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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의 성공[삿11: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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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의 성공[삿11:1-11]

주하인 2021. 11. 24. 11:26

 

1.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능력자.

서출(庶出)

  

2.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본처의 득남.

그리고 알력.

그 안의 상처.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그 아픔은

입다로 하여금 '삐닥'한 시선을 가지게 하였음을 본다. 

 

아.. 

장기의 훈수처럼

왜 남의 일이면 이처럼 잘보이는 지.ㅎ

그 삐닥함은 

누가보아도 '민족'을 위하여 힘있는 자의 의무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냥 '큰 사람'의 기운으로 

아니... 무엇보다 하나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래............하고 시원하게 먼저 도와주고

나중에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허심탄회하게 

그들과 대화로 풀어내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함의 근거는

'자기의 아픔'이 

옳은 , 타인을 위한 도움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이며

그 자신의 아픔이 

그렇듯 오래전 부터

지금까지.. 

아니 이후에도 사람의 관계속에서 

똑~~같이 흐를 것임을 

오늘 '입다'의 말을 보면서 깨달아진다. 

 

 

 즉... 

'나 만을 위하여'과 '남을 위하여' 사는 삶의 차이는

내면의 문제이며

그 내면의 문제를 뒤흔드는 것은 

오래된 '상처'라는 것이다. 

 

 또한, 

그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고

그를 '선택'하게 

하나님께서는 매사 '도움' 은혜, 성령,  때로는 강력한 은사를 통한

도움을 주시며

넌지시 권고하시는게 

'인생'의 모든 그려진 그림들의 근본이유라는 것이다. 

 

 그것.

이제 

입다님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지만

너무도 유사한 마음의 흐름을 허락 받은

나................에게

수천년의 시간을 격하고

오늘 

새삼

들여다 보게 하심은 

이전의 상처의 아픔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담담히 '선택'을 할 힘이 생긴 

지금 이시간, 

오늘에 허락하신 이유를 

같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심이시다. 

 

 제목대로 

매사

'나를 위하여' 살것인가?

아.. 나 만을 위한 판단으로 그리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타인을 위하여 나를 내려놓은 선택을 할것인가 물어보심이시고

그 때 '타인'을 위하여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내면의 강한 반발이 훨씬 덜한 시간..이 

주님이 그동안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어느새 많은 영적인 힘을 키워주신 덕이심이시다. 

 

 

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

 

그러니............

오늘 ......

내 눈을 들어 이 육신의 세상

이 3차원의 세상에서 

내 눈을 통해 

내 마음으로 들어온

이 판단의 시간을 

하나님의 이유로

'나를 내려 놓고' '남을 위한' 시간을 가지길 원하신다.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온다 .

그 '입다'가 

자신의 아픔을 딛고 

남을 위한 (어쨋든 여러 비굴한 경로를 통하여지만.. 결국 극복할 수 있었음은 ^^;) 선택은

'자기의 말을 다'.....'주님 앞에 아뢰'는 

그의 '영성'에 있었다 .

 

 그렇다. 

산다는 것.

거의 만년을 다하는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드라마 속 수백년 전 궁궐 속이나

이 PT시 이 자리의 '내 '속이나

뭐 그리 인간관계의 흐름은 달라지는 것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결국,

원죄에 의한 파생된 자범죄들... 

자아와 타인을 근거로 한 '하나님의 원하시는 영적 상태'........

그로 인하여

그 사이에 선택의 잘 , 잘못으로 인하여

펼쳐지는 모든 알력들..............과 '승리'의 모습들의 어우러짐에 다름아니다 .

 

그렇다면 ~!

 

하루라도 빨리 

자아의 아픔을 내려 놓고 

아. .주님 십자가 앞에 가져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허락되어진 

은혜로 힘입어 내려놓게 되고.........

그로 인한 영적 심적 버퍼로 말미암아

뚜렷이 알게 되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해야 한다 .

 물론, 여렵다 .

쉬운게 없다 .

이 영적 전쟁에서 '자아'에 매몰되게 하고

상처를 크~~게 크게 오래 드러나게 하여

자신의 '자아'를 옴추려 보호하게 하려는 

사단의 편의 공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대로 

'자기의 ' 모든 것을 '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매일 

그것도 말씀이 있으시니 

더.........

그렇게 가져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아...

내게 하시는 말씀이시다. 

 

감사하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 성격.

주님.. 이제는 확실히 아오매

왜 그리 불뚝 불뚝하는 지도 

그게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자꾸 되풀이 하게 되는 지도 

많은 주님의 인도하심과 깨우치심에 의하여 

은혜로 인하여 

강력한 인도하심의 증거로 인하여 

이제 뚜렷이 압니다. 

 

 '자아'가 다치기 싫어함

옛 상처의 아픔들이 또 건드려지는 상황이 싫어 

싸매고 싸매고 싸매며

그 안에서 그나마 편안하게 습관처럼 지내려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전혀 홀로 살수 없는 바

이 안에서 

매사 선택의 시간에 

조금은 더 너그럽고 넉넉하게 되려면

그 기본은

'나보다

나의 기분보다

'남을 위하여' 

아.. 그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임을 

오히려 기쁨으로 알아

매사 그리 선택하는 것이 

습관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오늘 말씀이 있으시니 

모든 말을 다 

주님 앞에 아뢰고 

주님이 허락하시는 

당연한 '남을 위한 이타적 삶'.. 

그안에서 '날' 더 기뻐하여 주시는 위안의 삶을원합니다. 

내 주여.

그것.. 옳다 보실줄 믿사오며

제 오늘 하루의 판단의 옳음을 위해 

매사 지혜를 허락하시고 

자아의 몸부림을 구분하게 하시며

타인을 위한 선택

자신의 그러함을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선택,

나를 위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주님이 그런 나를 기뻐하심으로 

평강과 은혜와 능력으로 보응하실 선택이 될 것임을 

알게 하소서.

믿게 하시며

확신하게 하소서.

그리함으로

오늘 하루

입다의 성공을 넘어서는 옳은 성공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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