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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마음

습관이 미래를 바꾼다

주하인 2005. 8. 27. 10:24

습관이 미래를 바꾼다

박희진 목사(양문교회 ·광명)

 

어린 시절, 나는 아침 일찍부터 동네 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엄청나게 큰 정자나무 밑에서 친구들과 기마전, 팽이치기, 자치기를 하며 놀았다. 그 뒤 한참 후에 찾아가 본 그 나무에는 더 이상 그 옛날의 웅장함과 우람함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작아 보여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뛰어 놀던 학교 운동장엘 가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에는 광활하고 넓어 보이던 것이 너무 작고 초라해 보였다.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 보니 바로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내 ‘마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각자는 서로 다른 사고방식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한다. 우리가 가진 패러다임이 행동을 결정짓고 성품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여기서 패러다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생각의 틀’을 말한다. 패러다임이란 말을 유행시킨 토마스 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패러다임이라는 심리적 필터를 통하여 세상을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와 똑같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내가 지니고 있는 패러다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못지않게 남들이 가지고 있는 패러다임 또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그것이 패러다임을 결정짓고 운행시키는 열쇠다. 어떻게 남은 삶을 살 것인가?

생각을 바꾸라
자신을 위해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했다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먼저 출발선에 놓고 자신의 생각대로 되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제대로 된 삶의 목적은 찾을 수 없다.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그 결과는 실패일 뿐이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바로 버려라. 내 삶의 패러다임의 중심은 주님이 되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많은 일을 생각하고 너무 바쁘게 살지만 전진하지 못하는 것은 근본이 아닌 지협적인 것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바쁜 목사는 나쁜 목사’ 라는 말이 있다. 목회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사역들의 중함이 때론 버거울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바쁜 중에 쓰임 받는 하나님의 일꾼, 두 번 살 인생도 아니기에 오늘 이 순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맡겨진 일에 충성하자고. 고목이나 거목이 되기보다 뿌리 깊은 한 그루 나무가 되기를 바란다. 영글게 열매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기쁨이 저절로 인다. 생각은 뿌리부터 온 몸으로 이어져 삶 전체를 바꾸어주는 열쇠다. 사도바울은 생각을 새롭게 하라고 했다. 베드로 사도도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고 했다.

훈련하라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낳게 된다. 습관은 선택의 반복과 훈련을 통해서 얻는다. 훈련(discipline)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기본 방법 중 하나다. 훈련이 없으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른다고 했다(잠13:18). 훈련되지 않은 군인들을 오합지졸이라 부른다. 훈련되지 않은 성도는 영적인 오합지졸이다. 목표 지향적인 삶은 계속적인 훈련을 촉발한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먼저 일찍 일어나야 한다. 사단은 실제보다 우리 몸이 더 피곤하다고 속삭인다. 때로 인간의 육신은 사단의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24:33-34). 게으른 자는 사단에게는 잘 차려 놓은 밥상과 같다. 게으른 사람이 유일하게 하는 일은 혀를 놀리는 일이다. 늘 핑계를 생각하는 머리와 변명하는 입술을 바삐 움직인다.
영성 훈련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시는 방법은 고난이다. 마더 테레사는 “고난으로 교육받지 않은 인간은 어린아이와 같다. 고난은 성장의 법칙이다. 인격은 폭풍과 긴장 속에서 영근다.”고 했다. 인간은 형통할 때보다 오히려 고난 중에 더 성장한다. 하나님은 고난을 주시기도 하지만 극복할 능력 또한 주신다. 우리가 고난을 통해 훈련받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일찍 일어난 후에는 좋은 습관을 좇아야 한다. 습관은 인생을 움직인다. 우리의 행동 중 90% 이상이 습관에 따라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도 하루 세 번 전에 행하던 대로 하나님께 감사했다(단6:10). 다니엘은 역경 가운데 얼마나 성실하게 행동했던지 하나님은 그를 통해 주님의 사심과 도우심, 인도하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셨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의 중요함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습관화 되지 않으면 그것은 머릿속의 지식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현재에 안주하고 싶은 인간의 경향은 문제점이 발견되어야 비로소 움직이게 된다. 우리는 질질 끌려 다녀도 익숙한 것을 즐겨하고 편안해 한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말고 옛것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좇는 습관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버리고 바꾸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사 기도하시더니 제자들도 좇더라”(눅22:39). 주님은 기도생활의 모범을 습관으로 보이셨고 또 제자들을 훈련시키셨다.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주셨고 그것은 3년이라는 시간을 거룩함으로 만들어주었다.
우리 수도회는 새벽 예배드릴 때, 시편을 낭독하고 성경 5장씩을 읽은 후 각자 기도한다. 정오에는 참회와 중보 기도를 한다. 밤 기도는 10시부터 12시까지 여러 성도들과 사역자들과 함께 한다. 이 모든 것이 습관을 이루고 목적을 만들며 영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일들이다. 어떤 수도사님은 하루 한 끼 드시는 절제의 습관을, 어떤 수도사님은 성인들을 본받아 작은 파리, 모기 등 작은 미생물까지 죽이거나 함부로 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또 어떤 분은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음료를 먹지 않는 오랜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40년 동안 병상에서 증거하시며 경건한 삶을 사셨던 K선생님은 무더운 여름에 겨울 스웨터를 입고 생활하셨다. 그리고 몇 십 년 동안 선풍기나 에어컨, 부채질조차도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극도로 몸이 악화되셨을 때 주변 사람들에 의해 오래 해오던 습관을 조금씩 바꾸셨다. 이것은 극단적인 무모한 훈련이 아니다. 오랜 동안 해 오신 습관들이 몸에 배인 경건의 능력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거룩한 습관은 주님을 닮아간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의지를 드릴 때 주님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시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생각이 정신 영역이라면 습관은 행동 영역이다. 습관은 생각이 성공적인 기능을 발휘하도록 객관적인 틀을 만들어 준다. 습관이 우리의 미래를 바꾼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전부가 되신다.
그분을 위해 나의 작은 습관을 한 가지씩 드리자. 나중에 영적인 큰 재산이 되어 주님나라의 아름다운 일부로 쌓일 것이며, 삶은 거룩함으로 반짝반짝 빛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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