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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난처[시14:1-7]

주하인 2013. 2. 14. 09:44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모든 것이

주님께로 달려가는

지름길 되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 있게 되어도

그를 통하여

주님 만을 피난처로 삼는

그런 기회 되게 하소서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피난처.

 

오늘의 묵상제목이다.

무엇을 피난할까?

 

우선 현실적 이유, 눈에 보이는 이유, 누가 보아도 다아는 이유

정말 절박하고 일차원적 이유로 부터의 '피난'이다.

길게 썼지만

모두 통일된 이유다.

' 외부적 이유' 내지 '외적 자극'

혹은 뚜렷이 느끼지 못할 지 몰라도 이유가 분명히 있는 자극으로 부터의 ...

 거의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

또한 나 스스로서도의 대부분의 비율로 피난처로 도피하게 하는 이유가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 그게 늘 똑같던가?

이유가 외부에 있다고

반드시 '외부'의 것만을 피한다고

모두 해결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기도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모든 '괴로움'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인 결론에 귀착되지 않던가?

물론, 하나님은 절박한 기도는 들어주신다.

하지만 그 들어주심이 또 되풀이 될 때...

아니면 주님이 당신의 뜻이 있으셔서 더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들어주시지 않을 때...

그 피난해야 될 그 절박함을 짊어지고는

어찌 생각해야 하는가?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

아니 나 조차

오래 지속되는 힘듦,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어려움이나 환란이 있을 때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다.

그게 .. 그렇지 않아야 하고

댱연히도 '고난은 유익'으로 감사해야 하는

말씀이 있으시고 깨달음이 있으시기에 그렇게 해야지만,

마음 깊숙이까지 기쁨으로 늘~받아들일 ,

그런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다.

즉, 외적 자극으로 부터의 피난은

일시적이고

조금은 성장되지 않은 믿음일 시에 해당하는 피난처의 의미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온전한 '피난처'이신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 것인가를 가르치시고 싶으신가?

 

 외적 자극으로 부터의 '피난'의 반대는 '내적 자극'인가?

그것은 무엇인가?

위의 심리적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내적 자극 아닐까?

그것보다는 더 오래되고 깊은 내적 자극,

어떠한 외부적 자극에 대한 나의 반응이 굳어져

하나의 변함없이 자동으로 돌아가버리는 메카니즘.

'성격'처럼 굳어져 버려

외부적 자극이 올 때마다 내 안에서 그냥 '한바퀴 ' 시스템이 작동되면서

'환란'이나 어려움으로 오인되어 버리게 하는

그런 부분.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성격적 특성이나

상처나, 외부적 자극의 지속적이고 다양한 공격으로 인하여

그렇게 굳어져 버린 것.

아마도 '영적' 부분에 해당될 것이고

그것은 어쩌면 환경과 자신의 선택이 오래 삭히고 묵혀져서 이루어진 부분일 것이다.

 

 그것으로 부터의 피난... 이라면

그 어쩌지 못하는 부분의 해결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것으로 부터의 피난의 결과는

더 이상 외부적 자극으로 인하여 고난과 고통이 생겨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게 어찌가능하다고 생각되는냐고?

환경에 대하여 일희 일비할 이유는 없다.

솔직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믿는 자들이 나가야 할 결국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고난을 받고

 모든 것 그 고난을 감사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마치 '나'인 것처럼

모든게 '내 잘못'인 것처럼

어찌해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인 것 처럼

나를 속이는

내 영속의 잘못된 오류들,

혹은 사단의 흔적들로 부터

우리가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환경은 우리를 어찌할 수가 없다.

우리의 심령은 '천국'에 존재하는 것처럼 '평강'이 유지 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피난이 쉬운가?

 

 환우를 볼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 되풀이 하시는 분들을 보면

속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려한다.

 그리고 그분들이 발을 돌려 진찰실을 나가실 때야 되서는

아.. 저분 한분 한분을 볼 때마다 모두 예수님으로 보라고

성경에서 명령하시는데 ... 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탄식한다.

그게 알면서도 순식간에 그런다.

 방문을 열고 아주 아주 주심스러운 얼굴로

제약사 직원이 인사드리러 오거나

수술 기구 회사 직원들이 와서 굽신 거린다.

그러면 어느새 난 '고압적' 자세가 되어간다.

말을 어느새 '툭~툭~' 댄다

괜히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함부로 대하고는

그들이 굽히고 돌아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아~' 하면서도 잠시 올라온 화와 범벅이 된 '자괴감'을 달래기에 여념이 없다.

 

 분명코 말씀에는 이렇게 이렇게 하라 하시는데

나는 왜이러는가?...

 일단은 가만히 묵상해보았다.

어쩌면 되풀이 되풀이 하며 수시간을 잔소리하던

우리 어릴적 어머니의 모습 ^^;;;이 투영되어서 그럴 수 도 있다.

  힘이 약하다 생각하는 '을'의 거래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어쩌면 '갑'의 모습을 취하려하는

억울함이 따라다니는 내 상처입은 영혼의 반작용으로

저들에게 '고압적' 태도를 취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것들.. 영적인 문제가 아닐런가?

그러니 저렇듯 '되풀이'되고 '저항하기 '힘들게 순식간에 내 심령속에 튀어나오지..???

이런 것으로 부터 자유로우면,

이런 것으로 부터 피할 수만 있다면,....

영적 자극으로 부터의 피난처.

 

 그럼 그런 아픔과 자극의 '취약점'인 weak point는 어찌해야 하는가?

주님께 깨달은 거 알려야 하지 않던가?

주님은 분명코 오늘 ' 피난처'라 하시지 않던가?

상처를 회복시키는 회복의 피난처.

 

  날 자괴로 몰고가는 성장하려는 성장통으로 부터의 '피난'.

자괴의 아픔은 없애되

회개는 온전히 하게 하시는 '지혜로운 피난처'

 화를 내고 나거나

실패하고 나면 몰려오려는 낮은 자존감으로 부터의 '피난처'.

 

성장을 막아서는 되풀이되는 잔 죄악들로 부터 회복되는

성장하기 위한 '피난처'..............

 

 독특한 '구석방 늙은이'로 갈 수 밖에 없는

급한 화로 부터 자유롭게 되는

행복한 운명의 '피난처'

 

참으로 주님은 오직 '나 만의 피난처'이시다.

나의

나만을 위한 피난처.

 

 감사하다.

이제 성장을 위한 온전한 피난처,

되풀이 되는 죄악으로 부터의 막아주실 피난처

평강을 유지하기 위한 온전한 피난처.. 이신

예수님이 오늘 나의 피난처로서 깨닫게 하신 의미시다.

 

 

 

적용

1. 커피 금식한다.

 사순절이 어제 부터 시작이다.

 그래서인가 머리도 아프기 시작하고 괜한 걱정이 날 스물거리며 잡으려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일상이던 그런 '불안'으로 부터 벗어난 것이

 한참되었고 그걸 잊고 있었다.

 사순절이 그것을 기억하게 한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커피를 금식하려 한다.

 점심 금식하려 했더니 '회의' 도 많구.. 하다.

 

2. 환우 분들에게 더 웃는다.

 주님..

 잘 안되니 도우소서.

 제 짜증은 어쩌면 과거의 흔적을 영의 존재가 건드리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내 피난처시다.

 주님을 더욱 집중한다.

 

3. 기도하겟다.

  오늘 묵상제목을 가지고 그리하겠다.

 

4. 성경 세장 읽겠다.

  읽었다. ^^*

  네장

 

 

기도

 

 피난처이신 내 예수님.

나의 유일한 피난처이신 내 주 하나님.

나의 외로움으로 부터의 피난처이시고

나의 힘듦으로 부터의 피난처이시고

내 부족한 능력으로 부터 생기는 문제로부터의 피난처이신 내 예수님.

 

이제 주님께서 깨닫게 하신대로

외부적 자극으로 부터도 피하게 하시되

혹여 있어도 내 안에서 중화시키고 받아들여

성숙의 기회로 삼는

그런 온전한 피난을 허락하소서.

 

주님

기다리시고 인내하신 줄 압니다.

이제 주님 말씀 가운데 깨달아서

글로 적어 기억하고자 하오니

지금 그리하신 대로

성령께서 제 기도, 주님이 깨닫게 하신 말씀들 다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여.

일상에서 순간순간

저를 엄습하는 '죄된 자극'들로 부터 저를 보호하시고

죄된 자극을 받아 반응하고야 마는 그 약점을 고치심으로 절 도우시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사 승리하게 하여

영적 자신감을 높게 하는 도피를 허락하시고

모든 것 인도하소서.

 

 주님.

어떤 일이 있어도

그냥 적나라하게 반응해버리고야 마는

그런 어리석음으로 부터 온전히 도피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말씀따라 성숙하게 되도록 도우소서.

주님의 뜻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순종하고 받아 들일 수 잇게 하소서.

 그로 인하여 생기는 아픔이 있지 않게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일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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