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완전함을 향하여[삼하19:11-23] 본문
19.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시므이는 이런다..
'내 죄를 내게 돌리지 마세요.
내가 잘못한 줄 알아서 이렇게 먼저 내려와서...'
내 생각에는 이랬으면 좋겠다.
" 주여.
정말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회개하오니 뜻대로 하시오되
부족함을 불쌍히 여기신다면... '
시므이가 참 얄미워 보인다.
무조건 살려달라는 소리 먼저하고
회개의 부분은 슬그머니 넘어간다.
진짜 잘못한 일은 결국 자신에게 벌로 돌아온다.
그게 살아서든 죽어서든...
하나님이 그러실 거 아닌가?
그거 믿으니 '원수를 하나님께 맡기라'시지...
그러니 공의의 하나님이시지...
그러기에 진정 회개는 자신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도
타인에 대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타인의 영적 위로를 위해서라도
'정직한 회개' 와 필요하면 온전한 사과가 필요하다.
그것을 못하는 이유는
'원망'이나 '속상함'이 아닐런가?
그 원망은 현재의 것이든 과거의 잔재이든..
시므이는 어떠 사람일까?
기회주의 적인 것은 잘 알 수 있지만
괜한 필요도 없을 '저주'를 퍼부은 것은
그의 안에 잔재된 '강한 원망'이 타인에게 '투사'됨이라 보는 것이 옳다.
이 시므이를 통해 배울 것.
'원망'을 풀어라.
'완전한 용서'가 필요하다.
타인을 향한 괜한 분노는 '투사'다.
잘못이 있을 때는 얼른 회개하라
용서를 구할 때는 변명하지마라... 등..^^;;
특별히 '분노범죄' '충동조절 장애'가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세상이고
일본이나 중국, 서양의 다른 열강들...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이유는
'진정한 회개'와 자기 반성이 없고
용서가 없는 탓 아니던가?
22.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다윗을 본다.
다윗은 여전히 멋있다.
그의 감정적 반응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압살롬이나 밧세바와의 첫 아들이 죽었을 때 보엿던
극한 애도의 표현과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생각될 때
과감히 그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자기 조절 능력은
그의 대단한 '믿음'과 더불어 '영웅적 용사'의 그것이 보이며
그러한 상상을 넘어서는 행동을 가능케 하는 그의 지적 능력과 과감함이 돋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의 유다른 영웅적 모습은
시므이를 용서함에 있어서도
또 한번 보인다.
그런데 그 내면의 석연치 않는 흐름이 포착되는 구절이
' 내가 오늘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느냐?
이런 좋은 때... 살인을 .. . 가능한 일이기 하는 일이냐???'
어찌 보면 참으로 멋진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정말 그 말을 지켰던가?
솔로몬이 등극할 때 유언으로 남긴 말을 우리는 잘 안다.
'시므이를 그냥두지 말라' 다.
분명코 그는 약속대로 자기 손으로 그를 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식의 손을 통하여 시므이를 죽였다. '
시므이 입장에서 회개않는 죄의 징벌이지만
다윗의 내면에는 정리되지 않는 미움이
수십년을 앓고 끓어 올라가고 잇던 것이다.
이 내면의 흐름.
과연 옳은가?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 묵상 구절의 주석에 이전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참았으나
지금은 '자신의 뜻'으로 참았다 한다.
무슨의미인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나..
다윗처럼 하고 싶지만 내 속에서 도저히 저런 용기와 결단이 나오지 않아
저렇게 미운 사람을 용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에게 배울 것은 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분노는 아닌지 늘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게 '하나님의 뜻에 ' 맞추어 옳다하면
과감히 성령께서 마음을 인도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게 습관이 되고 예방이되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시므이의 저러한 극한의 상대에 의하여
나도 모르게 분노할 일이 생기게 되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내안의 '투사'에 의한 것임을 알아
해결하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한다.
오늘 다윗의 자신의 뜻에 의한 과도한 용서와
그로 인한 결국의 시므이 용서치 못함은
오늘날 교회나 신앙의 이름으로 마구 외적인 일을 행하고는
마무리 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개독교 ... 질타의 현상을 보고 있다.
그것.. 내면의 죄를 다루지 않고
외적인 것만 명분으로 행해서 그렇다.
그렇다고 선한 일을 안할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면 준행해야 한다.
하지만 잔존하는 내면의 충돌이 있으면
서둘지 말고 가만히 있음도 필요하다 .
무조건 용서가 필요하긴 하지만
다윗의 용서나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아들로 삼은 진정한 용서는
깊은 기도와 오랜 성찰로 이루어진 소수의 것일 수도 있으며
그러한 용서나 타인을 위함은
내외적 일치된 ,
성령 충만하고 성령합일 된 자의 것일 수가 있고
그러함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
아니면 회개하고 (시므이와는 다른.. )
옳으면 ''진행'하는 결단을 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절대로 필요한 것은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더냐?
명분이 아니고 진정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더냐.. 하는 것이다.
다시 다윗으로 돌아가
만일 내가 다윗의 자리에 있다면 어찌했을 것인가?
잠시 판단을 보류하고
성전에 들어가 깊은 회개와 더불어 처절한 미움과의 싸움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음으로 남겨 놓아야 하고
그리하여 자신도 절제하지 못한 분노는
처절히 다시 회개 해야 할 것이다. .
자학하지 맑고.. .
그런 것이 영적 싸움이 아니런가?
물론 분노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리라.
여러 감정적 ,외적 걸림에 대한 부분이 모두 그렇다.
그러한 영적 노력이 영적싸움이고
그런 영적 전쟁응 통하여
내적 외적 현상이 통합이 되어
미움이 없이 원수를 용서할 수 잇는 지경까지 올라가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용서하여야 한다.
이게 ... 가능한가?
가능하다.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면 완전히 깨끗한 마음으로 그리 될 수 있다 .
이게 .. 완전한 용서..완전한 회개.. 고
Integration , 통합된 인격이라 생각한다.
통합된 인격이란
다윗의 경우를 보아서도 알 수 잇지만
사는 동안 원죄적 인간으로
결국 완전한 통합은 너무나도 어렵고 요원한 길이지만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이고
그게 가능한 것은
우리의 더러운 내면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예수 십자가 보혈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이야기란 것이다.
나.
우리.
기도하는 자.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 노력하는 소수들은
그 길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안다.
아니다.
확신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성령님의 은혜다.
에수 보혈의 씻어주심으로 통쾌한 기쁨이고
하나님 사랑의 품안에서 느끼는 자유다'
그러함의 평강, 샬롬으로
우리의 에너지가 채워지고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러함으로 살다가 결국 주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며
그러한 과정에서 얻어지는 상급이 우리의 결과물이고
그래서 매일 성화하여야 함이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오늘 시므이와 다윗의 모습을 보고 더 확실해졌다.
'통합'
온전한 인테그레이션
온전함을 위하여 나가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주님에 결과를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매일 받아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
온전한 회개와 더 깊은 용서를 위한
내 외적 노력.
오늘 내게 주신 레마시다.
주님.
저를 잘 아시지요?
제 어둔 부분도 너무너무 잘 아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처럼 되지 못하는 저를 ,
좌절하지 않도록 함도 주님의뜻 맞으시지요?
주여.
저처럼 결점덩어리인 자를 구원하시고
매일 이끌어 주시고
그래도 아들이라 받아 주시고
당신 하나님의 품에서 놓치 않아 주시려니
얼마나 힘드십니까.. 주여..
죄송합니다.
주 안에서 제 모든 결점을 다 내려 놓길 원합니다.
제 안의 문제들... 해결해주시고
용서하는 자 되도록 하시고
주님이 절 용서하셨듯이
그리되게 도우소서.
힘주소서.
힘주소서.
다윗이 부럽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족함이 눈에 띄었은 즉
오늘
인테그레이션, 통합, 완전함을 향하여 나갈 수 있도록
더욱 도우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보혈로 씻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과 엘샤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하소서.
저를 이기게 하소서.
간절히 부탁합니다.
곧 될 줄 믿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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