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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노여움마져[시76:1-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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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노여움마져[시76:1-12]

주하인 2022. 2. 23. 10:02

 



2.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주님의 장막을 모시고 

처소를 사모하며 사는 자들은 

결국 이기게 될 것이다. 


10.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주께서 금하시리이
 '진실로'

찬송하게 될 것이며

어두움을 '금하시'어 범접도 못하는 

승리자가 되고야 말것이다.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라심이

이해가 되는가?

 

전~~혀 문맥상 내용상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해가 되고 은혜가 되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특별한 점이고

그래서 그 '신비'를 깨닫고

그 신비를 영혼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기쁨'이 놀라워 

주님의 말씀을 이리도 매일 '묵상' 하고 

글'을 올리는 것이다. ^^*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홀로 매일 같이 하기는

정말.. 힘들고 어렵다. 

 의지박약하기도 하고 (실제다.. 난... 그래서 무엇하기로 결심하질 않는다.. 평생..ㅎㅎ)

환우들이 밀려오고 왔다갔다 하다보면

내 정신으로 글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

그것도 요사이, 힘이빠지고 이 비 미션 병원에서 그런다는 것은

더 .....

하지만, 그러함에도 

날이 갈수록 내 감정적 충만함(이전에는 은혜가 올 때 감성이 그야 말로 폭죽터지듯  줄~~줄이 터져나와서 밀리고 밀려서 쓸때가 아니면 축~~쳐지며 skip ㅠ.ㅠ;; )과 상관없이 

거의 매일 묵상의 글을 올리게 됨은

이러한 깨달아질 때 오는 영적 충만함이 커짐이 아닐까 싶다. 

내 감정의 변화와 무관히 

하나님으로만 기뻐지는 

온전히 '영적인 순수'에 가까와지는 증상이 아닐까 느껴지며 

감사함으로 더 기뻐진다. 할렐루야.

 

각설하고.

진실로.. 다. 

이제 내게 남아 있는 문제점 중 

피하고 자꾸만 도움만 구하면서 미루고 미뤄왔던 부분.. 

쉬이 노하는 '노여움'과 그 안에 내재된 잘못된 왜곡의 소리 (난.. 이제 사단의 정체에 마주해간다.. .말씀을 근거로 ~!)를

순수히 말씀으로 만 이겨내게 되고 

오히려 '주를 찬송'하게 되게 될 것임이

말씀 보면서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그게 기쁘다. 

그러니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라는

도저히 얼토당토 (정말 죄송합니다.  주여... 인간세상에서 이런 논리라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 않지만

오히려 이해가 되고

'예언'처럼 느껴지니 기쁘다. 

 

그리고 '남은 노여움'이라는 표현이 좋다. 

시어 같고

강한 느낌으로 인사이트를 주는 영적 언어로 느껴진다. 

제게 해결하지 못하고 순간 쓸려가는 '노여움'

그 깊은 , 단순하지만 강하게 숨어 있는 사단의 장난이 

'남은 노여움'이라시는 말씀에 

실체를 드러낸 것 같아 좋다. 

눈에 들어온다. 

 

 그 '남은 노여움'을 주께서 금하신다시니 참 기쁘다. 

내 홀로 할 수 없는 그 부분... 

수없이 많은 허락되어진 시간 중 대부분을 쓸려나가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노여움'

남은 노여움을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주께서 금하신다.... 뭐.. 이렇게 느껴진다. 

감사하다.

 

 주여

이제 내 삶의 방향을 

타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노여움을 해결하고.... 주의 일..............등으로 정하자 마자

근거없는 갈등을 일으키는 

자잔한 문제들이 

내 심사에 콱 박히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내 잘못된 생각이 맞을 거야. ..라고 

이제는 거부의 생각들을 

주님의 편에서서 하려 했지만

너무 오랜 노여움의 생각들의 습관으로 인하여인지

좋은 생각들이 자꾸만 쓸려 나가버리고 

또 내기분, 내 주장, 내 위신이 ...............라는 강박적 생각들이 날 사로 잡으려 하였습니다. 

그런 논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여지없이 전 '노여움'에 사로잡히고

홀로 씩씩대는 ............

그러다가 기회를 틈타 ........ㅠ.ㅠ;

그런 잘못된 행태를 되풀이 해왔습니다. 

알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은 노여움' '사람의 노여움'이 

제 뇌리를 사로 잡으려 했습니다. 

주님도 아시오매 

그 논리의 정교함은 얼마나 오랫동안 제 마음을 쉬이 흔들어 왔던지

길이 들어 그 노여움의 근거를 타파해내기 쉽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좀더 말씀 가운데 

말씀을 근거로

말씀에 맞추어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다행이 '승리'했습니다. 

미련한 노여움의 논리에 

찬송의 노래를 주께 올릴 마음의 여유로움을 되찾았습니다 

아.. 

주여.

제 논리타파를 위한 노력이 아니고

기도로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을 바라보니 결국 마음의 평정을 찾고

이전과 다른 평온한 눈으로 

주변, 그 논리를 제공할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주여.

그렇게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찬송드립니다 .

주여.

 

사람의 노여움이 주를 찬송하게 한다는 사실을

이 일로 쉬이 짐작하게 

미리 상황을 통해 

제 부족한 인격의 부분을 다스리게 하신 것 아니겠나이까?

 

아.. 

제 남은 노여움도 

주께서 당연히 금하시겠음을 

마음이 깨달았는데

말씀으로 그리 정리해버려 놓으셨군요.

시편 76편을 통해서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살아계셔서 매일 말씀으로 다가오시고 이해를 시키시고 은혜로 이끄시며

결국 그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임을 알게 하사

이 나이.. 

이 들어가는 나이의 제가 

행복의 근본이 어떠함을 알게 하시니

진정 감사합니다. 

그 어떤 세상의 것으로 '행복'을 유지시킬 수 있겠나이까?

오직 하나님.

오직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의 평강 만이 

진실이고 진리이심을 고백합니다. 

 

감사하오며

제 남은 노여움을 주께서 금지시키시고

제 사람의 노여움을 통해 오히려 찬송드리게 하소서.

주여.

분노.

내 뱉지 못하도록 제 모든 입을 틀어 막으소서.

오직 입벌려 찬송할 수 있도록 만 하소서.

좋은 말만 나오도록 하게 하소서.

상황과 환경에 맞는 그리스도인의 언어가 나오게 하소서.

 

거룩하시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 묵상 2009.08.29

 

 

주님의 성령으로

내 영혼의 속살까지

투명하여지길 빕니다.

주님은 빛이십니다.

 

그 빛 안에 살아가는

오직 주님 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나이다.

 

그게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주여.

 

 

 


2.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주님은 어디에나 계시다.

내안에도

교회에도

내 주위에도..

그 어디나 사모하는 자가 있는 그 곳이

그 분의 장막, 즉 tent시다.

 그분은 하늘나라 시온성에 거하시지만

어디에도 계시는 분이시다.

눈을 감고 바라보자.

주님을 만나자.

밝은 오늘 토요일 오후에..

  

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온유한 자.

착한 자를 떠나서

모든 판단을 주님으로 하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순간에 판단이 이루어지는 자다.

육신에 주님의 모습을 띄는 자.

그가 온유한 자다.

 

주여.

오늘 저를 온유한 자로 만드소서.

 

 

10.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남은 노.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알게 모르게 또 밀려나오는 죄가 있다.

죄는 주님의 임재를 멀리느끼게 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데 장애가 되게 한다.

'소명'

'주님의 감동'

'은혜'라는 단어와 멀리하게 한다.

 

이제 나의 남아 있는 '노'가 무엇인가?

오늘 하루 특별히 남아 있는 노에 대하여 묵상할 일이다.

 


 
11.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자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서원.

성경에 '서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어서

서원은 절대로 안하기로 '서원'- ㅎㅎ - 하지는 않았지만

어쨋든 서원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슬그머니 슬그머니 내 속에 유교병적 생각들이 침투할 기회가 많아진다.

오늘 '서원하고 갚으라 '신다.

무엇을 서원할까?

왜 갑자기 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는가?

잠시 묵상을 했다.

오늘 말씀 구절에 그 답이 있다.

'남은 노'의 원인을 밝히어 보면

오래된 판단의 습관 탓이다.

그 판단은 아픔 탓이 크다.

아픔은 아픔이 아니다.

이제..

그것을 지니고 세상을 바라보면 결코 온유할 수 없다.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남은 노는

주님을 멀리 느끼게 하고

그 멀리느끼게 됨은 다시 역으로 '노'를 가중시킨다.

이제 그런 흐름의 헛됨을 확실히 안다.

그것을 서원할 것이다.

오늘 화를 안낸다.

절대로 안낼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시기에 그럴 것이다.

온유할 것이다.

 

 

적용

1. 화 안낸다.

 서원이다.

 

2. 판단을 내려 놓는다.

 1차 지각 체계다.

 

3. 성경 일곱장 읽겠다.

 

4. 내 남은 노는 무엇인지

   남은 노의 원인은 무엇인지 묵상한다.

 

 

 

 

 

기도

 

 

 

 

주님 도우소서.

화내지 않도록 잡으소서.

온유하게 하소서.

편안하게 하소서.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고

도저히 제 흐릿한 기준에 맞지 않음을 보시고 안타까우셔서

서원하라 하시니

예.

오늘 하루 그리 하지요.

저를 도우소서.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옛 버릇 남은 죄가 날 흔들지 못하도록 잡으소서.

온유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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