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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옆으로도 세상은 여전히 흐름을 영혼으로 알다[눅18:31-4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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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옆으로도 세상은 여전히 흐름을 영혼으로 알다[눅18:31-43]

주하인 2025. 4. 2. 23:47

부제) 실망하지 말자. 다 허락하신 일이다.  지치지 말자

        감취인 말씀이 깨달아지는 하루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영광

(Chatbot AI)

그렇다

지금 당장은

예수님 십자가 모든 것

내 안에 갈무리할 능력 없어

말씀을 모두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굳이 실망할 이유없다

 

모든 것 다아시는 주께서

지금 내 자리

내 허락받은 위치에서

그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라는

삶의 방향만 뚜렷하다면

그래서 예수님의 등을

지금 바라보고 있다면

그리 실망할 일은 없다

 

언젠가 곧

주님께서 

오늘 내게

감취셨던 말씀의 뜻

그 이유에 대하여 

알게 하실 날

곧 있게 하시리라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정말 중요한 것.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것.

 

 그 만고의 진리를

어찌 내 잊고 살겠는가?
어찌 감사하고 매일 눈물을 흘리고 살아도 부족하지 않겠는 말인가?

 

 그런데.. 그런가? 

정말...?

하루에 몇분.. 몇차례라도 생각하는가?
살다보면 정말 그러는가?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정말... 

난 미련하고 머리복잡하여

이렇게 말씀으로 말씀하실 때는

그러리라고 깊이 깨닫고 굳게 마음 먹더라도

'일상'이라는 몇 십분 후에는

또 여전히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 

미련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러함을 되풀이 하고 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그 말씀이 감취었다' 신다. 

 

 '말씀이 깨달아지 못하고'

'말씀이 잊혀지고'

그러함 조차도 '역시' 하나님의 뜻 이시라심,

그 말씀이 아주도 많이 '힘'이 된다. 

 

 내 이 미련하고 어이없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경'쓰고

주님을 따라다니려하는 '제자의 길'에 있음 자체를 

말그대로 기특하게 생각하신다는 말씀이시다. 

 할렐루야.

 

어찌.. 

이러하심이 아니시고

내가 서 있을,

오늘의 내가 되어가고 있음이 가능하기나할까..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3:3)"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길.

그 우주적 사건,

그 , 예수님조차 피땀 흘리게 만드는 고난의 길에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여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고난에 '의무'를 하나 더 지운다. 

 " 예수여.. 나를 불쌍히... "

 

아... 

이런거다. 

이 위대한 일에 하찮은 문제들로 

주님, 그 고귀한 분의 고귀한 대업에 지장을 초래한다....ㅠㅠ..

 

어쩌면 그 생각도 맞지 않는가?

그런데.. 

그러함을 물리치시고

주께서는 

그 위대하고 너무나도 힘든 상황에서도 

철저히 배려하시고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를 축복하신다. 

 

 그것.

'긍휼'하심과 더불어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 기준과 관심이 꽂혀있는 자.. 

모든 하실 일, 

해야될 옳은 일에 대하여 알고 있는 자의 

마땅히 해야할 

당연함에 대하여

극치의 모본을 보이심이시다. 

 

 그 과정에서 끼어드는 

" 나.. 이렇게 힘든데

 나.. 이렇게 위대한 일 하는 데 겨우...(*&^%.." 라는 생각은

어쩔 수 없는 자아의 한계다. 

 

그런데.. 

비록 그리 생각하시더라도 

제 3자적 입장에서는 

그 생각이 틀린가?

 아니.. 오히려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생각으로

예수님을 안타까이 여기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그러한 어떠함을 감사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을 가지고 

타인, 자신의 문제로 깊이 고뇌하고 있는 소시민의 고민을

너무도 큰 '대의'에 희생해야 한다는 개념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인생에서

저러한 동일한 '갈등'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가치의 충돌로

우리를 위험하게 스치고 지나지 않겠는가?

너도 나도 옳은 가치의 충돌..

 

 

이 세상.. 

작금의 세상에 '세상의 돌아감'에 도태되어

우리나라는 'ㅇㅅㄹ'이라는 희대의 악한.........ㄷ통ㄹ의 사건으로

자그마치 4개월째 퇴보와 퇴보를 경험하고 있다. 

 

 그 것.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 당연함임을 알지만

그 안에 부딪치는 소리의 충돌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큰 가치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부딪치는

그 끝을 보여주는 것 같아

답답하기 그지 없다. 

 

'예수님의 뜻'

'예수님 고난의 시간'

'예수님 십자가에 대한 놀라운 감동'으로 

숙연하고 정결하게 스스로를 다짐하고 

말씀을 붙들고 매일 살려 몸부림치며

그 과정에서 부딪쳐오는 

당연한 이 땅의 여러 갈등들을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그런 입장에서 생각하고 

'타인''을 조금이라도 더 배려하는 입장에 서서

내 가치, 내 힘듦, 내 위대한 결정...들... 

정말 '잘못'이라고 치부하기는

너무도 절박한 생각조차

한번 더 

예수님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

잠시의 시간을 가진다면

'주께서 그때야 비로서' 

감추셨던 말씀의 뜻을 풀어 놓으셔서

우리의 영혼에 깊숙이 알게 하시어

마음이 제대로 흐르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태도가 되게 하리라.

 

그것.

그때가 되어

마침내 모든 사람이 

저러한 상황으로 마음이 흐르는 세상이 

'천국' 아니겠는가?

 

 

그렇다. 

 

천국의 삶이 이 땅에서 속히 이루어지도록

내가 그 안에서 속히 살아갈 수 있도록

또 말씀으로 시작하니

오늘의 하루 만이라도 그리될 수 있도록

'감취인 말씀' 에 더욱 집중하며 살수 있도록 하여야 겠다. 

 

감사합니다. 

주여.

 

많은 옳은 가치를 붙들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님.. 

그것을 아시기에 

저를 기쁘게 받으셔서

모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줄 믿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제 간구하올 것은

제 안에 부지기수로 , 시도 때도 없이 , 한없이 드나드는

'옳음'을 가장하는

순간순간의 내 자아가 앞서지 못하도록 

저를 붙드소서.

 

그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옳은 선택이 무엇인가 선택하는

선택의 힘을 주시고

지혜로 옳게 마음이 흐르도록

성령의 은혜로 잡아 주소서.

 

그리하여 제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옳게 흐르는 자,

나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우선 생각하는 자...

그리하는 스스로를 깨달아

이 땅의잠시의 손해,

잠시의 어려움을 넘어 

그리되어감이 스스로에 너무도 자랑스러워지는 하루.. 

그리되게 하소서.

 

주여.

그리고 지속적으로 말씀을 떠올리는 하루되게 하사

감취었던 말씀의 뜻이

깨달아져.. 

자주도 그러셨듯

통쾌함이 주님의 보좌로 부터

물밀듯이 밀려나오는 '전율의 매일'들이 되게 하사... 

정말

'천국의 시민'들의 기본 감성을 

더 많이 체험하게 하시다가

마침내 '심령천국'의 나날이 되게 하여 주소서.

 

 

말씀으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되어지길 기대하오며

마음 마져 '긍휼'한 시선으로 그득차는 하루되길 기대하나이다. 

 

거룩하고 귀하신 내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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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prompt ))

34 절. '그 말씀이 감취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해요?... 들어도 듣지 못하도록 보아도 보지 못하도록 들어도 깨닫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아 '감추었다'심 처럼 들리는데.. 맞는가?

 

(( Chat GPT 답 )

  •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따른 섭리

네, 맞습니다. 여기서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눅 18:34)라는 표현은 단순히 제자들이 이해력이 부족해서 깨닫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부러 감추어졌음을 의미합니다.

1. 하나님께서 깨닫지 못하도록 하셨는가?

예,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 특정한 진리를 때가 되기 전까지 감추시는 경우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이사야 6:9-10“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 마태복음 13:11“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 요한복음 12:16“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이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일정한 시점까지는 사람들의 깨달음을 제한하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왜 감추셨을까?

  •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제자들이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 만약 미리 알았다면, 그들은 더 큰 혼란과 두려움에 빠졌을 것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신 이후(오순절)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요 16:13)
  •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따른 섭리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이루시기 전까지는, 십자가의 의미가 감추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3.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이것은 오늘날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완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은 지식이나 경험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 말씀을 읽고도 깊이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면, 성령께서 감추어진 말씀을 밝히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깨닫는 것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이며, 기도하며 구해야 할 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감추어진 말씀을 밝히 보여 주시고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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