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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인아 내려오라[눅19:1-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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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인아 내려오라[눅19:1-10]

주하인 2025. 4. 4. 00:40

부제) 내 너를 안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

       그래 그래서 올라갔구나 이제 되었다 내려 오거라

(Copilot)

그에겐

나에겐

체면이나 저항이나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오직 예수

그분을 뵈올 수 있고

그분과 시선을 마주하게 된 그 순간

그것으로 족하다

그게 모두 다다

 

그리하여 마침내

삭개오야

주하인아 내려오라시는

그 말씀을 듣게 된다면

그냥

그것으로 족하다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여리고'

광야 연단을 마치고 넘어간 요단강 너머 

가나안 땅 첫성.

 

  그 유명한.. 

 

 예수님 십자가 달리시기 위한 '예루살렘'행로 중

거의 근접한 막바지의 도시.

 

 영적으로 아주 아주 의미심장할 도시들 이름...

예루살렘

여리고.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거기에서 마주하게 되는

 '작고 돈많고 사회적 질타'의 존재인

뜬금없는 '삭개오'의 등장.

 

 상상하기에 버거운 모습.

세리장, 부자며 .. 그렇다면 아마도 배가 나온 키작은 중년..이었을 가능성 많은...ㅜ.ㅜ;;

 

 거기에 그런 그가,

궁금증을 못참고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

'돌 무화과 나무' - 돌이라는 표현은 하찮은 , 비슷한 유사제품.. 관심 밖.. 뭐 그런 개념의 뉘앙스 아니던가?... 아래에 무화과 나무의 달고 유용함과 대비되는 돌 무화과 나무를 비교하였지만... 역시 뜬금없는, 격떨어지는, .. 그러한 뉘앙스가 강조되는 연속이니.. 무대장치로 치기에도 너무 삭개오의 그것과 절묘히 맞아 들어가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보여주고자 하시는 그 레마.. 지점 ^^*-에

'올라가'는 장면은 - 그래 가장 합리적이고 필수적인 선택이 맞고 그래서 예수님 눈에 뜨이게 된다는 지점에서는 아주 합리적 선택이다... 그거...내 취향과 비슷하다. 때로는 경박해보이긴 하지만 목표가 눈에 뜨이면 망설이지 않는 것...^^;; .. 그리고 그러함.. 경박함이 아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신 좋은 품성이심을 성경이 드러내 보이지 않으시는가? 할렐루야! 힘이된다. - 유명하고 영적인 분위기의  시작 내용에 

우습고 돌발적인 장면이 끼워진 듯

생경한 느낌이 든다.

 

 하여튼,

그리로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행로를 가장 잘 지켜볼수 있게는 되었겠지만.... 

 

 이,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뜬금없는 등장^^;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듯하지만

그러나 그마져 '하나님께 영광 올리기에

' 가장 아름답고 합당한 모습.^^*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모든 것'

'그, 삭개오의 성품적 특성'.. 

순간의 번뜩이는 지혜의 발로일 듯하였지만

그 마져 '예수께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도 허락되어지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는 거란 것이 중요하다. 

 

아... 

그런의미에서

그 토록 오랫동안.. 

자책과 열등감으로 자리잡던

그 모든것..........

어느것 하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 만을 바라보는 결심이라면...

 

 삭개오의 이.. 뜬금없는...

사회적 통념과 다르지만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여하는 결정같은 것이라면

그 어느것도 

부끄러워하거나 속상하거나 위축될 일이 없다.

 

 오히려 

"삭개오야 , 

주하인아 

내려오라" 라시는 

그 말씀을 듣고

깊이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한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인생이 '급히 주님 곁으로 내려와'

'즐거워 함'의 본질을 맛보게 될 

그러한 '장치'의 다름 아님을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될 뿐이다.

할렐루야

 

그렇다. 

세상의 그 어떤 것.. 

심지어 

평생을 사로잡으며 장해가 되어오던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을 향한 기회와 도구의 열정이 된다면

오히려 그 장해와 결점과 부족함이 

'기회'가 된다는 이야기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며

말씀대로 살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이 아닌가?

 

오직 진리에 맛닿는 삶.

그를 위한 기회.. 말이다. 

 

할렐루야다. 

 

주님.

저는 주님 아시오는 

그러한 깊은 '삭개오'의 결점들이 있습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그 부족함에 

동일한 '열심'과 '진실을 바라보는' 

삭개오의 맑은 시선을 

제게도 허락하셨습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삭개오가 바둥거리며 급히 돌 감람나무를 오를때

눈 빛 번득이며 예수님을 향할 때

예수님과 마주 뵈는 그 시선의 만남의 순간을 느낄 때

그리고 마침내 

'예수께서 직접

주하인아 내려오라'실 때

그 '감동이 어떠했을까'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함을 느낍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또다시 눈을 뜨고 세상을 마주할 때

여지없이 무거운 인생의 무게가 절 누르려 하겠고

어이없는 유혹들이 절 메마르게 하려 하겠지만

주여.........

삭개오를 묵상하며

그 기쁨..

허락되어지는 이 가슴두근거림이

한번이라도 더 기억나게 하시어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의 제가 되게 하소서.

 

깊은 묵상 

감사하오며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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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무화과 나무와 무화과 나무의 비교 ))

돌무화과나무와 무화과나무는 같은 Ficus 속에 속하지만, 맛과 활용도에서 차이가 큽니다. 무화과(Ficus carica)는 훨씬 더 달콤하고 부드러워 식용으로 인기가 많고, 돌무화과(Ficus sycomorus)는 맛이 약해 주로 가축 사료나 목재용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돌무화과나무는 성경에서 의미 있는 나무로 등장하며,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로도 유명합니다. 두 나무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각각의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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