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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에 있지만(막5:21-34)

주하인 2015. 1. 14. 20:48

 
  

 
24.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큰 무리'

군중.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바라고 모이는 아~~주 많은 무리.

 


25.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그 속에 '혈루증' 여인도 있었다.

군중 안에 혈루증 여인이 있다.


 
27.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군중 들은 모두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모여들었다.

무리를 만들었다.

끼어들 여지 없이 몰려 들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예수'의 옷에 손을 댔다.

할 수 없는 것을 했다.

군중들은 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했다.

 


28.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그녀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했다.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나으리라....

일단은 군중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예수께 손을 댐을 행했다.

생각을 했고 행했다.

두려움, 과도한 경외를 물리치고

절박함으로 그랬다.

 

그녀는 군중에 속해 있었지만

그녀는 군중과 달랐다.

'믿음'이다.

그 믿음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두번 째 문제다.

성경 어디에도 옷에 손을 대어도 낫을 것이 이야기는 없었다.

그냥 그랬다.

그것은 그녀의 절박함이 첫째 이유였다.

예수 이외에는 길이 없음을 안

모든 , 막다른 절벽의 삶이 첫째였다.

 

예수님은 하실 것이란 믿음을

군중 속에서 눈을 봄이 둘째 였다.

 


29.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그리고 

나았다!

 


33.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 만의 고백일까?

두려워 떪은

그녀가 그 분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알아서였을까?

그러함에도 손을 댐은 죽을 것인데 손을 대서

두려워하는 실체가 있어서 였을까?

 

고양이 앞의 쥐,

호랑이 앞의 인간....

그 엄청난 카리스마에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두려움을 가진 것 아니던가?
그러함에도 그녀는 '용기'로

옷에 손을 대었고

사실을 다여쭈었다.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께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구원을 얻었다.

병이 나았을 뿐 아니라

영생의 믿음을 얻었다.

 

그렇다.

같이 군중에 속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군중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기적을 보았고

구원을 눈앞에서 체험하고 있었지만

군중 속에서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구원의 당사자가 되는 자

아이로와 그녀 뿐이었다.

 

오늘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믿음은

가능치 않은 것을 믿는 것이다.

거기엔 절박함과

오직 예수님 만이 답이라는 전제와

그 분 만이 구하실 것이라는

완전한 기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나.

그런가?

군중 속에 있다.

사람들과 동일하게 차를 몰고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삶을 살아 가고 있다.

하나님 허락하신 새 차를 몰고

퇴직후의 여유로운 시간 - 새로운 직장 근무까지의 빈 시간 ^^*-을 누리고 있다.

4시간 걸쳐 '언양'에 내려와있다.

종합편성채널 TVN의 인기 프로 '삼시세끼'에 나오는

그런 시골과 동일한 환경....

지금 방바닥은 나무를 때어 절절 끓고

공기는 코를 얼릴 정도로 위풍이 센

장모님의 방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앉아

가지고 내려온 컴을 통해

겨우 '묵상'을 올리고 있다.

 

하루 종일

정말 죄송하게도

주님의 말씀을 겨우 겨우 꼬투리만 잡고 있다가

이제야 말씀을 붙든다.

 

그 너무나도 남들과 동일한

관계

믿음...

고민...

울음

웃음

퇴직

직장........

슬픔

기쁨

행복............속에 사는 소시민이다.

군중 속에 머물러 있다.

 

또다른 '신앙인'의 군중 속에 있다.

그러나, 난

정말 다른 믿음을 가졌던가?

내 믿음은 이렇듯 느즈막히 하루가 다 간 상태에서

겨우 겨우 눈치나 보면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글로 올리고 마는

그러그러한 군중 속의 아주 평범한

그리 본받고 싶지 않은 자들인가?

아니면...

 

몇시간 남지 않았고

손이 곧을 윗풍의 시골 방이지만

그래도 하나님 말씀에 감동하여

내 속에서 소롯하게 올라오는

'행복'을 만끽하는 것을 보아

그래도 주님을 믿는

혈루증 주하인이던가?

 

자기 전에

주님 말씀을

그래도 깊게 들여다 볼 기회라...

참 다행이긴 하다.

 

 

주님.

이 게으른 저를 보세요.

아무 의미없이 따라다니다 죽고마는

수십세기의 인간 군상들...

적당한 기독교인..군상들이던가

잠시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혈루증의 55년 삶이었지만

주님을 점점 깊이 만나며

그녀의 절박한 믿음,

과감한 믿음을 닮아가고 있던가요?

그녀 역시 그 시점에 발휘한

일시적 믿음일 수 있지만

전.. 그리 바랍니다.

내 주여.

그 절박함이

그 열렬함이

내 주 오실 그날까지...

내 소천하여

주 앞에 그날까지

내 현상의 내 모습과 달리

영적으로 깊이 깊이 성장해가는

군중 속에있지만

군중과는 다른 믿음이 되길 바랍니다.

주여.

부족하지만

저 ..

그리 붙드소서.

내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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