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스쳐지나려 할 때[왕하20:12-21] 본문
부제) 하시라도 무엇이라도 주님께 먼저 여쭙는 하루
주여 어떻게 할까요 어찌할까요
주여 제 맘은 이리 향하는데 이게 맞으신지요
병 중의 갈등
어쩌면 허락되어진 하나님의 시험이 아니실까?
고난 중의 믿음의 강건함
위로 중의 믿음의 연약하여짐
그 사이의 혼란과 혼돈..
그리고 그 모든 것
그를 통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교통,
그 무엇보다
그 어떤 마음의 흔들림보다
우선되는 기본이
하나님의 뜻을 우선 여쭙는 것임..말이다
다행이도 난
우리에게는
말씀으로 이리 깨우치시고
그리고 기뻐하심으로 예비하신
성령님의 은혜가 있으심이다.
오늘
히스기야의 흔들림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먼저 여쭈어야 함의 중요성
하나님은 어찌 생각하실까를
먼저 생각하지 못했음이
그의 저러한 변질과
순간적 왜곡을 초래했음을
다시한번 깨닫게 됨이다.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왜 이랬을까?
긴병에 효자 없고
길고 위중한 병을 앓고 나서
정성드린 편지와 예물을 든 아주 강한 자의 위로가
감동시키지 못할 경우가 없지만,
그러할 때 마음이 약해져
하나님 대신 인간의 그러함들이 앞서는 순간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인간의 weak point 임을 말씀하시고자 함 같이 보인다.
강한 믿음을
강팍했던 스스로의 후회와 회한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모든 주변에 대하여
'제한없는 포용'으로
저러한 행동을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당연한 것이지만
'회복'하는 중의 나른함, 다행으로 여기는 그 틈을
'인간애', '위로', 넌지시 다가오는 도전자의 느슨함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어디까지 저항할 수 있을까?
어쩌면 히스기야는
첨엔 자신의 나음이 '당연히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거하려는
그 목적으로 '바벨론 사신'들에 대하여
이곳 저곳 보여주다가
마침내 '자신의 모든 이룸'을 보여주고 픈
'욕심'으로 변질되어 버렸음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마음의흐름
어쩌면 '착한 인간성'..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좋음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그 어디에도
'하나님 어쩌지요?
하나님 제 마음은 이런데 이것까지 .. 하는게 맞는가요?"....등
하나님께 화살기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행동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문제다.
무엇이든 괜찮다.
당연한 인간애.. 당연하다.
하지만.. 먼저.. 다.
먼저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그 어떠한 것도 '죄'다.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보라.
하나님과의 교류,
하나님 앞에 먼저 기도하고 행하지 않는 '상황'의 히스기야가 어떤지?
그는
하나님의 철저한 매달림에 의한 응답으로
완전한 치료를 받았음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영광을 세상의 위로에 맡겨버린 거다.
그리고는
'자식들의 어떠함'에 대하여
단 하나도 고민이나 갈등없이
죽다가 살아난 자신의 현재에만 매달려
'주님 선하시다'라고 고백하는
저 어이없는
'인지장애'의 모습을 보여내는게 아니던가?
그렇다.
하나님을 떠나는
단 한순간이라도
하나님과의 교통,
하나님을 앞세우지 않는 순간..
'자신이 하나님을 앞서는 '
바로 그 '찰나'에
죄는 시작이 되는 거다.
죄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끊는 거고
죄의 결과는
'단절'로 인한 '멸망'일 뿐이다.
히스기야는 왕이다.
왕으로서 세상에 드문 믿음의 소유자로서의
가장 큰 모본의 첨단에 서 있던 자다.
그가..
그러한 선택은
일반인인 우리, 나의 그것보다는
훨씬 큰 책임이 따름이다.
하나님
감사하나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을 깨달았습니다.
자칫.. 약해질 수 있는 마음,
어쩌면 당연하다고 이해할 수 있는 저 가련하고 약한 인간애에도
더 중요한 것은
'행동'과 선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과 선택의 핵심 중심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는 가
하나님께 먼저 여쭙고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
연약하고 힘이 빠져
너무 위로에 기뻐져서
잊혀지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을 늘 앞세우는 자,
그러한 하루 되길 원합니다.
주여.
힘을 주소서.
그리되도록
이 작은 일상의 반경에서도 옳은 선택하도록
성령으로 끝까지 잡아 주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왜 히스기야는 저리 행동했을까)
reply by Copilot
열왕기하 20장 19절에서 히스기야가 이사야의 예언을 "선하다"라고 한 이유는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그의 후손과 재산이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이라는 예언을 전했지만, 히스기야는 자신의 생애 동안 평안과 진실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 안도했습니다¹².
1. **개인적인 안도**: 히스기야는 자신의 생애 동안 큰 재앙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안도했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그가 오랜 병에서 회복된 후, 당장의 평안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¹.
2. **겸손한 수용**: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현재의 평안을 감사하게 여기는 태도를 보였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자신의 생애 동안의 평안을 감사하게 여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².
3. **이기주의**: 일부 해석에서는 히스기야의 반응을 이기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후손들이 겪을 고난보다는 자신의 생애 동안의 평안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¹.
히스기야의 반응은 복합적인 감정과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 동안의 평안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인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¹: [초원 성경 해설](https://chowon.in/bible/NKRV/2ki/20/19,20)
²: [브런치 성경 해설](https://brunch.co.kr/@daoom/174)
원본: Copilot과의 대화, 2024. 10. 9.
(1) 열왕기하 20장 19-20절 성경 해설 | 초원. https://chowon.in/bible/NKRV/2ki/20/19,20.
(2) 히스기야의 병과 기도 - 열왕기하 20장 1~11절 - 브런치. https://brunch.co.kr/@daoom/174.
(3) 성경전서 > [구약성경] 열왕기하 > 20 장. http://www.bibleweb.net/?r=home&c=1/2&bid=12&cid=20.
(4) [열왕기하 20:1 ].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Readpage.php?book=2ki&chap=20.
(5) 열왕기하 20 -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https://www.churchofjesuschrist.org/study/scriptures/ot/2-kgs/20?lang=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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