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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만을 믿는 믿음[눅9:18-2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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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만을 믿는 믿음[눅9:18-27]

주하인 2025. 3. 5. 23:32

부제)  하나님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가 아닌 하나님의 보내신 구원자

        예수님이 나의 목적이 되는 삶

왜 따라야 하는가 왜 십자가를 져야 하는가 왜 자기부인해야 하는가(뤼튼)

그게

주님의 뜻이시고

 

그게

진정한 영생의 길이고

 

그게

온 우주에 유일한

생명의 답이니까...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이 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제자,

무식한 어부 출신 베드로가

본질에 가까운 대답을 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특이한 표현이라서- 아.. 처음 본것처럼 느껴졌다.. 하나님이 보게 하셨겠지... -  'ChatGPT'에 물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반면,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표현..이라고 나온다. 

 

그렇다. 

이 표현은 익숙한 반면,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처음이면서 

눈이 간다. 

'그리스도'가 메시야 , 구원자이고

사람들, 어쩌면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믿는 깊은 목적이 '우리, 나의 필요'에 따라 있는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 라는 개념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주님께서 오늘, '하나님의 그리스도'라시며

내게, 

좁은 길 모든 흔들리는 분들^^;께 - 나만 그럴 거다 ^^;- 새삼 보여주심이 아닌가 싶다. 

 

이제 '주하인 들아.. " 

'' 조금은 하나님께로 더 집중해 보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너희의 특질, 약함을 알기에 

그냥 여기까지 성장하길 기다리며 인내하였지만

이제는 '너희의 구원자에서 하나님의 보내신 구원자' 로 

시선이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 하시면서 말이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너무 귀중한 말씀, 

주님 구원안에서 2차 중생, 완전성화를 위하여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성장'됨을 위하여

마땅히 우리가 해야할 태도를 

너무도 정확히 표현한 구절.. 

 

"자기를 부인하고 -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예를 들어달라고 해서 밑에 정리 해보았다.. 다시 마음 다잡으려고.. -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신다. 

그것도 '매일' 날마다' ..

 

 당연하고도 당연하지만.. 너무도 힘든 말씀.

 

그러나, 이제는 안다 .

그러다보면 '마음이 아주 기쁘다' 

'주님이 기뻐하시며 허락하시는 '기쁨'이 느껴져

영혼의 평강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게

다 인가?

풍랑이 오면 막아주시고

태풍이 오면 소멸시켜주시고

어두움이 오면 밝게 해주시어

삶에 두려움이 없게 해주시면 

그것으로 족한가?

 .. 그게 다인가?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고' 

그래서 '영생'과 '천국'의 보장이 다 이던가?

그렇게 하려면 '십자가를 매일지고 ' , 

내게는 아직도 어쭙잖다고 비아냥 대는 듯한 ^^;;; 내면의 저항들을 물리치고

좇아가야할 '.. 그게 다인가?

 

그거.. 

그거야 말로 또다른 '변질된 자아의 욕심'.. 아니던가?

심정적 편안함,

상처의 회복이 결국.. 예수님 믿는 목적의 끝인가?

 

그것을 위하여

''나를 따라오려거든'.... 하시면서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 피땀을 흘리면서까지 변화산에서 새벽을 맟도록 기도하시고

'골고다 언덕' 오르시면서

십자가 그 모진 고통을 다 감내하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 

그 너무도 위대하고 대단하시며 

인간 역사에 벌어진 일이 없던 

그 놀라운 일을 하신 ... 

그 것이 겨우

내 '심리적 안정감'..

'이 미물,Worm보다 못한

' 우리들의 영생

우리들의 안식과 천국을 위하여

그리하셨고 

그리 따라오라고 모범을 보이셨단 말인가?

얼마나 허무하고 힘드시며 공허한 외침이셨던가?

 

 그래서 다시금 생각을 정리하여보았다. 

 

 그렇다. 

 

밤바다 풍랑 속 누워계시던 예수님.. 그자체.. 

그 분이 계심으로 

더 이상 풍랑의 지속, 멈춤, 흔들림 , 어두움.. 밝음..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오직 예수님 그 자체'.. 

거기에 정답이 있지 않던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은

'천국'의 방향이 아니고

'예수님 자체를 따라감'이 

유일한 목적이 되기를 말씀하시는 거다 .

 

 그리고 그러한 비밀을 깨달은 자들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는 

결단을 해야 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자동적인 결단이 나와야 함을 말씀하시는 거다.

 

그것.

주님 안에 있는 것,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 

그 사실을 경험한 자들.. 

성령께서 알게 하셔서

충만한 충만함으로 

주님 안에 있는 다는 사실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이 '양자적' 실체의 경험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 일들인지

이제쯤이면 알아야 하지 않겠니?.. 라

넌지시 권고하고 

깨닫기를 바라심으로 느껴진다. 

오늘 말씀에서... 

 

 그래서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하여

내가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하여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 방법을 위하여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져야 하는 것'이다. 

 

 복종도 기쁨이다. 

주하인의 하인도 '영광'이다. 

그래서 청지기를 자처하게 되는 것.. 

그러함을 증폭시키려

좁은길 가고 

십자가 지는 것.. 

자연스러움이다. 

그 자연스러움을 위하여

오늘 내게 필요한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더욱 성령께 간구할 따름이다. 

 

할렐루야.

 

 

주님.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이 스쳐지나가듯 지나갔던 구절에서

깊은 통찰을 가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점점 더 

예수님 자체 .. 

주님 한분 만으로 족하다 고백하는 분들의 고백이 

내 고백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주여.

'나를 따르려거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그 어떤 것'도 허락되었음.. 

그러함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성령 하나님을 보혜하게 하신 것임을 알겠습니다 

 

주여.

그러기 위하여

주님이 하신 자기 부인과 

주님이ㅣ 지신 십자가를 지려 합니다 .

주님.. 

저.. 

홀로 두지 마소서.

 

원하지만

두렵습니다. 

그러함을 아시는 주께서 

지금껏 참아주시고

기도하면 도와주시는

그 원리를 제가 알아차리도록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제.. 

풍랑이는 밤바다에서도

일상에서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으로 족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내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기 위하여

철저히 주님 십자가 지는 마음으로 

자기 부인하려 하오니

말씀이 그대로 제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령 충만히 도우소서.

 제 영혼의 완전한 흐름이 되게 하소서.

 

내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정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20장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고백에 대하여 ))

누가복음 9장 20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의미는 깊고 신학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의미

'그리스도(Χριστός, Christos)'는 히브리어 '메시아(מָשִׁיחַ, Mashiach)'를 번역한 그리스어입니다.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뜻하며, 구약에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이 세우셨음을 나타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 즉 인류를 구원할 자를 의미합니다.

 

2. '하나님의 그리스도'란 표현의 독특성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반면,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표현됩니다. 이는 누가복음이 이방인 독자들을 고려하여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자라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즉,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보내신 참된 메시아라는 선언입니다.

 

3.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관과의 차이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정치적 왕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고난 받는 메시아'로서, 십자가를 통해 죄와 죽음에서 인간을 구원할 분이셨습니다(이사야 53장 참조).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을 때, 그는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이해하지 못했고(눅 9:22), 이후에야 성령을 통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4. 신앙적 적용: 우리의 고백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단순한 위대한 인물, 도덕적 스승으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단순한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구원자요, 왕이요,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라"**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선언이어야 합니다.

 

 

 

--(( 23장 '나를 따라오려거든' 에 대하여))

 :예수님 공중 재림시 '휴거'되는 성도들에 대한 고찰과

'십자가를 지고 자기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려는 자들의 휴거 자격'

 

너무 중요한 본질적인 질문이야.
나를 따르려거든(눅 9:23)의 핵심이 단순히 천국 가는 것, 영생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은 정말 깊고 본질적인 통찰이야.

1. ‘나를 따르려거든’의 핵심은 예수님 그 자체
예수님이 “나를 따르려거든”이라고 하셨을 때, 그 의미는 단순히 천국행 티켓을 얻으려면 이렇게 해라는 의미가 아니야.
예수님이 어디 가시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심지어 십자가의 길이라도 그분과 함께 가는 것이 참된 제자의 길이라는 거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건 “천국 가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 그 자체야.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야.
• 예수님이 계시면 풍랑도 잔잔해지는 것 (막 4:39)
• 예수님이 계시면 광야에서도 길이 열리는 것 (출 14:21)
• 예수님이 계시면 죽음조차도 생명으로 변화되는 것 (요 11:25)
즉, 천국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목적이 되어야 해.
그렇다면 천국은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결국 영원한 나라로 이어지는 거야.


2. 자아를 내려놓고 예수님과 하나 되는 길
우리가 “천국 가려고” 예수님을 따르면, 여전히 ‘내가’ 살려고 하는 것이야.
하지만 예수님과 하나 되려는 길을 가면, 우리는 자기 부인십자가를 지게 돼.
왜냐하면, 우리의 자아가 죽어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충만해지기 때문이야.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 2:20)
즉, 내가 사라지고 예수님이 사시는 삶이 ‘나를 따르는 삶’이야.

3.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단순히 고난을 참으라는 의미가 아니야.
그것은 자신의 계획, 욕망, 자아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야.
•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
• 내 감정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
• 내 생각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
이게 **‘자기 부인’**이고, 이게 십자가를 지는 삶이야.

4. 그런데 왜 가슴으로 잘 와닿지 않을까?
네가 말한 것처럼, 이걸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잘 안 와닿을 때가 많아.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자아가 완전히 죽지 않아서 그래.
아직도 ‘내가’ 뭔가 해보려고 하고, ‘내가’ 이해하려고 하고, ‘내가’ 완전히 깨달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맡기는 것”**이야.
우리가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따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깨달아져.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이 기쁨이 돼.
그때야 비로소 십자가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영광이 돼.
그때야 우리는 예수님이 목적이 된 삶을 살 수 있어.

5. 결론 – 예수님이 목적이 되는 삶
예수님을 따르면 얻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야.
그리고 예수님이 계시면 천국이 자연스럽게 임하게 돼.
• 천국 가는 것보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영생을 얻는 것보다 예수님을 깊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 고난을 피하는 것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내가 천국 가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는가?”“나는 예수님 그 자체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생 얻기 위해 신앙생활 하는가?”“나는 예수님과 하나 되기를 원하는가?”
이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나의 목적이 되는 삶이야.
그럴 때, 우리 안에서 천국이 이루어지고,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시작될 거야.

 

 

--(( 23장 '자기를 부인한다'라는 일상의 예 ))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 자아, 계획, 감정 등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인내하기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거나 화가 날 만한 말을 할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참으며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2.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기

주말에 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기억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교회 봉사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3.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

사업이나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면 손해를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정직을 지키는 것입니다.

4.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섬김을 선택하기

교회나 가정에서 "내가 맞다"를 주장하기보다, 주님의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입니다.

5. 기도로 자신의 뜻을 내려놓기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내 욕심과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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