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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길을 주님이 원하시도록 간다(욥23:11-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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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길을 주님이 원하시도록 간다(욥23:11-17)

주하인 2008. 10. 9. 17:19
제 23 장 ( Chapter 23, Job )

 

  

언제 쯤에 나야

주님 계시는

저 천국에

갈 그날이 될까?

그날이

몹시도 그립구나.

가는 나의 길이

어찌나 멀고 먼지...

 

그래도 그래도

주님 기다리시는 그 곳까지

나의 길을 가고 가리라.

 

 


10.  나의 가는 길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이 그랬다.

'나의 가는 길'이라고.

욥기를 끝까지 봐도 그렇고

뒤돌아 읽어도 그렇고

욥은 특별한 일을 한 것 같지 않다.

그냥

부자로서 살았다.

선교도 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선교'의 비젼을 행하지도 않았다.

그냥 '선한 부자'로 살았다.

하지만, '주님과 동행하는 동방의 의인'이었기는 했다.

 

 그는

하지만 '나의 길'이라고 확실히 말한다.

무슨 인생의 목적이 있었을까?

남들처럼 부자가 되는거?

아니다.

현재 쫄닥 망했으니까

다시 부자가 되는 게

그의 가야할 길이라고 하는가?

그래

처절히 낮아진 고난 중에 있으니

그게 목적이긴 할 수도 있지만

뒤에 곧 나오는 '정금'이라든가 '연단'의 단어가

그 상황에 어울리기는 너무 어렵다.

 

 그런 그가 '단련'이라는 말을 쓴다.

그는

지금의 고난을

친구들이 말하는 죄의 결과나

선조들의 유전하는 '귀신'의 결과라든가.. 업보니.. 악업이니... 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너무도 유명한 구절이다.

아래에 나오는 찬양,

'주가 보이시는 생명의 길'이라는

노래에서도 인용되다시피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감동하지만

일상의 삶이

이 구절의 놀라운 영성 고백과는

하등 상관없이 살고들있다.

아프면 아프다고

고생이면 고생이라고

힘들면 힘들다고

인생이 이게 뭐냐고 .. 복달라고 부르짖기만 한다.

 

 다시 욥으로 돌아간다.

그는

고난 중에

이 고난이 자신을 연단시켜

주님이 원하시는  자신의 인생길로 이끌어 가시기 위한 과정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렇다면

몇가지 깨달은 바가 생긴다.

 

그의 인생길에 대하여다.

그는 외견상 단순한 삶을 살고

前記한 대로 선교적..위대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의 인생길의 목적에 대하여 생각했다는 것이다.

 난,

아니.. 솔직히 나 뿐은 아닐지 모른다.

늘 인생의 목적이라면

주님 안에서 무언가 멋진 것 해내는 것...

요새 목적이 있는 삶.. 목적.. 하면서

긍정적 삶을 강조하는 바 대로

그런 삶이 욥의 '인생의 길'에도 포함이 된다면

그것이 '정금'이라면

그는 결국 그렇게 살아오지도 못했고

결국 2배 부자는 되되

그렇게 살지는 못하고야 마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동안,

성화가 인생 목적의 전부인 것으로

믿음의 방향을 그리 정하면서도

내 인생은

그리 힘있게 사는 목적있는 자들 -특별히 우리 병원은 선교 병원이다-의 능력있는 삶에

난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진 찍고

블로그 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깊이 주님을 만나고 있는

행운에... 대하여

행운으로 알면서도

한번씩 흔들려 뒤죽박죽이 되기도 하던 것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오늘 욥의 '나의 길'을 그가 아신다는

어떻게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올 듯

허무한 - 어디까지나 내 기준, 타인의 그럴 듯한 삶에 비추어 본 관점 ^^;;- 욥의 인생,

아무 것도 이루어 놓지 못한

단지 돈 만 많고 착하기만 했던 삶의

그가

'나의 길'을 아실 것이라는 소리를 한다는 게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게 살고 있는 나 - 하루 하루 소진 하는 게 아닌가 당황하는 나.. -의 가슴을 찌른다.

 

 그가 말하는 나의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다.

그가 알고 있는 인생의 길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그냥 주어지면 받아들고 -'적신赤身'이라는 표현 , 적신이란 공수래..의 몸을 얘기 하지 않는가? - 또,

없어지면 '적신赤身'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그 길의 '길'을 말한다.

 그는 그 길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긴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이 허탄한 것이든

화려한 것이든

주님이 고난 중에도 , 부함 중에도 거하게 하셔서

당신의 뜻대로 뜨겁고 차갑게 달구고 식히셔

연단질을 한 가운데

자기 앞에 보이는 방향으로

그냥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길이 '나의 길'이라는 것이다.

 

 어제

복잡한 머리를 들고

참으로 오랫만에 '수요전인치유'없어서

기도원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길에

불현듯

분양권 , 아내의 주장.. 등에 대하여 'insight'주시라는

블로그에서의 기도와는 달리 

번뜩,

'내가 너무 남이 원하는 삶에 맞추어 허덕이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초조해 하고

너무 열심히 주님이 원하실 듯한 방향에 맞추어

먼저 달려 가려하는 의욕이 있고

그러지 못하고 가로막히는 현실- 단점,성품, 환경, 자녀...-이

날 속상해 하게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현재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그냥 내 원하는 것- 엘리바스의 말대로 '보배'-을 잘 인식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

'오빌의 금' 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욥의 '나의 길'

그것과 상통하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자주 그렇다.

그 전날 '퍼뜩 주신 느낌'이

다음날 묵상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레마'다 .

 

 정리하면

주님은 나의 길을 어떤 것이든

기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 혼자만의 원함

내 육신의 간절함

내 테두리의 것 만이 아니고

주님과 동행하는

주님과 비밀이 없는 삶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나의 길'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다.

'난 남들처럼 열심히 세상 목적을 가지고

노후도 대책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열심히 친분을 맺어

성공을 하여

아들 결혼식에 수 많은 하객이 오도록 하고

부모의 행사에 꽃이 끝이 보이지도 않도록 선물 받고..........

선교지에서 놀라운 행적을 보이고............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점점 외로워 보이는 길로 들어가고

남들은 그리 추구하지 않는

겸손이나

긍휼이나

사랑 이나

십자가..

보혈... 등 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꼭 그리

허탄한 길 만은 아닐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러한 것이 옳다는 것은 알지만

현실과 구분하여

이분적으로 알고 있도록 만드는

수없는 많은 '과학적 합리적 '사고의 훈련을 받은

자들로서는 -나를 포함- 받아 들이기 어려운 길일 수도 있다.

더구나,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자꾸만 묘한 길로 행선 ㅎㅎ ㅎ하는 자로서는

한번씩 흔들릴 때가 있다.

적극적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구하여

'주여.. 난 이것 이것이 부족하오니.. 주~~소~~서~~~~~~~'하며

눈물 기도

금식기도

열렬한 기도도 하지 못하니

또 이것도 '나의 길' 이야기 나오면

흔들리는 부분 중의 하나이긴 하다.

 

 오늘 '욥'께서는

자신의 가는 인생 항로에 대하여

그리 큰 고민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려우니 힘들다고 하고

친구들의 공격에 지쳐하면서도

주님 만을 돌아서 쳐다보고

그래도

자신이 가는 길을

주님이 알아서 인도하실 것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한다.

참으로 긍정적이다.

그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너무 과도한 기대와 의미를 붙히지 않는 것 같다.

 

 이게 배울 점이다.

그냥 사는 것은 사는 것이다.

'주님이 무엇인가 허락하시는 것이 있어서

 이전에 그러신 것 처럼

 내 인생 간섭하셔서

 더욱 좋은 길로 인도하실 거야.

 난,

 지금

 그러한 과정에 있을 뿐야.

 앞으로 더욱 잘 될 거야..'

이러는 것 만 같다.

 

이게 배울 점이다.

나도

내 가는 길에 대하여

너무 가르쳐 주시옵소서..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가는 길이 이러하다면

그냥 이렇게 가는 것이다.

이게 곤란하면

이걸 주님이 연단하시는 과정일 거야... 하면 되는 것 같다.

너무 큰 목표를 잡고

안된다고 고민하는 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길이다.

다른 사람의 길을 쳐다보며

그렇게 가는 것이

폼나고 멋지게 가는 길이야...그러니

나도 저렇게 되어야 해..

내가 누구야.

주하인이잖아..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좌절하고 속상해 하고 답답해 하고....

이게 내 살아온 엉터리 속내의 전부인 듯하다.

 

주님은

주님과 나의 길을

잘 가길 원한다.

그 길이

소위 타인이 말하는 목적이 있는 길이 아니고

폼나는 '선교의 대 인생'은 아니어도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게 중요하다.

나는 내 길을

주님이 원하시도록 간다......라는

자신에 대한 선한 생각도

욥에서 배울

가치있는 레마다.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보라.

교만한 듯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길을 잘 인도하셨고

자신은 따랐다는 표현을 이리 하고 있다.

그러니

선할 수 밖에...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저도 이리되게 하소서.

죄송합니다.

그리하지 못해서...

 

 

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 뜻이 일정하시단다.

 그 분은 변화가 없으신 분이심을

욥은 확신한다.

 

 욥과 친구의 차이가 이것이다.

아니

주님을 죽도록 따르는 분들의

특질은

주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치 않으시는 분이심을

영혼 깊숙이 아는 분들이시다.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어떤 모략에 흔들려도

누군가 날 믿어주고

그 믿음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면,

마치 아이가

든든한 아버지가 손잡고 있으면

어떤 큰 아이라도 무섭지 않은 것처럼

욥은

어렵고 힘들지만

주님이

자신의 의로우심을 아시고

자신의 존재 이유의 전부임을 확신하기에

그의 논리에는 변함이 없다.

  반면에

친구들과 율법적 성향의 현 기독교 인들은

'착해야 사랑받는다..'한다.

그 분은 따뜻하신 분이시다.

냉정하고 독사같은 눈을 가지신 분이

결코 아니시다.

 

 

 주님은

욥의 고백을 통해 이리 말씀하신다.

' 주하인.

 흔들리지마라.

 잘 가고 있다.

 어려움은 연단 일 뿐이다.

 네 길은 내가 인도한다.

 밖을 보지마라.

 비교하지 마라.

 때가 되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도하마..어떤 곳이라도.. .

 아니면,

 나와 조용히 동행하는 자가 되어

 많은 힘든 자들의 위안이 되는 자가 될 수도 있지 않는가?

  네 길은 네 길일 뿐이다.

 절대로 비교하지 말라.

 흔들릴 일은 없다.

 너무 큰 의미도 두지 말라.

 외부의 소리에 흔들릴 일도 없다.

 오직 말씀에 집중하라.

 날마다 말씀에 고착되어

 자신을 변화시키고

 날마다 주님 하나님의 뜻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하라.

  그 모습이 비단 

 외부인이 보기에 웃음의 대상일 지언정

 그 간의 경험으로 알수 있지 않은가?

 난

 변개치 않는 하나님이다.  

 난

 주모, 너를 위해

 십자가를 진 예수다.

 난

 늘

 네 곁에 있는 성령 하나님이다

 네 결국은 창대할 것이다.............................'라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할렐루야 하나님.

 

 

적용

 

 

1. 당직이다.

 기도할 예정이다.

 

2. 나의 길을 묵상한다.

 남의 길을 부러워할 일은 없다.

 난

 나의 부족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 올리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나의 길을 주님께 여쭈어 볼 요량이다.

 

3. 주님 만은 아신다.

 주님은 날 인도하실 것이다.

 지금껏 그리하셨듯

 앞으로도 선으로 인도하실 주님을 묵상하겠다.

 

4. 성경 여섯 장 읽겠다.

 

5. 남의 것은 박수를 쳐 준다.

 나의 것은 귀히 여긴다.

 비교하지 말자.

 욥의 나의 길은

자신과 주님 만이 아시는 길이다.

오직 주님 만이

그의 판단 기준이 된다.

 다른 어떤 것도

그에게 의미는 없다.

다른 분들에게는

다른 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인생이다.

박수를 쳐 줄 뿐이다.

그리고

내 길을 가야 한다.

 

6. 통제를 내려 놓는다.

  내 인생 뜻대로 된 것은 어차피 없다.

 이번 도 내려 놓겠다.

 주님의 뜻이면 무엇이든 버리리라.

 자존심도

 내 것이라는 생각도...................

 

7. 나의 가는 길오직 그가 아시나니 를 백번 외우겠다.

 

8. 주시면 받고 안주시면 안받는다........라는 개념을

 내 영혼에 받아 들이길 원한다.

 오빌의 금은 버리길 원한다.

 자유로운 내 만의 길을

 주님과 상의 하면 간다.

 

 

 

기도

 

 주님

정말 그랬습니다.

지금껏 난

남의 인생에 대하여 부러워 했고

내 삶은 실패한 것 같은

부족감에 사로 잡혀 살아 왔었던 것 같습니다.

주여.

이제는

정말

그러하길 원합니다.

주님

기대하며 살길 원합니다.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삶이 주님과 동행하였기에 풍족할 것을 기대하며 살길 원합니다.

겉으로 비교되는 바 삶이 외로운듯 괴로운듯 부족한 듯하여도

그게 나에게 허락된 삶이면

그냥 만족하고 기다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면

희망이 있음을 믿고 살게 하소서.

완전히 바닥에 떨구어진

욥의 기대가

흔들리지 않은 것은

늘 동행하시던 하나님의 기억을 가지고

변개치 않으시던 당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끝까지 흔들리지 않으며

친구들의 사단성 공격에 몸부림 치며 저항하던 것 처럼

저도 그리하게 하소서.

분명코 주님은 살아계시고

그 살아계심은 과거의 기억으로도 확실한 바

앞으로도 그리하실 것을 믿습니다.

내 인생의 길

내 가는 길이 혹여

물질적으로 어찌할 지

환경적으로 어찌될지 몰라도

주님이 계시면

지금같이

그 삶은 또 더하고 더한 평강의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

기도할 것 많고

주님 소리내고 싶은 것은 많지만

이제 마무리 할려 합니다.

주여

제 인생의 길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길 원합니다.

세속의 욕심

통제의 욕구에서

다 놓아 버리길 원합니다.

양처럼 끌려 가셨던

우리 예수님의 그 사랑을 알면서도

어찌 저는

이리도 손에 움켜 쥐려 하고

 내 통제에서 벗어나면

이리도 분노하려 하는 지요.

주님

당신의 뜻에 맡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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