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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오늘 & 주님의 안식[히3:7-19] 본문

신약 QT

매일의 오늘 & 주님의 안식[히3:7-19]

주하인 2019. 6. 4. 10:02


주여


비록

붉은 죄 만연한

이 죄악된 세상에

하루 하루 허덕이며 살아가지만


우리 주님의

말씀이 있으시고

기도만 하면 다가오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넘치오니


그래도 나

오늘 또

순백의 영혼을 사모합니다


주여

내 죽어

주님 곁에 가도록

허락되어진

매일의 안식으로

굳건히 살아내어


부르실 그날

그래도

아름다왔던

주님의 사람이었음을

세상이 알아차리게 하소서

내 주여



7.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성령이 이르신 것 아니면

성령이 기뻐하시는 일 아니면

그 어느 것도 의미가 없다.

 아니다.

성령에 반하는그 어떤 것도 '죄'다.

아무리 아름다운 논리와 주장 ( 예.. 동성애는 사랑이고 포용이다..-> 정말.. 우주를 만드실 때 그리 만드셨을까?  주께서?............ㅠ.ㅠ;;  성령의 원하심이 아닐 것..)이라도

그것..기도하고 주님이 인도하셔서

막힘없이 흐르는 감사의 마음이 유지되는

그러한 '성령'의 이르시는 소리를 듣는

매일...

그 오늘이 쌓여..

우리의 인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옳은 인생.

참다운 인생... 말이다.


그것.

오늘 말씀 구절에서 그러신다.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오늘

 듣거든.. '


그렇다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



8.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내 자아가 완악하여져서

내 기분, 내 만족, 내 잘난 체 , 내 이득을 위하여..행하면

그것을 교묘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할 지라고

그것..

'성령'의 말씀을 차단 시키는 '완악한 '일이란 것이다.

(아.. 동성애 집회에 개신교 몇 교회에서 부스를 차렸단다...

 아.. 이것. ~!  이해하기 쉬운 , 하나님 이름을 빙자한 자아의 완악함이란 이야기다. )




11.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그들에게

주님은 '노하'신다신다.

그들은 '내 안식 '   즉 주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신다 .


 그렇다 .

당연히도

성령하나님이 인도하심에 어긋난 자.. .

하나님의 이름을 빌렸으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

하나님의 구원에서 벗어난 자다.. ( 실족, 구원 받은 후 넘어진 자.. 성경에 나온다 . .가라지.. )

그들은 당연히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안식이지만 '내 안식'이라시며

더 강한 뉘앙스로 '안식'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


 안식.

NIV에 Rest , '쉼'이라 나온다 .

쉬다.. 쉼.. 이게 무슨 이야기이던가?


아래에 '안식'에 대한 유명한 구절이라고

인터넷 검색해보니 나온다 .

 모두.. 내가 예수님 영접하고 나서

정말 기뻐했던 구절이다.

'불안' .. 어두움의 구렁텅이 속에서 허덕이다 만난

주님의 구원은 그야말로 '쉼'이 맞았다.

너무 편하고 좋았다 .

 구원의 첫사랑으로

이전의 삶과는 너무 다른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수개월을 누리고 나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바라시는 목적대로

광야의 연단과정을 허락하셔서

지금껏..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넘어지고 일어나며...

여기까지 왔다. ^^;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 오늘.. 오늘..

그 오늘의 하루에 허락되어진

인생의 여러가지 연단의 도구 (아........돌아보면 너무도 힘들었지만 너무도 뚜렷한 하나님의 역사하심...)를

하나하나 넘어가고 일어서며

이루어진 결과물들이

오늘 지금의 나.. 라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또 '오늘' .. 내일의 그 오늘.. 오늘.. 들이 쌓여가며

주님이 내게 바라시고

내게 허락되어진 그 결국..

온전한 주님의 안식,

온전한..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완전한 주님의 구원의 그 안식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게

우리의 , 나의 운명 .ㅎ.. 옳은 숙명인 것 말이다


 문제는

그 매일의 '오늘'에 허락되어지는

연단의 힘듦 사이에 '안식'이 어떤 의미이던가..다.

 

솔직히 .. 자주 쉬고 싶어진다.

고만하고 이제 힘빼고 드러 누워 쉬고 싶다.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나이 들어 지쳐서도 그렇다.

그러한데..

아직 갈 길이 멀리 남아있다 .

아직도 불끈.. 아직도 밉고 ,.. 아직도 부끄러웁다 ...

그게.. '안식' .. '쉼'.. 이랑

도저히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안식..

내 안식.. 이라면

온전한 쉼일 텐데

이 땅에서 쉼은 때로는

'뒤쳐지는 두려움' ..

홀로 있는 '외로움'..

늙어가는 자의 .. 그러한 옳지 않은 감정들이 뒤 섞여

하나님의 '안식'.. 쉼에 대하여 헷갈리고

하나님의 안식이란 단어에

실제감이 없게 한다.


그래서 .. 많은 열심이던 신앙인들이

점차로 시들해지고

죽어가는 자아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뛰쳐 나가 세상에 알아달라고 '소리소리 '내며 움직이다가

때로는 무리된 수 ( 목사들의 창당, 동성애 부스, 교회의 왕국화.. ..............)를 행하는 것 아니던가?


' 오늘'

그 오늘을

성령의 말씀을 옳게 듣고 행하고 있는가?

매일 하루 하루 만을 점검하며 사는 것..

하나님 안에서

내게 차별화된 내 하나님과의 허락되어진

큰 인생의 목표 (크지 않아도 된다. . 내 인생에서 내가 결정하여 크기만 하면 된다.ㅎ ) 를 두고

주시는 매일의 말씀묵상을 근거로 ( 신비함이 너무 신비하면 위험하다... 신비는 필요하지만.. )

매일 기도하면서

성령의 말씀을 듣고

주신 은혜대로 옳은 감정의 흐름을 인식해가며

열~심히 일상을 살다가

결국은 '성화'된 영혼을 가지고

부르시는 그날에

기쁘게 '소천'하여

주님의 '안식'안에 들어가는 것..

그게.. 우리.. 아니. ..내가 깨달은

내 삶의 방편이다.

'내평 생 바람는 것 그것은 여호와의 집에서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그것이라.. ' 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러하게 되려면

이 인생을 '어렵게만 살고'  광야의 메마름 만으로 사는게

아.. 청빈함을 추구하여 모든 물질을 다 도외시하고 사는게..

그래서 항상 '힘들고 어려웁기만 '한게

주님의 뜻이시던가?

거기에 '안식'을 찾을 수 있으면 찾는게

소위 말하는 수도자들.. (무슨 종교이든.. ) .. 의 추구하는 바가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던바인가?

아니다.

'성령'이 있으시지 않던가?

그래서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매일 듣는 삶..

그 매일 듣는 '오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

거기에 비밀이 있지 않던가?


청빈을 추구하는 게 내게 옳은면 청빈하게..

그 안에서 물질적 청빈까지 원하면 그렇게

영적 청빈은 또 다른 문제이니 영적 청빈.. (예로써,부자이지만 절제하는 선택..)

고난이 물질 만이 아니고 관계의 문제이기도 .. 다른 고난이기도..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방법 가운데

나와 하나님만의 허락되어진

하나님의 허락하신 '매일'을 살아가며

성령의 말씀을 들어가면

그 안에서 주어지는 공통점이 있게 된다.

 

 옳게 살아가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매일을 사는 자의

그 오늘..

그 오늘 안에서는

공통적으로 '감사와 기쁨'이 있게 되며

흐름, 생기가 공통적으롤 있게 되어

'행복'이 다른게 아니고

하나님으로 인한 삶을 최선을 다함이 그러함이구나.. 함을 알게 되어

매사 긴장하던 '근육'이 풀어지고

아파도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 아픔을 통하여 다른 기쁜 이룸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며

그로 인하여

우리의 '안식'이

우리의 쉼이

반드시 일을 놓고 , 모든 것을 다 마무리 하고

쉬는 게 쉬는 것이아닌

과정 중에 깨달아지는 '쉼' .. 이고

그것이 점차로 뚜렷해지며

매사 그 어느 것도

묶여지거나.. .곤란코 어둡게 하는 것이 없어지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이 .. 일상에서의 '안식'이 아닐까?

그러함을 아주 크~게.. 늘..

생명이 폭포수 처럼

내 안에서 흐르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심령천국'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새삼

'오늘'이 모여

'안식'이 됨을

말씀하시고 자 하시는 것이고

그 맒씀이 이렇게 크게 내 안에 다가오게 되는 것일까?


이제는

더 흔들릴 일이 필요가 없고

똑같은 흔들림으로 이 나이에 그럴 이유가 없음을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심이다.

정제되고 정화되어 가기 위하여

마지막 .. 내 나머지 인생동안

주님은 '진정한 안식'의 삶을

더 누리 기 위하여

오늘 하루를

마음을 내려 놓고

내 의지와 생각.. 번잡한 의지들을

조금더 주님 앞에 내려 놓는 연습을 하며

하등.. 걱정하거나

인생의 의미에 대한 허잡한 노력들을 몸부림 치지 않아도 되는

차분한 안식의 후반기를 살아가길 바라심이실게다 .

소망의 삶.

내 갈곳을 아는 자의 안식된 매일.. 말이다.



감사합니다 .

내 주여.

주님의 뜻대로

오늘 을 사는 자가 되겠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하시는 소리를 매일 들음을

더욱 강하게 유지하며

주시는 안식대로

더 큰 안식의 나라 .. 갈 자격을 유지하도록 말입니다.


주여.

바라옵기는

제게 부족한 부분들..

주님이 아시는 제 그러한 부분들에 대하여

강한 성령의 말씀을 듣고

강하신 인도하심 받아

나도 모르게 내려놓고 순화되길 바랍니다.

주여.

아시지요?


감사합니다.

주니.ㅁ... 오늘도 더 충실히 살겠나이다.

어두운 부분.. 다 내려 놓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안식에 대하여...)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2)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9}


-------------- 성경적 '안식' 에 대하여



하던 노동을 마치고 쉬는 것.

창세기 2:2절에 '안식하시니라'(쇠바트)가 처음 나온다. 여기서 하나님은 일에 지쳐 쉬어야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일을 마친 후 새로운 활동을 잠시 중단한 채 취하는 '휴식'(출  31:17)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전혀 아무런 행동도 하시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는 하나님께서 이후로는 더 이상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안식(安息)에 근거하여 훗날 선민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안식일 제도이다(출 16:29, 신 5:15).

사람의 참된 안식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시 23:2).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일을 할 때에 진정한 쉼을 얻게 된다(마 11:29). 그리고 구약 시대 이 안식일을 신약 시대에 이르러 주일로 승화되었다(요 20:19, 행 20:7, 고전 16:2)




--------------------- 과거묵상(2010.12.10)


오늘 하루 

주님

또 하루가 

 찬란히 열렸습니다

 

주님 뜻에 

가장 합당한

오늘 하루 될 수 있도록  

최선 다해 살아 보렵니다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길 원한다.

뚜렷이.

내 소리가 아닌

진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길 원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되길 원한다.

듣는 내내 충만한 평강의 성령으로 채워지길 원한다.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오늘'

바로 오늘 그리 되길 원한다.

'오직 오늘 ' 이라신다.

바로 오늘이다.

오늘이 죽은 이들이 그처럼 바라던 내일이란 이야기처럼

오늘 하루, 정말 기뻐하며 살길 원한다.

특별히 너무나 강한 육성으로 인하여 바뀌기 불가능한

주모의 이러한 성품에도

오직 오늘,

오늘 부터 주님 예수님의 말씀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다가오셔서

살아계신 말씀으로 날 변하게 하시길 원한다.

  바로 오늘.

 

  당직을 섰다.

저녁내내 환우 분들이 거의 없어서

잠시 잠시의 기도 후

초저녁 부터 편안한 자세로 누워

'화폐전쟁'이라는 유명한 책을 재미있게 읽다가 잠이 들었다.

화폐전쟁은 전세계 최고 부자는

500억 불 이상의 재산을 가진 'MS 소프트'의 빌게이츠라 알고 있지만

실은 그보다 1000배나 더 많은 50조 달러 이상을 소유한 '로스차일드' 금융가문이고

그들이 수백년에 걸쳐 전세계의 통화를 주물럭 거림으로 거대한 부를 만지고

세계를 마음대로 조정한다는 '음모론'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책에 따르면 지난 수세기 동안의 경제 공황과 전쟁의 대부분은

이들의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고

전쟁에 나가서 군인이 죽을 확률의 몇배되는 확률로

미국 대통령들이 '살해' 당한 것도

이들의 음모 탓이란 이야기다. ^^;;

이것이 사실인지 faction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상당히 드라마틱하고 재미가 있어 쉽게 말하여 대박을 터뜨린 책이다.

이제 처음 얼마를 읽어서 결론을 말하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아 있어 아쉽긴하다. ^^*

 새벽에 4시 반에 전화가 와서 분만을 받고 올라오니 여섯시 다되어 간다.

대기 산모가 갑자기 몇명이 밤사이에 늘은데다가

곧 분만할 것 같은 경산부가 있어 잠자기도 그렇다.

그래서 '묵상집'을 들었다.

눈에 띄는 구절이 ' 오늘', ' 예수님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듣는다다..

그렇다.

내 나이 오십 하나.

지나온 그 수많은 시간동안

난 '오늘'을 수도 없이 맞이 했지만

그 오늘을 '보람'차게 보낸 적이 얼마 없는 것 같다.

늘.. 원망하고 .. 속상해 하고.. 괜한 기대하다 실망하고...  ㅜ.ㅜ;;

오늘 보다는 '과거'를 되씹고

내일에는 내일에는... 하며 괜한 기대를 걸며 살아 온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오늘 하루를 더욱 알차게 살 생각은 아니하고...

 하지만 말씀이 들어오고나서 부터는 달라져 간다.

더 이상의 과거는 의미가 없어지고

더 이상의 미래는 괜한 부담으로 나에게 오지 않는다.

항상은 아니지만... ^^;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려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실패가 적었으면 비교적 잘 사는 하루고

말씀이 전혀 기억나지 않거나 그 말씀 따르지 못하는 실패는 실패한 하루가 되어 간다.

성적표가 점점 올라간다.

 

 오늘.

 나도 모르게 TV를 한번 도 키지 않은 상태로

기도하며 책도 읽고 ...

당직이 병원에 기여하는 면도 충실되이 하고

무엇보다 일찌감치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다.

한참을 기도하고 나서 또 분만 받고 나니 정확히 출근시간.

보람찬 하루가 될 것이다.

 이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

아직도 뚜렷한 예수님의 음성이 듣고 싶다.

기도하면 이제 내 목소리로 나마 대화하듯이 다가오심을 느끼긴 하지만

그보다는 더욱 뚜렷한.....................^^*

어찌 그것을 구분할 까 싶지만

난 이런 징표를 가지고 오시면.. 이란 나름의 기대가 있다.

 당연히도 성령의 인도하심이기에

훨씬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아마도 세미한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폭풍우 치듯 움직이던 혼란이 일순간 '고요'해질 것이다.

'눈물' 이 날 듯 기쁜 평강이 날 사로잡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확신'이 들것이다.

아.

이것이 주님 성령님의 확실한 응답이시구나.

아.

이것이 예수님의........

무엇보다 맑고 깨끗함이 있을 것이시다.

 

그런 응답의 말씀을 오늘 체험하고 싶다.

 

 

 

적용

1.  오늘 하루 주님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기대를 해보자.

 ' KBC야... 주하인아... 내가.. ' 해주세요. 주님.

 

2.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 말씀 듣기 위해 성결할 결심을 한다.

   이해하고 양보하라.

 

3. '오늘 하루'에 충실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 할 것이다.

  손해 보는 마음으로..

 

4. 오늘 하루도 말씀을 세장 읽으리라

 

5. 괜한 기대로 인한 두려움이나 좌절은 삼가하리라

   그냥 오늘 하루 주님 말씀에 따를 수 있음에 감사하자.

기도

 

주님.

아침에 깨워주심 감사드립니다.

난 오늘

우리 주님 탓에

성공할 기회를 얻었음을 감사드리나이다.

내 인생의 성공이 과거에 묶여 있지도

미래를 걱정함으로 비교함에서 결정되지도 않음을 깨달아 이해해 가고 있습니다.

주님.

오직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준행했는가..

그래서 내 영혼의 정결도가 어찌 달라졌는가

그리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로 하여 얼마나 기뻐했던가가

오늘 하루의 삶의 결과인지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더욱 충실히 살수 있도록 도우소서.

더욱 정결하게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하소서.

나머지 장래는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내 소득물.. 내 먹을 것 .. 내 위치.. 안전.. 다 책임지실줄 믿고 나갑니다.

지혜도 허락하시사 세상의 이룸도 알아서 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다윗과요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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