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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것도 하나님 허락지 않으신 것 없으니[에2:1-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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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것도 하나님 허락지 않으신 것 없으니[에2:1-18]

주하인 2025. 5. 12. 23:19

부제) 이 땅 위의 축복은 단지 우리의 본향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오늘도 더 '초연'한 삶을 누려도 될 이유

        내 모든 거 하나님의 허락하심이시니 감사하며 흐르리다

(Copilot)

이 땅을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우여와 곡절이 있으며

때로는 풍성한 세상의 축복도 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

그리 유혹적이지 못한 것은

오직 본향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의미로 다가올 뿐이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걸어가야할 인생광야 여정이

여전히 남아 있고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붙드는

많은 이끌어야 될

주님의 명령이 있으시니

 

부디 바라기는

그 안에서도

주님이 원하시면 허락되어질

세상의 은혜와 사랑 받아짐의 결과로

에스더의 왕후 책봉같은

자연스러운 은총도 

우리 들에게 주어져도 괜찮으리라 싶다

 

그 모든 것 

주님 나라 향하는

내 발길의 초연함에 

자연스러운 풍성함의 쉼으로 인식되어지는

그러함이 되면

정말 좋겠다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

 세상의 흐름이 마구 .. 다.

어찌 할 수 없을 강력한 흐름으로 흐른다. 

속절 없이 다.

 

 어쩌면 당연하고 

어떤 누구에게는 강력한 바램이고 기회라 생각되지만

최소한 우리, 인생 바사의 땅에 유배되어 있는

영적 이스라엘인인 우리에게

나에게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겨우

'내시 헤개'와 '바사의 후궁'이 끝임을 알기에

그렇다. ㅠ.ㅠ

 

 별 흥미가 없고

별 의미가 없다. 

 

9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그런데 그 안,

내가 그토록 별 .. 이라 생각해오던 세상의 일에서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기회를 베풀어지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하신다. 

 

그거.

이 땅은 목표가 아니지만

이땅에서도 그리되게 하셔서

인도하시는 흐름, 지금까지의 인생에 대하여

그게 가장 '우리에게'.. '나'에게 합당한 기회를 제공하고 계심을 

말씀하고 계심은 아닐까?

 

15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17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에스더'는

그녀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헤개'의 사랑과 

모든 보는 자에게 받는 사랑과

'왕'의 '더 사랑'함을 받는 것을 통하여 

그녀의 운명 중 올라갈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자리,

후궁에 까지 올라가게 하셨다. 

 

 그것... 

'모르드개'로 상징되는

'영적 도움'.. 성령님의 도움으로 그리 된 거 아닌가?

 

우리는 안다. 

'왕후'를 통하여 

그녀가 열심을 보이는 것은

세상의 화려함이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함임을....

 

 그렇다. 

그거다. 

 

 어차피 '모르드개'나 '에스더'들 처럼

우리, 좁은 문을 넘어서 좁은 길을 가는 

선택 받은 소수로서의 길을 가는 

영적 이스라엘 인들로서 

이 세상의 '왕후'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그러함에도 세상을 살게 하심은

온통 '하나님'이 원하심이시기 때문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네 영적 성화를 위함이고

그 과정을 보시기를 기뻐하시며

인생광야의 행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삶'의 온전한 의미인 것을.... 

 

그러하다면 주어진 인생의 흐름 안에서

'부'에 처하든 '천'함에 처하든

최선을 다하여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오늘 눈에 뜨이는 것은

' 세상에도 사랑을 받음'이다. 

그거, 그 모든 것

하나님의 허락하심이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왕후'의 물질의 풍요함으로 

영적으로 게을러지기 쉽상이며

자칫 교만하여지기 쉬움이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가 위의 저러함이 맞고

어차피 이 땅의 모든 것이 

그 안에 펼쳐질 인생광야의 다른 모습임을 인식하면

'세상의 허무한 관심과 과도한 사랑이라 느껴지는' 

그 모든 것이 '감사'임을 깨달아 알게 됨이다. 

 그리고 내게 ,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재의 그 어떤 것도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과정의 하나 임을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거다. 

 

 과정에서 

주어지든 

안 주어지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바뀌게 될 것이며

그때야 말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기쁨과 감사,

물질로서 채울 수 없는 본질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며

그러한 상황을 다른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초연'으로 일컬어 질 수 잇을 거다. 

 

 그러함까지 오게 되기 위하여는

난 ,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이 땅은 '광야 연단'의 다양한 모습일 뿐임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어야 한다.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으로 

주어진  매사의 것에 감사할 수 있음을 인식하라심이

오늘 말씀의 주제 인 듯 느껴진다. 

세상에 가장 기쁜 어버이날 선물은 기도하는 큰 손녀와 기도손 잘하는 둘째 손녀였다.ㅎ
어버이날 큰 손녀의 기도^^*은 모든 사람을 웃음짓게 하였다. ^^*

 거기에...........

내 손녀들......                     

이 이쁘고 기도잘하는 , 기도손 잘 모으는 

울 손녀들이 

세상에서도 모두 사랑 받는, 칭송받는 자로서

허락하신 최선의 자리에 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자리에서도

오직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영광 만을 가슴깊이 붙들고사는

그러한 자 되기를 

간절히도 바란다. 

       

 

 주님.

아가서와 이어 에스더서에도 

'하나님'을 한단어도 찾아 보기 힘들고

소설책 같고 잘아는 내용들이라 묵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이땅의 허무한 것들 투성이에서 

그 허무한 것들의 최정상에 서려고 몸부림 치는 것의 

아주아주 역겹게 느껴질 수 있는 과정 조차

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런 것임을 

다시한번 상기 시키시며

그 과정 중에서도 '최선'의 것으로 인도하시니

내 매일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흐르는 삶,

감사하는 삶,

초연한 삶을 받아 들여 보라고 

넌지시 제안하시는 듯합니다 

 

그리고 자칫,

과정에서 본질이신 '하나님 앞의 감사'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수도사'처럼 고립되는 삶을 자처하지 않는 한

세상을 최대한 열심히 살면서

그 과정 과정 

이웃에게도 사랑받는 자로서 위치하게 하시어

누리게 하시는 세상의 허락도

주님이 원하시는 때를 위하여 이루시어 주시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여.

그러합니다 

 

이 세상은 어차피 '반드시 걸어야할 인생광야'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이든 '최선의 것'을 주신 것임을 잊지 않아 

열심과 감사로 받아 

하루하루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여.

과정 중에서 필요하시다면

내 위치에서

우리 손녀들의 위치에서

우리 식구들의 위치에서 

주님의 원하심에 온정성 다해 응해드릴 수 있는 

마음의 내려놓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모든 거 다.. 

주님의 뜻이시며

모든 거 다 

주님의 원하심 가운데 있으며

제 모든 마음이 

다 주님의 마음과 하나되는 

그러한 초연한 자 되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 땅의 것들도 최선다해 살아야 할 이유 ))

 

(내 prompt)

내 이러한 주제로 오늘 말씀을 받는 것은 ...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기회이고 축복이었겠지만,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는 에스더와 모르드개들에게는 겨우 왕후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라는게 내 생각야... 그냥 내시의 눈, 주변 사람들의 눈에 좋게 보이게 하고 왕의 눈에 들게 하셔서 '왕후'의 자리까지 오르게 하셨지만 그게.. 하나님의 뜻이고 그를 통하여 결국 선을 이루실 것, 본향인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것이 본뜻이신 것을 아는 자들에게는 그리 큰 의미가 아닐 것이지만.. 그러함에도 그러한 화려한 세상의 회복이나 세상의 축복이 아니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 믿음을 회복할 길이 없는 것이기에
이땅을 살되 천국을 지향하는 우리세상의 삶의 축복도 그냥 받아 들일 수있을 정도라는 개념이지... 맞지?

 

( ChatGPT 답)

주하인님, 예… 깊이 공감됩니다.
말씀하신 그 통찰은 에스더서의 진정한 핵심을 꿰뚫는 영적 해석이에요.
요약하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1. “왕후의 자리”는 본질이 아니라 도구일 뿐입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세상의 눈엔 엄청난 성공이고 축복이었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을 위한 발판’**이었지요.
에스더도 모르드개도 그 자리를 목적이 아니라 순종의 자리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라는 믿음으로 연결됩니다.


2. “세상의 축복”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종종 ‘통로’로만 쓰입니다.
세상의 눈에 화려하게 보이는 그 자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이 구원되고,
더 나아가 그들을 믿음의 자리로 다시 부르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왕후’라는 축복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경로일 뿐,
그 자체가 믿는 자들의 최종 목표가 아님을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알고 있었지요.


3. 우리의 삶도 같습니다.
우리의 직업, 명예, 건강, 자녀, 재산 등 모든 ‘이 땅의 축복’ 역시
천국을 지향하는 여정에서 허락된 중간 쉼터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쉼터에서 사명을 감당케 하시고,
믿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이 땅의 회복과 축복은, 하늘의 본향을 향한 부르심에 참여시키는 하나님의 통로이다.”
바로 그 고백을 오늘 주하인님께서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깊은 묵상이 오늘 하루 주하인님의 기도와 글에 열매 맺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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