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진정한 기쁨을 위하여[느12:27-47] 본문
30.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분위기.......
들뜬 것을 넘어서는
강렬한 기쁨.
뜨거운 기쁨.
그러나 차분한 기쁨.
눈물 나올듯한 감동의 기쁨...
지속적이고 점차 커지는 기쁨...
모두가 하나되는 기쁨... .
그런데......
그런 기쁨 가운데
모두가 술먹고 좋아서 환락에 빠져 들어가야할 그런 상황에
'정결'이란 단어가 나온다 .
그들 기뻐하는 군중 무리를 마주하려는 제사장 들의 준비과정이지만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쁨... 흥분, ..등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는가?
이제 .. 나.. 우리는 안다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은혜의 기쁨..
그 분의 전율로 인한 기쁨이 어떠한 유형인지...
그리고 그 기쁨의 배가, 유지, 더함을 위하여
우리가 선택해야할 부분..
그 부분을
오늘 말씀에서 보이심이시다.
'정결'이다.
선택적 정결.
선택되어지는 정결...
그 가운데, 그마져도 기쁨으로 되는
그런,
세상의
육신의 ,
육신 만의 세상에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이 이율배반적 (난.. 양자적이라 표현한다.ㅎ)이나
번연히 ^^* 존재하는
진정한 기쁨을 위하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것..
당연히도 기쁨으로 해야할 것이
'정결'이라는 말씀이다.
42.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주여.
오늘 저도
크게 기뻐하고
크게 찬송하며
그리함으로 정결함을 결심하게 하소서.
그것을 기뻐하시는 주님을
제 영혼이 느낌으로
더더 크게 찬송하는 기쁨으로 살아지게 하소서.
43.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
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내 주여.
그렇습니다.
저희가
제가 즐거워 함은
주님께서
크게 즐거워 하게 하심으로 인함이며
그 즐거워함을 즐거워 하여
주님께 기쁨으로 올리는 결심과 선택으로
허락되어지는
더 큰 기쁨으로
크게 즐거워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주여.
아시오매
제 정결치 않은 마음 속을 잘 아시리라 압니다 .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제 속을 잡아 가져오니
그 작은 노력을 정결함을 위한 결심으로 보시고
제 죄를 사해주시고
제가 알지 못하는
절 지금까지 혼돈하게 했던 오염들을 제거해주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김 받음을 믿게 하시고
성령으로 태워주심을 알게 하시어
제가 더욱 큰 기쁨,
진정한 기쁨,
옳고 바르고 당연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에 감동되어
기뻐하게 하소서.
기도한대로 되게 하소서 .
내 주여.
더 변하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2009.02.15
감사하며 노래하며 ( 느12:27-47 )
참 이쁜 아이.
이쁜 얼굴 만큼
이쁜 표정을 짓는다.
이쁜 표정 안에는
이쁜 마음이 들어 있으리라.
이쁜아이의
이쁜 마음을 담은
이쁜 표정이
내 마음을
다
이쁘게 한다.
주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이쁜 마음을 불어 넣으셔서
노래하는 영혼을 주신다.
노래하는 자로서의
나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주님을 위해
주님이 주실 기쁨으로 인해
노래하며 살리라.
27. 예루살렘 성곽이 낙성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28.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동네에서 모여 오고
43.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
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 감사하며 '
' 노래하며'
오늘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다.
감사한다.
그래서 '찬양한다' 라는 비슷한 단어들을 찾아보니
즐거이, 감사하며 , 노래하며...의 단어들이 12번이나 나온다.
그들이 기뻐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예루살렘 성벽을 완성하고는
온 백성들이 모여들어 성벽을 두 방향으로 무리지어
노래하고 기뻐하며 도는 모습.
아마 모자라도 하늘 높이 집어 던지는
그런 장면이 연상되는 기쁨의 에너지가 충만한 그러한 모습일 것이다.
이들은 왜 이리 기뻐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리 기쁘기에
그 기쁨의 에너지가 지금까지 느껴지는 것일까?
온 나라가 하나된 이 기쁨의 정체는 무엇일까?
현대에서는 어떤 경우가 이랬을까?
올림픽 금메달 딸때?
월드컵 사강에 들때...
그렇다.
월드컵은 정말 내내 드라마 같은 감동이었다 .
그 기적같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온 나라가 잠을 자지 못하고 하나가 되던
경이로운 일이다.
그때의 그 에너지가 지금 이 성경의 장면과 비슷하지는 않을까?
기쁨의 강도는 비슷할 것만 같다.
그런데, 상황은 다르다.
월드컵은 '긴장'하고 있다가 기적적으로 승리하는 일의 반복으로
쥐어 짰다가 풀어지는 긴장과 이완의 되풀이로
강제적인 느낌이 없지 않다.
남을 누르고 올라간다는 인간 본성의 '악의적 기쁨'이 숨어 있다.
쉽게 말하면 '짜릿한 기쁨'이다.
원초적이고 말초적이다.
물론 승리 후의 결과가 4강이고
거기에는 주님 하나님의 '선교 한국'을 위한
큰 포석이 숨어 있어서 긍정적으로 전환된 에너지의 흐름 탓에
오히려 조금은 선한 방향의 카타르시스 적 기쁨이 남은 이유는 있을것이다.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하나된 마음을 잡아서 한국을 부흥시키고
주님의 뜻에 쓰임 받을 나라로 키우시기 위한 포석.
그에 따른 완화된 기쁨.
오늘 묵상 속의 예루살렘의 기쁨은 차원이 다르다.
온전하게 하나로 뭉쳐서 성벽을 쌓아서 이루어낸 것이다.
경쟁이 아니다.
43절에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라고 나온다.
온전히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쁨이다.
하나님이 기뻐하게 만드시고
크게 즐거워하게 만드신 탓에 생기는 즐거움이다.
그것은 월드컵 승리 후의 '술 한잔 '거쳐야할 자극이 아니다.
어린 아이부터 모두가 심히 즐거워 할 기쁨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인들의 자극에 의하여 반응하는
일시적 기쁨과 그에 따라 식어지는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 감동에 의한 기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할 것이 있다.
이 기쁨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옮겼지만 '예루살렘 성'을 봉헌한 노력을
주님이 기뻐하시고
그 기뻐하심으로 '사람들을 크게 즐거워 하게 하심'으로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진실한 즐거움이다.
난
감사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싶다.
감각을 속이는 짜릿한 , 그리고 순간적인 희열이 아닌
주님이 주신 감동으로
찬양하고 노래하고 싶다.
내 환경이 숨을 막을 듯 자극적이고 긴장 후의 풀어지는
터지는 그런 재미는 아니고
변화없는 삶 속에서라도
주님으로 인하여 늘 즐거운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이 내 영혼을 크게 즐거워 하게 하시는 그런 삶.
그러기 위해서는
난 안다.
내
주님께서 원하시는
내게 버거운
그 어떠한 일을
주님께 바쳐드릴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 .
그것을 받으셔서 주님이 '크게 즐거워 하게 만드시'면
내 영혼은 더욱 더 발전할 것이다.
상황에 상관없이 감사하며 노래하는 삶이 될 것이다.
주님이 바라시는 나에 대한 성벽을 이루게 되어야 한다.
아이의 아픔 탓인가
내 게으름 탓인가
아이를 면회하고 난 후 괜히 슬프려 한다.
마음이 답답하다.
짜증이 나려한다.
수술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올라오는 평상시 그리 탐탁치 않는 모과장이 보인다.
계단이 붐빈다.
어깨가 닫으려 한다.
순간 속에서 짜증이 난다.
한번 '확' 때려 ? ^^;;
그 정도는 아니지만 속에서 불끈 하는 무엇인가 올라오려 한다.
나도 모르게 계단의 모퉁이를 돌아내려 가며
올라오는 그 과장과 다른 한사람에 몸을 경직시켜가며
좁게 만들었다. ^^;;;;;
이구.. 아무리 인격이 바닥이고
그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라도
이래도 되나..
그 미움이 순간 올라오는 이 내 마음의 강팍함이 죄송스럽다.
며칠 째 마음이 '멍'함.
주님 앞에 올바로 서지 못함.
게으름
거기에 이런 황량한 상황에서 의지를 발휘하지 못함.
죄의 유혹에 대한 의지적 절제의 성공함이 필요하다.
주님은 이른비와 늦은 비 사이에 가뭄을 허락하신다.
늘 충만한 충만함을 허락하시는 것은 아니시다.
그 사이의 힘듦은 예루살렘 성벽 공사중의 힘듦이다.
그 과정을 이겨내면 주님은 퍼부어주신다.
당신의 크게 즐거워 하게 하시는 성령으로 ...
적용
1. 미워하지 않겠다.
주님의 은혜가 거두어 지면 왜 이리 삶이 어둡고 칙칙한가?
견디기 힘들다.
불안이 생기려 한다.
짜증이 올라오려한다.
괜한 서러움도.....
맘에 들지 않는 자들을 더 의지적으로 이뻐하리라.
2. 감사하며 노래하는 때를 기억하자.
착하면 복주시는 일차원 적인 것이 아니고
성장하려는 자의 상급의 차원이다.
그로서 얻는 의지의 순종의 감동.
하나님이 퍼부어주시는 크신 즐거움을 기대하자.
3. 성경 일곱장 읽으리라.
4. 노래하는 자.
주님 앞에서만 노래하는 자.
즐거이 노래하는 자들...
난, 주님 만 바라보고 주님을 위한 찬양만 하는 자가 되고 싶다.
기도
귀한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익숙했던 옛감정들이 올라오려하고
괜한 멍한 짜증이 가슴을 누르려 합니다.
주여.
이유는 압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 더 경건히 서지 못하고 습관화된 믿음에
게으름 탓이기도 하고
주님 허락하신 연단 과정임을 요.
거기에 아들로 인하여 가슴이 먹먹하니
무게가 허리까지 내려와
아픈 허리가 더 그리한 것 만 같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예루살렘 백성들의 그 고난은 지금보다 몇배는 더 힘들었으리라 압니다.
그럼에도 무사히 이겨낸 그들의 연단은
성벽을 돌며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큰 행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정체를 압니다.
주님을 위한 인내로
주님이 기뻐하심으로
주님이 큰 즐거움을 그들의 영혼에 부어주심으로
감동이 생기고
그 감동이 견딜 수없는 찬송으로 모임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주여.
저도 그리하게 하소서.
괜히 사방이 가로 막힌 듯
하나님의 말씀 을 들어보지도 못하던 자처럼
어리석은 혼란을 보이려 합니다.
주여.
이제 주님의 뜻대로 의지적으로 인내하려 합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혼란 중에도 '환우와 동료 의사 분'들께
조금은 선한 태도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저로 더 인내하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하는 자로서의 나를 기뻐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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