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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질 예수의 십자가(막15:16~32)

주하인 2007. 4. 5. 09:21

2007-04-05 마가복음 (Mark) 15:16~15:32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18.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예수님께서 인간들에게 갖은 굴욕을 당하셨다.  

 가장 선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신 그 분께서

가장 사랑이 넘치는 일로해서

가장 심한 굴욕을 당하시고 계신다.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시몬이란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

잘못도 없는데 억지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형편없는 몰골의 죄수와 함께 큰 십자가를 지라고 한다.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지...

무겁기도 말도 못하고

지고 올라가는 길은 또 얼마나 험한 언덕인가?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화가 나고 자괴감도 들고 도저히 자신의 머리 속으로 생각해도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억울하다.

정말 억울하다.

한참 정신 없이 상황에 끌려가다가 문득 곁을 보았다.

같이 지고 가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면서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다.

그 사람의 눈에서 비치는 눈빛이 한없이 깊다.

지긴 졌으되 무겁지가 않다.

힘들긴 힘든데 힘들지가 않다.

화는 났던 것 같은데 평안해졌다.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사나이는 피투성이지만 너무도 고요하다.

그리고는죽을 때까지도 왜 이런 억울한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할 것 같았던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마음이 그냥 이해할 듯도 싶었다.

모르겠지만 알겠다.

 그 사나이는 본인 보다 수십배는 더 힘들어 보였다.

가다가 넘어진다.

그러다가 채찍을 맞는다.

갈라지고 터진 상처 자국이 이미 말라 붙은 피와 먼지로 엉망으로 엉켜 있었지만 그 무서운 채찍으로 인하여 다시금 피가 흐른다.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그 사람은 비틀 비틀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는 질질 끄는 걸음으로 다시 십자가 아래로 들어온다.

가까이서 맡는 그의 피냄새.

역하기 보다는 이상하리 만치 가슴이 뚫리는 느낌이다.

어떻게 걸어가는지도 모른다.

힘이 들지만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

가다가 넘어진다.

시몬, 그의 가슴엔 억울함보다 그 사나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크다.

한손으로 부축한다.

이해할 수 없는 변화다.

이 끔찍할 만큼 큰 에너지가 응집된 곳에서

그의 나락보다 약한 시골 사람의 마음으로는 견디어 내기 힘들텐데도

그는 자신이 모르는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얼마의 시간 후 언덕 정상에서 그는 십자가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그 사나이가 십자가 위에 눕혀지는 것을 가까이서 보았다.

성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몸에서

눕는 것 자체가 극도의 고통을 필요로 할 것을 ..

그 분은 굉장히 고통 스러운듯 보였으나 눈은 맑다.

홀린 듯 그 자리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으니라 
 예수

그 분께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힌다.

울리는 정과 망치 소리에 따라

그는 소스라치듯이 놀란다.

깜짝

깜짝.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왜 이런 변화가 있을까?

왜 이런 부조리한 일이 있을까?

왜 이런 부조리에 눈물이 나올까?

왜 이런 부조리에 분노 보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감격이 흐를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이 그의 속에서 일어난다.

생전 생각도 못했던 변화의 체험을 한다.

그는 변했다.

그분을 만나고 변했다.

 

 억울하고 힘들 수도 있다.

사방이 막히고 헤어나지 못할 어려움이 닥쳐 있을 수도 있다.

실은 어려움보다 더 힘든 것은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화나다가 눈물나고 눈물나다가 화나고

그러면서 가슴은 타는 듯한 갈증으로 어찌할 수가 없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도저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라는 소리가 입부근까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매사에 자신은 재수가 없다고 심히 푸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은 예수님의 일하고는 상관없는 저급한 일이라서 성경의 무수한 말씀이 하등 가슴에 오지 않는 그런 좌절감도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억울한 일에도 주님의 함께 하심을 오늘 보이고 있다.

모든 일에 주님 예수님을 인식하기 만 하면 달라진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마음의 자세가 달라지고

분노는 가라앉고 평강이 찾아오며

악한 사단의 날뛰는 소리들이 잦아들고

환경이 풀린다.

무엇보다 긍휼의 마음이 늘어나게 되어

눈에는 퍼런 불을 키기만 하는 기능 대신 눈물이 늘어나게 된다.

그에 따라 그 영혼에 그득하던 세상의 욕심과 정욕 대신에

성령의 열매로 차근 차근 채워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샬롬의 평안이 우리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장래도 달라진다.

현실이 달라진다.

두려움과 불안은 물러가고 행복이 찾아온다.

실제로 시몬의 가족은 루포의 어머니를 어머니로 모시라는 로마서16:13 구절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을 보아  이 단 한번의 사건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고 복음이 전파되는데 큰 기둥이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예수님 그분은 우리가 어떤 모습의 환란이나 고통이든

그것을 주님이 허락하신 일로 인정을 하고

'주님 십자가'로 인식을 하기 시작하면

그분이 보일 것이다 .

바로 곁에 ..

멀리서 막연하게 보시고 응원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의 억울함보다 몇십배나 큰 억울함을 감내하시고

내가 받는 고통 보다 훨씬 큰 고통을 몸으로 참아내시며

우울이나 억울함이나 모든 지옥의 감정들을 이해하시고 계시며

그 막힘을 주님의 고요한 눈빛으로 공감해주시는 분이시다.

 예수 십자가를 같이 지고

그 분의 그 어려움이 나 때문이었음을 이해하는 순간이면

그 분은 흐르시는 상처의 보혈 향으로 만 가지고서도

내 속의 상처를 씻어 주시는 분이시다.

 

 모든 현실의 일들을

모든 과거의 아픔을

모든 미래의 걱정을

주님 안에서 받아들이고

주님 안에서 펼쳐놓고

같이 질 주님의 십자가로 인식하기만 하면

그때는 그 분이 알아서 하신다.

 

 

 

적용

 

1. 억울한 일이 혹 발생해도 '주님 감사합니다.' 3번 외칠 것이다.

   그리고 참겠다.

 

2. 주님의 십자가 생각하며 1끼 금식하겠다.

 

3. 오늘 전인치유에 최선을 다 하겠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께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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