앞에 닥칠 '하나님의 부르심'의 그날이 오기 전에

이 육신의 계명에서 자유로와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주님의 뜻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이 육신'안에서라도

자유를 누릴 '점핑' .. 차원이동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또 살아내야할 방향이 뚜렷해진다 .

 

 '성장'해야 한다. 

'육신의 삶'에서 죽을 준비를 하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육신에 대하여 죽고 , 영에 대하여 사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거창할 것 없다. 

말씀이 있으시니 '말씀을 준행'할 결심을 해야 한다.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으시니 

은혜를 받을 기대를 하면 된다. 

'자유'로운 삶의 어떠함을 

이 땅, 이 삶의 장소인 오늘에 누리고 체험할 

기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자유의 어떠함... 

그것은 정말 매일 체험하고있다 .

 

이제 더 이상 이 썩어질 육신의 유혹들은 

별 의미가 없게 느껴져 온다. 

아직 남아 아직도 내 영혼을 혼동에 붙들려 마지막 저항들은 하고 있지만

이 세상의 붙들려 하던 많은 ,쓸데없는 유혹들은

이제 서서히 힘을 잃고 있다. 

' 원리'고 '원칙'이라며 큰 목소리로 정죄하고 손가락질 하던 소리들이 

점차로 잦아들고 약해져 간다. 

 항상 무겁고 힘들고 어둡던 내 시야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자유롭고 밝아져 간다' 

아.. 비록 육신의 노쇠해져감과 

바울님의 고백같은 '이 육신텐트의 가시' .. 같은 아픔으로 인하여

자꾸만 조금씩 힘이 부친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 고난이 있는 것과 비례하여 

나른한 회복기의 상처 같은 '견딜만함'이 

내 '자유'에 일조를 하고 있다. 

 

  그렇다. 

율법은 여전히 살아서 

내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겠고

그 율법을 가장하고 양심을 가장한 사단의 소리들은

여전히 이 약한, 

아... 육신적 성향은 강한... 이 육신을 빌미로 

오늘도 또 나를 지배하려 몸부림 치겠고

사망의 냄새로 내 영혼을 혼란케 하려 하겠지만

난.... 복음이 왜 복음인지 잘아는 자다. 

 오늘 말씀하시는 '자유'의 본질에 대하여 너무도 뚜렷이 인식하고 있는 자다 .

 

 주님 안에서 

또 

사망은 어느새 흐려지고 

생명은 뚜렷해지고 강해지는 하루가 되어

오늘 저녁 잠자리에 들때

또한번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게 되리라 .

 

 

주님.

너무도 잘아는 원리라서

오늘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레마가 무엇인가 어려우려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간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흐르는 아침 시간을 이유로 

또다시 주시는 말씀대로 이끌려 갈 것을 기대하며

말씀을 붙들고 글을 써 내려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자꾸 잊고 있던 것.. .

내 매일은 점차 커져가는 육신과 더불어 

영혼도 점차로 성장해가지만

날 붙들어 제한하며 인도하던

안전장치의 크기는 여전 함을 요 .

 

그 율법.

양심..

이땅의 원리들... 

반드시 살아오기에.. 

그렇습니다... 살아오는데 필수 불가결했지만

상대적으로 제 목을 죄어 들어오는

'목줄'과 비슷히 되어 옴을요.. 

 

 이제 천국의 삶을 준비하는 자...

그 자유로운 영생을 

온전한 부활체로서 생기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 자로서 

벗어버려야 할 것은 

벗어 버려야 함이 

옳은 자유, 

온전한 자유를 의미하게 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이 땅의 원리'인 율법에 대하여 하나하나 벗어낼 것을 깨닫고

'생명의 원리' 안에서 살기 위한 준비를 하여야 함을 명심하고 

세상을 바라 보겠습니다. 

 

쉽지 않을 리라 생각됩니다. 

늘 그랬듯.. .유혹과 상처란 이름의 버거움들이 

아직도 번연히 제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테니요..

주여.. 

이 죽음의 원리들.. 벗어낼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소서.

오직 '성령'의 은혜로만 가능한 줄 아오니

또 퍼부어 주소서.

기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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