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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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마음

[스크랩] 대화를 잘하면 편안해진다.

주하인 2007. 10. 29. 14:55
“대화를 잘하면 편안해진다.”(10.19.2007)

  신앙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관계 속에서 꽃을 피운다. 관계가 나쁘다는 것은 신앙이 없다는 뜻이다. 좋은 관계는 대화를 통해서 생명력을 얻는다. 남녀지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의 목표는 하나됨이다. 바른 대화를 통해서 하나될 수 있다. 하와가 범죄한 이유는 아담과의 대화단절이다. 대화단절은 뱀의 유혹에 쉽게 무너지게 만들었다. 바른 대화의 팁(tip)을 보자.

  첫째, 상대의 문화나 가정을 공격하지 말라.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란 사람은 안 맞을 수 밖에 없다. 공격은 파국이다.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상대의 뿌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결혼은 선교지라고 생각해야 한다. 선교가서는 그곳에 맞춘다. 언어, 풍습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미얀마는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 옆의 물로 뒤처리를 한다.처음에는 당황한다. 미리 준비해 가야한다. 그런데 그 문화를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맞추어서 살아야 한다. 그게 결혼이다.
  둘째, 언어폭력은 안된다. 사람은 혀를 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혀로 망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혀 속에 가시를 둔다. 여자들은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혀 근육”이 발달한다. 혀끝에 힘이 있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 못 당한다. 물리적인 폭력만 폭력이 아니다. 언어 폭력도 폭력이다. 물리적인 상처를 입으면 쉽게 아문다. 그러나 말의 상처는 더 오래간다. 영혼이 병든다.  “꼴에 남자라고..” “나한테 해준게 뭐있어.” “옆집 남자는 이런데..”  이러면 남자는 머리가 돈다. 대개 이런 여자가 맞고 산다. 폭력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폭력도 폭력임을 잊지 말자.  잔소리로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다. 대개 잔소리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나가서 운동을 하라. 좀 용납하라. 뭘 그렇게 화를 내는가? 막스 에르만의 시 중에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라는 시가 있다.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 어느날 나는 그와 함께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늦어지자 친구는 여종원을 불러 호통을 쳤다. 무시를 당한 여종업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난 지금 그 친구의 무덤 앞에 서 있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한 것이 불과 한달 전이었는데, 그는 이제 땅 속에 누워있다. 그런데 그 10분 때문에 그토록 화를 내다니..” 분노는 헛된 일이다.
  셋째,  끝까지 들어주고, 맞장구 치라. 경청과 공감의 능력이 중요하다. 대화 잘하는 사람은 공감능력이 탁월하다.  여자가 화가 났다. “옆집 영자 엄마 왜 그래? 생트집을 잡고. 시비걸고..그런 인간이 다 있어.” 그러면 더 화를 내면서 맞장구 쳐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예쁘고 교양만 있더구만.  당신이 잘못했겠지.” 이러면 분노가 그 여자에게서 남편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그 여자가 좋아. 같이 살아.” 끝까지 잘 들어주라. 회복 프로그램 중에 3분짜리 시험을 보는 것이 있다. 문제가 꽤 많다. 그런데 첫머리에 “끝까지 다 읽어보고 문제를 푸시오.”라고 써있다. 대개 읽지 않고, 정신없이 문제를 푼다. 그런데 긴 지문 속에 “끝까지 읽어보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문제를 풀 필요가 없습니다. 이름만 쓰시오.”가 들어있다. 그런데 이름만 쓴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차분하게 듣는 것이 힘이다. 들어주는 것은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자기 전공이 아닌 일은 자기가 낮추어야 대화가 된다. 진짜 실력은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언어가 아니다. 낮추라. 진짜 대화는 어린아이, 할머니와도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다. 대화의 기술을 배우라. 관계가 생명력으로 충만해 질 것이다.
출처 : ♡따뜻한 카리스마♡
글쓴이 : ♥따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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