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다시 곧 도무지[막2:1-12] 본문
1.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다시'라는 단어를 보면서
'부활'이 떠오른다.
다시 살아나신게 부활이다.
이 땅.
넘어지고 좌절하면 도저히 일어나 다시 재기하기 어려워져간다.
점점 더...
그것은 사회의 구조상 그리 되었지만
그리 됨으로 가해지는 사람들의 심성은 '좌절'이 점점 더 커져가고
그러함으로 사회는 더 우울해지고 힘들어져 간다는게
실은 '경제적인 면'보다 더욱 큰 부담이 아닌가 싶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것.
사단의 영역.
육신의 어디 아픈 것은 아픈게 힘들지만
그 아픔을 통해 오히려 마음은 편해질 때가 있고 (안그런가? 정말?...)
아픔이 회복될 때 느껴지는 몸의 나른함과 편안함은
때로는 기쁜 느낌을 동반하기에
마음의 아픈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
마음의 오래 그러한 불신의 시절을 거쳐올 때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가슴이 덜컹하고
어깨와 등줄기가 너무 아프고
차가운 느낌의 내리 누르는 듯한 (딱 몸의 좌편이 그랬다. . ) 무게감과
심장 아랫쪽이 자주 뜨금거리고.........뭐........이런 육신의 증상도 어려웠지만
더 어려운 것은
'희망'과 '소망'이란 게 없어서
평생을 이런 상황으로
끝없이 유지되다가
결국 늙어갈수록 ,감당 하기 힘들어질
그 어두움이 두려웠었다.
그러함의 가장 큰 본질은
'다시'는.........일어나
새로운 것
밝은 것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 (심지어는 결혼. 자녀.. 이런 것은 내게는 전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두었었다. ...ㅠ.ㅠ;;) 이
내게는 가장 힘들었었다.
그런데,
38살에 강제적으로 ^^; 찾아오신 '예수님'의 구원의 손으로
난 , 수개월 간 둥~둥 떠다니는 듯한 첫사랑을 체험하고는
삶을 바라보는 눈이 '확' 바뀌어 버렸다.
그것.
이제는 안다.
'성령'의 은총으로 인하여
난 다시 '새롭게 ' 태어나게 된 이유다 .
다시......
다시다.
그렇다.
'보라 이전 것은 가고 새 것이 되었도다'
뭐 이 말씀이
내 삶을 증거하는 그것이 아니던가?
새롭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 것이고
다시는 '부활'이다.
그러나,
그 첫사랑의 체험이 평생 가서
나도 모르게 착해지고
나도 모르게 늘 기뻐지고
그러다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천국' 에 들어가
그대로 영생까지 살아간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난을 경험한 후
부활하사 승천하시었는데
우리도 우리네 인생의 '십자가 고난'은 필연이 아니던가?
우리를 구원하신게 '고난' 때문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으며
'예수 십자가'를 같이 지게 하실 이유라하시지 않는가?
그렇다 .
인생에서 우리는 또 인생의 고난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
그러나, 이전과는 다르다 .
비슷한 무서움과 두려움이 있었었도
이전과는 달랐다 .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었고
그 시간은 자꾸만 짧아져 갔다 ..
왜?
넘어져 또다시 나락, 그 죽음 같은 갈등에 들어가도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매일 부활'을 경험하도록
성령,
예수님 보내신 보혜사 (도우미 ^^;)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또 '부활의 은총'으로 일으켜 세우심이다.
다시 .. 말이다.
12.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곧' .. 말이다.
이런 것.
세상 어디 철학에서 들을 수 있던 것이며
어느곳 어떤 종교에서 강론하고 설파하던 적이 있던 경험들인가?
' 부활'
다시 삶
다시 일어남.
매일 매시
각 사람의 삶에서 수도 없이 벌어질 또 다시 일어섬..
그 매일의 부활이
또
내
오늘의 삶 속에서
'곧' 다시 일어나
'도무지'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셨으면
또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고백이 되는
그런 하루가 되길 바란다 .
그런 제대로의 흐름,
온전한 하나님의 원리,
부활의 신앙이
이
아무것도 벌어질 것 같지 않은
깊은 중년의 시간에
내게 또 일어나
내 삶이
훨씬 충만하고 생기 있는 삶이 되길 기대한다.
그러다가
부르실 그 날에
온전한 성화의 영혼이 되어
주님 마주하게 될 수 있길 원한다.
감사하다.
주여.
감사합니다.
너무도 어려운 시대,
도저히 전 세계적으로 마주해보지 못한
대 변혁의 시간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공포가 전세계적으로 서서히 사로잡고 있으며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계층과 계층이......
서로 반목하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마지막 시대
주님 오실 그 날이 다가오면
어찌 될 것인지
그 서막을 열어 보이시는 것 같은 현상들이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여.
부디
그동안 나태했던 신앙인들 다시 믿음 회복하고
각 개인개인 부활 신앙으로 다시금
곧
즉시
깨어나게 하소서.
저도 그리 되게 하시며
도무지 알수 없을
놀라운 방향으로
우리나라, .. 를 지금껏 인도하셨던 대로
또 그리 되게 하소서.
주여.
힘주시고 깨어나게 하소서.
다시 부활케 하소서.
제 믿음도 그리하길 원합니다.
제 죄되고 망령되고 게으른 무지에서
또 그리되게 하소서.
이 마지막 시대에 깨어 있는 신앙이 되게 하소서.
내 주 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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