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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강하고 담대해도 된다 [수1:1-9]

주하인 2013. 11. 12. 08:13

이제는

강해도 될 듯하다

홀로 있음이

그리 외롭지 않다

 

이제는

담대해도 될 듯하다

작아 보임이

그리 창피치 않다

 

주님 향한

열정 만으로도

난 이제

충분히 아름다운 듯하다

 

주님

말씀하시니

그리 느껴도

이제

괜찮을 듯하다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

"~니"

 

내가 너희 모두 주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까? .. 라시는

권고 내지 안타까움 내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주지 시키시는

뉘앙스 !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

'네 평생에 .. 주하인아.. 대적할 자가 없을 만큼 대단하게 될 것이다'

 

'~ 니'

버리지 않을 것이니..

떠나지 않을 것이니

 

아..

하나님이 그러하실 것임을 주지, 확인 , 또 확인 시키신다.

감사하고 힘이 나고

다시한번 내 속을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다.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강하고 담대하라' 라 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지... .

그래서 나타나는 다른 '비좁은 마음', 겁내는 마음은 없는지...

혹은 그로 인한 파생된 죄악된 심사는 없는지. ..

돌아보아야 겠다.

 

 

 어제 저녁

퇴근하고 차가운 바람을 뚫고 라이딩 해서 볼일을 보고

집에 느즈막히야 들어갔다.

 

11월 24일 .

용인의 모교회 목사님 초빙으로

아들과 특송 및 간증 부탁 받아 가게 된 시간이 조금씩 가까워져서

아내에게 같이 가기를 부탁했다.

안 간단다.

이해가 간다.

늘 아내와 같이 다녔었는데 아내가 기도의 용사라서 인지

목소리가 기도 많이들 하는 권사님 목소리로 바뀌었다.

하이톤이 안올라가는..^^;;

이비인 후과 검사까지 했으나 성대결절은 아닌 듯하나 .

그래서 얼마전 부터는 외부 특송 요청에 일체 자제를 했으나

얼마전 본원에 오셨던 '용인교회의 목사님'께서

영성 및 시에 대하여 많은 교분을 나누고 돌아가셔서는

블로그에 방문하셨다가

아들과의 찬양 동영 상을 보시고는

그리 초빙을 하신 것이시다.

 아내에게 '가족'으로서 힘을 주기를 요청했던 것이

아내의 거부에 '속'이 조금 '흔~들 '했으나

그 심사가 이해는 간다.

늘 내자리 옆에 같이 있었었는데~~

 

그리고는 '그날 간증 및 찬양'을 이렇게 하겠다는 말에

아내는 '그러면......' 이라고 제동을 건다.

그거..

맞는 말이다

그런데 속이 막히려 ..하여 말을 멈추었다.

받아 들이지 못하는 내 '좁은 속"? 이 한탄스러우려 했다.

'더 좋은 말로 대화하면 발전적일텐데... ' ... 아내의 FM식 어법도 속상하고.^^;;

 

에라..

그냥 말씀에 맞추기로 했다.

어제 그랬다.

' 으뜸이 되려는 마음'.

하나님이 내가 늘 중심에 서지 않으면 '흔들리는' 

'진실'을 직시하게 하시는 것이시다.

그랬더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청경지수..

젊은 적 성질 급하고 불같은 화를 잘냈던 나의 진실이

이런 바탕에 있지 않던가?

참........우습지만

어쩌면 그러한 별거 아닌 것들의 조합들..

그리고 그 것들이 가려지고 위장되어 타인에게

'통크게 '나오면

그거야 말로 어제 말한 '디오드레베'의 악한 죄가 아닌가?

지금 시대......

그러한 것들이 자제되지 못하고 마구 뻗쳐 나오면서

세상은 온통 '악한 것'들로 도배가 되어 뉴스화되고 무뎌지고 있지 않는가?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려니

수십년의 습관이 날 누르려 한다.

' *&%&*( ..  그래서 .. 싫어...' .

이러한 생각들.

'싫다' .

어느 때까지 이런 생각들의 오류에 의하여 아침이 영향을 받을까?

가만히 느껴지는게

어제 아내와 잠깐 얽혔던 그런 감정 뒤에 숨겨 져 있는 '사단의 소리'들이 아닌가?

유형은 좀 달라도..

(그러그러한 논리로 유발된 미움과 속상함....두려움.. ..^^;;;)

말씀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하면 된다.

 

말씀을 들쳐보니

'~~니'

'강하고 담대하라' 신다.

 

그렇다.

난 강하고 담대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하라 라 심은

그렇지 못한 나에게 그런 것을 상기 시키심이다.

또 아침이 힘이 생긴다.

말씀으로 또 찾아 오신다.

 

'강하고 담대하라'를 다시 묵상했다.

강하고 담대하라.. 하실 때

명령하시는 것 같지만

말씀은 그 말씀이 레마로 받아지면 그리 된다.

'예언' 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 ~니' 하신다.

함께 하시니.. .

확실히 도우실 것이니 강하고 담대해질 것이다... 믿어라.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라.. 시는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지만

묵상하는 나에게 말씀하신다.

그게 내 흔들리는 심령의 감동을 보아서 그렇다.

 

강하고 담대하라.. 라 실 때는

나의 '의지'와 '선택'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의지와 선택의 훈련.

하나님은 훈련을 통해 나의 믿음을 늘이신다.

 

이제 그렇다.

예전에는 '~해라' 라시면 무조건 싫었다.

강요는 ....절레 절레..

어려서 부터 그 많은 해라..와 하지마라..와 비판에 눌려 살았는데.. 하면서..

 그러한 시간이 많이 많이 지나갈 동안

하나님은 그래도 인내하셨고

사랑으로 날 바꾸시었나 보다 .

점차로 '그래도 순종해야 하는.. ' 하며 말씀을 들여다는 보지만

실생활에서 율법적으로 느껴지는 게 싫어서 한동안 갈등하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 ^^;;

그러다가 말씀이 감동으로 점점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하며

하라.. 하실 때 순종하는 시늉만으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이 영혼으로 조금씩 눈치 채여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하나님 안에서 삶이 변화여지며

이제는'레마'로 느껴지고

레마, 즉 감동이 동반된 나에게 주어지는 말씀일 때는

그것은 '예언'이고 '위로'고

하루를 살 아버지의 아들에게 주시는 '지침' 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

믿음을 훈련시키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끝없이 인내하셨다.

내 부족함은 너무나 많았지만 하나님은

그 끝없는 사랑으로 날 여기까지 변화하게 하셨다 .

 눈뜨고 살 때 , 변하지 않는 내가 참 속상한 듯 했지만

말씀에 투영을 해보니

그래도 난 여기까지 성장했구나.. 싶다.

하나님의 은혜다.

날 붙들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시다.

그게 느껴지니 감사하다 .

 

오늘 ...

말씀으로 '나와 끝까지 동행하시고 힘주시니... '

강하고 담대하라 .. 신다.

 

강하게 되어도 된다.  난.

담대해도 된다.  난...

그렇게 살지 못했었음은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 말씀'이 아닌 '다른 소리'들을 믿고 살았었음이다.

의미있는 타인들을 가장한 '나쁜 소리'들.

 

이제는 아니다.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하여도 된다' .. 하신다.

이제는 그렇다. . .하신다.

저렇듯 애절하고 간절하게 권고하신다.

내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 ^^*

 

 

적용

 

1. 성경 세장 읽으리라.

 이렇게 글로 다짐을 적지 않으면 하루를 그냥 넘어갈 때가 많다.

이 어리석은 주하인이여.

하나님의 말씀은 매일 먹지 않으면 영혼이 말라 죽는다 !!

 

2.  '~니' 하신다.

 내가 밟는 곳을 다 주실 것이시니..

 늘 함께 하실 것이시니...

 ............니...... 하신다.

 믿는다.

 

3. 강하고 담대하라.. 라 하신다.

 그러리라.

 속상함 , 미움, 두려움은 내가 약하다는 전제하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가 약하기에 손가락질, 질타.. 도태됨, 떨어짐.. 이 두려운 것이다.

 그것을 짚어내어 현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자들은

 그 내 두려움을 눈치 채는 자들이다.   혹여.. 그래도..

 결국.. 내 문제라는 이야기시다.

 난.. 강하고 담대한 자다.

 그럴 자다.

 그게 내 운명이다.

 실제로 난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믿지 못했음은 '믿음 ' 부족 탓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 대신 사단의 소리를 믿어왔을 뿐이다.

 난 강하고 담대한 자다.

 하나님이 도우시니 그런 자다.

 그렇게 될 자다.

 그것을 믿을 것이다.

 그리고 용서할 것이다.

 

4. 난 괜찮은 자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믿음'이 커가는 자이다.

 달라지는 자고

 변화하는 자다.

 말씀을 믿는 자다.

 그러기에 ... 나 괜찮은 자가 맞다.

 

 

기도

주여.

기도제목이 많아서

엊 저녁 그 추운 길을 '자전거'를 타고 집에가다가

시장에 들러 라이딩에 필요한 귀마개와

호떡 몇개와 빼빼로를 사서 뒤에 넣고

아내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행복해 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리고는 기도원에 가서

추운 바람을 튕겨주는 완벽한보온 복장 안에서

아직 가을 풍경이 사라지지 않은  깊은 밤 속에서 벤취에 앉아

주께기도드리고 왔습니다.

아.

전 이제는 확실히 압니다.

주님께 기도함이 '기쁨'이라는 사실을요.

기도원은 '많은 분들의 기도'가 쌓인 곳이어서 인가요?

갈때마다 주님은 제게 깊이 만나 주십니다.

비록 큰 깨달음은 얻지 못했지만

어제 주신 말씀을 통하여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여.

그 말씀을 통하여 마지막까지 적용 잘하고

아침에 일어나니 오래된 무기력함을 느끼려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주여.

그래서 얼른 기도와 더불어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제속의 부대낌을 하나씩 마늘 까듯 명료화할 수 가 있었습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

아마도 제 낱개의 경험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다른 깨달음의 도구가...

저에게는 '승리'의 경험이 또하나 쌓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날이 갈 수록

조금씩 조금씩 발전되고 변화되는 ,

그러면서도 '의미'의 차원에서도 사뭇 이해가 되는 폭의 넓혀짐을 허락하심이 그랬습니다.

 

 오늘은

이제는 '강하고 담대해도 된다'라는 뉘앙스의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영접합니다.

비록 전 '여호수와' 같은 믿음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될 듯한

그래서 강하고 담대해질 것 같은 예언의 느낌이

기쁨과 더불어 다가왔습니다 .

감사합니다.

내 주여.

아직은 '저항하는 ' 내속의 부대낌들은 있지만

이제 곧

저는 더욱 튼튼한 하나님의 사랑받는 소수로

성장해 나가게 될 것임을 느껴가고 있습니다.

전혀 제 잘나지 못한 인격과는 상관없이 그러함이 놀랍습니다.

그때쯤, 이제 더 이상 저는

제 생각과는 아무 상관없는

인격의 향기가 나게 될 것이고

마치 '나사로'가 썩은 천을 풀듯이

예수께서 부활하셨듯이

아직 차고 있는 그 붕대들이 없어지고

전 예수의 보혈로

다시금 완전히 새로운 영혼으로 거듭난

"보라 새사람이 되었도다"하는 선언을 들을 날이 기대가 됩니다.

이제... 강하고 담대할 자...

곧 그렇게 될자,

그렇게 하려 결심하는 자... 주하인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 아들들과 아내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끼치소 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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