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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떻든[마23:1-12] 본문

신약 QT

지금 ,어떻든[마23:1-12]

주하인 2019. 4. 3. 09:03


1.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14.03.27 묵상 분

내 지도자 오직 예수

어이없는 세상의 삶속에서

내 갈길 몰라 방황하다가

주님 만난 그제야

다시 생명을 살아낼

의미가 생겼습니다

 

오직

주님 예수 그리스도

당신 만을

내 인생의 지도자 삼아

또 하루의

발걸음 내 딛사오니

 

주여

영생의 길

그 푸르른 약속의 땅으로

절 인도하여 가소서

 

그리 될 줄

확신하오니

주신 말씀대로

오늘도

이루어가소서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한분 뿐.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 만이 내 하나님이시자

내 지도자이시다.

 

섬김

큰 자

그렇다.

큰자는 섬겨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그말씀하시니 그렇다.

 

 사뭇.

머리가 복잡하다.

힘들다.

복잡한게 하루 이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복잡하니 힘들다.

이럴 때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로 날 붙들어 주시면 좋으련만

말씀을 슬쩍 들추어 보니

내가 듣고 싶은 소리가 안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또 내 속에서 '의혹'의 소리들이 들리는 것이 두려워 ^^;

늘 그렇듯 이런 복잡하고 멍할 때는

나도 모르게 아이가 공부해야 함을 앎에도

자신도 모르게 그 주위에서 밍그적 밍그적 다른 곳에 신경쓰면서도

머리의 반이 자신이 해야할 일 근처에서 방황하며 시간을 죽이듯,

나도 지금까지 안절 부절 신문이란 신문을 다 들쳐 보았고

기도하려다가 잠도 들고

그래서 안되어 '새벽기도 찬송'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여

인터넷에서 긁어다 위에 저렇듯 채워 넣고는

들어가며 묵상을 진행하려 애썼다.

솔직히.. 기도하려 시작함을 애썼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 마음은 해야할 당연한 내 이유,

내 살아가는 의미에 대하여

행동으로 해야하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막혀있었다는 이야기다.

어찌 되었든

묵상을 다시 들여다 보고 눈을 감는 순간,

 

' 오직 예수 님 만이 내 지도자'

' 내 지도자 오직 예수'라는 단어가 머리를 치며

가슴이 뻥 뚫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

하나님은 이렇게

내 의지와 예측, 잘 안될 것 같은 두려움.. 등의 예측을 물리치시며

또 이렇게 말씀을 통하여 이야기를 걸어주신다.

그럴 때 , 난 지체없이 글을 써 내려간다.

난.. 글 재가 없고 글을 써 내려갈 어떤 이야기 주머니가 없는 사람이다.

구상하고 기획을 하지 않는다.

 때로 은혜의 줄거릴 머리 속에 떠올리게 하여

그 줄거리를 채우고 싶어 안절부절 하게 하시는 때도 있지만

오늘 처럼 그냥 글을 잡으면

알아서 쓰게 하여 주시는 경우도 많다.

그것,...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그래도

그리 중복됨이 없이 8년 이상을 이리도 글을 쓰게하심이 놀랍지 않은가?

 이전에 예수님 믿기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몇 여인들이..ㅎ

갑자기 내 인생에 들어와서

그들에게 편지를 써보고자 노력을 했을때

한줄을 쓰고는 멍~~

그러다가 찢고..

부모님께, 형에게.. 누구에게.. 편질 쓰려다가 포기하며

내 인생을 거쳐 2장이상의 편지를 쓴 기억이 5번 이상은 안나던

그런, 정말 메마른 심성의 소유자 였음에도

이리 오래 유지시키시는 것은

내 스스로 생각하여도 기적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쓰심,

이 뇌세포죽어가는 머리에 생각을 순간 집어 넣어주시고

이 느려져가는 심장에 은혜의 감동으로 에너지를 밀어넣어주시며

퇴행성 신호가 와 아침마다 '방아쇠 손가락' 증상이 보이는

이 손가락 관절이 성령의 힘으로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시어

이렇듯 글을 쓰게하심이 놀랍다.

 

나.

그래서 주제가 잡히며 순간 감성이 자극될 때

아무 스토리 없이 지금처럼 써 내려간다.

 

나에게 주신 주제.

즉 레마는 그것이다.

' 내 지도자 오직 예수'

지도자.

 

 내 흔들림.

내 멍함

내 불쾌감

내 고민

내 걱정

내 불안

날 붙들려 노력하는 수많은 생각들.

그것들은 '내게 날 하루하루 살게하는 지도자'를 내가 놓침이다.

극동방송인가 기억나지 않지만 설교에서

양의 특성에 대하여 들어보지 못한 예를 말씀하셔서 재미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중 많이 아는 사실 중 하나인

지독한 '근시'인 양은 양치기가 없으면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앞 양의 엉덩이만 보고 갈 수 밖에 없는 정도의 시력이라한다.

 나.

아무리 생각해도 보이는 인생의 의미가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일찍 죽으려 생각했었고

40이후의 나이는 구상을 해본적이 없던 젊은 시절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37의 나이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그 분의 강력한 은혜, 첫사랑과 말씀 인도로 통하여

하루 하루 살면서 지금 이나이 까지

'기적적'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요 얼마동안의 흔들림

가만히 보면 오늘 주신 말씀 '곧 한분 ' '그리스도' 그 분이 '지도자' 이심을

내가 자꾸 잊었던 것이 이유인것이

'지도자'라는 단어의 뉘앙스에서 깨달아 진 것이다.

 

 그렇다.

레마는 '내 흔들림은 내 중심이 흔들린 것이고 그 흔들림은 지도자의 부재' 탓인 것이라는 것이며

지도자는 '당연히도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하심이다.

말씀을 매일 같이 보고 듣되

그 말씀을 내 편의에 의하여 비틀고 생략하거나

큰 고민없이 쉽게 받아 들인 탓일 수도 있다.

 

나.

정말 예수님으로 인하여 완전히 다시 새롭게 되어야 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특별히 허락된 일반은총에 흔들릴 때

더 지도자는 예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이유다.

오늘 '예수'그리스도 그분 만이 내 지도자 이심을 확신하는

기도와 묵상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또 내 오늘을 붙들어 인도하실 '지도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투영해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하던가?

살아계신 그 하나님.

내 지도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제 흔들림을 아시고

한숨을 쉬실 예수님.

그러함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개치 아니함을 믿고

이처럼 변함없는 어려움을 지나오고 있습니다.

주여.

제게 더 힘을 주시사

이제 제 힘으로 말씀으로 준행하는 의지를 키우게 하소서.

우리 주의 도우심으로 차고 있던 영적 brace를 걷어내게 하소서.

그래서 가장 가까운 자들에게 먼저 인정 받는 자 되게 하시고

내 스스로도 주님께 올바른 자로서 서는 확신 가지게 하소서

주여.

지도자라는 말씀에는

지도 받아서 나가야 하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주여.

가르치시고 인도하소서.

양처럼 가르치심 받고 제 힘으로 더 일어나겠습니다.

주여/

도우소서.

'저를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부족한 것 채우게 하시고

잘못된 것 고치게 하시고

잘못했던 것 회개케 하시고

더욱 그들에게 중보를 하게 하시고

은혜 놓치지 않게 하소서.

주여.

그러함에도 제가 나가는 길이

그래도 가장 귀한 길임을 확신하게 하소서

내주여.

주님 이외의 다른 것에 눈돌리지 않게 하소서.

특별히 제가 공부하고 잇는데 지혜를 주시고

어려운 환경에 다른 길이 되면 열리게 하시고

특별히 허락된 과정을 통해서

또다른 회복 이루어지게 하소서.

내주여.

들으신 줄 믿고 기대합니다.

내 지도자 예수 그리스도. .

내 삶의 의미이신 내 예수 ,

오늘 하루도 또 인도하시는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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