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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 기도 & 뗑강 기도 [민11:16-3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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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 기도 & 뗑강 기도 [민11:16-35]

주하인 2023. 4. 11. 06:46

(펌)

그래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 땅이 관심의 끝인 

당신들이 할 수있는 선택은 

거기까지지

오직...

 

다행이도 

우린 다르다

 

아픔은 여전하고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도

우리는 

그래도 

다른 길이 있고

소망이 있음이다. 

남아 있는.. .

진정한..

 

17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모세님의 '푸념' 같은 기도도 들으셔서

'성령'으로 인하여

그의 짐을 덜어주신다. 

 

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그리고 '백성'들의 '푸념'과 원망의 하소연도 

들어주신다. 

 

 아.. 자식이 울고 떼쓰면 줄 수 밖에 없는 

그런 응답^^;

 

20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그런데 울며 떼써서 받는 기도의 응답도 좋지만

그게 과연 좋을까?

'기복의 기도'

이땅에 고착된 기도

'욕망'으로 인한 기도

탐욕의 기도.........

 

 그래도 기도 하지 않고 돌이킨 자들 보다 낫기에 허락하긴 하지만

'넘쳐 썩어 문드러지는 복'이 과연 복일까 생각해볼 문제다. 

 

 

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주님의 응답과 역사의 방향은 

가장 가까이서 모시던 '모세'마져도 짐작하기 어려워 벙찔 정도로 기묘막측하시다. 

 

 60만이 한달간 먹을 고기.

그것도 사막 한가운데서.........

그 상상하기도 힘든 '응답'의 스케일에 

아무리 모든 것을 다 순종하고 받아 들일 만한 모세라도 

기가 질릴 지경이다. 

 

그렇다. 

그것이시다. 

 

 오늘의 상황

모세의 좌절,

백성들의 끝간데 모르는 탐욕

이곳 저곳에서 소위 말하는 정신병자의 뇌속 같은 버걱거리는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다 응답하고 정리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하신 모습과 

그와 더불어 상상하지도 못할 스케일로 응답하심이시다. 

 

세심함과 

대단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응답하시는 정밀하심.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거기에 가장 그들 하나하나에 합당한 응답을 하시고 계시다. 

모세에겐 '성령'으로 

깨어있는 장로들을 성령으로 능력주셔서 

그의 외로움과 절망과 힘듦을 위로하시고 

동역자의 위안을 허락하신다. 

 

그러시면서 '다 선지자가 되기를 원하노라'시며

좁은 길 가며 지칠 우려있는

우리네 인생들을 격려하신다. 

 

가슴이 뭉클하다. 

괜히...

 

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리고는 이 땅의 모든 것을 '응답'으로 만 살아가려는 

믿음 부족한 이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다른 징계로 깨달음을 주시고 계시다. 

 

 너무 당연하지만

오늘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뚜렷이 다가온다. 

 

 '하소연'에 대한 것이시다. 

 

그 어떤 하소연도 

주님은 귀 기울이고 계시다. 

 

 당연히도 하소연이 나올 정도의 환경이 필요하여 

허락되어진 '인생광야'의 어려움은 필수 불가결함은 맞다. 

 

그리고 

그 하소연에는 

우리의 상상의 한계, 

안된다는 부정적 한계를 넘어서시는 방법과 스케일로 응답은 하신다. 

 

 하지만 모든 응답이 선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즉각적인 응답이 그보다 더 큰 손해로 이끌어질 수도 있음이다. 

 예를 들어 정말 치성기도 들여서 응답으로 자녀가 죽죽.......성공가도를 달리지만

그 결국이 가족의 갈라짐  ( 기러기 가족 ).......

성공하기도 전 'ㅈㅅ, 사고.......' 등의 시나리오등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까?
일찍 성공함으로 마약으로 빠지는 주변.........등........

 

꼭 하나님은 그리 흑백으로 하심은 아니다. 

 

오늘 말씀의 포인트는

'하소연'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부분과

그 하소연의 내용.. 

그리고 응답하심의 결과가 

꼭 우리의 바램과 다른 끝이 올 수도 있음에 대함이다.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가?

 그래도 '기도'하여야 함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기도해야 한다. 

그 방향은 '성령'의 임재로 인한 인도여야 한다. 

그리고 '인도 '받음으로 살아가는 자의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다. 

 

 하소연의 배경이 

내 육신 문제

이 땅의 문제에 국한된 일차원적인 동기가 아니고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루하루 살다가 

너무 힘이 들어 할 수 밖에 없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

그게 비록 '하소연 하지 않고' 더 참아가는 모습보다는 

조금은 외적으로 안타까운 현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멀리하는 모습보다는

부족하지만 더 주님을 향하여 

하소연하는게 이쁘다는 것이시다. 

 

 그렇다. 

하소연은 '주님을 의식하며 주님 앞에 적나라하게 아뢰는' 

그러한 하소연이 되어야 하고

주님이 기뻐하심이 내 기쁨이 되는 응답을 기대하는 하소연이 되어야 함이다. 

 

어렵지만 

어쩌면 

방향이 더 뚜렷이 보이는 듯하다. 

감사하다. 

 

 

 주님.

여전히 부족한 '백성'들의 모습을 봅니다. 

일차원 적이고 자신들의 욕심에 어긋나는 것을 받아내려 

뗑강을 마다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도 .. 돌이키지 않고 매를 버는...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 , 

훌륭했던 큰 아들마져 번아웃되어 자빠지고

엉터리 막내의 나자빠지는 

난장판이 되어버린 듯한 과정에서도

차분히 하나하나 다 들어주시며

그 과정을 정리하시는 아버지 같으신 차분함과 인자함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그들의 위치와 바램에 맞게 

인도하시고 

정리된 후의 징벌을 확실히 하심도 봅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결국은 '응답'은 허락하신다는 것을 봅니다. 

 

이제 

제 부족함으로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이 인생의 버거움을 

혼자 해결하지 않으려 합니다. 

 

주님 앞에 하소연 할 것이 있으면

혼자 꿍꿍 앓지 않으려 합니다 

하소연 할 거 있으면 하소연 하겠습니다. 

 

주여.

하지만 제 하소연의 방향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방향과 일치하는 지는

돌아볼수 있는 최소한의 끈은 놓지 않게 하소서.

성령으로 절 붙드시고인도하셔서

가장 선한 방향으로 

절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현실적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제 문제를 나눠주시는 

그 분량의 위로도 허락하소서.

기대하고 내려 놓게 하소서.

 

주여.

지혜를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기대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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