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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사막의 자아의...[스106:13-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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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사막의 자아의...[스106:13-31]

주하인 2018. 4. 24. 13:16



14.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내 지금 하고픈 것, 그래서 '욕심' 내는 것.

그것의 정체는 ' 광야'의 것...이다.

마치 신기루의 물을 마시다 보니 '모래'였던 것처럼..

먹어도 먹어도 허겁하는 '아귀' 처럼..


내 잘난 체하여

나를 드러내고파하는 시험도

결국 '사막'의 것들이다.


난 지금 21세기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고

TV 를보고, 스마트 폰을 하며 서브노트북을 통해 화면 크게 인터넷 접속하고

유트브로 2.1채널 스피커로 연주곡을 듣고

들어오시는 아름다운 분들을 상대로 진료하고 있다. ^^;


 광야의 것

사막의 것..

내게 주어도 쓰레기일 뿐이다. ㅜ.ㅜ;

그런데..

내 앞의 그러한 쓰레기들... 에 대하여

왜 욕심내고

왜 시험하여보고 싶을까?

왜 알면서도 ...잊을까? 자주?...ㅠ.ㅠ;



15.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나야..

사람들아..

특별히 하나님의 선택받은 우리야...

 알자...


쓰레기더미.

요구하면 '주시긴 하지만'..

그게 우리의 영혼을 쇠약하게 한다 .


달라고 기도함은 기도함의 연습으로 족해야 하고

부족한 우리 믿음의 간증으로 족해야지

광야의 것,

사막의 것을

탐내고 시험하려는 헛된 욕망은

쓰레기일 뿐이다.

왜.. 그것을 그래야 하는가?

왜?

왜?

왜? ...


 

16.그들이 진영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을 질투하매 

'질투' 한단다.

사막과 광야의 질투.


참 웃기다. ㅠ.ㅠ;

질투의 본질은 무엇인가?

'자신의 드러내고픈 욕구에 반하는 허전함이 두려움'이다.

'자아'다.


자신이 드러내지 못하면 무엇이 두려운가?

홀로 외톨이 되는것?

그게 왜 두려운가?

영원이라는 시간에서 내 존재를 인정 받지 못한다는 것은

소멸.. 이라는 의미다.

사망이 전제가 되기에 홀로가 두려운 것이다.

홀로 있어도 누군가 있고

아무도 뭐라해주지 않아도 '뿌듯한 든든함'은

그러한 질투를 유발치 않는다.

그것..

'은혜'..를 체험한 자들만이 가능한 이야기고

성령의 임하심이 전제가 되면 가능한 이야기며

그러하기 위하여 '예수님' 구원을 진정으로 체험한 자들이어야 한다.

그래서.. '부활'된 영혼이 되면

영생의 에너지, 생기, 생명의 기운이 늘 우리와 함께함을

우리 영혼이 느끼기에 질투가 필요없다.

그럴 이유가 없다 .

 또한 질투하면

결국 '하나님'께 질투하는 형국이 되며 (하나님이 만드시고 세우신 세상의 모든 것.. 인데.. 질서도.. )

그것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지 않겠는가? ㅠ.ㅠ;


그런데. .

난.. 질투 하지 않는가?

과연?


 무엇이 부족한가?

왜 인가?


하나님 살아계신 그 분의 임재 감을 자주 느낌에도 허전함은

다른 소리에 아직도 귀 기울이고 있음이다.


이땅의 권세잡은 자들, 사단의 세력들이

오래된 내 영혼의 결점이나 상처의 흔적들을 터치함이다.

날 놓치기 싫어하는 그들은

내 살아 눈 뜨고 바라보는 동안

광야가

사막이  전부인것 처럼 호도하며

헷갈리게 하여

광야의 것을 욕심내고

사막의 것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께 의혹하게 하며

아닌 것을 질투하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 내 할일..

깨닫는 것이다.

아.. 그것.. 광야의 것이었구나..

아.. 저거.. 사막의 것이네.

아. 아직도 난.. 내가 드러나고 싶구나..


그래서 진실이신 살아계신 하나님.

생명이신 예수님.

은혜로 다가오시는 성령 하나님의 존재를

매사 깨달아

내 서 있는 곳이 '광야'이며'사막'이지만

내 갈곳이 '진리의 땅'이고'영생의 보좌' 근처이며 '영원히 살' 곳임이니

쓸데없이 허전할 일이 없으며

내 존재의 드러남이 없어도 외로웁거나 힘들 일이 하나도 아니며

그러기에 기도하고 기다리며

내게 주신 현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실로 바라시는 것이

'감사하고 기뻐함'으로

연단의 과정을 잘 이루어내는 것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그러면..

삶이 자유로와 지고

내 영혼과 마음이 가벼워져

점차로 행복해지고

결국 영혼이 선해지고 든든해져

성화의 길에 점점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주님 기뻐하셔서

이제  되었다..부르실 그날에

그리그리 살면서

나와

내 이웃과

내 소중한 모두에게

나 자신으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드러내고자 했던 자의 결국이 어떠함을..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증거되는

그런 내가 되었으면 한다.


감사하다.



주님.

진정으로 그렇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광야이고

제가 눈뜨고 보는 것들이 '사막' 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질투'가 일상이고

잘난체 하고픈 욕구로라도 습관이 된 '시험'을

심지어는 주께도 던지려하다가 깜짝 놀라 거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로 인하여 파생된

수많은 죄악들로 하루 하루를 흔들리고,

하루에도 수많은 시간들에 시달리고 있기도 합니다.


주여.

다시금 진리와 진실에 대하여 깨닫고 돌이키려 합니다.

제 바라보고 있는 것...

광야의 것이며

제가 생각하고 누리려는 것들은

사막의 것들이 그 대상이고

질투하는 그 죄악들이

그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지를 요.


주여.

깨달은 것.. 잊지 않고 영혼 깊숙이 집어 넣어

자유로운 영혼 되게 하소서.

중요치 않은 것에 흔들리지 않고

어이없는 것 탐내지 않게 하시되

진리 아닌 것 과감히 놓게 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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