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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꽃이로되 (벧후 3:1-10 )

주하인 2009. 3. 5. 12:35

제 3 장 ( Chapter 3, 2 Peter )

 

이름:종이꽃

 

하필이면

꽃이

종이를 흉내 냈을까?

 

주님을 알면서도

세상을 지향하며

주님을 기롱하는 자들은

꽃이되

종이와 다를 바 없다.

 

꽃이 꽃같지 않으니

그것도 희한해서

사진은 찍었지만

오랫동안 옆에두고 보기는

별로 달갑지는 않다.

 

세상을 기롱하는 자들,

예수님을 믿되

영혼 깊숙이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그리

오래 참아 두고 싶으시지

않으실 듯 싶다.

잊어버리실 것만 같다.

 

꽃은

꽃이로되...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주님.

부디

겨우 이 편지, '둘'로 인하여 깨워지길 바라시는

베드로님의 강력한 염원처럼

내 마음이 깨워지길 원합니다.

 아니,

진실한 마음입니다.

너희의 것이 아니고

너'

주하인의  진실한 마음 말입니다.

 

 일차원 적인

그러한 개념을 넘어서는

흐린 시야를 치워 버리고

마치 갈매기 조나단이 그랬듯

'진리의 그것'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 열어지기를 원합니다.

 

 베드로님의 간절한 염원이

내 영혼에 젖어 들어오길 소원합니다.

주님,

부디 오늘 하루

진실한 마음이 깨워져

눈을  뜨고 쳐다보는 모든 것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사실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에 대하여 원하는 진실을 알게 하소서.

 

 
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

   하게 하려 하노라 
 

 ' 주되신 구주'

이 구절에 눈이 멈춥니다.

 

 그렇습니다.

내 주인은 한 분이 맞습니다.

아니요.

머리속으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내 눈을 꽂는 말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습니다.

 '내 영혼이 드디어 주인을 인정하는 구나'

 그것은 그토록 강요와 잔소리를 싫어하고

권위에 대하여 상당한 반감과 더불어 두려움이 있던 나에게

새삼스러운 변화입니다.

 주님이외의 권위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기 시작한 것은

성경의 말씀에 '권위를 인정하라'는 말씀에 묵상 탓으로

마음 속이 녹아나기 시작했던 것이지만

그 '주인'이라는 단어에

영감으로 가슴이 덜렁덜렁하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새삼스럽습니다.

 

 이제 영혼 깊숙이 전 주님을 인정하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이 구주 예수님이시랍니다.

 

 구주.

 求主

구원의 주인.

 

그렇습니다.

주님은 날 구원하셨습니다.

그게 그리 감동스럽네요,

 '나에게 주인이 계셨지?

아, 정말 주인이 계셨네?

그러고 보니 그 주인이 날 구원하신 분이야.

구주..

구주가 나의 주인이시다.'

이런 감동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 아침에

아들과 함께한 아침 묵상 시간에

새삼스럽게도

저의 영혼을 뚫고 들어옵니다.

 구원의 주님은

가볍게 생각해보면 옛상처의 어두운 기억들로 부터

날 구해주셔서 차분한 인격을 회복케 하는 구원을 베푸시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훨씬 원초적인

정말 생명의 구원자라는 개념이 가슴에 옵니다.

 다시 생각해도

이것은 이전의 머리속의 개념,

공부라는 틀 속의 '성경'의 교육을 넘어서

이제 영혼이 날아갈 듯한 가벼움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그 '구원'이라는 개념은

새삼스레이 다가옵니다.

 

아.

날 깨닫게 하신,

세상의 어이없는 갈등으로 부터 자유케 하시는,

영혼의

깨달음의 가벼움이여.

 

이 가벼운 가벼움을 허락하신

그 구원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내 구원의 주인이시라니

내 구주라니,

참 감사한 아침입니다.

 

 그래요.

주님은 날 기억나게 하시네요.

기억나게 하시고

진실한 마음을 깨우치게 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저에게 성공하셨습니다.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참으로 어이가 없네요.

어이가 없지요..

 이러한 원리를 모르는 분들이 참 불쌍합니다.

그들은 구원을 얻으셨음에도

한 눈을 세상에 두고

정욕적인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과 비슷한 거리에 두고

재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어떠한 깨달음이 있을 수 있을지요.?

주님은 그토록 주시고 싶어하시는 '자유'과 '생명'의 원리들이

그들에게는 그리 가까이 느껴지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책속에나 나오는 고리타분한 논어 맹자와 공자와

그리 차이가 없어 보일 지 도 모릅니다.

 그들에겐 세상이 급박히 돌아가며

종말의 현상 들이 나타나도

그냥 그럴 수 있는 또 한번의 변함없는 현상이 아닐 수가 없지요?

 결국

그들의 영혼에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깊숙히 깊숙히 '하나님이 계셔?   계신다면... 어디.. 웃겨.. '라는 생각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답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주님은 분명코 말씀에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다 하십니다.

 

예.

전 그리 생각합니다.

 그리 하지 아니하셔도

이 무거운 세상에서 살다보면 얼마나 무거울지요.

그 무거움을 무거움인지 깨달아 표현하지는 못해도

그들은 무거움을 피하기 위해

서로서로에게 안겨 버리려 무진 애를 쓰고

모진 경쟁을 되풀이 하는 아전 투구의 싸움을 하면서도

이 땅이 좋사오니.. 하고 있다고요.

 참 불쌍한 일입니다.

 

 '아침 고요 수목원'에 들르니,

철이른 시절이라서인

그토록 기대하던 꽃은 많이 보기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 온실 비슷한 곳에 한국의 야생화 실에 들어가

둘러보다가 희한하게 종이로 만든

造花처럼생긴 생화를 발견하고 사진기를 들이댔습니다.

이름도 '종이꽃'이라네요.

 

가련하기도 합니다.

꽃이지만

자신의 존재를 모르고 종이로 만든 꽃인줄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독특하게 보임으로

관심을 끌려는 고도의 술수인지.ㅎㅎ

 어찌되었든

저 꽃은 희한하게 생겨서 들여다 보고 싶은 충동은 났지만

오래 오래 보면 싫증나서 버려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 말세를 기롱하는 자 들'

예수님 은혜를 받고 구원을 얻고도

세상을 바라보다가 실족하는 자들.

 그들이 종이꽃 같이 느껴지는 것은 웬일까요?

 

개인적으로 그런 것을 떠나도

세상이 하나도 변화없으니

그대로 살자.. 는 저들의 생각에만도

내가 아는

구원받은 실체적 느낌,

가벼움

평강을 모르면서

천년을 산다고 그게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참..

불쌍하다 생각이 듭니다.

서로 서로 짐을 떠 안기려는 이전투구와 아귀다툼의 삶.

그게,

주님을 모르는 자 들의 지옥같은 삶이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주님.

구원의 실체이시고

내 영혼의 주인이시고

내 삶의 모든 것의 주인이신 주님.

날 구원하시고

날 주인께로 인도하셔서 감사합니다.

주하인으로 임명하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은 날 아들이라 하시지만요..

 

주님

주님 오실 때까지

전 주하인의 마음으로

주님의 아들의 사랑을 살며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적용

 

1. 아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체중조절

 삶

 믿음

 말씀 안의 자유

 

2 . 성경 일곱 장 읽겠다.

 

3. 당직이다.

  주님.. 최선을 다해 잘 하게 하소서.

 사고 없이 하소서.

 

4.  자유로움, 날아갈듯한 가벼움의 하나님을 감사하는 마음을 산다.

 

5. 주님은 내 주인이시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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