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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13. 실제적 번제

주하인 2005. 8. 13. 14:21
 실제적 번제

     

 

  (1) 실제적 번제 드릴 준비와 드리는 과정     

 

                            

 속죄제가 끝난 후에 대제사장은 본래의 대제사장 복을 입고 번제를 드린다.  

 

 번제물은 흠없는 수 양 한 마리인데 이것은 거룩하고 의인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 당하신 것은 속죄제물로서 뿐만 아니라 번제물로서도 모든 성도들을 대신하여 헌신 즉 번제 드리신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속죄일에 드리는 번제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드리는 번제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모든 성도들의 속죄를 위한 회생적 번제를 드려주셨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은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은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이 헌신하는 것조차도 은총으로만 되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을 당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대제사장이 번제드린 것은 성령님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죄 문제 해결을 위한 헌신을 할 수 있도록 은총으로 도와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는다면 성도들은 헌신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상번제를 드리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헌신은 앞에서 이미 말 한 바와 같이 성도들이 교회에 나가서 전도하거나 구제하거나 봉사하는 것 등의 헌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헌신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성도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참회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도 학고 때로는 걸어 다니면서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가슴을 치며 회개하기도 하고 탄식하며  한숨 쉬기도 하고 대성통곡하면서 회개하기도 하고 금식하면서 용서를 빌기도 한다 .   

 

그리고 어떤 성도들은 마음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 때문에 고민하면서 영적할례은총을 사모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마음과 행실들은 성령님의 역사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죄 문제 때문에 안타까와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성도들의 선한 의지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성도들 안에서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곧 죄 문제를 해결할 때 생기는 마음이나 언행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이다.  

 

 성도들  개개인은 이와같이 성령님의 역사와 은총을 힘 입어 번제 드리는 생활을 계속하게 될 때 즉 상번제를 계속 드릴 때 점진적으로 정결케 되어 결국 가나안 땅 쪽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부터 성도들이 번제 드린 실례를 알아보자.


  어느날 성 배네딕또가 스비아꼬 산속의 한 동굴에 누워 있었는데  한쪽에는 돌 위에 성경이 펼쳐져 있고 십자가가 놓여 있었으며 다른  쪽에는 그릇이나 푸대 같은 여러 물건들이 있었다.

그때 베네딕또는 누워서 옛날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고향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다  알고 잇는 여러 사람들까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옛 애인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음욕이 치밀어 올라와서 음란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때 보니, 동굴 입구에 예쁜 여자가 옷을 다 벗은 채로 서 있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베네딕또의 옛 애인이었다.   

베네딕또는 깜짝 놀라면서 "아니, 당신이 웬일이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 여자는 동굴 안으로 들어오면서 "베네딕또 추워요" 라고 하면서 배네딕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베네딕또는 "이러면 안되지" 라고 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옷을 벗어 애인의 벗은 몸을 가려 주려고 하였다.

그때 그 여자는 "추워요 베네딕또, 안아주세요" 라고 하면서 가까이 다가왔는데 베네딕또는 처음에 고개를 떨구다가 그 여자의 나체를 보고서는 그만 껴안아 버렸다.  

 그러자 그 순간에 여자는 마귀로 변하여 동굴 밖으로 나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동굴 속에는 기분 나쁜 마귀의 웃음소리가 계속  울렸다.  

그 여자가 마귀였다는 것과 자신이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은 베네딕또는 크게 후회를 하면서 동굴밖으로 나가 산 속에 잇는 가시덩굴 속에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가시가 베네딕또의  온 몸을 푹푹 찔렀다.  나중에는 스스로 온 몸이 더욱 찔리도록 뒤틀면서 쉬지 않고 애통하며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몸에서는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베네딕또의 눈에서는 참회의 눈물이 더욱 흘러 내렸다.            

 

 이같이 베네딕또 성인께서 참회하는 모습은 참 번제를 드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죄를 범하여 양심의 가책을 받고 철저히 회개하는 모습은 성령님께서 베네딕또 성인에게 죄 문제대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셨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이때 성령님께서는 사죄은총을 공급해주셔서 용서받은 확신과 새로운 희망을 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조그만 죄라도 안타까와 하면서 주님께 용서함을 받고자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실례를 들어보자.                                                 
 어떤 목사님이 안마소에 가서 여자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는 중에 그만 음욕에 사로잡혀 그 여자를 강간하게 되었다.

 

그 다음날 그 목사님은 집으로 돌아와서 태연하게 어제 일을 생각하며 기도하는데 잠시 앉아있다가 그냥 일어났다. 

 기도를 하면서 애통하는 마음도 없이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라고 점잖게 기도하다가 마쳤다.  

 

 그리고 며칠 후 주일이 되자 교회에 나가서 여전히 태연하게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이상에서 볼 때 그 목사님은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사라는 직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욕적인 쾌락을 추구하였고 간음죄까지 저질렀으므로 크게 애통하면서 회개하여도 모자랄 터인데 잠시 앉아서 형식적으로 기도한 것을  어떻게 진정한 번제를 드렸다고 할 수 있겠는가?    

베네딕또 성인의 회개와 비교한다면  이 목사님은 참 번제를 드린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번제에 대하여 설명했던 모든 진리들을 좀 더 알기 쉽게 정돈해 보자.                                        
   
에서 알게 된 바와 갈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성도들을 위한 속죄은총이 준비되었다.  

속죄소 위에 피를 한 번 뿌려 사죄은총 즉 성도들이 범한 죄를 용서받게 되는 은총이 준비되었고, 속죄소 앞에 일곱 번 피를 뿌림으로써 성결은총 즉 죄악성이 제거되는 영적할례은총이 준비되었다.


  레 16:~16, 9에 나오는 부정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심령 속에 일곱가지 죄악성 즉 원죄가 뿌리 박혀 있으므로 마치 문둥병과 같이 부정한 병에 걸려있는 것과 같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이와 같은 부정 즉 일곱 가지 죄악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속죄소 앞에 일곱 번 피를 뿌린 것이다.
  

 일곱 가지 죄악성을 일곱 번 피를 뿌려 제거하는 영적할례은총에 대해서는 레 16:14-16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혼동하기 쉽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레 16:15의 하반절과 16절의 상반절을 보면 그 순서가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레 16:14, 15에서는 속죄소 위에 한 번 피 뿌리고 속죄소 앞에 밀곱번 피뿌리고라고 하였고  16절에는 백성들의 부정과 백성들의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19절 말씀을 보지 않으면 한 번 피 뿌린 것은 부정을 위한 것이고 일곱 번 피 뿌린 것은 백성들의 범한 죄를 위한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9절 말씀을 대입시켜 보면,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라고 하였으므로 부정은 일곱 번 피를 뿌려  일곱가지 죄악성을 제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 번 피를 뿌린 것은 백성들의 범한 죄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성령강림은 사죄은총과 영적할례은총을 가지신 성령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가리켜 말한다.   

또한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목적은 성도들 개인개인에게 속죄은총을 공급해 주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번제를  드리는 것은 성령님을 통하여 사죄은총과 영적할례은총을 경험적으로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번제까지 드려야만 여호와 앞에서 완전히 정결해진 성도들이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축도를 할 때 들어보면,"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교통하심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으로 하여금 만세 전부터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계획하게 하셨고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독생자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사 준비해 주신 속죄은총을 가리켜 말한다.   

 

 또한 성령님의  교통하심은 성령님께서 속죄은총을 가지고 오순절날 이 땅에 오신 때부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모든 성도들에게 공급해 주시는 사역을 가리켜 말한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의 교통하심이라는 것은 성령님께서 성도들이 번제를 드릴 때 마다 사죄은총과 영적할례은총을 전달해 주시는 사역을 가리켜 말한다.       

 

 이와 같은 진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예화를 들어 설명해 보자.


 대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는데 시골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농부였다.

 이 아버지는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였으며 특히 학비나 용돈 등을 비롯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려고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더위가 극심할 때나 병충해가 심할 때에도 괴로움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을 하였다.

 이와 같이 아들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수고한 결과 사자, 배, 포도, 참회, 수박 등의 과일을 풍성하게 수확하였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준비해 놓은 은혜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준비해 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수확한 과일들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공급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그 과일들을 팔아서 돈으로 만들어 보내주어야만 학비도 내고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과일을 팔아 송금을 하게 되면 우편 배달부를 통하여 사랑하는 아들에게 공급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예화를  분석해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교통하심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적으로 일을 하여 많은 과일을 수확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희생으로 속죄은총을 준비해 놓으신 것을 가리켜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수확한 과일들을 돈으로 바꾸어 아들에게 배달해 주지 않는다면 아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속죄은총도 성도들에게 배달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속죄은총을 성도들에게 배달해 주시기 위하여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께서는 속죄은총을 성도들에게 배달해 주시는 우체부와 같은 역할을 해 주시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돈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만세 전부터 독생자를 보내시고자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사죄은총과 영적할례은총을 완성시켜 놓으셨다.  이렇게 준비된 속죄은총을 성도들이 상번제를 드릴 때마다 항상 공급해 주시는데 그것은 성령님께서 성도들과 교통하심으로 전달해 주시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성도들이 순간순간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마다 또는 성결의 은총을 필요로 할 때 성령님께서 속죄은총을 풍성하게 공급해 주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침에 아내에게 신경질을 낸 것이라든가 저녁에 아이들 때문에 짜증내고 혈기부린 것 등의 죄악들을 순간순간 용서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안타까와 하며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를 용서하여 주소서"라고 참회할 때 즉시 우편배달부처럼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사죄은총을 공급하여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곧 "내가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으로 속죄제를 드려 준비된 사죄은총을 너에게 주노라"고 하시는 속죄은총이 성도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성도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와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매일매일 생활하면서 이와 같은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자기 행실"이  광야 연단과정을 통해서 깨끗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님의 교통하심으로 자기 행실이 정결케 되는 원리이다.                   

이러한 성령님의 교통하심에 의한 성도들의 번제드리는 생활은 출애굽할 때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속죄제를 드려서 준비해 놓으신 속죄은총을 성령님께서 가지고 나오셨는데 성령님께서는 이 속죄은총을 성도들이 출애굽할 때부터 공급하시고 실제적으로 적용해 주신다든 말이다.


 이렇게 성도들이 번제드리는 생활을 계속함으로써 죄 문제가 모두 해결되면 성도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가 완성되는 것이다.  

 

 즉, 성도들이 번제를 드리면서 광야 연단과정을 마치게 되면 마음과 행실이 정결해졌기 때문에 영적할례 즉 흰 옷 입는 은총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할례를 받은 교회시대의 이긴 자들 일지라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죄를 범하게 될 경우에는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출애굽한지 얼마 안되어 영적으로 어린 성도가 "영적할례를 받고 싶은데 지금 주십시오"라고 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기다려라 아직 받을 만한 준비가 되지 못했다.  너희 행실을 정결케 하고 가나안 땅 입구에 가면 받게 된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와 같이 속죄은총 즉 사죄은총과 영적할례은총은 성령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반드시 주시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보잘 것없는 성도들일지라도 이미 그리스도의 회생을 받으셨기 때문에 속죄은총을 필연적으로 주시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속죄은총만은 틀림없이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어떠한 죄를 범하든 진정으로 참회하기만 하면 용서받은 줄로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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