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따르라 따르니라 회개하라 회개되니라[눅5:27-39] 본문
부제)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게 되고 회개의 삶이 이루어지다
병든 자고 죄인임이 인정되어서야 일어나지고 회개가 이루어진다
.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레위'라 하는 '세리'- 레위는 그의 히브리식 이름이며, 마태(Μαθθαῖος, Matthaios)는 그리스식 이름-가
세관에 앉아 있다.
알다시피 '세리'는 돈은 많이 벌지만 지탄 받는 직업.
세관에 앉아 있는
무의미하고 의욕이 없는 표정의
그냥 하루하루 어쩌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그러한 소망없는 삶,
그 마태가
'나를 따르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지체하지 않고 일어나 따르는
그 모습이 그려진다
방향성을 잃고 삶의 목표도 없으며
아무런 재미도 없이
이 세상의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가던
부유한 '세리'.
그 앉아 있던 자리에서
어느날 바람처럼 다가오신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하시자
'모든 것' -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지 않는가? 왜 그러는 지도 모르면서 허겁대는 물질의 추구와 악다귀의 삶, 관계 속 모든 인연, 내면의 소용돌이치는 수없이 많은 생각과 상념들, 상처..-을
'버리고' -버렸다 한다. 그냥 아무 사심없이 내려 놓고 일면식도 없으신 그 분의 말씀 한마디에 그냥 버렸다함은 그 내면의 깊은 고통을 느끼게 한다 . 진리를 마주한 자의 진실을 깨달음. 이땅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는 의미가 없음을 직감하게 하지 않는가? 예수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그 때의 세리, 마태는 즉감하고 있었음이고 이 진리를 다시한번 깊이 마주하길 , 주하인에게 주님은 강하게 원하심이시다. - '일어나' - 세상의 것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죽은 것들이고 병이지만, 복음은 진리고 생명이고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 '따르니라' ..나온다.
따르니라.. 는 당연한 결단으로
결연한 느낌,
좁은 길 가는 주하인 들에게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하시는 것처럼
그러한 뉘앙스로 다가온다 ^^*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그렇다 .
마태의 저러함을 통하여
당연히 저러하여야 만하는
모든 '세상의 주님 백성'.. 주님의 선택을 갈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 선택을 위한 기본조건,
당연함을 말씀하고 계신다.
'병든 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 허무한 가치'에 매몰되어 진실, 진리를 보지 못하는 병,
너무도 오랜 아픔으로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되풀이 하는 '병'
육신의 감각을 추구함,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테스트'를 거치는 동안
인생광야 드라마 완성하게 하시기 위한 도구인
이 육신에 매몰되어 본질을 잊고
육신이 다인것 처럼 사는 '망각의 병'..
원죄의 존재인 '우리네 영혼'의 허전함을 채우는
대리 조건으로 끝없이 허덕이는 '갈구의 병'..
죄의 자극을 추구하는 병,
가지고 있는 성품적 '병'.........
그 병은
주님께서 '도피성 특성'으로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아래에서
성령으로 안아주심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지고 있는 바,
깨닫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사는 바,
우리는 '병든 자'이다.
우리 인간 모두 .. 말이다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그 병은 '영혼의 병'이다.
아담과 이브 의 원죄 이후로 들어온
'허락되어진 죄' 말이다 .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 .
그러나 누구나 다 '세리 마태'일 수 있겠는가?
아직도 '기도'하려면 달라붙는 방해의 존재들이 있으며
아직도 '성경'을 보려면 들러 붙는 '상념'들이 많고
아직도 '회개 '하려면 비아냥 대는 것 같은 방해들이
여전히 많음이다.
어렵다 .
그마져 허락하지 않으시면
성령으로 도우시지 아니하면
매일 그러함,
항상 그러함.
더욱 그러함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 주께서 그러신다 .
"회개 시키러 오셨다''
그렇다.
그마져, 주님이 허락하시고 인도하심이시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 인생의 이처럼 허무하고 답답하고 어이없는 것,
그모든 것이 의미없는 찰나의 것이며
그에 매달리는 것이야 말로
'병든 선택'이며
그를 적극적으로 매몰되는 것이야 말로
'죄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멸로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
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얼른 일어나 따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마져
주님이 허락하실 때
신랑 같은 주님이 오실 그때에
즉시 그리 되기 위하여
기도하고 회개 하여야 한다.
회개케 하시는 주님의 회개를 간구하여야 한다.
그렇습니다.
알면서 못하는 것,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
마치 살빼라 , 담배끊어라 , 스트레 피하라.. 라시는 말씀 같은 구절에
오늘 은혜가 옵니다.
당연하다고 그냥 박수치고 끝나는 개념이 아니고
감사하고 가슴이 찌르르한 은혜의 느낌이니다.
주여
레위 마태의 세관에 허탈히 앉아 있는 모습에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 영접으로
온통 뜨거운 역사가 일어나던 그 시절,
1998년 12월 28일 그 시간이 떠오릅니다 .
그러면서도
아직까지도 이 세관 안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아..
주여.
모든 것 털어버리고 '주님' 만 따라가는
완벽한 좁은 길 사도의 삶은
제게는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매일 말씀을 통하여
돌이키고 또 돌이키게 하시는
그 주님의 살아계셔서 권면하여 주시는
그 은혜와 사랑과 긍휼의 끝이 없으심임 진정 감사합니다.
오늘은 '회개케 시켜주시는 주님'의 이유로
어제보다 더,
다 버리고
더 버리고 일어나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결단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
제안의 싸우는 정욕 .. 아 아침에 읽은 야고보서의 말씀에서 말씀하시는 그 정욕 뿐 아니라
아직도 요동하는 어이없는 제 놓치 못한 그러한 것들..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주님의 은혜를 기대어
주님의 지시하는 방향대로
오늘 하루 또 살아보겠습니다.
다 버리라 십니다.
다 버리겠습니다.
그리 결심하오니
마치 결심과 달리 그리고 끊어내기 어려웠던
담배의 금연,
잠자려 했지만 눈이 말똥거리게 했던 그 '불면'의 밤들을
오직 주님의 구원의 감격으로
그냥 '잊어 버리고 없어지게 하셨던'
그 강하고 뚜렷했던 그 시간의 그때로 돌아가 는 거처럼
말씀이 있으시니
쉽지만 어려운 중독적 현상의 끊어짐처럼
그냥 .. .또 그리 버리어지게 하소서.
회개하라시니 회개 되게 하소서.
따르라.. 시니 따르는 하루 되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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