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 버거운 인생이 오직 은혜련가[민35:22-34] 본문

구약 QT

이 버거운 인생이 오직 은혜련가[민35:22-34]

주하인 2023. 5. 25. 00:17

 

(펌) 급박히도 건져내어 살려주신 예수님 구원이 진정 감사할 따름이다.. 정말.. .^^*

나의 도피성 예수

 

그 막다른 골목에서 날 구원하셔

주님 품 안으로 건져내어 숨겨 주신 

내 구원의 예수

 

그 이후 내 삶은 

바야흐로 시작되었고

시간은 흐르기 시작하였으며

안전함의 어떠함

그러한 삶의 행복이 어떤것이지

이제 바야흐로

깨닫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막같은 버거운 인생의 고통

이 생 내내 걸어야하는

도성 안에서 만의 걸음 같은 

답답한듯한 인생 행보의 지루한 이어짐^^;

 

하지만 그게 진정 행복이었음을

수없이 많은 패착의 시간을 거쳐서 도달한 지금..

이제야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아.. .

주께서 그러신다 

주하인들아 깨달았는가?

네가 

네 영혼이 

내 거주하는 이 땅의 인생임을

네 걸어가는 삶이 

내 손잡고 동행하는 길이었고 길 임을?

 

아.. 주여

알겠나이다

오직 이 삶은 

주님의 은혜가 이유였고 의미입니다.

 

주여..

결심합니다. 

살아 있는 제 나머지의 시간동안도

오직 주님 말씀 만 붙들고 살 것을요.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내 영생의 구주시여.. .

 

 

25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

 어쩌면 '우리'가 이 땅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

의도하지 않은 '살인자'의 그것일 수도 있으며

깨닫지 못하고 살지만 '피를 보복하려는' 자의 위협,

사단의 상징으로 생각되어지지만 

매일 매일 주님 모르던 시절,

영멸의 시간을 향해 한걸음씩 죽어가던 것일 것 같단 생각이 불현듯 든다. 

 

 25절의 이 표현.

아침부터 마주하기 버겁지만 

이러한 우리를 '건져내어'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게 하신 

그 급박한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손길이 

새삼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진정이다. 

 

 난... 피할길 없어 마주한 절벽위 '부지불식 살인죄의 죄인' 같았던 자가 맞았다. 

그러한 나를 

37살 마지막 며칠을 앞두고 

'건져내어' 살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철저한 구원의 은혜'.. 

그 도피성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놀랍고 감사하다 

 

26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가면

 그러나.. 

'부지불식의 죄'이지만 

그 죄도 '살인죄'가 맞고 

부지불식의 미움과 버거움도

'죄'는 죄다. 

그것을 도피성에 구원받아 들어 왔지만

'살인자'로서의 '죄' 자체는

무시하고 잊지 말라심 같아 들린다. 

주께서 '조용히... ' 그러나 '준엄히'.........

마치 '모세'님을 사랑하시지만

그의 '죄'에 대하여는 미리 불러 올리셔

백보좌 심판대에서

천국의 상급을 위한 심판 때 다시 상기 될 '죄목'처럼..........

 

 그래서, 그런데.. 

도피성 안에서 그 첫사랑의 안전감 안에서 '휴우'하면서 감사하던 시간들이

어느새 흐르고 지나며

'도피성'은 '한계'..'제한'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게 인간 아닐런가?

가만히 있자니 좀이 쑤시고 

좁은 하늘 만 바라보며 갇혀 사는 것... 

그게 평생이라 생각하면

좀이 쑤시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것.........ㅠ.ㅠ

 

28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답답함이 견딜수 없는 것이 당연한....

 

 그리고 '살인자가'.. 하시며

굳이 '살인'... '죄'에 대하여 지적하고 계심은

그 도피성의 답답한 삶, 

이 인생 광야의 버거운 연단을 통하여 

어쩌면 '더 정화 '되어야 할 당위성을 보게 하심이기도 한 것 같다. 

 

 각설하고 

나..

 예수님 믿고 정말 기쁘고 날아다닐 것 같았다. 

정말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날아 다닐 것 같았고 

꽃이 하늘 거리는 것이 춤을 추는 것 같았고

아침 이슬은 어찌 그리 영롱하며

하늘은 맑고 투명하였던지

새가 노래하는 듯하다는 표현.........

그게 내 마음이었다. 

  사랑하는 자에게 꿀잠을 주신다고 

새벽 네시까지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것이

어느새 10시만 되면 쏟다지는 잠으로 기절하듯 잠이 들고

아내와의 대화는 결혼하고 10년 가까이 하던 대화보다 많은 양의 대화를 나눌 정도로 사랑스러워 보이고

하나님 .. 단어만 나오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운전하던 '차'를 한 곁에 세우던게 한두번이 아니었었다.

 ..........

그러던 '주님 품안의 안전감'도 

수개월 지나며 서서히 익숙해져 갔고 

어느새 .........그러던 것이

'예수님 믿고 나서 받는 제약'을 이유로

"주여.. 주를 영접하고 나서 제게 이런 무게가 더 더해졌어요.

십자가 말이지요..........." 하며 몸부림치던 일들이 

서서히 생겨나지 않았던가?

 

당연히도 허락되어진 주님의 뜻 안에서

'성령의 은혜'와 '그런 답답함'의 롤러 코스터 타는 듯한

은혜와 고통의 굴곡이  되풀이 되면서도

서서히 굴곡의 폭은 줄어들고 횟수도 점차로 잦어들며

이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사'로 

이 땅, 

주님 구원의 품

이 도피성의 삶에 대하여

적응하며 살고는 있지만 말이다. ^^*

 

34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
남은게 있다. 

익숙해진다는 것.

감사하는 마음이 옅어지고 감동이 줄어드는 것.

때로 '죄'에 대하여서도 무뎌지는 것이다. 

 

많은 시간 

주님과 동행하며 

넘어지고 일어나며 

또 넘어지고 일어나는 일들을 되풀이 하면서

이 도피성 안의 좁은 움직임도 자연스러워 졌다. 

그리고 이 '도피성'이 

실은 '영원의 자유'를 위한 '테스트'.. 연단의 과정

구원 받은 자격자들을 위한 일시적으로 거쳐가야 하는 시간임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기에 더 

'주님이 함께하시며'

코람데오 하며 살아가야 하는 치열한 이 연단의 장소

오늘 표현하시는 말씀처럼

'내가 거주하는 땅' 

마치 내 영혼을 '법궤'같이

'성전' 같이 임하셔서 

이 마련하여주신 도피성 땅이 

우리를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우리와 동행을 기뻐하시는 주님의 '거주하시는 땅'이기도 하다. 

 

 이 놀라운 비밀.

'내가 주 안에 주께서 내 안에...' 

나는 걸어다니는 주님의 성전이자

주님의 성전에 내가 들어가는 

이 비가역적이자 가역적인

양자적 원리.........를 

깨달아 아는 자들에게 

이 삶은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땅'으로 되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내가 거주하는 이 땅'을 '더럽히지 말라'심은

'좁은 길을 걷길 결단한 선택받은 소수' 들에게는 

요즈음 계속 묵상하는 바처럼

'모세님의 유한의 시간 동안에도 최선을 다한 순종'의 모습을 

주께서 말씀하시는 듯하다. 

 

 즉,

도피성에 들어와 생명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기 시작하며

드디어 시작된 이땅에서 '출애굽' 후 '광야 연단'의 시간들을 보내며

정금같은 성화의 영혼이 되기 까지 

수없이 많은 좁은 '도피성'안에서의 좌절 같은 

마음의 고난까지

감사함으로 치환되어

마침내 '고요하고 담담하며 초연하기까지 한' 

모세님의 그 시간까지 가 있는 자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좁은 길을 가는 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집중하게 하시는 

당부이자 경고이시며 가르치심은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심이시다. 

 아직 주하인 같이 부족한 자들에게는 

표징으로 삼으라고도...

 

 그리고 그것..

죄로부터 완전한 벗어남......아닐런가?

 

아.. 나..

아직도 깨알같은 죄들이 콩볶듯 튀어오르려 하고 있다. 

그때 .. 

과감히 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하리라. 

 

나.. 

목숨의 경각시간에 

철저한 주님 예수 보혈의 은총으로 

구원받았고 

그사랑에 감격한 '안전감'으로 수개월을 

정말 떠 다녔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수없이 많은 굴곡의 '광야' 연단 가운데서도

내 영혼을 그득채우시는

'실제하신 하나님' 

'온전하신 하나님 안' 

'강하고 든든한 하나님 요새 안의 평강'........으로 커져오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제.......

내 좁은 성의 삶이 '덜 괴롭다' 

덜 지루하다. 

오히려 재밌고 기쁘고 감사하고 

이어지고 커지며 지속되는 '행복'의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 

 

바라기는

내 남아 있는 '결점'... 

그 부지불식의 살인이라 표현하신 '어찌할 수 없었던 미움'들의 흔적.......과

육신의 끌림으로 인한 타락한 정욕의흔적들을

이제는 더욱 더 신경 써 내려 놓아야 할 것 같다. 

이전은 홀로 불가능할 저항불가의 두려움이었다면

'말씀'이있으시고 

성령의 은혜가있으시고

예수 품안의 확고 부동한 안정감과

내 곧 있어 들어갈 '천국'의 행복, 

아.. 온전한 부활체로의 그 영원한 삶의 확신이 생겼으니

더 쉬이 내려 놓을 수 있을것 같다. 

진정 감사하다. 

 

 주님.

'피난처이신 예수님'

내 급박했던 도피시절에 

크고 강한 손으로 끌어들여 문걸어 잠그고 보호하시던

그 도피성..실제의 도움이신 

내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돌이켜 보아도 감사하고 

앞을 내다 보아도 감사하며

지금 내 주위를 돌아보아도 감사 뿐입니다 .

 

홀로 영광 받으소서. 

주님

도피성이 바로 

지금 내 살아 가는 이 삶이며

내 하루 하루 시간시간 들이 

도피성 안의 시간들임이 새삼 확신이 됩니다. 

 

참... 감사하고 

참 ... 지루하기도

참...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 도피성의 삶을 통하여

어느새 제가 어찌할 수 없어 숨이 막히려 했던

그 '죄'와 '악'들이 벗겨져 나가고 있음을요.

 

이제.......는

정말 

그 어떤 유혹과 좌절도 

절 흔들수 없음을 확신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소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님을 부인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가 거하시는 이 땅... 

내 영혼에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때.. 

주께서 마지막까지 버리기 원하시는 그 깊은 버거움들을 마주하라하십니다. 

내가 거주하는 이 땅을 더럽히지 말라십니다. 

아.. 

제가.. 

제 영혼이 

제 육신의 틀 안에 

주님이 거하신다시며 

더 이상 이 내 모든 것으로 알고 살아오던 것들이

내것이자

내것이 아니며

주님의 것임.. 

드디어 온전히 주님이 거하실

온전한 '영혼'.. 성화된 영혼...

주님과 제가 하나될 영혼의 '결국'이심을 선언하십니다. 

 

아.. 감사합니다. 

예언이자 '실제 '임을 선언하십니다. 

 

주여.

그러니 더 .. 온전한 주님과의 합일을 위하여

더 깨끗해야 겠습니다. 

 

주여

도우소서.

아직도 '유혹'에 자신이 없습니다. 

아직도 '순간 올라오는 도피성 이전의 결점'들로 부터 자유롭지 못함이 답답합니다. 

 

주님의 바램에 순종하고 완전히 극복하여 드릴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어제 저녁에도

내 '죄악'에 실패하여 기도가 버거울 줄 알았던 시간에 

오히려 깊은 '찬양'과 임재감 안에서 기뻐하게 하시던 

주님의 '주권적'인도.. 

순종하려기만 하면 임하시는 임재감을 

선물하셨습니다. 

그 경험을 도구로라도 

더욱 더 깨끗한 저를 유지하기 위하여

주님께 온전한 땅을 드리기 위하여 

최선다한 하루 살려 하겠습니다. 

도우소서.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