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S바이러스 감염 깡통로봇[대하24:17-27] 본문
17.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영적 멘토(멘토 뿐이랴.. 세상적으로는 은인이지... ), 여호야다가 죽자마자
18.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우상 숭배로 방향을 틀었다.
그 ..열심이고 일곱살에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정도로
뛰어나던 '요아스'가
갑자기 변했다. ㅠ.ㅠ;
20.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인생의 은인인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성령의 감동'으로 외치는 데도 불구하고
22.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돌이키기는 커녕 죽이기까지 했다......이구.....
이거야 말로 극악 무도한 일이 아니던가?
세상 사람들 마져도 '은혜'를 아는데
이상히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
왜곡되면 더 이상하다.
그런 일들
현재는 안 일어나는가?
교회내에서 싸움은 정말 무섭다 .
두려움도 없고 꺼리김도 없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S 교회 교인들이 '화염병'던졌단다..........
그 외에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수없이 많은
'죄책감'없는 죄들을 많이 보아왔다.
왜 일까?
성경을 통해
현상을 통해
이 말고도 또 놀라운 사실들이 이것이다.
수없이 많은 전례들과
그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안타까워하심과
그만큼 많은 그 분의 사랑의 징표들이 있음에도
완전히 반대로 행하는데는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구약 내내
은혜를 체험하고 눈물을 흘리며 성전 건축하고
온통 감동의 물결을 체험하고 나서는
곧 또다시 '악'에 눈돌리고 되풀이 되풀이 ......다.
왜 그럴까?
더더구나 요시아왕처럼 놀랍고 뛰어난 영적 재질을 가지고
극진한 대접을 받은 자가
은인이 죽자마자 완전히 타락해버리고
오늘 보는 것 같은 '극악'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치운다 .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은가?
저리 버글 버글한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들이 있는데도..
인간으로서 미안하고 안타까움은 없는가?
왜들... 무엇 때문에 그런가?
생각해볼 몇가지 가능성들이 있다.
일단,
우상 숭배의 너무도 유혹적인 상황이다.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그리스 신전에 여제사장들은 음란의 도구' 였었다.
눈 앞에서 무당들은 춤추고 빌고 동일한 리듬으로 쿵쿵하며 춤춘다.
자식을 잘되게 빌고
또 개중에는 빌면 들어주는 역사들이 금방 금방 나오기도 한다.
(비록 받으면 그보다 큰 손해가 있음은 당연하지만... 사단의 역사가 다 그렇다. )
..............
즉, 우상은 쉽고 원하는 대로 해주고 가끔은 들어 주기도 한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은 들어주기도 한다 . 안들어 주는 나머지나 거짓이 훨씬 큰 손해를 끼치니 문제지만.. .)
즉각적이고 유혹적이기에 그렇다 .
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내의 과정이다.
예수님은 대 놓고 '좁은 문'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시지 않던가?
'영'적 존재이신 (결국 말라기 이후 400년의 침묵 장고 끝에 예수님을 세상에 , 물질계에 보내셔 성육신하셨지만.. 결국..)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영적인 세계의 비중이 훨씬 크기에 덜 실제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고
응답받기 위해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선지자 제사장 .. )
그만큼 많은 헌신과 절제가 필요하기에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 주시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초조한 인생들에게는 너무 긴시간 이었을 것이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기복'적 응답이 아니시기에 실망되는 부분이 많았으리라.
우상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들어 주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자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다.
그래서 싫은 것 같다. ㅜ.ㅜ;
실은 그를 통해 훨씬 큰 '평강'과 '축복'과 '행복'이 있음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듯한 즉각적이지 않음이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선례를 통해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함을
보았고 배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저리 쉽게 타락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바보들 아닌가?
옛날사람들... 배우지 못하여 지적능력이 부족해서일까?
그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쉬이 망각되어 버리는 특질이 많다.
몇몇 특별한 분들 빼놓고는.. ^^;;
그리고 심리적 기제를 통해
두렵고 무서운 것을 '망각'해버리는 특성들이 있다.
눈앞의 달콤하고 좋은 것을 위해
망각된 두려움들 대신 오히려
불나방들이 불에 뛰어들듯 오히려 '죄'에.. .
...
그 외에도 성경, 그 중에서도 구약을 볼 때마다
너무도 잦은 인간들의 '표변' (표변 .. .맞다. 어찌 달리 표현할까? ㅠ.ㅠ)에 대하여
오늘 다시 본다 .
그것도 '영적 천재'인 '요시아'의 저런 완전히 180도 바뀜을 보면서
구약 내내 되풀이 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 .
또 그 어리석음이
현 우리네 삶 속에서
내 자신도 아니라 할 수 없는 사실을 목도 하면서
어이가 없으면서도
섬찟 하기도 하다 .
그렇다면 이러한 대 변화의 시작은
첫 구절에 나오는
'여호야다의 죽음' 이후가 아니던가?
그러하다.
인간들은 '원죄'적 특질을 지닌 '깡통 로봇'..
아... '소프트 웨어 ' 주입되기 전의 '하드웨어 '같은 존재들이다.
언제나 바이러스 감염되기 쉽고
나사하나 풀려 있는 빈 깡통 로봇 말이다.
거기에
'가르침' .. 이란 '소프트 웨어'가 장착되면
그대로 행동한다.
그 소프트 웨어 인 '여호야다'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자
마치 스마트폰 소리를 줄이고 키울 때
소프트 웨어인 프로그램 내 조절 키로도 .. 하드웨어인 컴퓨터 키로도 작동하듯
불완전한 하드웨어를
말씀을 가르침으로 작동하고 조절이 가능하다
더 이상 '하나님의 소리'를 가르치는 제대로 된 '여호야다님의 소리'가 사라지자
이곳 저곳 하드웨어가 오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에 '우상' 사단 바이러스 감염된 것 처럼.............
그 현상은
시대를 불문하고
지금까지 똑~~같이 되풀이 된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보내시었음에도
또..........똑같다.
왜 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다면...
결국.........바이러스인 사단에 무릎꿇고
저들 , 어리석은 선조들이 한대로
또 맘에 안맞으면 '화염병' 던지고
길거리에서 시위하며
...............%$^&*(ㅒ)ㅏ<,,,,,,,,,,,,,,,할까 ? ㅠ.ㅠ;;
나는 어떤가?
나는 다른가?
그래도 말씀을 매일 붙들기에
조금은 덜하고
새롭게 돌이킬 가능성이 많으며
다행이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감동이 있으심으로
그러함으로 부터 약간의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지 ..
진정 그들과 다를까?
난.. 과연 안심해도 되는가?
유튜브 보면 국뽕 차오르는 이야기들이 많다.
보다 보니
어찌나 우리나라.. 이 작은 나라에서
세상을 선도하기 시작하는 일이 많으며
이 수없이 많은 환란 (코로나, 중국의 위협, 일본의 경제적 공격, 미국 T님의 무리한 요구..........최근의 것만 보아도.....)
에도 불구하고
그모든 것을 넘어서 그럴 때마다 성장을 하고 발전을 하여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이 (경제력, 군사력, 외교적......와우다. 실제.. )
마치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원리와 너무도 비슷한 것이
재미있어 빠지다 보니
점점 기도의 시간이 줄고
솔직히 기도할 때
점점 따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
마음은 싱숭생숭하면서도
그럴 때 마다
즉각적인 재미를 주고
머리를 놓게 만드는 '유튜브' (아.. 요새는 또 재미진 무료 책 .. 읽는데도 빠진다 ) '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면 하루가 어찌 가는 지 모르고 재미지기도 하다.
이게........ 잘못이란 것은 아니다 .
어차피 인생,
이 물질계의 삶 속에 거하면서
적극적으로 '수도의 생활'.. 성무일과의 시간을 가지고
영적 리더들 처럼 '하루 세번 기도'하고 금식을 하며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사모하는 ................그러한 삶의 패턴이 되지 못하면
그래도 허락되어진
일상에서 나름 허락되어진 ' 말씀 묵상'과 '기도'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듯한 최소한의 '헌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아침에도 30분 이상 기쁨으로 기도하던 일이
늦잠으로 깜짝 놀라 깨어 겨우 출근하고
저녁에서 11시 30 분 될 때까지
그냥 머리 놓고 '재미'에 매몰되다가
밀려 밀려 기도하다가 잠들어 버리는
그런 나태한 일들을
지속하고 있다 .
아..
그게 '죄'라기보다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 앞에
알면서도 멀어지는 과정을 느끼게 하심이다 .
이렇게 하다보면
저들, 요시아들... 그 보다 오래 전 부터 계속되고 그 이후에도 계속될
구약시대 저 미련한 자들의 타락과
내가 어찌 다르게 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결국..
인생은 '물질계' .. 이 세상의 권세 잡은 자(사단)의 횡행하는 세상에서
영적인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준행하며 살려 노력하다가
주님의 원하시는 대로 '성화'를 이루어 내어
영생을 살기 위한 과정이다.
과정에서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단의 꼬임... 우상... 영적 우상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을 통해
좌절시키려는 수없이 많은 장해물을 넘어야 한다.
그 때 우리를 도우시는 도우미.. 보혜사.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을 놓치지 않아야한다.
세상의 즉물적이고 즉각적인 유혹을 넘어서는
진정한 재미와 기쁨과 행복이 어떠함을 깨달아
점점더 유혹에 멀리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로봇이 순간 흉기로 변하듯
우리네들도 그리될 개연성은 얼마든 지 있다
영적 실족을 늘 조심해야한다.
나..
더 그래야 한다
주님.
그래서 주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것은 압니다.
조금만 편해지면.. ..
마치 잔소리하는 여호야다님이 죽은 후 아무도 귀찮은 소리 안하니
그처럼 열심이던 똑똑한 요시아가 저리 타락하는 것처럼
수없이 많은 전례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하나 없이 또 똑같이 죄악의 구렁이로 몰려가는 유다 백성 처럼
아마도
저도 그런듯 싶습니다.
큰 죄가 아니요..
이게 무슨 죄냐고 항변하면서
세상의 달콤한 것들 마구 즐기다가
하나님을 잃고 우상 숭배자가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자신의 소프트 웨어가
하나님에서
사단표 바이러스로 완전히 장착된지도 모르고
그냥 고민없이 움직이는 깡통 로봇같이 될까 두렵습니다.
주여.
저 .. 먼저 붙드소서.
조금 더 주님의 임재를 가까이 하게 하소서.
원하시면 주님.. 제게 세상의 재미 완전히 멀게 하시사
돌이키소서.
아니시면 제게 힘을 주시어
조금 더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 되게 하소서.
성령으로 그리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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