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유월절 십자가를 잊지 않기를 원하고 원하신다 [눅22:1-23] 본문
부제) 주님의 선택은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에게만 이루어진다
주님께서는 나의 어떠함을 넘어 나의 사모함 만을 보신다
특별하신 주님의 대접은 선택받은 자에게 하시는 당부
.
12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3년을 잘 따라 다니는 동안
여러 '은혜와 교육' 그리고 '예언'등을 주셨지만
십자가 달리시기전 마지막 유월절에는
'특별한 행사'를 하신다.
마치
미리 스케쥴을 짜고 행사를 준비하시고- 당연히도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하셨지만 다락방 준비, 음식... - 그러하신 주님의 모든 계획을
공식적인 유언을 남기는 퇴임식사 같은 그런 모습으로...
그러한 공식적이고 엄숙한 모습이
14절 '때가 이르매' .. '앉으사'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기념사' 하며
남겨두고 가는 후진에게 신신당부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훌륭한 '리더' 같은
그러한 '세상의 위인' 이 '공식적인 자리'를 일부러 만들어
엄숙하게 받아들이고 도장 찍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겨우.. 일까?
내가 고난을 받기 전... 원하고 원하였노라
위 15절에서 말씀하시는 저 말씀에서
무슨 뉘앙스가 느껴지는 가?
항상, 자주 , 한동안 말씀하셨다.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 기도... 자주 말씀 등을 통하여...
하지만.. 오늘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 '공식행사'를
나름 크게 준비하시고
마음 속의 말씀을 그대로 드러내시며
다짐을 강하게 하시는 그러한 뉘앙스다.
'마지막 공식적 확인'.
거기에 "내가 고난을 받기 전" 이시라는 말씀에서
이들의 십자가 원리를 깨달아 알아
앞으로 '복음'전파의 이유와 목적을 알게 하심이기도 하지만
'십자가' 고통에 대한 인간예수로서의
두려움도 묻어 나오는거다.
그 고통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ㅠ.ㅠ
그것은 '요식 행위' -안아프게 느껴지게 하시는 능력이 왜 없으실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아픔을 그대로 받으심은 절대로 가식이 아니시고 진정으로 세상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모범을 보이시는 거 아닌가? 십자가를 지고 제자들이 , 내가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모범을 보이시는 진정성-이 아님을
공식적으로 보이시고
제자들에게 따라오길 원하시는
강한 마지막 다짐 같으신 거다 .
"원하고 원하였노라'' 라신다 .
보라.
지속적으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신 주께서
졸업하는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시면서
그 가르침을 따르도록 그러하심이시다.
오늘 말씀,
역시 쉽지 않다.
그러한데
저 제자들에
저 공식적인 행사에
주님의 눈물, 주님의 안타까운, 주님의 사랑하심 안에 들어온자가
과연 수제자로서 옳은 자질들였던가?
그렇게 많이 , 제대로
주님의 원하심대로 커왔던 자들인가?
커온거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라는 면
'과연'이라는 면에서
저들이 그럴 만한 자들인가?
난 어떤가?
나의 이러함.
나의 그러함...
그러함에도 불구하시고
주님께서 '공식적 자리'를 마련하시고
내 어떠함을 '추인'하여 주시는 거다.
그러면서
주님의 어떠함의마음을 고백하시며
다짐 시키시는 거다.
"주하인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감사합니다.
내 주여.
이러한 나
그러한 나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주님의 제자로 공인하시고 추인하여 주시며
나에게 내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내 십자가를 이제는 져도 된다.. 하십니다.
힘들지만 그리합니다.
그러라 하시니그리하겠습니다.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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