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온전한 구원을 위하여[눅17:10-19] 본문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나병환자'
감각을 잃은 자들.
나..
우리는
눈뜨고 보고 살아간다지만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끼며 살아가는 자는 맞는가?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혹시, 잠시의 감각적 편안함과 필요함의 채워짐으로 인하여
이리 열렬히
주님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시'라는 마음을
지금도 가지고는 있는가?
내, 우리의 영적 나병을 인식은 하고 있던가?
혹여 진정 주님이 건강하다시는 기준에 맞지 못하는
아니.. 죄와 더러움에 무감각 해져 있는 '영적 나병'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고백이
저들처럼 열렬하게는 가지고 있는
현재가 맞는가?
혹.. 그 부르짖음이
단지 내 필요, 내 현재의 고통치유만이 목적은 아닌가?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께서
'보시고' 나서
'이르셨다'
'가서 .. .보이라'
그것..
어리둥절할 상황이 아닌가?
고쳐달라고 외쳐 부르짖었는데 '가서 보이라'시니... ^^;
그런데도 그들은 그냥 갔다 .
여기에서 이들은 나름 이들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더 깊은 믿음까지는 아니지만. ..(온전한 구원 .. 19절 ^^;)
그래도 믿음은 있었다.
그냥 가라니 갔다.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
체험을 했다.
무엇을 내게 보이심이신가?
때로 절절히 구함 (내 현재의 어떠함들 ㅠ.ㅠ;;)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응답이 없으심 같은 경우
아니
아침 말씀이
전혀
내 필요와 상관없는 듯한 말씀이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럴 때도
주님은 결국
내게 필요한 말씀이셨던 것을
아주
자주
체험케 하곤 하시었다.
오늘
이들 10명의 나병환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뜻이있으시겠지 ... 하면서
갈길을 나섰던 상황에서
깨끗함을 체험하는 것을 보았다 .
그 깨끗함...
가만히 묵상을 하니
전혀 무감각해 말라 비틀어진 것 같던 팔다리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차듯
가뭄에 마른 밭에 물이 스며들듯
생기가 온몸에 돌고 회복의 기운이 느껴지는 환자의 상황 (아...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던가.. 나도.. ^^*)처럼..
아니.. 그리고
마치 뽁~하고 만화영화에서 팔이 솟아나오듯
떨어져 나갔던 손가락 ,.. 이 새로 튀어나옴들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할렐루야다..
아무리 빌어도
응답이 없으신 것 같고
메마름의 단계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주님이 얼굴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 같은 상황이 지속되며
몸과 마음이 지치고 헤졌을 것 같은 상황에서
주님의
우리의 바램과는 상관없는 듯하신 말씀으로 다가올 때
'정말 살아계신가.. '라는 의혹이 스침을
절절한 간증의 기억들과
말씀의 살아계심을 믿음을 근거로
힘을 내
억지로 순종하고 따랐더니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회복을 받은 것.................
그것을 말씀하고 보여주고 계심 같다.
그렇다 .
예수님을 떠나지 않아야 하고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보이고계심이다.
끝까지 주님을 놓치지 말아야할 당위성이며
그의 살아계셔서
내 삶에 역사하실
그 기묘 막측함을
지금도 기대로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려도 될 일이다.
모든, 세상의 희망과 끈이 떨어져
홀로 단절되어 느낄수 없는 절망의 고독에 빠진듯한
모든 믿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시다.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이제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내게
우리 , 좁은 문을 선택하는 자들에게
다시한번 잘못 바라보고 있는
아니... 어쩔수 없는 3차원의 세상에서 살아가며
더 높은 차원을 바라보라시는 주님의 뜻에 따라 그리하려 하지만
한계 .. 때문에
세상의 강력한 붙듦에 붙들려
진리를 잠깐 혼동하고 놓치고 있는
'소수'들에게
주님은 '진리의 눈'을 떠라..
진리에 마비되어 있던 영혼의 눈을 뜨거라... 하심으로 들리는 부분이다.
난 .. 안그런가?
솔직히 여러 인생의 어려움 때문에
오직 '심정적 편안... 샬롬' 만을 주시면.. 이라는 간구를 위해
지금껏 주님 안에서 떠나지는 못하고있지만
내안에 잠시의 평안이 지속되면
또 주변이 잘 풀리고 내 의지대로 흘러가면
난.. 여지없이
또 게을러지고
내 옛 구습들이 활개를 치려 기지개를 침을
난 .. 경험하고 있다
그것.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이들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간구하고 나름 순종하며 나아가는 그 본질에는
'나병'을 고침에만 있음이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병고침' .. 거기까지 란 이야기다 .
정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그 고대의 시간에
중동 뙤약볕에
조금은 시커먼 육신을 입으시고 내려오셔서
겨우
내 마음의 흔들림, 육신의 약함 만을 고치려 하셨단 말인가?
하나님이신 그 분께서
방법이 없으셔서
겨우 우리의 병을 고치시는 댓가로 '하나님'을 믿는 자 늘어나게 하는
그런.. 편협하고 능력없는 분이시란 말씀이신가?
그게 .. 사실인가?
오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신다.
나병고치심..
우리의 영적 나병을 고치심은
구원을 위한 도구이고
이처럼 고침 받고 돌이켜 진정한 구원을 향하여 오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지
그게 본질이 아님을
다시금 말씀하시기 위함이시다.
온전한 구원을 향해 눈뜨다.
영적 나병이 고침을 받음은
진정한 구원을 위함이실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 내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신가?
내가 진정한 구원을 위하여
오늘 취해야할 스텐스는 무엇이며
어떻게 또 하루를 살아가야 맞는가?
위의 나병환자들의 열렬함을 회복해야 한다.
아직도 내 안에 버걱거리고 살아나는
주님이 원치 않으시는 '더러움'들이 있다.
주님은
내게
복잡한 것을 원치 않으심이시다.
다시금.. 주님이 말씀대로 날 돌이키고
그 말씀대로 살다가
주님 부르실 때까지
점점 더 말씀에 가까운
깨끗한 영혼으로 성화되어 가는 것..
그것이
날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아니실까?
또 다시
돌이키고 일어서야 겠다 .
주님 앞에 와
감사의 무릎을 꿇고
지금껏 살려주시고 인도하시고 회복시켜주시었음을
감사감사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금 힘을 내
이 의미없는 3차원의 헛것들을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힘을 내 가야 하리라.
감사하다.
주님..
진리이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감겼던 눈의 뜨이고
나병으로 보지 못하던 눈을 밝히시사
새로운 지경을 보게 하셨습니다.
주님.
그러나.. 미련하게도
밝혀진 눈, 회복되어진 육신과 마음을 통하여
또 이땅의 썩어질 것들에만 고개를 돌리려 했습니다.
아닙니다.
주여.
주께서 몸바쳐 절 구원하시고
절 살려주신 그 뜻과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 앞에 다시 무릎꿇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겠습니다 .
오늘 더 그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온전한 구원을 향하여
다시금 돌이키고 나아가야 겠습니다 .
날 막아서는
사랑없음과 긍휼없음을
주님 성령의도우심으로 내려 놓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주여.
도우소서.
이 땅을 살되 천국을 살아가는 제가 되게 하소서.
비올 것은
이 영적 나병처럼
마비된 믿음, 마비되어 느끼지 못하고 사는 죄들로 부터 회복시키시사
영육혼간에 새로운 회복을 허락하소서.
아픔.. 육신의 그러함을고치시소서.
그러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위해 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께 하시니 함께 계시니[시46:1-11] (0) | 2021.02.24 |
---|---|
즐거운 기름으로 좋은 말하는 하루 [시45:1-17] (0) | 2021.02.23 |
용서는 내가 마땅히 해야할 일일 뿐이다[눅17:1-10] (0) | 2021.02.21 |
불의한 청지기일 수도 있을 모든 분에게[눅16:1-13] (0) | 2021.02.19 |
버릴 것은 버림이 마땅하다[눅15:11-32] (0) | 2021.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