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마음이 상한 모든 자들에게[시142:1-7] 본문
3.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내 영이'
내 영혼이
'내 속에서 '
내 육신 속에 거하는 내 영혼.
육신과 영혼의 상호 작용으로 ,ineteraction으로 인하여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영혼이 '상하는 것'이다 .
아.. 육신은 아무 문제 아니라는 영육 이원론의 '니골라당 이 아니다.
육신 안에 거하는 우리의 영혼이 '본질'이고 '본향'을 위한
이 땅에서의 '연단'과정을 위하여
육신을 통하여 영혼이 그리되게 하는
과정이 이 인생이란 이야기다.
그러기에
그 연단과정, 광야 여정으로서의
우리네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육 따로 '영'따라 생각하거나
육신 만이 모두라고 생각하다가는
육신, 그 안의 '영혼'은 괴리되어
'상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연단으로 이해하고 '육신의 삶'의 모든 과정을
다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이는 자세가 되어 있다해도
그 과정, 인생의 가시는 너무도 아파
때로는 '상하듯'힘든게 당연하지만...
아..
마음이 상한자들...
마음은 영과는 또다른 문제라서
당연히 구분하기 힘들기도 구분할 수도 있을 수 있지만
영의 그러한 현상이 마음으로 표현되고
그 마음을 내 영혼이 스스로 인식하는 '지표' 같은게 아닐까
나름 생각하긴 한다.
그러기에
오늘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라는 표현은
그것을 마음이 상한 것으로 인식하여도 될 듯하다 .
물론, 마음의 일시적 상함으로 영이 상함은 옳지 않고
지속적인 마음의 상함의 상태가
영(sou)l이 손상 (damage)입은 것은
실제로는 상당히 큰 문제일 수 있지만
오늘의 시에서는
'마음이 상당히 힘들고 오래 지속되는 ' 상함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
불신의 시절 부터
아주 깊은 마음의 상처로 부터 유래한
'상한 마음'을 지니고 살다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선택으로
성령으로 인한 강렬한 '첫사랑'을 통해
극적으로 구원된 후
이 나이까지 참으로 많은 '굴곡'의 연단의 시간을 거쳐오며
나름 이제
관조할 수 있는 나이까지 되면서
말씀의 한구절 한구절이
'살아 있는 ' 말씀,
살아서 임재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으로 인식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나이기에
그리 확실히 느껴진다는 말씀이다.
'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한 것을'
'주께서 아신다'
이 말씀 만큼
믿어지면
힘이 있는 말씀이 또 있을까?
4.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상한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
상한 마음으로 하루를 버틴다는 것.
정말 어렵고 힘들고 ........&^%$#@......그렇다.
아무런 희망이 없고
온통 어둡고 깜깜하고
외롭고 답답하고 터질 것만 같다 .
그것.,
이리 표현하셨다 .
'오른 쪽을 봐도
아무도 나를 아는 이가 없고
피할 곳도 아무데도 없고
나를 보호해줄 자
이 인생 왜 살아가는 지 가르쳐주고
내 영혼을 보호해줄 자 아무도 없다 .
................'
상한 마음.
마음이 상한 자.
마음이 상한 듯 , 괜시리 우울한 마음 들려 할 때
'주님을 바라보아야한다 '
그것.
상한 마음이 있는 자,
그런 상태일 때는
말 장난같고 어이없는 것 같아
모든 것 포기 하고 싶고 휘둘러쳐 버리고 싶겠지만
진리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 '
하나님 만이 내 구원의 반석이시요,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셔서
날 피난처에 세우시고
기대게 해주실
유일한 분이시다.
아........
이제와 보니
상한 마음을 가진게 '다윗'이 었었고
상한 마음을 통하여
진리를 더욱 뚜렷이 보게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상한 마음을 가진 주변의 사람들에게
길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
상한 마음 조차
주님의 연단 과정에 허락되어진
우주적 원리이다.
우리, 상한 마음,
내 속에서 상한 영이 될 것만 같은 자들은
그 때
잠시 의지를 발휘하여
'주님을 돌아보자'
그것을 통해
진정으로 깊은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온전한 세상의 사는이유와 목적,
삶의 원리와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며
그 상한 마음을 통한 연단을 이루고 난 후
주님 나를 부르실 그날에
주님의 영원에 들어가게 될 것임을
자연스레이 알게되어
어느새
상함은 상함이로되
그 상함의 할큄은 약해져
마치 어느새 아지랭이 피는 초봄날이 부는
잠시 남은 겨울 바람이
이제는 '춥고 시림'보다는
곧있을 봄 기운 속의 달래 내음을 기대케 하듯
우리의 마음에
인생의 버거움이
소망으로 바뀔날이
자기도 모르게 바뀌어 있으리라.
마치.. 다윗이 그랬듯
내 스스로 내 삶이 증명하듯.. 말이다.
아침.
괜히 마음이 그렇다 .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내 나이가 주는 무게.
괜한 눈치..
오래 '상함'의 상태로 살았던 흔적이
치열히도 말씀 묵상을 하며 기도하며 삶의 변화를 선택하고 살았지만
아직도 은근한 아픔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생물학적 변화를 통하여
내 어이없는 '증상'을 유발하는 듯하다
다행이다.
그래도..
쉽게 그러함을 깨닫고
무 비판적으로 마음을 저열한 감상에 매몰되게 방치하지 않으니 말이다.
감사하다.
주님의 살아계심으로 인하여
말씀을 통해
이리도 매일 매일
다스리고 깨닫게 하시니 말이다.
믿는 모든 자들아 .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의 상하심을 치료하시고
그 사람 한사람 마다 임하셔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의 대단함을 체험해 보라.
이 세상의 번잡함,
의미없는 육신 만의 추구의 허망함을 딛고
그 뒤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하신 살아계심을 체험하길
진정으로 마음깊이 권고한다. ..할렐루야.
주님.
비록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주님께 드리는 영적 제사의 분량이 너무 적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향해 매일 귀기울임을 늦추지 않으심을
주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줄 믿습니다
주여.
그러해서
내 쉽게도 상하려는 마음의 그러함을
이리도 깨닫게 하시고
돌리시고 위로하시며
방향을 지도하시고
은혜로 바꾸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내 주여.
내 속의 영이
상하려 할 때
오늘도 여지없이 다가오시는 내 하나님
그 은혜와 살아계심의 다행함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가락 전쟁[시144:1-12] (0) | 2019.11.14 |
---|---|
피곤한 밤 인자한 아침[시143:1-12] (0) | 2019.11.13 |
악한 진수성찬의 진실[시141:1-10] (0) | 2019.11.11 |
주께서 그러셨습니다[시140:1-13] (0) | 2019.11.10 |
그러고보니 그렇네요[시139:1-12] (0) | 2019.11.08 |