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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말미암는 평강[왕상2:21-3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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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말미암는 평강[왕상2:21-36]

주하인 2017. 5. 7. 13:56



  

 
29.어떤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자신의 의로 인하여 지은 죄.

언제라도 결국 보응이 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권선징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지 않더라도

때 되어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방법대로 그들에 대한 징계는 이루어진다.


 요압.

다윗의 용사

그러다가 다윗의 뜻에 반하는 몇 가지 죄를 짓고도 다윗이 늙어 죽을 때까지도 아무런 징계가 없으니

그의 힘에대한 욕심은 아도니야를 줄타기 하는 쪽으로 번져간다.

그리고는 드디어...큰일 남을 깨닫고 도망쳐 제단의 뿔을 잡는다.

이것..

나같으면 어디 시골로 도망쳐 벌어놓은 재산을 가지고 마지막을 정리하는 삶을 살았을 것을

그가 그렇게 한것은

아마도 권력에 대한 미련으로 떠나지 못하고 매달리는

그 마지막 욕심의 발로는 아닐까?

(얼마나 그렇게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소변..밥...다리저리는 거...결국 얼마 못버틸텐데.ㅎ)

'설마 다윗의 위장이던 자기를 죽일까

어쩌면 용서하고 더 쓰지 않을까.. ' 하는 헛된 기대..

거기에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제단의 뿔을 잡았으니..

적절한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


하지만 결국 '어떤 이'의 입을 통하여

솔로몬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요압은 죽게되고




33.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그의 자손들까지도 영영히 '저주' 안에 갇히게 된다.


한편 ' 솔로몬' 등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

내가 그토록 바라는 궁극의 축복

평강...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을 그것도 영원히 함께 한다는

축복을 받았다.


 요압과 솔로몬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 일생을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며 살았던 사람들인데

왜 한사람은 저리 급전직하하고

왜 다른 사람은 영원한 여호와로 말미암은 평강 안에서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일까?


나에 적용시킬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요압..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데

인간적으로 너무 앞서나갔다.

결국 하나님의 전에서 끌려나와 서 비참한 죽음을 받았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많이 도 보아왔다.

누가 보아도 '희번덕이는' 자신의 '의'인데도

그것을 칭송하는 주변인들을 이유로 '아주 거룩한 것'으로 착각하며

서로서로 위안하는 자들.

아도니야 옆에서 서로서로 승리를 축복하는 무리들 처럼....

하지만 그들 옆에서 그들의 하는 일을 보면

일반 인들이 타인을 배려하는 최소한의 배려보다 부족한 것으로

그들의 관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안기는 것들...

 기독교 리더 목사님 들 중에

'교계' 파워를 이용하여 '극보수'에 서 있는 미련함들...

전혀 하나님의 뜻이 아님에도

십자가를 끌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는 '기독 파워집단'들..

그들의 오랫만에 SNS 나 매스컴에서 마주하는 얼굴들은

이전보다 훨씬 강퍅한 모습으로 다가와서

역겨운 느낌이 들때가 없지 않았다.

이 마져 내 사감(私感)일 수 있을 거라 얼른 단속하고 말긴 햇지만...


 '내려 놓음', '주님 앞을 나서지 않음'.........이런 것...

수년전 '이용규 선교사'님의 대단한 책에서

그 분의 선교사 사역과 대단한 학력,대단한 ... 것에서 밖에 느낄 수 없었던

이 내려놓음, 주님을 앞서지 않음을

이 일상을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같은, 나 같은 자들에게서도 가능할까?

 

 당연하다.

하나님의 말씀,

큐티의 레마

로고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꼭 그렇게 앞서가거나 솔로몬 처럼 대단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면

한마디로 성경은 교훈집이나 전설이지 않을까?
 오늘의

내 하나님이시라면

내가 주님 앞에 서 있고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이며

예수 께서 몸바쳐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성령을 보내신게 사실이라면

겨우 그런 곳에 국한 시킴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당연하게도 내 하나님, 나의 하나님, 코람데오 하나님, 로고스 하나님, 성령하나님으로

내 삶속에서

누구에게서도 역사하신다.


그 분께서

우리,나 ....에게 주시려는 결국, 궁극은 '평강' , 샬롬...이며

그 샬롬이 영육혼 .. 이 전인적인 존재인 우리에게

겨우 '영적'인 세상에만 국한 된 개념이면

그거야 말로

정말 편협한 '코끼리를 인식하는 장님'의 만지기가 아닐런가?


그렇다면 오늘 내게

말씀을 통해 주시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솔로몬등.

그들은 그 삶에서 가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였다.

옳은 신앙태도.


 아도니야 등이 저리 요동을 치고

요압 등이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그럴 듯한 성공의 모습을 보일 때조차

불안해 하면서도

'나단'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는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고

죽어가는 아버지, 왕 다윗의 입을 통하여

'왕'에 봉해지는 순간,

하나님의 예비하신 신하들이 모여들어

그는 그 일상의 육적 현상에서도 '왕'이 된 것이다.

그리고는 그의 심리에는 '하나님이 지정하신 왕'으로서의 당당함이 자리잡고

그는 '영육혼'의 3박자 모두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나.

어떻게 보면 정말 보잘 것 없는 노년기에 들어선 자다.

그냥 그럭저럭 거의 망해가는 '산부인과' 의사들 중에서

그나마 '봉직' ,월급쟁이 의사 ( 내 친했던 후배.. 모두 대단한 성공들 했는데.ㅎㅠ.ㅠ;;)

자식들.. 그럭저럭..

연휴... 나름 허락받아진 능력을 빌미로 ^^*  다양한 놀잇거리를 생각하고 잇는데

마침 강력한 '황사'로 나가지 말란다.

그래서 방에 있으려니 '아무도 찾는 이 없는' 것 같은 실패감이 들려한다.

어떻게든 내 자아는 날 움직거려 보게하려 하지만

갈등이 머리를 사로 잡으려 한다.

외로움, 실패감, 복잡한 생각들....

그러한데 '말씀'을 통해 훈련 받음이 있다.

그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이 정갈해진다.

고요해진다.

 그러면서 오늘 말씀을 들으니 '평강' 이외는 다른 내용을 감잡기 어렵다.

예배 마치고 가만히 묵상하니

깨달아 지는 바가 있다.

' 일상에서 앞서지 않는 자', 평강.

하나님으로 부터 말미암는 평강은 겨우 심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영육혼 모두에 대한 '평강', 샬롬...이다.

그게 믿어진다.

혼돈은 '망상'이며

망상은 '사단'의 영역과 오랜 불신기간에 훈련되어진 결과로

그것은 내 생각을 잘못 흐르게 한다.

자아를 키우도록...


이 일상.

이 조그만 삶의 테두리..

생물학적으로 노년으로 향해가는 중년기 남성의 생각의 한계에서 갇혀 버릴...

그래서 그것을 탈피하기 위한 '권력', ' 관계의 욕심' '자식으로 인한 허전함의 달램.'....

수도 없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손쉬운' 선택들이 날 유혹하려 한다.

그래도 가만히 있다.

안되는 것.. '원망' , 슬픔', 연민.. 등으로 다가 오려 한다.

하지만.. 그래도 말씀 안에서 가만히 기다린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평강'이 날 기다린다.

한결 마음이 편하다.

다음의 일상의 '육신적 현상'들도 아마 나아지리라.

영혼은 내 훈련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성장하고 성화되어 가리라.


오늘 .

내게 주시는 말씀이시다.


주님.

제가 홀로 너무 나가는 생각의 질주는 아니리라 믿습니다.

주님 허락하신

말씀을 통한 레마...인줄 믿습니다.

성령께서 은혜로 이글어 주신대로 나가는 ..

어찌할 수 없는 이 고요의 순간에

주님은 그래도 날 그냥 두지 않으실 것을 믿게 하는

그런 레마인 줄 믿습니다.


주여.

솔로몬의 영광 전에

솔로몬 들이 겪을 불안과 대책없이 흐르는 시간과

아버지 다윗왕이 저러다가 죽어버리면 어쩌지라는 망상적 혼돈과...

다양한 상황에서도

그냥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대하고 기다려면서

결국 이루어내고야 만

하나님으로 부터 말미암는 평강을 묵상합니다.


제게도 동일한 결과가 있을 줄 믿습니다.

주여.

그 동안..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혼돈'과 망상적 생각들을 파해주시사

평강을 기대하게 하소서.

주여.


절대로 주님을 앞서지 않고

오직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대하는 자 되게 하소서.

저를 이끄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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