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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소수는 깨어 있어야 한다[고전10:1-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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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소수는 깨어 있어야 한다[고전10:1-13]

주하인 2015. 11. 17. 09:51

 


4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모두'  모두, 모두......하신다.

예수님을 믿는 '모두'..

 그러나 소수만이 광야를 통과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주님이 진짜로 기뻐하는 자들은 '소수'다.

 

 소수는 다수와 다르다.

다수는 넓고 큰길로 가게 될 수 밖에 없으나

소수는 그들과 다른 행보를 취하기에 눈에 뜨일 수 밖에 없다.

 눈에 뜨일 때 다수는 소수를 핍박할 개연성들이 많다.

특별히 요즘 사람들, 왕따에 죄책감도 없다.

 당하는 소수는 따라서

그길이 좁고험할 수 밖에 없다.

좁고 험한 길은 외롭고 힘들다.

외로움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진료중, 80먹은 홀로 사시는 언니를 모시고 온

80 다되신 인자하게 생기신 동생분이

그 분이 단순 근종이고 수술안해도 된다시니

눈물을 훔치면서 진료실 밖에 나가신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형제애.

세상에 저리도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사랑하고 사는 사람들.

타인, 비록 형제지만 얼마나 더 사실 언니라고

수술안하신다는 말에 눈물을 훔칠 정도로 마음을 조리고 사랑하셨을까..?

 저.. 사랑.

인간적인 사랑이 아름답고 좋아

나도 주위에 저런 사랑 만하는 사람들로 가득찼으면 좋겠다.

그게 쉽고 편안하고 따스하고 덜외롭고 ... 한 길이 아닌가?

그게 잘못된 바램인가?

 아니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의 길은 그길과 다를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다 외로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타인과는 다른 외로운 길이 허락되었을 때

그들은 그것을 고통스러운 것,.자체로 받아들이고

외로움을 피할 것으로만 받아들일 문제는 아니란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

오히려 사랑을 위하여 죽음을 택하셨다.

형제간의 사랑.

인류애의 사랑.

아름답고 좋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앞서면 안된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가운데 '절실한 사랑'이다.

 

 나.

외로웠다.

그게 진저리 치도록 싫었다.

지금도 외롭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임에도 더 외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덜 시리고 덜 아프다 .

그 시린 가운데

내 온전한 사랑을 훈련 받기 위하여

주님은 외로움을 허락하신 듯하다.

그것을 이제는 깨닫는다.

 

난..

소수다 .

이 블로그의 변하지 않는 정체성이

'선택받은 소수'를 위하여다.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가끔 외로움과 저런 따스한 사랑의 크고 넓은 길 사이에서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이 잘못 가고 있는것 아닐까.. 고민하던 것

이제는 조금씩 내려 놓아도 된단 것을 알았다 .

 

소수의 길은 외로움의 길이다.

그 길은 하지만 정말 훌륭한 '사랑'의 길이다.

그 온전한 사랑...

단지 혈육의 정, 친구간의 필라테스의 정. . 남녀간의 에로스의 정.. .을 통한

육신적 사랑이 아닌

정말 '영적'으로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본질적 사랑의 훈련을 하기 위한

'외로움'을 가장한 육신의 붙듦을 훈련하는 과정이란 이야기다.

 

그러기에 당황할 이유가 없다.

혼돈의 과정에서 '외로움'을 버려야 할 것으로 치부할 이유가 없다.

 

보라.

감당할 시험이라 지 않으시던가?

피할 길이라시지 않는가?

 

나.

본질적 사랑과

외로움의 혼돈에 대하여

조금씩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 들이기 시작했으며

과정에서 죽지 않는 내 '자아'를 낮추는 당위성을 깨달아 간다.

그게 .. 피할 길이기도 하다.

 

더 높은 기쁨.

더 차분하고 맑은 사랑.

더 깊은 긍휼을 배우고

내 영혼 안에 장착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 길이 좁은 길이었고 좁은 길이 될 것이며

과정상 어려움은

우리 주께서 예비하신 피할길과 에너지이신 성령을 도움으로 주실 것이다.

 

귀하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기쁠 것 하나 없을 것 같은

이 시간에

주님은 깨달음의 기쁨을 주시고

내 깊은 외로움의 단초를 깨닫게 하시며

그길이 옳은 소수의 길임을 알게 하십니다.

 

내 주여.

흔들리지 않고 기다리겠나이다.

내 자아가 더 죽어

십자가에 온전히 달리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다양한 '종'의 모습을

내스스로 잘 녹여 받아

하나님의 종으로 거듭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주여.

허락하신 좁은 길..

힘주소서.

잘 가고 잘 기뻐하도록

그래서 곧.. 하루라도 빨리

주님 뵐날 있길 기대합니다.

 

내 주여.

제게 맡겨주신 아들들.. 기도합니다.

특히 큰 아들  생일이네요.

앞을 축복하소서.

뒤를 어루 만지소서.

결단하고 돌이키게 하소서.

 

주님.

둘째.. 요번 주 토요일.. 성우시험.. 아시지요?

믿습니다.

일등으로 붙히실 줄 압니다.

 

아내...

주님.  .. 의탁드립니다.

좁은 길 갈 때 손잡고 잘 갈 수 있도록 하소서.

 

내 주 예수

그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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