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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그러셨다[눅22:54-7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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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그러셨다[눅22:54-71]

주하인 2016. 3. 22. 07:24


54.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예수께서 '

'잡혀서 끌려가셨다"

그것을 용인하셨다.

 우주적 원리를 가지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마음까지 다 맡기셨다.

그리고는 끌려가셨다.

무슨 생각하셨을까?

'하나님의 뜻만..' 

'불쌍한 구원할 인간들'에 대해서만이 아니실까?


이게 가능한가?

나.

엉터리 같은 수없는 많은 사람들의 오류를 체험했다.

지금도 체험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 '적절하게 ' 대응하고 있다.

아..

하기로는 '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다 맡기고 가야 할 것을

난.. 이것만은 .. 이것만은... 하면서

내 대처의 방식대로 대처를 하고 있다.

'멀찍이 따르고 있다.'

이 베드로가 나보다 나은 자 아니던가?



55.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그리고 '사람'들이 하는 대로 불 가운데...

'세상의 적절한 합리, 적절한 논리' 가운데서

믿음도 아니고 타락도 아닌 베드로의 태도.


그 태도가 바로 '나 ' 아니던가?

세상의 온기를 즐기면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못하는...

그것도 '그 가운데 앉았다'는 표현대로

적극적 선택이다.

아............


 

61.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


너무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시는 장면이다.

어떤 표정이셨을까?

그려진다.

안타깝지만 자애로운, 이해하신다시지만 육신의 고통으로 약간은 찌그리시는

그러나 그 눈빛에 여리시는 깊은 슬픔,

하지만 그러함에도 베드로의 갈등을 다 아시는 하나님으로서

그의 겪을 고통에 대하여 ..

표현이 부족하다.

하지만 人者 로서, 당신이 겪으시는 그 육신의 고통 , 심적인 부대낌을

마치 남의 일처럼 흘려 보내시고서는

가만히 들여다 보시는 그 눈빛..................


그 눈빛

그 하나님의 눈빛이

우리 믿는 자로 하여금

세상에 넘어지고 쓰러지다가

자신을 한편으로는 질책하고

죄송하지만 스스로 혐오하기도 했으면서도

주님 앞에 다시 다시 기어오게 하는 원동력이 아니시던가?



62.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비겁했지만

하나님을 늘 염두에 두는 사람이었따.

그는 예수님을 배반한 듯했지만

그당시 성령의 체험이 없는 인간 베드로서의 한계를 맛본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더 없는 절망을 앞에 두고

심히 통곡하였던 것이다.



많은 부분 공감이 가고

가슴이 미어지려 한다.

내 이야기다.

예수님의 그 열렬한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였음에도

내 한계에 부닥치면 여지없이 '세상'의 따스한 불을 먼저 돌아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주님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산다 .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말씀을 붙드는 습관이 내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예수님의 눈빛을 보듯

지금 내 가슴에 따스한 , 그렇지만 눈을 들지 못하게 하는 감각이 퍼지고 있다.

심히 통곡이라도 해야할 듯하다.

주님을 그리도 배반하는 이 엉터리 믿음을 용서하라고

다시 붙드시라고 ...



주님.

감사합니다.

또 하루 .. 문제없이 눈을 떴습니다.

비록 세상은 불 가운데 떨며 앉아 있는 베드로의 형국처럼

마구 혼란으로 휘달리지만

그래도 저는 그 속에서 주님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주여.

저를 바라보시는 그 눈빛으로

제 이 무뎌져 가고 죄 많은 심령을 바라 보아 주소서.

제게 부담을 가지게 하시고

회개케 하소서.

 이 암담함이 모든 끝이 아님을

그래서 제가 더 기뻐하게 하소서.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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