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의 영광 돌림 만이 유일한 삶의 이유다[눅17:11-19] 본문
부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 & 예수 발 앞에 엎드리는 삶
하나님의 영광 돌리는 삶의 궁극은 천국의 삶, 영생이다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주님 뜻 아니고는 이해될 개연성이 없다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나병은 오히려 축복이다

이 땅의 그 어떤 모습
나병
몸서리 쳐질 만한 고통의 이어짐
물질
풍요롭지만 커질수록 허탄한 유혹들
자아 완성의 추구
당당한 거 같고 유의미한듯한
이 땅에 머무는 또다른 몸부림
오직 유일한 이땅의 모든 결론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다
그러지 못함 모둔는
영적인 나병이다
그러기 위하여
코람데오
주님 손잡고 가기위한 몸부림
그를 위해 허락되어진
인생의 모든 것이
이해되고 인정되고
마침내 삶속에서 이루어질 때
바야흐로
끝이 보이고
이유가 깨달아지며
우리의 결국
주님 안에서의 영생
천국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참자 주하인아
조금 더 바로보자 나야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어떤 분들은 - 내게도 ㅠ.ㅠ;;- 그들 만의 괴로움이 있다.
'나병'.
영적 나병 - 마음, 영혼의 나병은 누구에게는 없다고 누가 알 수 있는가? 자신 만이 아는 절박하고 외톨이의 병.. 외롭지 않은 사람 하나도 없음은 .. 대단해 보였던 ㅇㅅ들 모임에서 내 깨달음, 시화를 가지고 전율하던 그들을 보고 절감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아프다. 원죄의 결과... 삶의 괴리... - 환우들.
'멀리서서' 외칠 수 밖에 없는
절대의 고독.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멀리 서 있지만'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소리를 높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칠 수 있음이
회복의 유일한 기회다.
그들은 그 많은 사람 중에
몇 안되는 기회를 얻었다 .
그리고는 '외쳤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말씀을 묵상하면 느끼는 것.
'나병'이 불쌍한게 아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함'이 불쌍한거다 .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나병'은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주님 예수님께서 '보시고 이르시게 되는 ' 나병'.
그게 무슨 문제인가?
그리고 늘 일상에서 깨닫지만
회복과 치유의 기적들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다.
나.
지금 육신의 나이가 몇살로 느끼세요?.. 라 묻는다면
내 나이보다 10몇년은 젊게 느낀다 .
정말이다.
새벽에 불려나가 응급수술하고도
별 피곤을 못느낀다.
엇그제 격렬한 일 -블로그에 써 놓았다 .ㅎ-을 하고도
또 .. 다.
타고난.. ?..
아니다 .
내 나이가 얼만가..?
가끔 잊었다가 한번씩 오늘 처럼 뜨끔 하며 허리가 아플때
내 허리 및 꼬리뻐가 5군데 이상이 있음을 깨닫고는 한다 .
하나님의 도우심 아니면 서 잇을 수도 없는 몸이다.
전ㄹㅅ은 또 어떻고....ㅠ.ㅠ
대장의 트러블은? ..
그보다 더 깊은 내 내면의 흐름은....ㅠ.ㅠ...
아마 걸어다니는 뭐..ㅠ.ㅠ.. 아닌가 할 정도로 잔병들이 많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하나가 날 괴롭히던 수없이 많은 시간 이후
난.. 어느새 잊었다.
그냥.. 그냥..
하루하루 말씀 안에서 살다보니
잊었다.
잊어버린 그것...
난.. 자주도
오늘 말씀에서 '나병환자가 길 가디가 나았다'는 것처럼
잊어 버리고
잘 버티고 나름 내 방향에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게 원리가 아닌가?하나님 안에서 예수님을 깊이 만난 자의 '회복'의 원리.아.. 물론 아주 긴급한 분이나진정 하나님 만이 아시는 뜻으로 허락되어진 어려움을난 깊이는 모른다 .
하지만.. 모든 '고난'과 고통은'하나님의 뜻'과 그 분을 '멀리서나마 ' 외치는 절박함과예수님의 돌아보심,그리고 그 분의 깊은 영적 터치를 경험했느냐 아니냐.. 에 차이가 있다 생각한다.
그리고..........당장 은 아니더라도'말씀'대로 치유와 상관없으신 '대제사장 만나러 가라'시는 말씀에그냥..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가다가자연스레이 '잊혀지는' 그 결과.. 그게 때로는 주님의 '치유의 원리'가 아니실까 싶다. 진정한 치유.'병의 이유'... 말이다.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런데 '병과 회복'의 문제에 대하여
다시한번 더 깊이 생각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
10명 다 나았는데
1명만 돌이켜
감탄과 감동으로 소리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
'돌아왔'다 고 했다.
'예수님 발 아래 엎드리어 감사'했다 한다 .
그러니. 예수께서
그의 그러함을 진심으로 기뻐하시며
다시한번 '병과 회복'에 대한
'병의 허락되어진 이유'와
이 삶의 본질에 대하여
동일한 '말씀'으로 돌아온 나병환우의 잘한 행동을 '읽어주신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돌아오라"
그를 칭찬한 말씀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오늘의 내게 하시는 말씀 아니신가?
겨우 이땅의 아픔.
겨우 그 아픔의 회복
그거로 '예수님의 존재'가치가 다 하셨다는 말인가?
정말?
'낫게 해주세요. ''
간구를 하고 중보기도회를 하고 나으면 끝인가?
주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간증하러 돌아다니고 '은혜' 받았으면
거기가 끝인가?
돌이키고 돌아오는 것..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
그것을 위하여 '아픔'이 허락되어졌고
그를 통하여
주님 앞에 더 무릎꿇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찬송하며 사는 태도를 가지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현상들을
일상에서 느끼고
자연스레이 누리며
주님의 손잡고 살아가는 것...
그것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아픔'.. 나병이 아니던가?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것은
'겨우 이땅에서 육신의 문제, 마음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이시다.
'영적 나병'을 고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ㅏ 회복.. .
그리하게 하시기 위하여 허락되어진 '아픔'조차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그로 인하여 '코람데오'하는 매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다.
너무 뚜렷한 나머지
내가 해야 할 일..
아직도 남은 '영적 나병적 현상'들.. .
조금 더 남은 길 가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다 나을 것임을 확신하여야 한다 .
기도로 그래야 한다 .
감사로 그래야 한다.
매일 하나님께 그마져 통해서
자연스레이 나아져감을
인식하고 깨닫는 내가 되어야 한다.
매일이 감사로
주님의 은혜로 점철되는 삶을 살다가
부르실 그때에
주님 나라에 거할 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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