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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당당히 흐르듯 세상을 살다 (민 21:21-3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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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당당히 흐르듯 세상을 살다 (민 21:21-35 )

주하인 2011. 5. 13. 10:35

제 21 장 ( Chapter 21, Numbers )


21.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믿는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내려 놓되 

 


22.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 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대로로만 통행하리이다 하나
 세상에서의 일도 '최선'을 다해 하여야 한다.

때로는 '사신'을 보내어 대적을 달래기도 하고

 

 
23.  시혼이 자기 지경으로 이스라엘의 통과함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
  그 대적과의 전쟁을 불사하기도 해야 한다.

즉, 화평 만을 기대하고 나약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 세상의 거친 저항도 있을 것을 예상하고

 

 
24.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파하고 그 땅을 아르논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 
준비해야 한다.

싸움이 일단 시작되면

우리는 그 영적 싸움에서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27.  그러므로 시인이 읊어 가로되 너희는 헤스본으로 올지어다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히 할지어다 
 끝까지 승리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다.

때로는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하고

질타를 견뎌내고 참아야 한다.

그런데, 내 속의 상처는 날 그냥 두지 않는다.

욱~하고 올라오는 무엇이 있게 한다.

내 근본적 무지는 어디까지 참는 것이 옳은지 혼란케 한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승리하려면 많은 부분 참고 인내 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참아내다 보면' 때로는 '억압'이 된다.

억압이 지나치면 '율법'이 되기도 한다.

삶은 힘이 없어지고 고지식해지고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갈등이 생긴다.

이게 과연 옳은가?

주님의 주신 삶 , 이것 저것 가리다가 힘이 없어진다.

개중 어떤 분들은 이런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수도자'적인 삶으로 귀의해버린다.

아주 아주 소수의 선택받은 자 이외에 그것도 그리 옳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포기'한다.

적당한 이중적 삶.

신앙과 삶의 분리.

이원론적 삶.

포기, 방탕...

편한 듯 하지만 제대로 믿길 원하는 많은 선한 신앙인들은

영적으로 갈등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그러한 영적 갈급함은 드디어

'내려 놓음'에  눈을 돌리게 된다.

몇년 전 '이용규 선규사님의 내려놓음'이 대박을 친 이유가

그런 많은 기독교인들의 방종과 율법사이에서 흔들리면서 갈바를 모르는

그 허전한 갈급함의 반증이 아니겠던가?

정답이다.

그 방향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는 기본이다.

문제는 '내려 놓음'이 어디까지이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자식을 기르다 보면 훈계와 질타의 경계가 순간적으로 넘나들 때가 없지 않고

때로는 방치와 내려 놓음을 구분하기 힘들다.

더더구나 세상은 마구마구 달리고 있다.

정보의 유통 속도는 가히 빛의 속도로 늘어나고

경쟁은 그만큼 훨씬 더 치열해진다.

그 과정에서 내려놓음이 어디까지 효용을 발휘하고

어디까지를 내려놓고 어디까지 내가 해야 하는지 구분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 속도에 정신을 놓다보면 아예 생각할 의지조차 생기지도 않는다.

 

 오늘 모세님의 아모리 족속에 대한 태도를 본다.

자연스럽다.

실제로 '사신'을 보낼 때는

자연스레이 넘어가길 원하는 마음으로 그랬을 것이다.

누구들, 정략가나 모사꾼 처럼 다른 마음으로 그리하고는 쳐들어가는

그런 '세상적 지략'의 극을 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그러면서 그들의 반발을 확실히 계산하고 있었다.

당황하는 흔적이 없이 차분히 그들과 순간적으로 전쟁에 대처한다.

어찌.. ..이럴까?

어떻게 적극적으로 세상을 모략으로 준비하지도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완전히 내려놓고 넋놓고 주님의 이름 만을 외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도우심을 받아

적극적으로 세상의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말씀으로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

어둠 속에 진행할 때 내 발 앞에 '등불'을 밝히시는 듯,

한발한발 잘 진행하게 하신다.

매일을 그리 사는 것..

내려놓음의 의미안에서 잘 해내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멀리 생각해 보려면

여지없이 내 무지한 머리가 뻐개질듯 아파온다 .

큰 계획은 없다.

하지만 내 나갈 큰 방향은 안다.

그래서 조금은 더 흔들림이 없어지곤 있다.

그러나 오늘 같은 저러한 전쟁이 나에게 밀어닥칠 때

과연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조금은 우왕좌왕 하지는 않을까?

아마..라는 표현을 쓴 것은

어쩌면 지금껏 임하셨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날의 등불을 또 내 발 앞에 밝히실 것을 기대함이다.

그래서 큰 당황을 하지는 않겠지만

저런 조직적인 승리를 이끌어낼 자신은 없다.

 무슨 차이일까?

모세는 왜 저리도 당연히 당당히 물흐르듯이  살아내는가?

 

당연하지만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나가다

걸리면 돌고 막히면 쉰다.

과정 과정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다.

그러나 결코 좌절은 없다.

다가오면 막는다.

일단 가나안 입성을 막아서는 적은 최대한 대적하여 절대 승리한다.

그게 주님의 뜻이라서 그렇다.

매일 매일 사건 사건 주님이 임하셔서 말씀을 주니 힘이 있다.

흔들림이 없고 당황함이 없다.

그게 사랑스럽다.

오늘의 모세님은 사랑스럽다.

아론이 없어도 그분의 대처는 똑같다.

아마, 아론의 인간적 공감이 필요했던

영적으로 지금보다 비교적 덜 성숙했던 지나온 시간보다는

홀로 있어도 그 영혼의 빈자리를

하나님의 임재가 든든히 채우심이다.

그러기에 그는 동지가 없어도 당당할 수 있다.

그리고 '목표'가 뚜렷함이다.

그리고는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철저히 '내려놓음'이다.

 그게 그의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 간다.

묵상이 진행되면서

점차로 난 그의 '자유'를 느낀다.

그의 물흐르듯 흐르는 자유로움이

내 영혼에 평화로 밀려온다.

 

감사하다.

오늘 금요일.

수술 한분하고

저녁예배에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올린다.

내 목표를 더 뚜렷이 내 영혼에 각인시키는 행위다.

생생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영혼이 인식하게 하는 귀중한 날이다.

그 성령 집회에 '성령'이 내 육신의 능력을 이용하시고

내 영혼의 절절히 끓음을 허락하시길 기도한다.

 

적용

1. 성경 세장 읽으리라.

 

2.  내 사는 이유는 주님의 나라 가는 데 있다.

 주님 기뻐하시는 그 모습 뵙도록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한다.

 내 목표는 영적 가나안, 천국이다.

 이땅의 천국의 흐름을 누리는 하루 되길 기도하낟.

 

3. 찬양.

 기쁨으로 드린다.

 천국의 여정의 흐름을 표하리라.

 주님 성령으로 인도하시길 기도한다.

 

4. 성령의 임재를 기도하자.

 난.. 천국을 향한 순례자.. 다.

 내 목표는 그곳이다.

 유치한 세상이 그 위대한 목표를 흔들지 않도록 하자.

 

 

5. 세상의 성취도 주소서.

주님 영광위해 그러시되 특별히 제 자식들, 아내.. 그리하소서.

 

기도

 

주님.

귀하신 분.

날 만드시고

세상에 던지셔서

홀로 당황하지 않도록

늘 말씀으로 은혜로 인도하시는

살아계시는 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하나님 날 구원하시고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모세님처럼은 아니지만

이제 내려놓음의 한계와

그 내려놓음의 힘있음을 이해하게 해주심이 감사합니다.

당연히 당연히도

당당히 세상을 살 깨달음을 주시고

흐르듯 세상을 살 에너지를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좀더 뚜렷한 세상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소서.

삶의 목표가 더 뚜렷하게 하소서.

그래서 누리되 이기게 하소서.

승리하는 삶 살게 하소서.

그게 세상에 어떤 표현이 되더라도

모든 것 아시는 주님 만 쳐다보면

내 결국이 그리되게 될 줄 믿습니다.

비옵기는

대적의 흔듦에 대하여 승리하게 하소서.

처절히 이기게 하소서.

가만히 쳐다보기도

때로는 다가오는 적을 싸워서 물리칠 힘과 자연스러움을 허락하소서.

특별히 제 가족 지키소서.

아내 .. 폐경기의 여성으로 흔들림 덜하게 하소서.

영적인 싸움에 이기기위한 육신의 건강 주시되

주님 허락된 모든 상황을 잘 받아 들이게 하소서.

그래서 자연스러운 흐름 주소서.

아들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어린 영혼들.

젊은 그들에게 더욱 지혜를 주소서.

아직 삶의 목표에 대하여 뚜렷하지 않은 듯하오나

썩어질 것보다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이 땅도 더욱 힘껏 살게 하소서.

어려운 일.. 주님의 영광 위해 이겨내게 하시고

때론 흐르기도 때론 싸우기도 해 승리하게 하소서.

그 흐름이 주님의 성령으로 자연스럽게 하시고

세상의 성취도 온전히 이루어 드러내게 하소서.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 수준의 영적 수준의 사람들에게

가장 뛰어난 모범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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