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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않길[고전6:12-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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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않길[고전6:12-20]

주하인 2015. 11. 10. 10:08

아무 것도

묶어 둘 수 없고

묶어 둘 자 없을

하늘의 저 광활함이 

참으로  좋다 

 

모든 거 다

툴툴 털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머리 내리는 그곳이

내 쉴곳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날

붙드는 무엇이 있다

떼지 못할 땅의 인연이던가

아니면

자유로울 만큼 커질듯한

공허함이 두렵기 때문이던가

 

그것이 무엇이든

 얽어 매는 것

다 풀어  내려 놓고

나 이제

훨훨  날아오르고 싶다

 

내 닿는 어디에나

빛으로 날 어루만지실 것

주 계실 것을

온전히 믿어지기에

나 그렇다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않다. '

 

나..

자유가 좋다.

막힌 거 싫어한다.

그래서 '회원권' 이런 거 정말 싫어한다.

아.

골프 회원권 , 승마 회원권.. 이런거 아니고( 솔직히 싫어할 만한 자격도 없다.. 돈이 조금.... ^^;; .ㅎ.ㅎ)

수영장 회원권.. 뭐 이런거...

 그거는 매일 매일 나가야 할 강박 같은 거 느껴져서 그렇다.

물론 자신을 그렇듯 묶어 놓고

그 규제에 옭아 넣으면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되는 면이 없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난... 그러면 숨이 막혀 도망가고 싶어진다.

 어릴적,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7080, 베이비 붐 세대 부터 경쟁이 격화되기 시작하며

학원.. 에 다니는 거 본격적으로 바람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 단 한번도 나가본적 없다 .

중 2때 서울에 유학을 와서

한번 영어 학원에 신청을 했다가 하루도 안나가보고 끝난게

학원에 등록한 유일한 case고

나이 들어 몇년 전인가 갑자기 중국어가 배우고 싶어

아침반에 등록했다가 한달 나가고는 결국 다음달 학원비 날려 버린 경험이 있다 .

 이상하게도 이런 규칙적인 데 매이는 거는 정말 싫다.

지금도 '수영'장에는 비싸지만

매일 5,000원씩 내고 간다.

가다가 피곤하면 안간다.

지루하면 '자전거 '타고 나간다.

요새는 자전거가 날이 쉬이 어두워지는 관계로 힘들어지자

처음으로 '죠깅'하러 나갔다왔다.

이 주변 업다운이 너무 심해서이고

특별히 병원은 산 중턱에 있는 바 하루 뛰고 들어왔더니

이  무게를 감당해야만 하는 다리 근육들이 온통 아프다고 난리를 쳐서

며칠간 절룩 거리며 다녀야 했다.

각설하고.. .

 

이러한 '얽매이는 것'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싫어하는 나.

그 원인에 대하여 안다.

부친....의 ' 지나친 간섭'에 의하여 심한 답답함을 느끼며 컸던

내 성장과정의 이유가 없지 않아 있으리라..

하지만, 그러함에도 고백한 바 처럼

특별히 '한국'이란 사회체계에서

조직에 들어가지 않고는 정말 성공하기 힘들고

규제된 자기 노력이 있어야 효율적인 경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난.. 그리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어내진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난 늘.. 갈등하에 있었다.

솔직히 나보다 못한 자들이 나보다 나은 결과에 대하여

나도 저리하였으면... 하면서도 그리하기 싫은.. 이 양가감정.

 

 그건 좋아하는 일에 대한 것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였다.

좋아하면 누구들처럼 열정적으로 빠져들어가 매니아 내지 홀릭같은

전적인 밀도높은 탐닉하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지쳐서 떨어져나갈 내가 예상이 되어

선뜻 무엇이나 시작을 잘 못하던..

 

 그러다가 난.. 나를 잘 정의하게 되었다 .

'자유'였다.

그러한 자유...

자연스러운 흐름.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가는 것.

그것에 대한 나의 어릴 적 '묘~한 ' 표출은

지붕에 올라가 이리 저리 걸어다니기도 하고

누워 하늘을 쳐다 보다가 내려오는 것 등의 행동으로 표출되었던 것 같다.

 나이 들어서는

'자유여행' 하면서 사진기 하나 들고 풍경을 찍어내는 것.. 등이

그런 내 심사의 표출이 아닐런가 싶다.

 

 그런데 진정한 자유를 바라나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몰라

날 늘 답답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그 것..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시간이 한참 지나서 깨달아 갔다.

영혼이 가라앉아가면서 이해가 되었다.

 

 자유에는

욕심을 내려 놓는 과정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전 부터 그리고 자유롭고 싶은 내 심사에는

자유에의 욕심이 넘쳐나서 인지 몰랐다.

자유롭게  여행하기 위하여서는 '돈'이 좀있어야 하고

남들의 비판으로 부터 자유롭기 위하여는 '실력'이 있어야 하고

남의 규제, 조직의 상사로 부터의 좌지우지됨으로 부터의 자유는 '힘'과 '성공'이 있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하여서는 다시그토록 내가 싫어하는

'틀' 속으로 들어가 그렇게 되기까지 열렬하게

자유의 목표를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나에겐 그게 힘들었다는 이야기다.

이거 달리 생각하면 또 다른 억압이다.

자유를 위한 억압.

 

아..

세상에는 답이 없었다 .

돈이 많으면 더 돈이 많아야 하는 억압.

성공하면 칭송에 대한 욕구로 인한 억압...

인간 세계에 '진정한 자유는 있을 수 없다 ~!!'

 

 

 그러다 예수님 영접하고 평강이 내 마음에 밀려왔다. 

그 '강한 첫사랑' 후의 마음의 평화는 열렬한 깨달음이 동반되었다 .

'자유'의 본질이 어디인가 '그 단초'를 깨닫는 계기였었고

점차로 말씀으로,

그 말씀을 통한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러기 위한 예수 십자가 보혈로

이전 '죄'의 지워짐.. 의 결과에 의하여

진정한 '자유'가 어떤 것인 지 깨닫게 되어갔다 .

 

그러나, 산다는 것은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의 공격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을 유지 하기 위한 '영적 싸움'의 과정이 아닌가?

과거의 기억, 그 유혹, 그 억압, .. 이 삶의 다양한 고리를 통하여

계속 찔러오고 잡아 온다.

 자유.?

자유를 누리기 위한 세상의 어디에 기회가 있을 것인가?

 있다면 진정한 하나님, 개인적 하나님을 영접하고

매사에 그 분을 의식하고 사는 삶 뿐이 없다.

말씀을 묵상하고

매일 매일 나를 내려 놓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비례하여 마음은 점차로 '자유'로와 지기 시작했다 .

 

하지만,, 아직도 나를 붙드는 답답한 부분들이 있다 .

그것..

내가 가진 것을 내려 놓아야 하는 아픔이다.

자아를 부인해야 하는 부분들.

예수 십자가에 내 자아를 내려 놓아야 하는 부분들.

수십년 살면서 '내 것'이기에 너무도 편안하게 생각했던 것들...

심지어는 가족 마져도

내가 좋아하는 내 '취향' 마져도 내려 놓아야

비로소 자유는 내것이 될 수 있고

나를 얽매이는 '장애물'이 제거될 수 있다 .

 

참 쉬우면서도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게 만일 나 혼자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면...

다행이도 우리에겐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시다.

난.. 성령의 전이다.  ^^*

 

그러기에 오늘 ,

'내게는 무엇이든지 가(可)하나'..라지 않으셨던가?

어느정도 삶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이제 자식들 공부도 어느 정도 시켜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기왕에 나를 공허케 했던 문제들도 이제들 들어가는 나이가 커버해주고..

솔직히 막히는 부분들이 슬슬 사라져간다.

그러나, 그게 모두 '자유'의 증표인가?

조금 움직임의 범위가 여유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 유익'은 아니라신다.

 

그거..

더 쉬운 듯한 일,

내가 좌지 우지 할 수 있는 일.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는 것이

'자유의 본질'이 아니란 이야기다.

 

자유의 정말 뜻은

'얽매이제 않는 것'이다.

감상,회한.. 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잘난 멋'에 얽매이지 않고

'불가항력이었던 일에 대한 원망'에 얽매이지 않는 것.. .

그것 만이 진실한 '자유'의 단초이고

그러기 위하여서는 '내려 놓아야 '함에도

쉬운 일이 늘어나기에 더 얽매임을 풀기 어려운게

이... 인간의 한계다.

 이 땅에 사는 자들의 한계..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가 아닐런가?

 

하지만, 난.. 이제는 확실히 안다.

예수님을 아는 한,

난 언젠가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유로움으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며 살다가

두손들고 저 천국으로 향해 내 영원의 발걸음을 디딛는 것...

그것이 내 운명이다.

 

그러나 , 아직도 알면서도

날 스스로 옭죄이는 내 얽매임은 무엇인가?
무엇이 날 붙들고 놓질 않는가?

 

아........

그게 요즈음 하는 기도 제목 아니던가?

놓긴 놓아야 하지만

놓기에 너무 서운한 것.

너무도 쉽게 나의 능력을 발휘하여 해치웠으면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하나님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자이고

내 가슴의 아픔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리하지 못하는 것.............

 

그것을 주님이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 라며

들여다 보길 권면하시는 것이시다.

 자유를 위하여 다 짜를까?

절 집에 사는 사람들 처럼

수도원의 그들처럼 머리카락 만 자를까?
무엇을 자를까?

 

칼처럼 자르는 게 나에게만 해당하는가?

당하는 그들에게 영향은 없는가?

하나님 말씀의 원리에 상치되지는 않는가?

 

자유는 '흐름'이다.

흐르는 것은 거침이 없는 것이다.

한곳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물과 바람은 막아서면 돌아간다.

 

나.

주님을 깊이 아는 자로

성령으로 채워져 갈수 록 저리 됨을 느낀다.

이제는 덜 부딪치며

자연스레이 풀어가는

그런 '얽매이지 않는 자 ' 되길 진정으로 바란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내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령의 전'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고 인치신 게 '나'다.

그러기에 내가 할 일은

'더 이상 얽매이지 않도록 ' 나를 풀어 놓는 것이다.

그 나머지 일은 주님이 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

알 듯 모를 듯 한.,

이 자유에 대한 생각이

삶속에 , 일 상에 부딪치며 자꾸만 혼란이 옵니다.

상당 많은 부분 , 자연스러워지고

욕심이 낮아 졌으나

언젠가 보면

내 모든 생각의 주인이 나고

정죄하는 심판자의 위치에서 나와 타인을 판단하고 있는 걸 느낍니다.

그런 생각들은

나와 타인들을 자꾸만 어떤 틀에 묶는 것임에도

그리하고 픈 유혹과 그런 습관에 서 벗어나기 참으로 힘이 듭니다.

특별히도 편하다고 생각되는 상대,

내 판단 기준에 확실히도 미련하다고 생각되어질 때 그렇습니다.

주여.

 

자유를 원합니다.

남한테서 자유.

내 스스로에게서의 자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온전한 삶이 되어서

성령의 전으로서 역할을 잊지 않고 다할 때에야 가능한 이야기인줄 압니다.

 

주여.

살면서 매일 부딪치는 문제들...

그안에 내문제인지 그 문제인지

옳게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시어

내 문제이면 과감히 내려 놓을 수 있는 의지와

그 문제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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