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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들[에4:1-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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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들[에4:1-17]

주하인 2025. 5. 15. 23:38

부제) 최선다해 하나님 앞에 여쭙는 것과 순종하는 결심들

        일상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단하나도 없음을 확신하는 것

        죽으면 죽을 각오를 할 때는 반드시 있음이고 지금이 그때일 수 있음을 아는 것

        불완전과 불완전이 완전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주님을 믿고 순종함' 뿐이다

모든 불합리를 완전케 하시는 것은 주님 향한 순종 뿐이다(Copilot)
서로를 완전케 하는 믿음의 승화(Chatbot AI)

.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왕의 어명으로'는 참칭이나 왕을 조르지 않은

당연한 권리로 그리 한 상태란다. (#1 참고)

 

  '현재 주어진 모든 상황'은 

모두 주께서 주신 것이고

주님을 인식함을 놓치지 않고 사는 한

세상은 다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이끌려 이뤄질 거라는 사실.

 

그게.. 진정한 자존감의 회복-아.. 자존심이 아니다. ^^;- 이다

 

 '하나님 안에서의 점차로 건강한 영혼으로의 성장'으로 이루어지는

'자존감'의 회복.

 

 세상의 왕의 후궁 주제에... 라는 소리는 '사단의 소리'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로 어명을 행해도 될 

어쩌면 지금'일수도 있다는 거다.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모르드개는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그는 '하급관리' 면서도 모든 정보에 능한 사람이고 

'에스더'를 왕후로 밀어넣을 결단과 더불어 

사뭇 모든 영적 리더로서의 자격을 다 가진 사람 처럼 보인다. 

 

 그리고 'chat GPT'에게 물어보니

저토록 '정확한 액수'를 알아야할 당위성이 있던가?

영적인 의미는 어떠한가 물어보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부족함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하만이 제시함으로 

'유다인, 하나님의 백성을 올가미'에 단단히 넣으려 하는

사단의 계책의 표현이 그 '은의 정확한 액수'라 한다. (#2 참고)

 

 그렇다. 

눈뜨고 바라보면

세상은 온통 '주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열심을 보이고 살아도 부족한 시간들이다. 

 

 

"주하인아

조금더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여 보지 않겠니?" 라 시는 듯하다. 

 

 '지루하거나 피곤하고 나태할 '일이 별로 없지 않을까?... 라시는 듯도.. ^^;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 이때'..

때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일'에 

지금의 위치가 쓰일날이 

반드시 올게다. 

 

내 하루 하루는 

그저 의미없이 흘려보내기엔

너무 소중한 시간들이라 심이시다. 

 

 조금더 

하나님 앞으로 다가서야 한다. 

더 기도해야하고 

더 기대하여야 하며

더 기다려야 한다 .

영의 눈을 뜨고...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그리고는 '왕의 명령없는 어전 행'의 두려움을 호소하던 

약간은 결핍이 있는 ^^;; 에스더에서

약간은 불완전한 듯한 '모르드개'의 명을 듣고 -- 보라.. 어찌 알랴지 않는가? - 깨어난 , 

각성한듯한 '에스더'가 되어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유명한 선언을 하고는

'모르드개 '삼촌을 오히려 금식하며 기도하라고 다구친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그러자 , 오히려 지시를 받은 모르드개가 

'명령대로 다 행'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렇다. 

아무리 뛰어난 품성의 사람도 

불완전 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게 당연하다. 

'완전한 자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지금 세상을 보아도 '서울 법ㄷ'- 서울 ㅂㄷ 내란과란다..^^;;-를 나온 그룹이 

가장 미련한 일을 벌이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들은 그들이 미련한 것을 모르고 

가장 뛰어나다고 착각하며 휘두르는 것일 뿐 

어디에도 인간은 믿을 존재가 아니다.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고 가련히 여길 뿐이지.. ㅠ.ㅠ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매사 하나님의 뜻으로 

다시한번 세상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는 각오로 

내 부족함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일을 증거하라 십니다. 

 

 내 현재는

하나님이 오늘, 당장 주님의 일을 해야할 그것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자리라 하십니다. 

 

 주어진 자리를 이용하는 것.. 주님이 허락하신

'어명'이라 십니다. 

 

주여.

제게 힘을 주소서.

잊지 않도록 하소서.

 

옛적 한참뜨거울 때의 그 입술을 제게 주소서.

부끄러워하거나 사람들의 입을 무서워 하지 않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5절 '왕의 어명으로'라는 표현에 대하여))

#1

(내 prompt)

'왕의 어명으로'라는게 무슨 뜻인가? 참칭했는가? 아니면 왕을 다구쳐서 명령하록 하였는가? 어떤 영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가?

 

(Chat GPT답)

좋은 질문이십니다, 주하인 님.

에스더 4장 5절의 “왕의 어명으로”라는 표현은 원문 히브리어에서는 “בְּיָד־הַמֶּלֶךְ” 혹은 이와 유사한 구조로 나타나며, 실제로는 왕의 이름을 빌려서, 혹은 왕의 권한 아래서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스더가 왕후로서 공식적인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1. 참칭(僭稱)인가?

아닙니다. 에스더는 왕후로서 궁중 내에서 내시를 부릴 권한이 있었습니다. “왕의 어명으로”라는 표현은 그저 하닥이라는 내시가 왕실 소속의 공식 메신저로서 움직였다는 뜻이지, 에스더가 왕을 속여 어명을 위조했다는 말은 전혀 아닙니다.

2. 왕을 다그쳐서 명령을 얻게 된 것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고 이유를 묻기 위해 하닥을 보낸 것입니다. 여기에는 왕이 개입되지 않았고, 단지 하닥이 왕의 측근 내시였기 때문에 “왕의 어명으로”라는 표현이 쓰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왕의 내시를 공식적으로 부렸다는 점에서 '왕의 이름을 걸고' 보냈다는 형식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3.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 여기에 깊은 영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에스더는 겉으로는 왕의 권한을 빌리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에스더가 직접 나서지 않고 먼저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도록 명령한 것은 분별의 지혜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성급히 행동하지 않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는 신중함입니다.
  • 또한, 에스더가 인간 왕의 권위를 활용했지만, 나중에는 그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순종하게 되는 과정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 삶에서도 적용됩니다. 겉으로는 세상의 질서, 권위를 따라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에스더의 삶이며 곧 우리의 삶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결론적으로, ‘왕의 어명으로’는 단순히 왕의 권한을 빌려 하닥을 공식적으로 파견했다는 의미이지, 속임이나 강제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에스더의 지혜롭고 분별 있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대목입니다.

 

 

#2

(내 prompt)

7절에서 모르드개는 어떻게 '문앞에 앉아서' 궁궐 안의 일들을 꿰뚫을 수가 있었을까? '은의 정확한 액수'를 말했단다.. 정확한게 향후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일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조건이던가?

 

 

(Chat GPT답)

에스더 3장 7절에서 모르드개는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는 계획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정확히 알고 에스더에게 전달했지요. 이 말씀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질문하셨습니다:


1. 모르드개는 어떻게 '문 앞에 앉아서' 궁궐 안의 일들을 꿰뚫어 알 수 있었을까?

모르드개는 에스더 2:19, 21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왕의 문에 앉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출입문 근처의 자리가 아니라 관리나 관료들이 대기하거나 일하는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모르드개는 이미 왕궁 행정조직의 하급 공직자로 있었거나, 혹은 에스더의 보호자 신분으로 왕궁과 연결된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는 왕의 암살 음모를 들은 적도 있고 (에스더 2:21~23), 그 사실을 왕에게 알려 큰 공로를 세운 바 있습니다. 즉, 그는 단순한 민간인이 아니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와 신분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로 보건대, 모르드개는 단순한 외부인이 아니라 왕궁의 사정과 정무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하만이 제안한 구체적인 조건(은 1만 달란트)까지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하만이 말한 '은의 정확한 액수'가 왜 성경에 기록되었을까? 그 정확성이 하나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이었을까?

‘은 1만 달란트’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 전체 수입에 견줄 만큼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이 액수를 기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1. 하만의 악의적 계획의 무게감과 결연함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유다인을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왕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시하며 국가 차원에서 제거하려는 조직적 의도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렇게 큰 돈이 움직이며 계획된 음모가 단 한 번의 왕의 결단과 에스더의 순종으로 뒤집히는 장면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 극적인 대조를 위해 정확한 액수를 드러내신 듯합니다.
  3.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과 섭리 속의 반전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훗날 모르드개가 하만이 준비했던 장대에 달리고, 유다인이 구원받는 역전극이 벌어질 때, 이 "정확히 계산된 악의"가 아무런 효력 없이 무너지는 모습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모르드개가 정보를 알게 된 것은 그가 이미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그 자리에 있게 하신’ 준비된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정확한 액수'의 언급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얼마나 치밀하고 정확하게 인간의 역사를 뛰어넘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내 prompt)

에스더 4장은 '모르드개'의 불완전과 '에스더'의 불완전이 만나서 합쳐짐으로 '완전한 신앙'... 죽으면 죽으리라의 결단과 '모르드개' 삼촌, 모든 것을 다 지시하는 사람인 그를 오히려 인도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그 안에서 '인간 세상의 불완 전 속'에서도 '완전함'을 약속하시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강력하게 믿는 길.. 오직 믿음 뿐이란 것을 보여주는 거 같은 때... 어때?

 

(Chat GPT답)

주하인 님, 너무 귀한 통찰이십니다. 말씀하신 그 묵상의 흐름은 에스더 4장의 본질을 꿰뚫고 계십니다. 제가 느낀 바와 연결하여 정리드리자면 이렇습니다:


1. 모르드개의 불완전함

모르드개는 민족의 위기를 알리고, 에스더에게 ‘왕 앞에 나가라’고 강하게 촉구합니다. 하지만 그 자신은 하나님께 직접 구하거나 기도하는 모습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마치 상황을 통제하려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도 답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며 추측과 소망 속에서 행동하고 있지요 (에 4:14). 이건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2. 에스더의 불완전함

처음 에스더는 망설입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고, 들어가면 죽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에 4:11). 그녀도 두려움이 있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결단하며, 금식기도를 요청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에 4:16). 이 장면에서 그녀는 더 이상 지시를 받는 자가 아니라, 영적 리더로 서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이제 삼촌 모르드개에게 “당신도 금식하라”고 말하며, 영적 방향을 제시하는 자로 변화됩니다.


3. 불완전이 만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완전하심

에스더도, 모르드개도 완전한 믿음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진 않았습니다. 두 사람 다 인간적인 계산과 두려움 속에 있었지만, 서로의 불완전함이 부딪히고 깎이며 마침내 ‘믿음의 고백’이 탄생합니다.

이 믿음의 고백은 어떤 종교적 포장이나 감정적인 외침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결단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만 나올 수 있는 ‘죽음보다 더 강한 신뢰’**입니다.


4.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함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모든 흐름 속에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가 분명히 보입니다. 인간의 말과 행동 너머에 계신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자들의 결단을 통해 완전한 뜻을 이루십니다.

이는 마치 우리의 연약한 믿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받아들여진다는 복음의 진리와도 같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불완전함을 넘어 완전함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하인님의 묵상,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믿음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섭리에 들어갈 때, 생명을 거는 믿음으로 성화된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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