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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래도 [겔39:17-29] 본문

구약 QT

나 그래도 [겔39:17-29]

주하인 2012. 10. 23. 09:56

 

비록

지금

내 형편 이렇고

 

아직

내 외로움

그리 쉬이 가시지 않지만

 

나 그래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주님 얼굴 뵈올

그 귀한 소망

내게 있음이다

 

 

 

때 되어

주님의 시간 차면

열심 다해 날 사랑하신단

주의

그 귀하신 약속

솔솔이

믿어지기 때문이다

 

 

22.그 날 이후에 이스라엘 족속은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겠고

 이스라엘 족속은

드디어.. 라도..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이신지

제대로 알게 되나,

 

 

24.내가 그들의 더러움과 그들의 범죄한 대로 행하여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가리었었느니라

이스라엘 족속,

구원의 백성이 아닌 자들은

아무리 그들이 알고자 하여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것.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으시기에 그렇다.

얼굴을 가리신다.

 

사람이 모르는체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속상함이 잇는데....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얼굴을 가리시는 자들...

그들은 그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지옥의 백성이 된다.

 

그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25.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

 

 이제.. 라신다.

하나님, 그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라 신다.

열심을 내셔서..

사로잡혔던 자,

우리를 위하여 '사랑'을 베풀지라' 라신다.

 

그렇다.

세상 사는 것.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아픈 것 아프지 않은 것 , 있을 수 있고

불신 자들이 어쩌면 세상에 더 잘 살 수는 있고

어쩌면, 나만 열심히 주님 따라 살려 노력함에 도

혼자만 안되는 것 같기도 할 때가 많다.

감히 믿는 자로서 '하나님이 계시면......'하는 소리는 입밖에 내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려 할 때 조차 모르는 척 부인하긴 하지만

약한 믿음에 '자극'이 오래가면

자주 흔들리곤 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믿는 자에게

어쩌면 한두번씩은 공통적으로 느끼던 바가 아닐까?

 '세상'에 눈이 고정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고난'이다.

하지만, 영원, 영생까지 펼쳐 보면 달라진다.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오늘 마지막 구절에 하나님께서

그런 '이스라엘' 같은 미련한 '나'를 위하여

때가 되시어서

열심을 내셔서

이제 사랑을 주신다는 표현이 정답처럼 다가온다.

모든 게 주님의 때라는 이야기다.

우리의 고난은 '우리의 죄' 탓이기도 하겟지만

주님의 때가 되어서

주님이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시고자 하시는 방법으로

그게 가장 우리들에게 '선'한 방법이고 시기이시기에

기다리고 참고 계셨던 것이시다.

 

가장 선한 시기와 가장 선한 것......

이 부분은 22절과 24절의 대비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 믿는 자에게는 그때가 되어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게 되는 시기다.

그렇다.

그게 하나님의 관심사 이시다.

 보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얼굴'을 가리신다신다.

우리는 선한 것은

돈 많이 벌고 자식 잘 번성하고 명예 많고

이 땅에 수명 오래 살면 그게 '최고' 인지 안다.

그러나, 그게 단가?

그 다음엔?

겨우 인생 팔십년,

그 중에서도 공부하고 경쟁하느라 다 없애버리는 시간과

늙어서 쏟아 부어져도 그리 감동이 없어지는 '노인'의 시기를 제외하면

고작 10~20년 이땅에서 누릴 것..........

그것 위해 '영원하시고 위대하신 ' 그 하나님을

무당의 그것처럼 바라고 빈다는 것은

그야 말로 논리적으로 너무 어이없는 바램들 아닌가?

 그렇다.

바로 우리 인생들,

아니 아직도 정신 만 잠깐 놓아 버리면

온통 세상의 이루지 못한 영화들과

비교에 의하여 흔들려 버리고 마는

이 주하인의 심사를 흐르는

악한 사욕들이 그렇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 처럼 눈을 크게 뜨고

생각을 우주로 넓히고

영원까지 확장하여 보면

이 인생은 눈깜짝, 먼지 한톨 보다 적은 분량에 지나지 않던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무엇때문에 웃고 울어야 하는가?

 

당연히도 우리는 '영생'을 살아야 한다.

그 영생을 위해 준비 기간의 이땅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깊이 알지 못하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그에 따른 주님 만이 아시는 나의 '성적표'를 통해

영생의 질이 결정되는 삶이 되기 위하여

이 땅을 사는 것이 아닌것인가?

 

 주님은 그 뜻을 이렇게 표현하신다.

'주하인아.

 이제 너는 곧 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아 ,

너희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

 

죽어, 영생을 가서 '주님을 마주뵈는 것' ,

그것이 어떤 것이던가?
그냥 .스타 한번 보고 나는 허전함일까?

이 땅에서 '은혜'의 시간 동안 나는 어떻든가?

그 분을 직접뵙지도 못하고

그분의 성령의 '임재느낌' 만 가지고도

이렇듯 전율하는 감동으로 채워지고

온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것 없는 것 같은데도

그 분의 얼굴을 뵈옵는 것,

그 분이 ' 이제 ' '열심을 다해' '사랑해주시는 것'은

그 얼마나 엄청난 일일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

그것을 맛보지 못한 자들,

성령 체험 하지 못한 자들이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해 보이는데

영원을 그 분 얼굴 뵙지 못할 자들의 운명은

그 얼마나 가련한가?
그 얼굴 뵈옵는 것,

그 열심을 다하신 사랑에 감동하는 것.....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라도 받을 수 밖에 없는 행운이 맞다.

 

나.

그때.. 를

얼굴 뵈옵는 것을 ..

단지, 죽어 천국에 가서,실제적으로.. 에 국한하고 있지만

그 분은 시간과 방법을

그토록 일차원적으로 제한하지 않으신다.

 '약한 것이 강한 것.

 '그 분이 내 안에, 내가 그 분 안에'

  ........

그 분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표현들을 많이 하신다.

하지만, 나.. 아니.. 은혜를 경험한 모든 믿는 자들은

이런 역설적인 표현이 그대로 이해가 된다.

무엇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나

그 분은 모든 것을 이해가 가도록 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난... 그 때를 모든 자에게 동일하게

죽어서....로 고정시키지 않는다.

그런 어리석음으로 이 땅을 도외시하는

'도피적 '삶은 배제한다.

하나님은 이땅을 열심히 살면서

그 분의 시간, 그 분과 나 만이 아는 때에

나만이 아는 방법으로

열심히 사랑하시고

그 얼굴을 보게 하신다.

그게 감사하다.

 

그렇다.

이제 내가 할 일이 있다.

'나를 이토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 아무리 노력하여도 그 얼굴을 뵙지 못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단 한명이라도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입을 열어야 한다. '

' 이제.. 열심을 다하여'시라는 하나님의

그 절절한 사랑의 멘트를 기억하자.

그리고 기대하자.

그 분은 나에게 더욱 뚜렷이 모습을 보이시길 원하신다.

사랑하는 부모님 얼굴 만 보아도 든든 하고

그 분이 주시는 도움이 나를 자립하도록 해주셨는데

하나님이 직접 얼굴을 보이시고

그처럼 사랑해주시면

그 열심으로 기뻐해주시면

그 얼마나 감사하고 든든하고 축복이 될까?

진정한 복은 얼굴을 뵈옵는 것이다.

오늘 그것을 기대하자.

 

 

 

기도

내 아버지 하나님

구원을 해주심이 이처럼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 아무리 그들이열심히 살아도

주님을 영원히 뵐 수없음을 알면

그 엄청난 사실을 알면

아버지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을 사는

이 짧은 먼지 한톨의 삶을 살아가는 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임을 알게 될 것인데 , 아쉽고 불쌍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여.

한사람이라도 더 주님의 구원을 허락하솟.

주여.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귀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영원을 은혜 가운데 살 생각을 하니 감동입니다.

이 땅에서 받아질 여러 것들,

축복이든 어려움이든

시간되면 주님이 다 정리해주실 것들..

그리 고민하지도 그리 간구하지도

그리 가벼이 움직이지도

그리 자랑할 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주여.

오직 기뻐하고 자랑할 것은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자격을 가졌음입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시여.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살 기 원합니다.

도우소서.

그마져 지키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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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병원 게시판에 .. 감동이 되면 올리던 글입니다.

  오늘 묵상을 '묵상'하다 보니 갑자기 올리고파

  조금 가공을 해서 쓴 글입니다. ㅎ)

 

오랫 만에 글 올려 봅니다.
바쁘기도 했구 여러 핑계도 잇습니다.
오늘은 수술이 없는 날임에도 밀려드는 (^^*) 환우 분의 요청에
잠시 틈을 내어 수술하고 내려온 오후 입니다.

날씨 청명하고 가을 바람 완연합니다.
갑자기 스산한 바람이
외로운 가슴을 깊이 후비며
괜한 아픔을 기억나게도 할 수 있을
그런 시간입니다.


오늘 묵상은
22절과 24절이 극명히 대비됩니다.

22절은 믿는 자 , 비록 죄많은 이스라엘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가 믿어지는 자들이 받을 운명...
진정한 행운 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게 되는 것'
그게 비록 천국에 가서이든
이땅에서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든,
하나님의 그 강력한 우주를 아우르는 에너지로
전율하는 삶을 살게 되는
즉,
감동의 삶을 살게 되는
우리의 '멋진 운명' 에 대하여 나오지만,

24절, '불신자'들은 아무리 애써도 '주님 얼굴'을 뵈올수 없다고 나옵니다.
이 것...
어쩌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지 모르지만
인생... 이 짧은 시간,
그 중에서도 공부하는 시간 빼고
늙어 재미없는 시간 빼면
겨우 10여년 반짝하다
또 우주의 한 먼지로 화해 날아가버릴 운명들에게
아무리 그들이 악을 써도
'의미'
산다는 것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 불행이고 곤란이겟습니까?

거꾸로 말하면
현재 우리 믿는 행운아들은
어떤 상황에 있어도
'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천국 백성의 자격이 있고 , 영생을 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행운입니까?

거기에
주님이 에비하신 '나의 때'가 곧 되면
사랑을 퍼부으신다고 25절에 약속하시니
참으로 감사하고 힘이 됩니다.

참 어려운 시대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계실지 모르지만
우리 샘병원 형제 자매들은
주 안에서
이런 놀라운 '은혜'와 '감동'으로
모두 살았으면 합니다.
모두 그런 기회,
22절과 25절의 기회를 같이 누렸으면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모두
상황이 지금은 '그래도'...........하고
소망 중에 웃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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