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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것은 나다 [마21:12-22] 본문

신약 QT

이상한 것은 나다 [마21:12-22]

주하인 2019. 3. 27. 08:46



 
15.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대제사장 들과 서기관들의 눈에

아니 그때 그 곳에서 아무 정보도 없이

예수께서 하신 일과 주변의 버거운 일을 보았더라면(화내시고, 고치시고...아이들이 찬양하고..^^;)

이상히 느꼈을 수도 있다.



19.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도저히 하나님이신 예수님,

죄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이기에

이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

무화과를 저주하시는 일까지도

서슴없으시다.



20.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아.. 

장래, 미래를 아시는 분이

저항없이이 세상에 내려와 십자가 달리실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시긴 하시지만

그 처절한 두려움에 의거하여

우리가 아는 '인자하신 예수, 치료자 예수, 인내와 사랑의 예수'만을 알던 눈으로

이 저주와 화냄을 보시고

'이상히 '여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그런데

그러한 심적 부담을 허락하시고는

'의심하지 마라' 신다.


무엇일까?

왜 이실까?

그러한 이상함...

그 이상함을 보이심도

내 믿음을 위함이셨다는 말이신가?


무엇을 보이시고 무엇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시던가?



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혹여

내 주변에

내 기도에도 불구하고

전혀 내 바램과 주님과 동행하였던 이전의 것과 다른

이상한 기류가 형성이 되었음에도

그 마져 하나님이 하시고 계심이시고

그 안에서도

가장 선한 것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으라 심이시던가?


나.

오래 묵상을 진행하면서 (15년 정도 블로그 운영하는 기간 만 이다.. )

전혀...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작위적으로 글을 쓰려 생각해서 된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不可' 했으리라.

당연히도..


우선... 글 재주?... 난 글을 써 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 편지를 잘쓰는 형님이 그리도 부러워 흉내를 내다가

한번도 완성을 시켜본 적이 없는 자이다.

 우리 때.. 학교에서 거의 강제적으로 책을 읽게 시키고 독후감 제출하는 시절이 있었다 .

그때.... 단 한권도 성공해본 적이 없다 .

무협지는 많이도 읽었지...

그런 자가 어찌 생각을 해서 글을 쓴다는 일을

'작가'도 아니고 15년 이상..

그것도 그 바쁜 환우 보는 내내 틈틈히 ( 죄송하지만 게을러서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게하고 새벽기도하고 얻는 영감으로 주루륵 쓰지도 못해보았다 ... 거의 .. .) 쓰는 글이

그리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각설하고

이렇게 정말 죄송하지만

더 온전한 경건함으로 주님 말씀을 앞에 놓고

더 절절한 (한동안 그럴 때도 있었다.. 그리운 시절.. ㅜ.ㅜ;) 마음으로 대하진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이제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때 그때 깊은 고민에 맞는

정확한 느낌을

말씀으로 슬그머니 들이 미신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그런 것 같다.


 이 미련한 자...

이 정말로 끈덕진 육신의 성질이 강한 자..

이제 고만해도 좋으련만

자꾸만 내 속을 붙들고 있는

세상적 판단 기준이 있다.

 가만히 보니

난.. 아니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그 습관화 된 내 오래된 습관의 생각에

너무도 쉽게 내 머리를 맡겨 왔었다 .


 그러다 보니

지금껏 무비판 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던 것이 아니던가?

그 눈으로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히 여겨지고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고 ㅠ.ㅠ;;...

가끔은 나랑 동떨어진

이상하신 말씀 같이 느껴져

그냥 하나님 말씀이신 의미가 있겠지 ( 그래도 그리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하나님 놓치지 않으니.. 원... ) 하고 지내온게

지금까지 내 살아온

내 신앙의 수준이었던 것 같다 .

그것을 마치.. .잘..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이 착각하고 살던 것 같고....


이 이상한 감정.

이상하게 느껴지는 판단 기준.

신-행이 괴리된 듯한  느낌은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상한게 '하나님'이 아니시고

'네 안의 문제' 였던 것이다...라고

오늘 말씀하시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그것.

오래 글쓰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즉, 레마로 주시는 말씀이시라는 이야기다.


이제...

어떤 현상이라도

내 기도하고나서도 내 앞에 주어진 현상..

전혀 그게 하나님이 계시다면 ... 이라는 실망된 반응의 이상한 감각으로 느껴져도

그것...

그래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심을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내 문제.

어찌 여기다 적나라하게 표하겠냐마는

그래도 오래 빌었다. .. 고 생각하였다.

그러나..안되었다 .

안되면 받아 들이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이상하게 부디낀다.

속상하려 한다 .

괜히...

이만해도 솔직히 되는데.........

이상한 감정에

운동도 가지않고

그냥 .........슬렁 거려다.

저녁내내.........

그리고는 자려다가

12시 딱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다 보고 자려다가

후닥닥 글을 쓰게 된다 .


'이상하신 하나님'

이상하게 보이는 '예수님'

정말 .. 볼때마다 화내시고 저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인간의 눈으로 긍휼하게 보려하고

........노력을 해도 이상하게 보여

이 감정적괴리를 어찌할 바 모르고 스쳐 지나가던 부분이다.


내 삶.

내 삶은 늘 그랬다 .

이해하지 못할 일 투성이였다.

그래서 재미도 없었고

별 흥미도 없었다 .

예수님 만나서

그 분이 주시는 '평안, 평강'...은혜로 인하여

바라보고 이해되고

이제 행복으로 세상을 보려하지만

가끔은 그러한 이상한 세상에 대하여

욱~하고 올라오려고도 한다

이해하지 못할 하나님.

그 괴리.


그러나..

이상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시었다.

이상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시었다.

예수님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뜻으로 인하여

옳은 일을 하시었다.

내 눈, 세상의 눈, 과학의 눈., 합리의 눈으로 바라보려고 햇을 때 그랬지..

주님은 늘 옳다.

늘 옳으실 것이시다.


그렇다.

난..

작금에 내 앞에 놓여진

내가 이해하지 못할

내 속의 흔들림..

이상히 보이시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이제는 이상히 보지 말아야 한다 .

그분은 옳다.

내 생각, 하나님의 뜻 보다 먼져 바라보는

내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해왔던

구습의 생각들 탓이었다 .

그것을 무비판 적으로 받아 바라보던

내 시선의 잘못이었다.

주님은 무조건 옳으시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감사하다.



주님.

그렇습니다.

제 앞, 제 옆, 제 주변... 모두에서 벌어지는 그 어떠한 일도

주님이 허락지 않으신 일이 없으십니다.

이상한 것은

내 속의 습관적으로 가로막아 먼저 한바퀴 도는

논리의 오류 탓이며

그를 빌미로 하나님 말씀을 먼저 따르지 못하는

내 잘못이었습니닫.

이상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시고

이상한 것은 바로 저 입니다.

주여.

잊지 않게 하소서.

고치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십자가 보혈로 그리되게 씻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  이전에 묵상한 구절임다.

                                동일한 구절임에도 조금씩 다르네요 ^^*



1. 2010.03.04     기도하는 자로 일컬음 받다

 

 

이 편에서

저 편으로

 

가로막는  장애물이

더라도

그 길이 편치 않더라도

이제는

건너서

조금은 더

순수해질 수 있길  원한다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에서

 순수하고 평안한

아가 같은  가치관으로 

완전히 바꾸어 지길

소원한다

 

비록 

아픔이 있을 수 있고

저항이 있을 수 있겠지만

주님이 원하시면

그리될 수 있길 

간절히 원한다

 

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성전.

그 귀한 곳을 '이익'으로 더럽히는 일은

과감히 - 주님이 이토록 분을 내시는 것은 여기 단한번 뿐이시다 ! - 없어야 한다.

어쩔수 없는 生活苦(생활고)性으로 잠시

깨닫지 못해서 생기는 무지로는 약간은

이해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고범죄는 혼나야 한다. 

 과감히 떨구어야 한다.

그것은 추악한 것이다.

 

 
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성전

그 곳은 '기도하는 집'이다.

나.

성전이다.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 '일컬음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14.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치는 

최소한 그런 긍휼의 마음을 가진

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자들이 모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내 직장도 그런 성전같은 직장이 되었으면 한다.

 


 
16.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아이들의 그 순수함.

그런 순수한 찬미가

성전,

내 영혼에서

나에게서 나와야 한다.

 

순수함.

순수하기 위하여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난 돈 자체는 그리 큰 유혹을 못느낀다.

그러나, 손해를 보는 것은

죽도록 싫어했었다.

 자꾸만 아기들이 이뻐 보이는 것.

그 이쁨이 살떨리는 감동으로 이뻐보이는 것.

어찌보면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그 느낌을 알게 해주시는 것일 수도 있고

내 영혼이 아이 들 같이 순수해지길

강하게 바라시는 주님 탓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손해볼 것을 각오해야한다는 것을

그것이 아이같은 순수함을 회복하는

일단계의 장애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근자에

H군 직원들의 수억원 비리 사태

정치인들의...

공무원들.

그것도 모자라

교육계의 비리는

스승의 그 존엄함이 무너진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가르치시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여지없이 무너 뜨린다.

 의료계는 어떤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하여 다양한 제도를 만들고 있다.

 비단 오늘의 문제가 아니긴 하다.

아니 솔직히 경제력이 나아지면서

이전보다는 훨씬 ~ 덜한 양상임에도

투명해질 수록 그 뿌리 깊은 '죄악'의 근거들이

깊고 넓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어쩌면

일상처럼 자리 잡고 있어

죄가 죄가 아닌 듯이 자리 잡고 있어서

더욱 더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죄가 아닌듯한 죄 속에서

죄를 뿌리치려면

이것이 어찌 '손해'보는 듯한 감각으로 다가오면서

유혹을 끊기 힘들게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그외에 다른 이유도 많다.

의료계의 리베이트 문제.

그 검은 사슬은 당연히도 악이긴 하지만

그러한 구조를 만들 수 밖에 없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인 우리나라 의료 수가 체계에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망할 수 밖에 없는 구조.

그리고는 검은 유혹에 손내밀었다고

범죄자로 모는 양상.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는

이 큐티에서 다루기는 너무 광범위하고

성격이 다른 것이기에 굳이 따질 수도

따지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이유로

악이 악이 아니게 되어

심지어 그러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하여도

'댓가'를 요구하게 되는 파렴치한 일을 하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떳떳히 교회에 나가 예배 성수하고 한다는 일이다.

많은 기독교인들...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그러한 고범죄 -고의적으로 짓는 범죄-는

주님이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주님이 싫어하심은 '은혜'가 떨어지고

성령이 충만치 못함을 말하는 것이고

그러함은 다시 돌려 말하면

영이 악해질 수 있고

실족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야기고

그것은 또 다시 확대해서 말하면

오늘 예수님의 진노를 유발할 수 있는

그러한 더러운 영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성전이다.

기도하는 집이다.

그것을 잘안다.

누구도..

기독교인이라면..

하지만, 그것이 내 생각 뿐이라면..

남들은 나에게 '일컬어 주지 않는'

나혼자 만의 구원받은 기도하는 자라는 착각이라면..

주님을 뵐 그날에

주님이 '날 '모르신다 하시면..

주님 천국의 문이 굳게 잠겨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게 된다면..

 내 영혼의 더러움에 너무 분노하셔서

저렇게 혼을 내시게 된다면..

그 영원한 후회를 어찌 감당하게 될까?

 

 수술이 늘어나고

새로운 장비가 많이 사용되면서

장비 업체의 방문이 잦아 진다.

나.

아니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유세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들에게 최대한 성실하게 대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손해보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리베이트...'

나에게는 먼 단어처럼 행동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내 마음 조차 그런가?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

손해보는 것 기뻐하는 마음.

그것을 주님이  원하신다.

남들이 나보고

'주하인은 기도하는 자다. '라고 일컬어 주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내 영혼이 순수해지길 원한다.

아직도 걸려드는 이 손해의 억울함,

비단 그들 뿐아니라

살면서 순간순간 드는 이 억울함을 버리고

주님 앞에 더욱 순수하길 원한다.

그래서 내 삶이

지금껏 인도하여 오신대로

더욱 더 풍성한 영감과

강렬한 감동으로 순간순간 사로잡히는

그런 나날이 커졌으면 한다.

아이의 그 기쁨으로

내 영혼이 소리질러 웃을 수 있길 원한다.

 

 

 

적용

1. 성경 여덟장 읽겠다.

 말씀 만이 고범죄를 깨닫게 하는 기준이다.

 주님 성령의 흐름이다.

 그 흐름 속에서 과거의 죄는 더 이상 날 억울치 못하게 하실 수 있다.

 

2. 아기같이 순수하겠다.

 손해를 감수하겠다.

 사람을 믿고 선함을 믿겠다.

 

3. 기도하는 자.

 삶이 기도가 되길 원한다.

 주님 뜻대로 ..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한다.

 내 인간성 자체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 아주 아주 조금씩 난 말씀에 비추어

 날 바꾸어 간다.

 기도하는 게 그것이다.. 라는 생각을 잃지 않겠다.

 

4. 한번씩 돌아본다.

 남들이 나보고 기도하는 자라 일컬어 주겠는가?

 회개하고 반성한다.

 혹시 나로 인하여 실족한 자는 없는지..

 내가 주님을 욕보이지는 않았던지..

 

5.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린다.

  그보다 더 손해 보는 느낌은 배제한다.

 주님의 임재감을 가까이 느끼기 위해서 죄는 멀리한다.

 

 

기도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의 뜻 가운데서

순수하게 변할 수 있길 원합니다.

아기의 그 의심치 않는

하얀 순수를 닮기를 원합니다.

주님.

쉽지 않습니다.

욕심이 아니면

저에겐 포악이나

안절 부절의 성격적 특질이

절 그리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면 좌절도 절 막습니다.

주님 성령님

주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도우소서.

저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죄를 멀리하게하사

주님의 임재를 가까이 하게하소서.

그리하여서

주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순수를 유지하여

저로 주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이 일컬으시는 기도하는 자가 되게하소서.

제 자식들 그리하소서.

아 나라 그리하게 하소서.

내 주위 모두 그리하게 하소서..

이곳에 들르시는 모든 분들 그리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근자에 부쩍 늘어나는

주님의 이땅에 대한 분노를 늦추시길 원하나이다.

주여.

종말론적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주님 곁으로 (펌)

첨부이미지 





2.   2014.03.20   주님 대접하는 기도의 집

 비교와 걱정

욕심과 불안으로

주님의 거하시는 성전인

제 영혼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음을 .

고백합니다

 

주여

점차 제 안에

여유와 평화

안정과 기쁨

사랑과 은혜는

줄어 들어 가고 있어

주님 대접할 영적 양식이

줄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주여

다시 깨닫사오니

믿고 응답받는 기도의 사람

기도하는 집

바로

제 영혼이 되길 원합니다

 

도우소서

내 주님이시여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주님의 집.

나는 주님의 성전.

내 집은 기도하는 집

나는 기도해야 만 한다.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데 그분께 무엇을 바쳐야 하는가?

무엇을 드시도록 하고 무엇으로 대접해야 하는가?

'기도' 가 아닌가?

 

강도의 소굴.

기도 대신 난 무엇으로 나를 채우나?

하나님의 성전이신 나를 난 무엇으로 더럽히는가?

그래서 '강도의 소굴'로 탄식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아침마다 먼저 출근하면 기도하고 말씀을 블로그에 올리고 ... 나서

신문 읽고 환자 보고.....하던 오랜 습관들이

슬슬 무너지며 이제는 출근하자 마자 신문 먼저 읽고

커피 마시고 이리 저리 뒤적거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디나 , 심지어는 기독교신문을 표방하는 KM일보까지도

'포토란'이 젊은 여인들의 나신이나 자극적인 것들로 그득~하다.

그것들.

난..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별 것 아닌 것들로 생각되어

이리 저리 부담없이 클릭하다보니

비록 크게 빠지진 않는다 하여도 ^^: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세상의 젊은이들이 '영성'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은

그 넘치는 '性 호르몬'과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가득한데

얼마나 힘든 세상인가 상상이 간다.

 어쨋든, 이제 세상은 몸이 편한 대신

영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데는

너무나 쉬운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나.

어찌 해야하는가?

기도해야 하지 않는가?

말씀이 있으시니 그래야 하고

기도를 해야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하나님을 너무나 귀중한 손님으로

집, 내 안에 모시는 host로서 어찌 이리도 책임을 함부로 방치하던가?

그분이 기뻐하시는 음식, 기도를 해야할 이유다.

 

 
22 너희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보라.

"너희가 기도할 때"라 신다.

'나 주하인이 기도해야 함이 당연하다'시는 것이시다.

기도하지만, 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기도는 어찌 하는 거를 말씀하시는것이던가?

'응답받는 기도'

그 기도가 나에게는 얼마나 경험이 있던가?

많지 않다면 왜 이던가?
'다 받을 수' 있음에도 받지 못함은?

' 믿고 구하지 않음'이라 신다.

믿지 못함은 내 부족한 믿음 탓이기도 하지만

'믿지 못하게 '하는 내 '강도'같은 행동 탓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제다시 기본을 회복해야한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구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대접해야할 기본이다.

내게 부족한 것은 기본이었다 .

하나님의 내게 원하심은 다시 회복이심이시다.

 

 

 어제는 바로 밑 동서 아버님이 소천 하셔서 오전 근무 만하고

속초에 다녀왔다.

올해 79세.

한동안 속초 요지에 건물을 가지시고 자녀들에게 모 유명 구두브렌드 매장을 내 주실 정도로

잘 사셨던 분.

가보니 '절'에서 천도제 지내신다고 중들이 몇분 드나드셨다.

동서는 그 집의 둘째로 다행이도 예수님 영접하였으나

그리 전도나 말씀 묵상이나 기도나... 관심을 두지 않고

위로 큰 형님께서 그 큰 가산을 다 탕진하시고 마셔서

마지막엔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단다.

 

 안타깝다.

누구나 다 가고

역사 속의 그 누구도 회피해 나가지 못할 길을

그분은 떠나면서

그 삶 동안 진리를 채우지 못한채

결국 당신의 영혼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고 ( 고인께 죄송하지만... 사실..아닌가?)

또 그렇게 '회한'만 가득한

한 사람의 삶이

거기서 딱~하고 종지부가 찍혀버린 것 아니던가?


 

 오랫만에 좋은 날씨 가운데

'상가'를 가지만 속초까지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2009년 새로 뚫린 '서울 춘천 고속도로'를 타고 가니 3시간 이면 도착했다.

이전의 그 아름답던 미시령 고개 아래로 터널이 수도 없이 뚫려서

갈 때는 그냥 통과했던 길을

돌아올 때는 답답한 마음 풍경으로 나마 풀어볼까 하고 옛길을 찾아

고개 쪽으로 넘어 오려 했으나

옛길은 아직 눈이 녹지 않아 통행 금지란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 부여 잡고  돌아오니 저녁 아홉시.

 

난. ..

무엇이 넘치고

무엇이 부족하던가?

내 영혼, 주님의 집에 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 가고 있던가?

 

"믿고 기도하여 응답받는 , 진정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도하는 집"

그런 영혼

 

그것이 내 인생 마무리할 때 내게 주어지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 날 돌아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멂 중의 하나는

거칠게 살아온,

배려 없이 살아온 예수님을 모르던,

예수님 영접후에도 진정한 기도하는 집으로 행동해오지 못하던

내 인생의 흔적으로 인하여

아직도 외적으로 회복이 보이지 않음은 아닐까?

 

비록 그 분 처럼

전혀 불신자의 영으로 세상을 떠나지는 않게 되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기도하는 집,

기도하여 응답받은 집

그래서 예수님의 향기가 솔솔 풍기는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나로

세상이 내 소천한 자리에서 날 기억할 건가?

 

어찌 해야하는가?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기도하여 응답받을 거리가 분명하지 않은가?
내 되지 못하는 내 될 것을 믿고 기도하여 응답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실 찬거리로 대접하는 것.

그게 내 오늘 할 일이다.

 

 

주님.

귀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오늘 또 한주를 건너 뛰어 당직하는 날이 왔습니다.

주님.

주님의 살려주심과 구원해주심으로 인하여

저는 '기도하는 집'으로서 자격을 얻엇으나

그리 열심있는 삶을 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아니..

오히려 불신의 강도의 삶으로 부터 구원하셨으나

내 잘못된 선택으로

주님께 돌 섞이고 기름이 잔뜩 묻는 음식만 대접한

어이없는 주인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더 기도해야 겠습니다.

주님.. 내 마지막 날

제 묘비에 적힐 글을 생각하며

바뀔 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겠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회복을 위하여 그리해야 겠습니다.

내 주님.

은혜의 주님.

사랑의 주님.

말씀대로 살게 도우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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