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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완전한 주하인[고전9:19-27]

주하인 2015. 11. 16. 08:22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종'은 주인의 명령에 따른다.

주인이 괜찮지 않은 인격이라면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단 그들의 마음에 종이 아니면서 부당한 명령에 따르게 되는 자들 보다

한가지 면에서는 유리한 면이 있다 .

 

 스스로 종임을 알고 그 부당함에 대하여 저항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

어려서 부터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코끼리는

숙명인지 알고 저항을 하지 못할 뿐더러

묶임을 풀 생각도 하지 않는단다.

몸은 힘들지만 저항을 포기하면 마음은 편하리라.

 그들은 자유가 주어지면 더 부담스러워 한다.

영화 중에 장기 복역수가 고령으로 되어 사회에 나와 자살을 하는 내용을 보았다.

열심히 직장생활을 ' workholic'으로 하던 사람들 중에 퇴직후 자살하거나 우울증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

종이지 않은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몰리게 될 때

그들이 과연 '고혈압'이나 '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라면

그런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내면에서 일어날까?

 첫째로는 '종'처럼 자신을 내 던지는 상황.

오히려 적극적으로 부당함에 자신을 맡겨 버리는 현상으로

일제 시대와 06.25 이후....의 적극적 부역자들.

죄가 너무 만연하여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죄의 종이 되어 버리는 현대인....이 아닐까?

 

 둘째로는 '포기' 하고 아예 자신의자아를 마비시키는 경우.

어쩌면 아우슈비츠나 아오지 탄광.. 에서 살수 밖에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셋째.

그 안에서 자신을 낮추고 현상을 받아 들이어

선한 , 새로운 적응을 하는 사람들.

 겉으로는 '종'같지만 진정한 자유인.

 아우슈비츠의 예를 들었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예가 있다.

 

 그러나,반드시 극단 적인 위의 예에서만

'종'과 '자유'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일상에서는 어떨까?

 

 나.

자유를 그리도 그리워했고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 소유의 욕심, 비교, 나이듦의 두려움... 에서의 자유 )

진정 모든 면에서 내가 자유하고 있던가?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오늘 말씀에서는

진정한 자유자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종'의 모습을

가장 '자유로운 자유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으며

사도 바울님께서

스스로 그러한 자유자의 모습을 취하고 있음을

'각론'으로 보여 주고 있으시다.

 

 보라.

유대인에게는 유대인 처럼

율법있는 자들에게는 율법있는 자들처럼

없는 자에게는  없는 자처럼..

여러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종이 아닌 자들이 종의 상황까지 강요 받는 극단적 상황일 때

취할 수 있는 3가지 모습에 대하여 생각해본 바,

첫번 째 모습하고 무엇이 다른가?

 자존심을 버려가며 까지 이득을 취하는

소위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자들.

 바울님의 그런 모습을

바울님을 알지 못하는 어떤 이가 보앗을 때

똑같은 소리를 하지 않을까?

 

 또 ,성경의 내용을 보고

사도 바울님의 모습을 존경하여

혹은 하나님이 이러해도 된다고 생각하여

'여러 모습'을 취하는 데 성공한 ,

비교적 선천적으로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영적으로 덜 성숙된 자들이 저리 하다가

실제로 이도 저도 아니며 타락되어 가는 지도 모르고

죄에 매몰되는 경우는 또 없지 않을까?

 실제로 얼마나 많은 현상들을 우리는 목격하는가?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하나님의 일이라며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일,

가장 극단적인 좋은 을 누구에게나 강요하는 것....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부작용이 아니던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선교'.. 반드시 해야 한다.

누구든지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하는 지상명령이지만

그 지상명령이 지금 당장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던가?

 예수님께서 3년 공생애를 마치시고 십자가 사역 후 부활하신 다음에

공중으로 올려지시기 전에

'거의 완성된 사도들'에게야 말씀을 하셨고

강력한 '불의 혀'같은 성령의 임재 후에야

그들의 본격적 역사가 시작이 되었다 .

 선교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과정에서

믿지 않는 자들이 선한 영향을 받은 것도 틀림없다 .

그러한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이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으신게 분명한 사실이어서

옳지 않은 내적 동기를 가지신 뛰어나지 못한 목회자님들의 입술을 통해서도

선교 지상주의를 허락하심은 분명하리라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많은 영적 타락도 있음도 사실이다.

 성화나 영적 성장의 부분은 무시되고

외적인 확장을 우선시 하다 보면

교회의 본질이 왜곡되고

교인들의 마음은 갈급하면서도 더 이상 의의를 제기할 명분도 없어

갈수록 믿음의 그 진정한 기쁨이나 영생 , 평강은

이미 오래전에 한국교회에서 전설처럼 변해간지 오래기도 하다.

 또한 '왜곡된 심성'의 도피성 선교사님들의 다량 생성(??)으로 ㅜ.ㅜ;;

' 한사람 구원하려 갔다가 두사람을 지옥백성으로 삼는 도다 ' 탄식하던

성경구절에 맞는 역효과도 많음이 사실이다.

 비단, 선교 뿐이던가?

구제나 교제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함 모두,

이 세상에서 살면서

진정한 자유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종의 끈을 놓치 못하게 하려는 애굽의 영, '사단의 영'과의 영적 전쟁 사이에서

내가 선택을 하는 과정에 벌어질

필수 과정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자유자' 이지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종'의 모습도 취할 수 있음이다.

그것..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다.

내게도 그동안은 이 구절에만 당도하면

많은 심적 부담이 있어왔다.

 나..

솔직히 지금도 '종'의 입장에 처하라면

가슴이 멍하여지며 속이 '콱~'상하려 하며 저항감이 든다.

죄송하지만 운전하다가도 이유없이 뒤에서 빵빵거리거나

차선변경 안하고 일차선 물고 가거나

수영하다가 뒤에서 자꾸만 치는 경우

( 난.. 내 스타일대로 30바퀴 도는데 그들은 한바퀴 겨우 빠르게 하며

  남을 배려 않고 마구 뒤에서 건드리는 배려 부족한 ..... ^^;;;)

속에서 '울컥 ' 하려 한다.

 그럴 때 정말 힘든 것은

그들에 대한 더 자유로운 배려가 내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정죄하는 내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하는 것이다 .

 

이거.

자유로운 자를 모토로 삼고

주님으로 인하여 자유로와 지는 내 안의 변화를 말씀을 통하여 비추어 가면서도

진정 '죄'로 부터 자유로와지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당혹스러운 것이다.

 

나.

언제나 되면

그들이 쳐도

그들이 잘못하고

그들이 그들의 자유로운 방종대로 행동을 해도

그들 모습에 맞추어

내 자존심 ( 솔직히 자존감이 아니다.    자존심일 뿐이다. .. ㅠ.ㅠ;;) 을 낮추어서

내 속에서 '주하인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싶다.

 주님의 Servant (종, 하인) 이라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할 수 잇어야 하지 않던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가 타인을 향해서도 '종'같은 모습을 취할 수 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다 저렇듯 '유연하고 자유롭구나' 라는 감탄을 줄 수 잇어야 하지 않던가?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난.. 솔직히 아직도 내 머리속의 그러함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못받아 들인다.

순간적으로 '종'이라 생각하면 '툭'하고 튀어나오는

어떤 저항이 있다.

'울~컥' 말이다.

 

 왜일까?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저리 저항할까?
내 습관적 생각의 메카니즘.

'성격'으로 표현되는 오래되어진 심리적으로 굳어진 반사적 씨스템.

 그것은 고치기 불가능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격, 인격....

 

하지만, 다행인 것은

날 돌아보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

생각이 바뀌고 인생관이 바뀌었으며

세계관, 우주관이 바뀌었다.

이제 조금 남은 것은 오래된 관념들이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안의 핵심적 생각, 망상적 생각 들이

'사단의 궤계' 였음을 깨닫게 하시며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내 현상.

내 주변의 변화들.

앞으로 어찌될지..

내 바쁜 머리 속에 자꾸만 나쁜 결과를 예측하게 하는

이 미련한 습관들이

또 나를 이 울컥하는,

자유로운 종됨을 막아서겠지만

오늘 말씀으로 밝히 해주시고

내 성장의 정도가 이제 '종'의 압박을 가지고 올때

자유로운 종,

나를 종처럼 낮추는 선택을 할 수있는 영적 성장을 허락하시고

명분 (말씀을 통해) 을 확연하게 깨닫게 하시고

그 선택의 '울컥'을 눌러 주실 

그리고 원인을 알게 하실

우리 주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난.. 이제는 힘이 난다.

날 누르려고 다가오는 여러 나쁜 생각들아.. 가라. .

난.. 이제 자유자다.

종의 모습을 선택해도 될 .. 난. .온전한 자유의 근처에 있다.  ^^*

 

 

 주님.

때가 되어가는 지

주께서 서서히 급하게 지나치던 말씀 부분을

세밀히 들여다 보게 하십니다.

 

주여.

진정한 자유에 대하여 묵상해 봅니다.

진정한 자유란..

종의 모습을 선택적으로 취해

내 주인을 위하여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자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임을 봅니다 .

 

어찌 되었든

어찌 부인하려 해도

난.. 나를 만드신 분이 계시고

그분이 나의 주인이시며

나를 아들이라 대우해주시는

하나님이 내 '온전하신 주인'으로 계시기에

난.. .청지기이자 종일 수 밖에 없는 자입니다.

 주님은 날 아들로 대하시고

난 아들로서 자격을 인정하는

온전한 자존감으로

청지기, 종의 자세를 잃지 않고

세상을 살아내다가

진정한 '자유자'인 '아들'로서 천국을 살게 되는 것,

그게 내 본연의 모습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주여.

아시오매 제 안에는 아직 '종'으로 생각하려면

울~컥하는 저항들이 있습니다.

주여.

원인을 짐작을 하고 있사오나

그를 못하게 가로 막는 저항들의 실체를 마주하게 하소서.

아무리 아프고 힘들더라도 마주해서

깨닫게 하시고 받아 들이게 하소서.

내 주여.

주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온전한 자유자로 거듭나게 하소서.

온전한 주하인으로 부활하게 하소서.

하시라도 그리하시옵소서.

 

나머지..

세상의 어떤 것들 이라도

주께서 다 책임지실 줄 믿습니다.

특별히 둘째 재훈이

성우 시험이 요번주 토요일입니다.

주께서 선한 결과 주실 줄 믿습니다.

아내.. 건강.. 모든 것.. 다 아시는 주님..

큰아들.. 신앙.. 사랑.. 소망.. 다 책임지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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