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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것, 명심할 것 & 해야할 것[히4:14-5:10] 본문

신약 QT

깨달은 것, 명심할 것 & 해야할 것[히4:14-5:10]

주하인 2019. 6. 6. 08:02



 

5장
2.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나.

무식하고

미혹되었었고

연약한 자........맞다.

 아니....맞았었지만 많은 부분 깨달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런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


예수님.

그 분은

무식하고

미혹된 자들...

전 분야에서 '연약'한 원죄적 존재들인 인간 사이에서

모든 것을 같이 체험하신 분이시다 .

아.. 휩싸여 있었다고 나온다.

 


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그러나 그 분은

무식하고 미혹된 연약함에서 그냥 무기력하게 계시지 않으셨다.

구원의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심한 눈물과

심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

 그 분은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그 모든 것을 체험하셨지만

경건하신 분이시다.

그런 분이 통곡과 .. 소원의 기도를 올리셨기에

더욱 경건하심이 빛을 발하셨다.

그 고난을 '순종'함으로

우리에게 배우게 하신 분이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들으셨다.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시다.

본체이시자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

그러한 우리의

무식하고

미혹되고

연약함에 쌓이시게 허락하시어

그 분 예수님이

그러함을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의 기도,

산제사를 드리실 대 제사장으로 삼으신

전적인 사랑의 정화이시다.

그 아픔, 그 어려움, 그 크신 고뇌..

어찌 다 알까?

하지만 깨달아 알게 될 듯한 일이다.

 


 이제

명심할 일을 주께서 말씀하신다.


 나.

무식하고 미혹되었고 , 연약한 존재임이었으나

그러한 나를 사랑하사

예수께서

그런 모두를 체험하고 쌓여서

내 대신 모든 것을 주께

대신 바치시고 보여 주셨으니

이제는 그러한 나를 사랑하여야 한다는 거다.

 나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내 주변, 특히 예수님의 구원의 백성들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그들을 다 받아 들여야 한다 .

 예수님이 그러하신 분이심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명심해야 한다 .

하나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긍휼히 여기며

예수님의 그러하심에 무한 감사 드리며

하나님의 그 배려하심에

늘 감사함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은 어찌 행동할까?


 나의 부족한 부분......

연약한 부분..

미혹에 쌓였던 부분

무식한 부분..

어떤 부분이든 주님이 그런 나를 위하여 같이 체험하셨고

날 위해 고난을 참아내셨으니

나도 그래야 한다.

부족한 나를 기뻐하고

부족한 나를 오히려 감내해야 한다.

주님 예수님을 위하여

그런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더 가슴을 열어야 한다.

 

 내 이웃들.

다.. 나랑 거기서 거기며

그러함은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 .. 이니

이해해야 한다.

그들을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 예수님처럼

나를 대적한다 느껴지는 무식한 ^^;; 그들에게도

인내해야 한다 .

긍휼히 여겨야 한다.

십자가 대신 지신 주님을 본받아서라도

오늘 하루 만큼이라도 더 참아야 한다.

그들을 중보해야 한다.

....


주님.

주신 말씀 이해되고 정리되었으나

막상 표현하려니

그리 되지 않습니다.

내 주여.

주님의 뜻 가운데서

오늘 도 잘 준행하며 살 수 있길 소원하나이다.

특별히 인내 잘 하게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묵상 (2014.12.06)


날 동정하시는

 

내 영혼 비록

아직 이리

황량해 보이지만

 

그래도 봐줄 만 함은

늘 비추시는

하나님 영광의 빛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주여

오늘도 전

연약함과 곤고함으로 인하여

 무릎에 힘이 빠지고

일어서기 싫어지려 했습니다

 

허나

주께서 

내 그러함을 동정하시고

말씀으로 확인시키시니

제 마음

이제 다시 녹았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제 다문 입을 비집고 발하는

이 기쁨의 탄성을 

주를 향한 제 기도로 

받아 주소서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대 제사장'이시다.

가장 크신 대제사장.

대 제사장은 '죄를 속죄'하는 역할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축복하시는 분이시다.

 

 실제적 속죄.

실제적 대 제사장.

그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그 분은

대 제사장, 큰 목사님, ... 의 범접하지 못할 두려운 분 만이 아니시다.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함',

아니다. 

내 연약함.

내 자꾸만 되풀이 되어 날 견디지 못하는 좌절의 나락으로 빠지게 하는

내 속의 죄성들을 묻어두고 덮어버리고

보지 않으시고 내 좋은 점만 찾아서

잘한다...잘한다.. 하시면서 부담 만 가중시키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아니면 호된 채찍과 당근으로

날 조련하시는 조련사가 아니란 말씀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

인간의 육신을 쓰고 나오셔서

좁은 인간의 뱃속과 산도를 통하시고

인생을 거쳐서

골고다의 호된 고난을 거쳐

마침내 십자가에 다 짊어지고 가신,

인생의 모든 고난을 직접 체휼하신 분이시다.

그런 그 분이 우리의 속을 모르실까?

 

오늘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라고

표현이 가슴을 치미고 들어온다 .

연말이라 바쁜 환자 분들 때문에

말씀을 깊이 묵상하긴 어려웠지만

진찰대에 올라가서 '연말 검진'을 위하여 누우시는

환우 분의 틈을 타

잠시 묵상의 말씀을 들여다 보니

저 구절이 가슴을 지민다.

 

내 연약함.

두려워하는 나.

괜한 흥분의 나

음란한 생각에 사로 잡히는 나...

주님 말씀대로 준행하지 못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대신

원수를 더욱 원수로 곱씹는 나.. .

....

생각하면

그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오래 끌어오시는 그 인내의 긍휼과

...

모든 앎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이리 '죄성'과 '억울한 좌절'에 눌려 잇을 때가 있다.

그리하여 많은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더 열심히 더 깊이 더 온전히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아..

그것.

그 스스로의 '연약한 속상함'을

주님은 아시고 '동정' 하신다신다.

그 동정을 머리 속으로는 알아도

자꾸만 잊어 버리다가도

이렇듯 가슴을 지미며

말씀으로 내 영혼을 꿰뚫으시듯

다가올때

난 마음이 누그러진다.

 

그 준비하는 환우의 짧은 빔을 통하여

나는 긴 안전감과 기쁨을 누린다.

참 감사하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게 은혜다.

어디에 가서 쉼을 누릴까?

난 평생의 바램이 '쉼'이 었다.

마음도 쉬고

몸도 쉬고..

자유를 갈구하는 '자유롭지 못한' 영혼이었다.

그래서 난... 여행을 좋아한다.

마구 혼자 어디를 다니다가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고

공기를 음미하고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피상적이나마 관조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러면서 지는 해와 떠오르는 해의

그 아련함과 찬란함에 감동하심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러함은 시간과 돈과 장소의 제한이 있지 않은가..?

주님은 이 짧은 시간에

그 보다 더 후련한 기쁨을 주신다.

난.. 그것을 '샬롬'이라면서 아주 좋아한다.

그것을 사람들은 '은혜' 받았다고도 한다 .

단지 머리속의 깨달음에 머물고 감성의 잠깐 자극을 받은 것도.. .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나를 동정하신다는

약간은 불쌍히 여기시는 듯한 뉘앙스에 창피하면서도

마음이 해제되고

몸이 나른해지며 긴장이 풀리는 경험은

그 말씀의 살아서 역동하심..

내 하나님이 내게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그 진정한 은혜의 자유임을 깨닳게 되는 현상이다.

난... 그래서 자유로와진다.

난.. 그래서 말씀이 기쁘다.

특별히

'내 연약함을 아시고 계시고

 그런 나를 부끄럽거나 도외시 아니하시고

 또 가르쳐 인도하려 애쓰시는 부대낌보다는

 그냥 나를 동정하시고 받아 주시는

 그 사랑의 크심이 느껴져

 난 정말 기쁘다'

 

 

주님.

오늘은 또 토요일입니다.

참.. 시간이 잘갑니다.

해 놓은 것 없는

이 촉급한 초조함을

주님께서는 내 본연의 연약함,

동정받을 만한 연약함으로 보시고

그런 나를 긍휼의 눈으로 보시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더욱 다행인 것은

그러한 내 연약함이

내 발목을 부여 잡고

크지 못하게 하는 '지진아'의 방해물 역할을 못할 것임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은혜로

지금껏 성장해온 제 모습을 돌이켜 보면

어느새 믿음으로 바뀌어가는

제 부족하였음이 느껴지며

이제는 좀더 기쁨이 커집니다.

주여.

 

주의 말씀,

내 영혼을 찌르고.. 마음을 변화케 하시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참으로 기쁘게 하고

가볍게 하는 토요일입니다.

 

주 안에서 바라올 것은

이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묵상케 하시고

더 안전한 믿음을 키우게 하소서.

주여.

연약함이 동정 받음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사

주님의 사랑 때문에라도

얼른 벗어버리고

강건함으로 바뀌게 도우시옵소서.

그리 하실 줄 믿습니다.

내 주 예수 시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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